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20)
‘아니, 못 알아들을 리가 없잖아!’
투란은 어이없어 반문했다.
―그래? 그럼, 한번 지금 네가 하려 한 짓을 그대로 설명해보든가.
드라고니아의 기묘한 말투, 빈정거리고 놀리는 낌새는 오히려 짙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일단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고, 네 남매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가만히 들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났을 때도 네 남매는 여전히 눈을 껌벅거리는 중이었으니!
“왜?”
투란이 이리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네 남매는 약간 초조하고 ‘왜 못 믿지?’라는 투란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며 미묘하게 낯을 구겼다. 이 순간에 네 남매는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세란드가 나타나서 남겼던 말…….
“너무 캐묻지는 말고.”
그런데 투란이 주섬주섬 늘어놓는 말은 한마디 한마디 모두 캐묻지 않으면 대체 이게 뭔 소리인가 이해할 수조차 없잖은가!
‘어쩌지?’
미묘한 멜란드의 눈길이 슬쩍 페란드와 시알라를 스쳐 갔다.
마침 둘도 서로를 흘깃거리면서 미묘하게 망설이는 낌새가 역력했다.
그러나 투란을 보며 셋이 이렇게 눈치를 보는 사이, 제란드는 시원하게 결심했다는 듯이 입을 연다.
“음, 그러니까 정리하면…… 물의 정령이 찾아왔는데, 그래서 이 주변을 이런 모양을 만들어놨는데, 투란이 이야기를 잘해서 물의 정령이랑 친해졌고…… 물의 정령이 있는 동안에는 물을 밟고 서 있을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물의 정령이랑 친해졌으면 물과도 아주 친해졌을 테고, 그렇게 물이랑 친해진 사람들은 헤엄도 잘 친다고 하니까, 혹시나 해서 열심히 헤엄쳐보려 했다고? 하지만 풍덩풍덩 물에 빠찌면 쑥쑥 가라앉기만 하고…… 결국 마법으로 간신히 다시 떠오르는 게 고작이었다, 이런 이야기야?”
“어, 그런 이야기 같은데?”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투란은 대답하고 말았다.
제란드의 말을 듣다 보니 투란 자신이 이야기했을 때는 뭔가 꽤 이리저리 꼬이고 꼬인 채로 앞뒤가 없지 않았나 생각되잖는가! 게다가 이렇게 앞뒤가 정리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뭔가 스스로가 바보 같다!
“투란, 누구랑 친하다고 해서 못하던 것을 잘하게 되지는 않잖아.”
이렇게 제란드가 덧붙인 소리는 바로 투란을 좌절시켰다.!
여기에 멜란드가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로 덧붙인다.
“물의 정령이랑 친하면 물에 빠져 죽기가 쉽지. 헤엄을 잘 치는 사람도…….”
페란드가 재빨리 헛기침을 하면서 조금 큰 소리로 말한다.
“투란이 여러 가지로 특이한 물의 정령과 만났나 보네. 에, 그러니까…….”
입을 연 까닭이 슬쩍 멜란드의 말을 덧씌워 지우려 한 탓이었기에 페란드는 뒷말이 조금 궁해져서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페란드가 더 뭐라 하기 전에 냉큼 시일라가 묻는 소리를 꺼내 잇고 있었다.
“그 정령인가랑 진짜로 이야기했어? 그냥 덥석 사람을 끌어안고 빠뜨리려는 그런 정령이 아니었어?”
“응? 말했어! 진짜로 이야기했다니까. 에, 그러니까……나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물의 정령이랑 달라서 좀 놀랐다고!”
―놀랐냐?
드라고니아가 이게 무슨 헛소리야, 하는 기척으로 투란을 놀리는 듯한 한마디를 던졌다. 하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기척은 싹 무시한 채로 시알라의 물음에 호응하듯 말을 잇는다.
“암튼, 어떻게 얘기가 잘 되어서 친해져서 그냥 갔는데…… 왜 난 물에 자꾸 풍덩거리고 빠지지?”
“마법으로 둥둥 뜨잖아.”
멜란드가 대답하듯 중얼거렸다.
페란드와 시알라가 흘깃 멜란드를 쏘아봤고, 제란드가 차분하게 말한다.
“헤엄치고 싶으면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몸에 익혀야지, 투란. 칼잡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똑같이 칼부림을 잘하는 거는 아니잖아.”
“아…….”
투란이 풀썩 주저앉은 몸짓을 보였고, 바로 허리춤까지 오는 물에 턱까지 닿으며 몸이 잠겼다. 그 상태로 투란의 입이 숨을 몰아내쉬니 바로 물거품이 피어났고, 잔잔한 파문 위로 은근히 비쳐 보이던 모습들이 물결 속에서 흔들거렸다.
―거 봐라, 내 말대로잖아.
드라고니아가 승자(勝者)의 여유를 드러내며 다시 투란에게 말했다.
물에 입술을 담그면서 투란은 살짝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데, 시알라가 묻는다.
“그 물의 정령 말이야, 여자처럼 생겼었어?”
“응? 어, 그랬지. 다크 레이디처럼 날개가 돋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흘러넘치는 물결이 다크 레이디랑 조금 닮아 보였었지?”
갸웃하면서 물에서 입만 빼내는 듯한 꼴로 투란이 대답했다.
“흐흠, 그래?”
시알라는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었고, 세 형제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세란드가 말한 ‘호수의 숙녀’가 뭔가 이제야 겨우 수수께끼가 풀린 셈이었다.
아무래도 투란은 여자처럼 생긴 물의 정령을 만났고…… 어떻게든 ‘이야기’를 한 듯했다. 그 물의 정령이 진짜 물의 정령인지 어떤지는 전혀 알 수가 없지만, 이 주변 지형을 완전히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무엇이었다는 점은 틀림없고!
문득 시알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이렇게 물이 퍼져 있으면…… 이 주변에 몰려들었던 꼬마랑 다크레이…… 응? 투란, 그 날개 달린 채로 머리카락 불타는 녀석 이름이 다크 레이디였어?”
투란이 고개를 갸웃하고 눈을 껌벅이며 답한다.
“어? 응. 그 여자처럼 생긴 거는 다크 레이디, 꼬맹이는 헬 임프, 덩치 큰 녀석은 둠고그라고 할걸. 어라? 여태 말 안 했나?”
잠시 네 남매는 맹한 표정으로 투란을 바라봤다.
전혀 들은 적이 없는 소리를 이제야 하는 투란을 다시 확인하듯, 그러면서도 혹시 언제 들었던가를 기억에서 뒤져보지만…… 역시나 네 남매가 따로 들은 적은 없다?
투란은 그런 네 남매를 보면서 다시 눈을 껌벅였다.
‘이거 말한 적 없었나?’
―몬스터 앞에 놓고 여유롭게 저 녀석에게는 어떤 이름이 붙어 있는데…… 어쩌고 하면서 설명한 적은 없다만?
드라고니아에게 답을 얻었다!
순간적으로 투란은 머리 한구석이 움찔하는 것을 느꼈고, 바로 입을 열어서 쏜살같이 말한다.
“세란드한테 못 들었어? 흠…… 난 세란드에게 듣고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암튼, 엄청 뜨거운 불꽃이 핏줄에 흐르는 녀석들이라서 일단 물이랑은…… 어떠려나?”
투란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어쩔 수 없었다.
이 호수를 받치고 있는 거대한 암반 지하 깊은 곳에서 만났던 데몬 문지기, 그 녀석이 뿜어내던 불꽃은 지옥에서 기어 나온 것이라 했고, 과거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는 불꽃과 같은 종류라고 했다. 헬 임프라든가, 다크레이니, 둠고그는 비록 그 크기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작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그런 불꽃을 품은 채였고 그 불꽃이 강해지면서 성장하는 몬스터였다.
그렇다면 인페르노의 영향 아래 있다는 몬스터들은 물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까?
보통 불꽃이라면 물 앞에서 일단 조금 웅크리기라도 할 듯한데, 과연 지옥의 불꽃도 그럴까?
‘어떻게 되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물어야 했고…….
―그냥 싫어하는 정도지. 뭐 어느 정도냐는 개체에 따라 제각각이겠지만 물에 빠져 죽은 헬 임프는 없을걸. 보기보다 가벼워서 둥둥 뜰 테니까.
드라고니아는 그걸 이제 묻냐는 듯한 뚱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투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제란드는 대뜸 두 손으로 물을 퍼올렸고, 손바닥에 물이 고인 채로 두 손을 변화시켰다.
“어?”
멜란드가 그 광경에 흠칫했고, 페란드는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봤다.
시알라가 제란드의 행동이 너무 빠른 것을 놓고 뭐라 하기 전, 물과 헬 임프의 손아귀 사이에서 바로 마찰이 일어났다.
치이익.
“끓는군.”
제란드가 자기 손에 고인 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페란드는 그 보글거리며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는 손에 고인 물을 보고 감탄하듯 말한다.
“정말…… 빠른데?”
“빠르지만, 단숨에 물을 증발시킬 정도까지는 아니군.”
제란드는 손을 털면서, 달아오른 물을 털어내고 손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말했다.
투란이 맹하니, 멜란드도 맹하니 제란드가 순식간에 확인한 광경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뭔 말이 나오자마자 몸으로 확인하다니…… 설마 이럴 줄은 둘 다 예상하지 못했다!
하나 시알라는 잠깐 멈췄던 잔소리를 바로 꺼낸다.
“독으로 영향을 끼쳤으면 어쩌려고! 조금은 조심하라고!”
제란드가 바로 어깨를 으쓱하며 답한다.
“조심했어. 손목 너머로는 변하지 않았잖아. 손에 무슨 일이 생겨도…… 바로 되돌린 다음에 치유능력이 발휘되도록 조심했다고.”
“어?”
“오!”
멜란드가 ‘과연 그런 수가!’ 하고 생각하는 사이, 투란은 그러면 되는 거였구나 하며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이런 둘을 보고 시알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이, 페란드는 멀리 보는 눈길을 하다가 불쑥 큰 목소리를 낸다.
“정말 몸에 불길이 담겨 있어도 물을 그렇게 무서워하지는 않네. 물을 만나자마자 녹거나 한다는 불의 몬스터는 아닌가 봐. 다크 레이디……라고 했었지? 저기 봐.”
페란드가 살짝 손짓해 가리키는 곳은 꽤 멀었다.
원래라면 굽이치는 낮은 지형의 어딘가였을 테지만, 물에 덮여 억눌려 잠긴 듯한 수면 너머로 맞닿은 땅…… 호숫가라고 하기에도 조금 분위기가 이상한 물가에서 날개를 펼친 채로 걷는 다크 레이디가 보였다.
발아래에 닿은 물을 걷어차면서, 날개로 허공을 가볍게 긁적이는 듯한 묘한 움직임으로 다크 레이디는 물가를 따라 걷고 있었다.
투란은 그 광경에 살짝 눈매를 찌푸렸다.
‘저거, 언제 나타났지?’
조금 전까지 시야에 선명하게 닿는 부분에서는 없던 녀석이었다.
그래서 네 남매랑 이러쿵저러쿵 수다 떨고 있었는데…….
―방금 물 아래에서 치솟았다. 페란드가 그 미묘한 기척을 느낀 모양이군. 물 아래 잠긴 지형에서 겨우 빠져나온 모양이야. 암반 아래쪽부터 뚫고 올라온 다크 레이디인 모양이다.
‘제법이네?’
―얕보지 마라. 위험한 몬스터가 분명할 테니까. 이 호수에는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네키아의 정화능력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몬스터에게는 어찌되었든 좋은 느낌일 리가 없지. 그런 물에 잠긴 지형인데, 그 땅속에서부터 기어 나왔다면…….
‘특별할 수도 있겠네. 흐흠…….’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시알라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투란의 말문이 활짝 열린다.
“아무래도 호수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다크 레이디 같은데, 저게 자신만의 나이트를 찾기 전에 얼른 가서 먼저 잡아버리는 게 어때? 시알라, 다크 레이디 한 마리 통으로 삼켜야지?”
시알라는 이 소리에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투란이 한 말은 물의 정령 이야기랑 살짝 닿아 있었다.
물의 정령에게 연인을 빼앗긴 나이트(Knight)가 복수를 위해 나선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연인은 물의 정령과 섞인 채였고 결국 나이트는 자신의 레이디를 죽여야 할 상황에 놓이고…… 한 자루의 검은 나이트와 레이디의 심장을 동시에 꿰뚫었다는 비극이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물의 정령과 섞여버린, 어떻게 봐도 반쯤 괴물이 돼 버린 레이디는 자신의 연인 나이트를 찾아 물가를 헤매며 무고한 사람들을 끌어안아 물속으로 끌어당긴다고 했다.
저기서 날개를 꿈지럭거리는 다크 레이디가 과연 누굴 물에 빠뜨릴 듯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사람 죽이는 레이디라는 점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통으로 삼키라니…… 누가 들으면 아리따운 아가씨를 통으로 구워먹는 괴물에게 하는 소리가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잖은가!
시알라의 입술이 살짝 삐뚤어진 채로 투란을 향해 대꾸가 나온다.
“물의 정령도 얼핏 레이디의 모습이었지? 흐흠, 그래서 우리가 자는 동안 레이디랑 따라 만나서 노는 나이트 노릇이라도 한 거야, 투란?”
“응?”
투란이 눈을 깜박였고, 세 형제는 누나를 보며 ‘엥?’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한데 드라고니아가 이를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인 듯한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박아 넣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키아가 너를 대하는 태도는…… 확실히 인간의 관습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나이트에게 청원하는 레이디의 모습이었다. 흐흠, 그거 아무래도 키린 녀석이 엉뚱한 소리를 지껄여 놓은 탓이 아닐까? 의심스러운데…….
‘야!’
투란으로서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뭔가 황당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