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2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22)
싸움의 상황이 분명해졌다.
다크 레이디는 특이하고 강했다.
시알라는 붉은 그랑츄의 한계점까지 그 특성을 끌어냈다.
다크 레이디가 불꽃으로 시알라를 상처 입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 손톱, 꼬리, 맹렬한 팔다리의 움직임은 확실하게 붉은 그랑츄의 몸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단지 붉은 그랑츄의 튼튼한 몸을 완벽하게 제압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을 수 없을 뿐이다.
그렇게 붉은 그랑츄의 힘은 분명히 시알라에게 다크 레이디를 압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싸움이 일방적으로 시알라에게 유리하지는 않았다.
불길을 뿜어내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다크 레이디는 두껍고 강인한 붉은 그랑츄의 손길을 끊임없이 피해냈다. 결코 잡히지 않는 동작, 우아하면서도 섬세하고 빠른 동작이 거듭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다크 레이디는 붉은 그랑츄의 괴력에 덧씌워진 시알라의 판단까지 예상한 듯, 그 모든 동작에 일정한 형태를 두거나 반복하는 버릇이 없었다.
―속도와 괴력, 어느 쪽도 쉽게 상대를 압도할 수는 없겠군.
드라고니아가 어딘가 느긋한 느낌으로 평했고, 투란은 찬성했다.
‘그래서 저게 도망치려 한 거겠지. 생각보다 상황판단이 빠른데?’
―흠…….
다크 레이디의 눈동자, 불꽃의 소용돌이로 뭉쳐진 눈알은 여전히 주변을 빠르게 휩쓸며 관찰하고 있었다. 이미 허공으로 치솟아 날아서 도망치려 한 것은 제란드의 ‘바람 사슬’에 막혔기 때문에 두 번 시도할 생각은 없는지, 불의 눈알이 주시하는 방향은 페란드, 멜란드…… 그리고 투란 쪽이었다.
투란은 그 낌새를 느끼면서 히죽 웃었다.
‘오면 한 대 쳐서 내리꽂아야겠지?’
제란드의 ‘바람 사슬’―에어 체인을 겪은 다크 레이디는 지금 그게 없는 다른 방향으로 내뺄 궁리를 확실히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노골적으로 드러난 몬스터의 형상이 아닌 투란 쪽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은근히 기대하면서 투란은 오른손을 주먹 쥐었고, 윌 라이트 안에 강력한 한 방을 준비했다. 그런데…….
‘어?’
다크 레이디의 눈알이 투란을 흘깃하며 굴러가더니, 그 몸이 대뜸 멜란드 쪽으로 튀고 있잖은가! 높이 치솟아 나는 대신에 낮게 굴러가듯이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다크 레이디는 불길도 뿜어내는 중이다!
멜란드는 그런 다크 레이디의 움직임에 거침없이 반응했다.
도마뱀 다리가 바닥의 물살을 긁듯이 차올렸고, 동시에 멜란드의 입에서 선명한 외침이 터져 나온다.
“워터, 월.”
치솟은 물결은 그대로 펼쳐지면서 장벽(障壁)처럼 버텼다.
멜란드의 도마뱀 발은 두어번 더 바닥을 차올렸고, 연이어 치솟은 물살은 여전히 외워진 주문의 영향 아래 있다는 듯이 겹으로 장벽을 이뤄냈다.
촤아아― 치이익!
물살과 불길이 마주치면서 격한 소리를 울려냈다.
뜨거운 안개가 치솟았고, 다크 레이디는 괴성을 울리면서 날개로 바닥을 긁었다.
다크 레이디가 멜란드의 반대방향으로 튀어나갔다.
날개의 불길이 바닥의 물을 한 번 더 긁고 증발시켜 안개를 피워올리는가 싶은 순간, 시알라가 자신의 곁을 스쳐 가는 다크 레이디의 어깨를 움켜쥐려는 손짓을 했다. 잡아서 바닥에 내리꽂으려는 동작이었지만…….
빠악!
다크 레이디가 내지른 발길질에 시알라의 어깨가 먼저 채였다.
낮게 깔린 물바닥을 날개로 긁으면서 다크 레이디가 자신의 자세와 동작을 바꿔버린 것이다.
힘으로 버티려던 시알라는 뒤로 휘청였고, 다크 레이디는 그대로 페란드 쪽을 향해 불길을 뿜어내며 날아갔다.
페란드는 가만히 두 손을 펼친 채로 다크 레이디를 기다렸고…… 불길이 페란드의 비늘이 서린 몸을 긁었지만, 곧 비늘 틈새로 흘러가며 사라졌다.
채채챙!
다크 레이디가 꼬리로 페란드를 후려치고 높이 솟구치려는 듯이 보인 순간, 거친 폭음이 페란드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크이이― 크잇!
촤악, 첨벙! 철썩!
다크 레이디는 비명을 지르면서 물바닥을 굴러 다시 시알라 쪽으로 밀려왔다.
―호오? 윈드 블래스터. 제법이군! 아무래도 저 형제들, 엘레멘탈 링을 활용하는 방법을 꽤 연구한 모양이다. 투란, 너보다 더 잘 쓰겠는걸.
맹하니 눈을 껌벅이던 투란은 뒤늦게 물어야 했다.
‘무방비인 척하고 있다가 머리 위에서 주문을 터뜨린 거야?’
―그래. 바람으로 다크 레이디에게 충격을 줘서 밀어버린 거지. 불길을 날린 것은 거의 덤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필요한 순간까지, 몸으로 버틴 것도 대단하군. 거의 불길에 구워지는 듯한 몰골을 그대로 보여줬으니, 속을 수밖에.
드라고니아가 페란드가 한 짓을 설명해줬고, 투란은 다크 레이디가 얕은 물바닥에 증오를 뿜어내며 파닥거리고 일어나는 광경까지 보다가 의아함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런데, 저거 왜 내쪽으로 올 낌새가 없지? 아까 분명히 날 흘깃했는데?’
―그때 포기했잖아.
‘어? 왜!’
―윌 라이트에 마력을 실어 한 방 먹이려 했잖아, 너…… 그 의도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압축된 너의 고유 마력…… 윌 라이트의 아케인 포스와 몬스터 엠블럼의 오러가 뒤죽박죽인 된 그 현상에서 생겨난 ‘존재(存在)의 압력(壓力)’을 포착했다. 헬 메이드는 아니지만, 주변 상황에 대한 판단은 거의 지성적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야, 저거…….
‘존재의 압력? 그게 뭐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당황했다.
나름대로 은밀하게 주먹에 힘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뭔 이상한 상태를 보였기에 다크 레이디가 눈치채고 이쪽으로 오지 않게 했단 말인가!
―무투가 사이에서 ‘기백(氣魄)’이라고 일컬어지는 힘이라면, 알아듣겠냐?
‘그건 연금술사 아저씨가 사람의 구성요소인가 뭔가라고 떠들던 말 같은데?’
투란은 기억을 더듬었고,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냥 큰소리치고 대담해 보이는 사람에게 ‘기백이 좋네.’ 할 때 쓰는 말과 같은 듯하지만, 연금술사가 사용할 때는 지금 드라고니아가 꺼낸 말처럼 뭔가 다른 뜻이 잔뜩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존재가 압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존재의 압력’이라는 말이지만, 과연 그것이 기백이 넘쳐난다는 뜻과 같은 소리일까? 드라고니아는 가끔 투란이 들었던 말을 약간 이상하게 다른 뜻으로 썼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그 의미 그대로다. 네가 힘을 응축시키며 대비하는 순간, 너라는 존재가 품게 된 힘. 그 압력을 저 다크 레이디가 고스란히 느꼈다는 거야.
‘조심해서 잘 숨겼잖아. 그런데도 알아차렸다고?’
투란은 자신이 제대로 한 방을 먹이기 위해서, 노골적으로 눈에 띄는 몬스터의 형상이 아닌 사람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힘을 차곡차곡 끌어모은 것을 되짚으며 되물어야 했다.
―저 녀석의 시야는…… 꽤 특별한 모양이다. 저렇게 계속 비워진 눈구멍을 지닌 다크 레이디라니…… 어디까지 헬 메이드에 가까운 몬스터인가 알 수가 없어.
‘흐흠, 그러고 보니 다크 레이디가 불을 막 뿜어내는 일도 없잖아?’
―그래, 다크 레이디는 화염을 뿜어내는 성향이 아니지. 몸에 붙은 불을 휘두르는 쪽이지.
‘똘똘해서 상황판단 재빠르고, 이쪽의 힘도 가늠하는 눈치도 있고…… 저거 너처럼 쫑알대는 일은 없겠지?’
투란은 문득 몬스터의 지능에 대해서, 저것이 지성을 지녔을 경우를 생각하면서 염려해야 했다.
―그런 수준은 분명히 아닌 것 같군.
드라고니아가 단정할 때, 다크 레이디는 마침내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듯…… 혹은 나뒹굴다가 시알라에게 채이고 맞은 울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괴성과 함께 팔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똑바로 시알라를 마주 보고, 두 팔을 펼친 순간부터 다크 레이디의 손톱은 손가락보다 더 길게 뻗어나왔고 손톱위로는 불이 흐르듯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깨 위에 높이 치켜세운 날개 역시도 그렇게 흐르는 불길을 머금었고, 뒤로 휘둘러지는 꼬리 역시 절반은 가죽이고 절반은 불꽃으로 이뤄진 형태를 또렷하게 드러냈다.
‘음, 시알라랑 일단 끝장을 내려는 모양이네.’
투란은 확신할 수 있었다.
도망칠 길이 없어진 이상, 다크 레이디는 일단 자신이 정면으로 쓰러뜨려야 할 상대를 결정한 것이다. 자신의 정면에서 끊임없이 마주쳐 오고, 구경할 생각이 전혀 없는 적을 향해 마주 선 것이다.
그리고 드러낸 저 모습은 확실히 위협적이고 꽤 강해보이는데…….
시알라는 다크 레이디의 각오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껑충 뛰었고, 그대로 주먹으로 그 볼을 후려갈기려 했다. 아주 쉽게 알아볼 수밖에 없는 의도와 동작이었다.
다크 레이디가 순간적으로 흐릿해졌고, 시알라의 가슴과 배에 두 손을 꽂아 넣듯이 찔렀다. 그 순간에 꼬리는 시알라의 다리와 허리를 휘말 듯이 감았고, 날개는 시알라의 어깨를 베어낼 듯이 내리찍히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순간에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불길을 뿜어내기까지 한다!
단숨에 몸이 지니고 있는 모든 특징을 다 쏟아내는 듯한 격렬한 공세였고, 지켜보는 투란, 세 형제가 모두 움찔할 정도의 파괴적인 힘이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시알라의 등뒤에서, 양옆으로 물살을 가르면서 벽이 솟아났다.
멜란드가 했던 것처럼 물을 차올려서 이뤄낸 장벽이 아니었다.
땅이 바위를 뿜어내는 듯한 광경이었고, 바위는 꿈지럭거리는 거대한 손아귀를 드러내는 참이었다.
그 손아귀는 다크 레이디의 움직임이 시알라에게, 붉은 그랑츄의 부풀어 오른 덩치에 집중된 순간을 노려 다크 레이디를 향해 손뼉을 쳤다. 다시 나눠지지 않는 손뼉질이었고, 바위 두 덩이가 거세게 다크 레이디를 움켜쥐는 광경이었다.
크이!
“시꺼!”
빠아악! 뽀각.
바위손에 잡힌 순간, 다크 레이디는 꼼짝 못 하게 된 자신의 상황을 바로 깨닫고 입을 열었고 그 입에서는 불길이 뿜어져 나오려 했다. 하지만 목구멍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이 보이려는 찰나, 시알라가 맞물린 바위를 밟고 뛰어오르며 다크 레이디의 턱을 두 손으로 잡아 꺽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뒤로 완전히 젖혀진 꼴이 된 다크 레이디의 머리가 불타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덜렁거리는 광경이 남겨졌다.
투란은 어이없어하면서 시알라를 바라봤고, 곧 세 형제도 마찬가지로 어이없어하며 누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붉은 그랑츄의 몸에는 아직 다크 레이디의 불길이 이글거리며 맴돌았다.
그 불길이 별로 큰 위협이 아닐지라도 시알라는 분명히 다크 레이디의 마지막 반격에 꽤나 몸이 긁히고 상처 입은 꼴이었다. 다크 레이디의 손톱, 칼날 같던 날갯짓, 꼬리는 패이고 긁어낸 흔적을 아주 또렷하게 남겨놓았으니!
―호오? 상당한데!
드라고니아가 뭘 감탄하는가를 투란은 묻지 않았다.
시알라가 뭘 어찌했든 간에 조금 전의 반격은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했으니까!
한편으로는 어떻게 했는가를 따질 여유도 없기는 했다.
시알라가 아직 멈추지 않고 있었다.
다크 레이디를 조금 더 확실하게 분쇄하는가 싶었는데, 시알라의 몸에서 붉은 그랑츄의 형상이 지워지고 있었다. 대신 강렬한 황금빛이 시알라의 몸을 맴돌았고, 그 가슴에서는 어느 쪽에서 봐도 선명한 황금의 매가 떠오르고 있었다.
‘에, 엥?’
투란은 소리내는 것을 잊고 놀랐다.
시알라의 황금매는 거침없이 빛의 발톱을 드러냈고, 그 빛나는 부리를 열고 있었다. 발톱과 부리가 목이 뒤로 꺾여 덜렁대는 다크 레이디의 목 줄기를 단숨이 찢어버릴 듯이 파고든 것도 순식간에 펼쳐진 광경이었다.
“어? 우앗!”
멜란드의 놀란 소리가 투란에게 아주 당연하게 들렸다.
제란드와 페란드도 흠칫하면서, 멜란드처럼 크게는 아니지만 놀란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다크 레이디는 누가 놀라거나 말거나 상관할 수 없었다.
황금빛이 다크 레이디를 물들였고, 투명한 금빛의 아지랑이가 다크 레이디의 몸에서 흩어져 나왔다.
금방 아지랑이가 지워지고, 다크 레이디의 형상이 사라졌다.
―허?
드라고니아가 다시 놀란 소리를 냈다.
아까의 감탄과 다른, 진짜 어이가 없고 당황해서 놀란 소리란 것을 투란은 바로 깨달았다. 이는 투란이 지금 느끼는 기분과 다르지도 않았다!
투란은 재빨리 시알라의 곁으로 첨벙거리며 뛰었고, 세 형제도 놀란 모습 그대로 누나를 향해 뛰었다.
두르고 있던 황금빛을 지운 시알라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있었다.
투란과 세 형제가 곁에 다가서는 것을 느낀 시알라가 고개를 들었고…….
“아, 조금 쉬어야 하나 봐. 벽이랑 지붕 좀 올려주겠어?”
흩어지는 웃음을 흘리는 말과 함께 그대로 쓰러지고 있었다.
“엑? 누, 누나!”
멜란드가 몸을 낮추며 쓰러지는 시알라를 손으로 받쳐주려 했고, 페란드와 제란드는 복잡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봤다.
투란은 주문을 외웠다.
“소일, 헛.”
투명한 물결을 가르며 흐릿한 티끌의 벽이 작은 반구형을 만들며 치솟았다.
시알라의 말처럼, 벽과 지붕을 이루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