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2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23)
시알라의 머리카락에서 작은 불이 흐르듯이 번졌다.
하지만 뭔가를 태울 낌새 없이 그저 광채만 뿌리고 사라지고 말았다.
뺨과 목덜미 쪽으로는 불그스름하고 두꺼운 가죽이 불이 남긴 광채처럼 돋아났다가 사라졌다.
어깨와 허리는 바싹 조여지듯이 뒤틀리는 가죽을 드러내다가 곧 사람이 살갗으로 돌아왔다. 등에서는 가늘게 살갗이 꼬이듯이 치솟으며 견고한 가죽으로 변해 잠깐 불길을 뿜어냈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옆으로 누워 웅크린 채로 시알라는 이런 몸의 변화와 함께 눈을 꽉 감고 가늘게 떨면서 버티는 모습이었다.
멜란드가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끙끙거리다가 투란을 바라봤다.
제란드와 페란드도 굳어진 표정을 지은 채로 누나를 보고, 투란을 보면서 당황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소일 헛’을 만들어내면서 투란이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이미 손짓을 했고, 때문에 세 형제는 시알라와 대여섯 걸음의 간격을 둔 채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거의 ‘소일 헛’의 흐릿한 벽에 등을 기댈 듯 말 듯한 모습으로.
“음, 너무 좁았나.”
돌연 투란은 이렇게 중얼거렸고, 다시 손을 바닥에 대면서 ‘소일 헛’의 주문을 한 번 더 외웠다. ‘소일 헛’의 흐릿한 벽이 하나 더 생겨났다. 이미 생겨난 것을 완연히 감싸는 크고 넓은 새로운 ‘소일 헛’은 거의 내부의 벽을 허문 넓고 큰 반구형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안쪽에는 작게 반구형으로 격리된 구역을 둔 채인…….
“다들 나가서 기다리자고. 괜찮을 테니까.”
투란이 하는 말에 세 형제는 주춤하다가 뒷걸음질을 쳤다.
흐릿한 벽이 부드럽게 패이는 듯하며 셋을 통과시켰고, 탄력 있게 뭉클거리며 다시 복구되었다.
투란은 세 형제가 물러서는 광경을 확인하고 나서 살짝 시알라의 머리맡에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시알라,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벽도 쳐놨으니까 안심하고, 해볼 수 있는 거는 다 해봐.”
그러고 나서 투란은 깡충 뛰듯이 ‘소일 헛’의 벽을 통과했다.
어딘가 잽싸게 튀는 듯한 투란의 모습에 멜란드가 바로 묻는 소리를 토해낸다.
“위험한 거야?”
“시알라는 위험하지 않아.”
투란이 금방 대답했고, 이는 멜란드에게 잠시 안도하는 한숨을 쉬게 했다.
하지만 제란드와 페란드는 낯빛을 허옇게 하면서 투란을 바라봤으니…… 멜란드도 이런 두 형의 낌새를 눈치채고 눈을 깜박거리면서 투란의 말을 한 번 더 곱씹어야 했다. 결론은 금세 나왔다.
“에, 어, 누나만 위험하지 않은 거야?”
투란이 싱긋 웃었다.
무슨 뜻으로 그리 웃냐고 멜란드는 더 따져 묻지 못했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테 에센스를 방금 삼킨 몬스터 로드가 위험하다면…… 그건 그 본인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이 위험하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멜란드 자신도 붉은 도마뱀을 삼켰을 때, 누나랑 형들로부터 미쳐 날뛰는 몬스터로 취급당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때 투란은 멜란드를 이렇게 위험물 취급하지 않았는데!
페란드가 약간 갈라진 목소리를 내며 대신 묻는다.
“저 다크 레이디…… 그렇게 위험한가?”
“음, 뭔가 특별한 다크 레이디가 아닐까 싶은데…….”
투란은 갸웃하면서 대답하고 있었다.
제란드는 이 소리에 잠깐 생각하다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낸다.
“와글거리면 쫓아다니는 꼬마들도 없었고……이 물가 주변으로 몰려왔을 녀석들이 주변에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지. 이건 우리가 본 것만으로도 좀 색다른 녀석이었나.”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시알라가 확실하게 때려잡았고…… 우린 그냥 도망 못 치게 막고만 있었을 뿐이잖아? 몬스터 로드가 자기 힘으로 때려잡은 몬스터에게 휘둘리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안심하라고. 그저…… 시알라에게는 팔다리가 낯설고 이상해서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니까.”
투란이 세 형제를 주르륵 둘러보면서 쾌활하게 말했다.
멜란드가 그 쾌활한 모습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묻는다.
“그러니가 누나는 위험하지 않은 걸 테고…… 그 낯선 팔다리에 우리가 위험해지는 거야?”
노골적으로 묻는 소리였고, 투란은 어깨를 살짝 으쓱하면서 솔직하게 대답한다.
“난폭하게 휘두를 때 맞으면 좀 아프겠지?”
멜란드가 끙하는 소리를 냈고, 제란드와 페란드는 조금 안도한 듯한 숨을 내쉬었다. 아픈 정도라면 그래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는 뜻이므로!
그런 모습을 향해 투란이 가볍게 덧붙인다.
“그래도 일단은 좀 떨어져서 구경하는 게 좋을 거야. 자, 그러면……난 잠깐 주변 구경 좀 하고 올게.”
“응?”
“구경?”
“어?”
세 형제는 난데없이 투란이 콧노래를 부르는 꼴로 ‘소일 헛’의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며 당황했다.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주변 구경이란 말인가!
한데 투란이 두 번째로 만든 ‘소일 헛’의 벽에 몸을 박아 넣다가 ‘아, 깜박할 뻔했네!’라면서 다시 보태는 말을 한다.
“혹시 시알라가 무지하게 아프게 때릴 것 같으면, 아케인 포스를 잔뜩 뿜어내면서 막는 게 좋을 거야. 어쨌든, 황금매는 아케인 포스를 받아서 몬스터를 진정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럼 다녀올게!”
다음 순간, 투란은 ‘소일 헛’의 흐릿한 벽 너머로 쏙 빠져나갔고…….
멜란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볼을 실룩거리다가 두 형을 향해 말한다.
“어, 저기 형, 형…….”
“누나를 혼자 둘 수는 없잖아.”
페란드가 단호하게 말했고, 어디까지 단호한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그 몸에는 갑주와 비늘을 두르기까지 했다! 웬만큼 시알라가 날뛰더라도 아예 몸으로 때우면서 버티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멜란드의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고, 제란드는 한숨부터 쉬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전투태세부터 갖추는 건 아니지. 멜란드도 그렇게 멀리 도망가서 구경하자는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형, 그러고 있으면 누나가 오히려 불안해져서 이쪽을 향해 반사적으로 손찌검할 수도 있다고.”
이 소리에 페란드가 움찔하다가 몬스터의 형상을 해체했다. 하지만 마법으로 형성한 갑주는 그냥 입은 채로 털썩 주저앉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시알라를 계속 지켜보겠다는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는 태도였다.
제란드도 누나를 지켜본다는 생각에는 별 이견이 없는 듯, 가만히 움직여 페란드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앉았다.
그 모습에 멜란드가 묻는다.
“형? 왜 페란드 형한테서 떨어지는 거야?”
페란드도 조금 의아한 듯이 제란드를 바라보며 눈으로 묻는 듯했다.
제란드의 대답은 간단했다.
“꼬리를 휘두르거나 하면, 한곳에서 다 맞을 수 있잖아.”
“아…….”
멜란드가 알아들었다는 소리를 냈고, 곧 제란드와 페란드로부터 거리를 둔 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여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러고 나서 잠시 작고 흐릿한 반구형 안에 있는 시알라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멜란드의 입에서 바로 투덜거리는 소리가 새 나온다.
“이건 꼭 누나가 화낼 거 눈치채고 슬그머니 내뺀 세란드 형이잖아. 우리가 다 혼난 다음에 돌아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시늉하고…….”
페란드와 제란드는 느닷없는 멜란드의 말에 잠시 의아한 표정부터 지었다. 하지만 곧 멜란드가 가리키는 것이 투란인 것을 알아차린 다음, 둘은 바로 낮은 소리로 웃고 말았다.
세란드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는 큰 형이었고, 돌봐야 할 동생들이 있는 탓에 밖으로 계속 일을 하러 다녀야 했다. 때문에 집 안에서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은 둘째인 시알라의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페란드나 제란드, 멜란드를 야단치는 것 또한 시알라의 역할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 남동생 셋이 말썽을 부릴 때, 가끔은 세란드가 한몫 끼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야단 맞을 때가 되면 세란드는 혼자 슬쩍 밖으로 내빼서 동생들만 신나게 혼나는 꼴을 겪게 했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는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시알라에게 두들겨 맞을 것 같아서 내빼는 투란의 모습에서 연상이 되기는 하잖나.
멜란드의 뒤를 잇듯, 제란드가 툴툴대는 소리로 중얼거린다.
“어쨌든 잘 될 거라고 큰소리도 치고 갔지. 묘하게 세란드 형이랑 닮은 구석이 있기도 하단 말이지…….”
페란드는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투란을 처음 만났을 때, 이 위험한 산맥 깊은 곳에서 느긋하게 뒹굴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지붕 위에서 빈둥대던 세란드라고 착각했었다. 사람의 모습도 아니었는데…… 시알라는 그 모습에 앞뒤 재지 않고 내달리기도 했었고!
기묘한 생각의 흐름은 형제들 사이에서 지난 추억을 잠시 들춰냈고, 시알라는 자신의 안쪽에 삼켜놓은 몬스터에게 집중했다.
―투란? 어딜 가는 거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내달리는 모습을 놓고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거기에 답하지 않고 투란은 묻는 말부터 쏟아낸다.
‘프로브! 이 근처를 모두 살펴볼 수 있지?’
―그렇다만, 뭘 찾는데?
‘이 물바닥! 네키아의 호숫가 얼마나 퍼져 있지?’
―꽤 퍼져 있을걸. 구체적으로 알려면 지금부터 다시 측정해봐야 하겠지만…… 어림잡아도 처음보다 서너 배는 넓어져 있을걸.
‘그래, 그렇게 네키아의 호숫가 퍼지면 녀석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아, 그리고 여기에 꼭 헬 임프만 있는 건가?’
―헬 임프가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다른 녀석들도 있다. 왜?
묻는 말만 쏟아내던 투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발을 더욱 강렬하게 움직였고, 발목에 닿는 얕은 물을 보다 세차게 밟으면서 한쪽으로 더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조금 더 가면 물에 잠긴 영역에서 벗어날 듯한데…….
투란의 눈가는 거뭇했고, 눈동자는 사람의 것이 아닌 뿔수리의 형상을 띤 채였다. 두 다리는 투겁고 검은 가죽에 무릎까지 덮인 채이나, 종아리부터는 카프리콘의 형상이 아주 또렷하게 드러난 채였다. 두껍고 굵은 허벅지가 격렬하게 팽창하고 수축하면서 투란이 내달리는 속도는 어지간한 시각으로는 포착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달려서 투란은 물이 얕게 깔린 영역에서 벗어났고, 꿈틀대는 바위 무더기에 닿자마자 걷어찼다.
콰앙!
투란의 발길질이 맹렬하게 꽂혔지만, 바위 무더기는 흩어지는 대신에 뭉쳐서 굴러갈 뿐이었다.
쿠르륵!
바위 조각이 거칠게 엉기는 소리를 냈고, 조각난 바위가 꿈틀거리면서 뽀각대는 마찰음과 함께…… 버티고 섰다.
―야수 바위로군.
드라고니아는 간략하게 말했고…….
‘그게 뭔데!’
투란은 격하게 되물었다.
―짐승처럼 네 발로 서는 바위라고. 아무거나 마구 삼켜서 짓이겨 먹어치우는 습성도 딱 야수 같은 놈이지.
‘자잘한 돌이 잔뜩 뭉쳐 있는데, 한 마리인 거야?’
―한 마리다. 두 마리가 함께 뭉치거나 한 몸이 되는 일은 없어.
‘그래? 근데…… 어디로 먹어치운다는 거지?’
투란은 재빠르게 바위 무더기, 야수 바위의 주변을 돌면서 갸웃했다.
단숨에 바위도 깨뜨릴 발길질로 뭉쳐 있는 놈을 걷어찼지만, 흩어지기는커녕 와르르 뭉쳐 몰려가면서 발딱 일어선 괴물 바위였다. 야수라고 하지만, 손톱이나 발톱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네 발로 선다고 했지만……그 또한 제대로 된 다리 모양이라기보다는 그냥 얽히고설킨 돌무더기가 길게 네 쪽으로 뻗은 꼴에 불과했다.
입이라든가, 눈, 코 따위는 흔적도 없다!
―어디로든.
드라고니아가 투란을 향해 짧게 답했다.
투란에게는 ‘엥?’ 하는 소리가 나게 할 말이었다.
콰르르륵!
야수 바위가 그 형체를 움직여 투란을 향해 앞발 자리에 붙었다고 볼 만한 길쭉한 돌무더기 두 쪽을 움직여 내리찍었다.
쿠웅!
격한 소리가 났지만, 투란에게는 닿지 않았다.
이미 투란은 그 두 가닥의 돌무더기 틈새로 뛰어들었고, 두 다리를 힘차게 움직여 몸통을 걷어차고 있었으므로!
쾅, 쾅!
역시나 야수 바위는 한 마리라는 말에 어울리도록 흩어지지 않고 와르르하는 뒤엉킴을 보이면서 높이 떴다. 허우적대는 네 가닥의 돌무더기는 분명히 네발짐승이 느닷없이 공중으로 채여 올라갔을 때의 모습이랑 닮아 보였다.
하지만 그 광경 속에서 투란은 볼 수 있었다.
완전히 흩어지게 하려고 차올린 발길질 덕분에 드러난 야수 바위의 몸통 안쪽, 거기에 짓이기지고 흩어져 있는 뭔가의 잔해, 가죽빛깔과 이글거리는 붉은 광택이 헬 임프를 떠올리게 하는 부스러기였다.
어디로든 먹어치운다는 드라고니아의 말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광경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