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2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25)
후우, 웃!
투란은 깊이 숨을 몰아쉬었다.
‘뭐라 했어?’
뒤늦게 드라고니아에게 묻는 말을 던졌지만, 드라고니아는 한숨을 쉬며 할 말을 잃은 듯이 끙끙대는 기척만 되돌려줄 뿐이었다. 갸웃하면서 투란은 다시 한 번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고, ‘천칭’의 풍경 속에서 몬스터 에센스가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좋았어!”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게 상황이 정리된 것에 투란은 기분좋은 외침을 낮고 짧게 터뜨렸다. 그러고 나서 보다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 곁에서 고요하게 찰랑이는 물결이 보이며, 미묘한 물안개가 바닥에 깔린 풍경…… 이에 마주하듯 암석이 울퉁불퉁하고, 메마른 땅이 낮게 깔리는 바람결에 따라 희뿌연 먼지 구름을 휘날리는 광경…….
갈라지고 깊은 틈새를 지녔던 ‘소금의 정원’이란 곳을 지나치면서 높이 올려다봤던 암벽 위의 풍경이었는데, 막상 올라와서 둘러보니 호수와 암석 지형이 맞물린 채로 꼬여 있는 넓고 이상한 들판처럼 느껴졌다.
“흐흠…….”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며 조금 더 멀리 둘러봤다.
암반 정상의 지형은 꽤 넓어서, 높이 치솟은 암벽의 정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가 분명했다. 거의 지평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멀리 보이는 끝자락이 있었고, 아예 저쪽의 지평선과 희미하게 겹쳐진 끄트머리는 그 아래에 뭐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 위에 자리 잡은 ‘네키아’의 호수, 호수와 마주한 기묘한 숲…….
분명히 뒤틀리고 붕괴되는 암반 지하에서 탈출해 치솟았을 때 내려다보던 풍경이 이 근처였다. 시알라네가 자리 잡은 곳은 그중에서 넓은 호숫가였지만, 이제는 그냥 얕게 깔린 물결이 거울처럼 고요한 풍경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여기는 투란이 내려다보던 곳의 풍경이 그대로인 듯 보였다.
―왜?
드라고니아는 문득 투란의 눈길이 숲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더듬는 것을 알아차린 듯, 간단히 그 까닭을 물었다.
‘저거, 걸어다닐까? 옆을 지나가면 움켜쥐고 조이거나 하지 않을까? 굉장히 얌전해 보이기는 하는데 말이야.’
―나무 얘기하는 거 맞냐?
‘어? 당연히 나무 얘기지! 여기 나무가 보통 나무겠어?’
―저 나무는 그런 짓 하지 않는다. 저건 네키아와 함께 이곳에 심어진…… 드라코눔의 정화목(淨化木)이니까.
‘그게 뭐야?’
―정화의 힘을 지닌 물의 정령, 그 물가에 심어놓으면 그 물을 마시고 성장하면서 정화의 힘을 머금고 유지하는 나무란 말이다. 몬스터가 자연스럽게 멀리하는 숲이란 이야기야. 저 주변의 헬 임프를 봐라, 돌을 던지고 놀고 있지만 숲 가까이는 가지 않잖아.
‘어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다시 한 번 숲과 주변을 둘러봤고, 그 말대로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헬 임프는 숲과 물가 근처에 있는 듯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려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이란 듯, 숲과 물가를 거닐고 있는 이상한 녀석들도 보이는데…….
‘그럼, 저 녀석들은?’
털 없은 가죽, 굵직한 꼬리와 기본적인 모습이 도마뱀과 닮았지만 네 다리는 늑대라든가 큰 살쾡이처럼 날렵하고 강인해 보였다. 몬스터가 멀리한다는 숲을 들락대는 듯한 분위기가 엿보였고, 은근히 숲을 자기네 보금자리로 삼는 낌새도 있었다.
―저건 마수(魔獸)다. 우리는 바이터(Biter)라고 부르지. 본 적 없나?
‘바이터?’
―깨물기를 잘하고, 깨무는 게 버릇인 녀석들이라서…….
투란은 살짝 눈을 가늘게 하면서, 바이터란 짐승을 바라봤다.
도마뱀과 늑대의 머리가 어중간하게 섞인 듯한데, 그 입의 아래턱이 거의 목덜미까지 열리는 모습을 잘 보이고 있었다. 버릇이란 말 그대로 뭔가 없어도 깨무는 시늉을 하는 듯한데, 이빨이 심상찮은 꼴이 사람이 물리면 팔다리는 그냥 싹둑 잘릴 낌새가 역력했다. 그리고 그 가죽의 질감, 발톱의 모양…….
‘아, 저것들이었나 보네. 야수 바위가 삼킨 것 중에서 몬스터 에센스가 없던 조각들…… 정말 이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건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 모양이야.’
―너랑 닮았군.
드라고니아가 슬쩍 비꼬는 소리를 던졌다.
투란은 피식 웃었고, 휠 스네이크에게 토막 나 흩어진 헬 임프의 몸통을 둘러봤다. 그러면서 히죽 한 번 더 짙게 노골적으로 웃었다. 보는 사람은 없지만, 보이기 위한 웃음이었다.
―야! 대체 왜…….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다시 몬스터의 정수를 삼키려는 하는 것을 알아차렸고, 뭐라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투란은 주먹을 꼭 쥔 채로, 굳건하게 속삭였다.
“윌 라이트, 디펜더.”
―뭐? 어?
드라고니아가 잠깐 당황했다.
투란이 꺼낸 소리는 윌 라이트에 준비해놓은 방어 주문의 총체(總體)였다.
주변의 어떤 상황에도 마법이 저절로 투란을 보호하게 하는 주문인데…… 그 까닭은 투란이 두 가지 몬스터 엠블럼을 지녔기 때문이었고, 두 문장이 서로 간섭 없이 완전히 독립해서 존재하는 탓이었다. 즉, 투란이 이 주문을 외운다는 것은…….
황금빛이 선명하게 투란의 가슴에 맺혔다.
금빛 투구를 쓴 머리가 아예 금으로 된 듯 보이는 머리, 교차된 날개가 방패처럼 그 머리 아래를 받치고 있는 형상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매의 부리가 열리며 금빛의 안개, 바람결을 토해내듯이 뿜어냈다. 날개 아래에서 슬그머니 발톱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형상까지 드러났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이 기쁘다는 듯, 금빛 매의 무늬가 숨을 쉬었다. 그 눈동자가 금색의 꽃을 머금은 듯이 데굴거리는 듯했고…… 주변을 둘러본다!
금빛 매의 발톱이 헬 임프의 잔해를 향해 빛이 되어 뻗어나갔다.
그리하여…….
하아아.
버릇처럼 깊은 숨을 몰아내쉬면서 투란은 자신의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아케인 포스를 느꼈다. 황금매를 중심으로 형성된 아케인 포스는 문장의 풍경 깊은 곳에 감춰진 파워 서클로부터 강렬하게 맥동하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세상 구경을 하는 것이 즐겁다는 듯, 파워 서클의 마력은 투란이 서 있는 암벽 지역의 아래편 깊은 곳과 호응하기도 했다.
그 감각은 투란에게 낯익으면서도 낯설었다.
마치 마력이 눈과 귀, 살갗이 된 것처럼…… 혀와 코까지 대신하는 것처럼 주변을 더듬으면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이전보다 더 짙고 선명해진 듯도 했다.
‘흐흠, 역시 이 녀석도 가끔 뭔가를 삼켜야 하네.’
투란은 황금매가 이전보다 강렬하게 역동적인 느낌이란 것을 깨달으면서, 문장의 풍경에 헬 임프가 새로운 황금 모형으로 추가된 것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그리고 윌 라이트가 울리며 드라고니아의 살짝 험악한 목소리가 투란의 귓속 깊이 파고든다!
“느닷없이 무슨 짓이야!”
‘어? 와, 이건 완전히 속삭이는 소리잖아?’
―닥쳐!
다시 소리 없이 뇌리를 울리는 한마디를 던지면서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킥킥거리는 웃음부터 흘렸다.
윌 라이트를 통해서 의지로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조금 전에는 뭔가 엉킨 것처럼 말이 전해지지 않자 드라고니아가 아예 소리를 내서 성질을 낸 모양 아닌가!
‘프로브가 이상한 것을 찾아낸 모양인데?’
크고 넓게 활성화된 마법, 이는 윌 라이트로부터 형성되어 있는 프로브의 탐지능력에도 영향을 끼친 듯했다. 뭔가 한 번 걸러서 느껴지던 것이 이제는 직접 닿은 듯이 느껴졌고, 그 감각 속에서 투란은 프로브가 가까운 곳에서 포착하고 있는 이상한 조짐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뭐? 어? 이건……!
드라고니아는 투란보다 살짝 늦게 이를 깨달은 듯했다.
“가볼까.”
낮게 속이면서 투란은 무릎을 굽혔고, 트리니티 히엔나의 두 다리가 세차게 땅을 박차며 움직였다.
쿠우웅.
지면에 박혀 있던 바위가 위로 들썩이다가 결국 뒤집어졌다.
바위를 밀어내고 기어 나온 것이 날개를 펼쳤다.
한쪽은 뼈대만 남았고, 한쪽은 너덜거리는 피막(皮膜)이 깃털 따위는 달아본 적이 없는 듯한 생김새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꼴로는 결코 날 수 없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날개인데…….
크으웃!
자신이 밀쳐낸 바위가 구르며 낸 소리를 흉내 내듯, 이마 양쪽으로 뻗어나가 굽어지는 뿔을 흔들 듯이 머리를 흔들면서 괴물이 목젖을 울렸다. 가죽이 찢어지고, 달아오른 숯불조각 같은 속살이 그 울림에 불티를 휘날리는 듯했다.
굵직하고 큰 덩치, 두 팔과 두 다리까지 달린 모습이었지만 그 몸에는 조금 전까지도 잔뜩 짓이겨지는 꼴을 겪은 듯한 상처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한쪽 눈알이 완전히 뭉개져 있고 한쪽 눈알은 눈동자없이 흐리멍텅한 꼴이었음에도 괴물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뭔가를 향해 입을 열었고, 불길을 토해냈다.
콰아아아!
“어? 엇, 뜨거!”
투란은 불길을 피하면서 외쳤다.
―둠 로드(Doom Lord)……?
“아는 놈이면 설명을 해!”
―죽었군.
“야!”
불을 뿜으면서 굵은 손톱으로 할퀴려고까지 하는 괴물을 놓고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은 투란을 어이없게 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죽은 놈이 할 짓인가!
―데드워커, 그 현상에 대해 들어본 적 있냐?
‘데드워커? 어? 그건…….’
투란은 사방으로 후끈하게 번지는 불길에 맞서 파이로-칸의 살갗을 끌어냈고, 그러면서 데드워커에 대해서 기억해냈다.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나 죽은 채로 움직이는 상태, 그게 바로 데드워커였다.
‘악마의 심장’이 가끔 시체를 움직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현상’ 혹은 ‘사고’라든가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변(異變) 속에서 나타나는 시체를 바탕으로 삼는 괴물.
그 속에는 ‘악마의 심장’ 같은 구체적인 다른 조종자가 없다는 특징을 지닌 것이 바로 데드워커였다.
그런데 그게 이런 괴물에게도 적용이 되는 일이었나?
이 춤추는 산맥에서 시체가 발딱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일은…… 산맥 깊은 곳과 가까울수록 보기 쉽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몰라도, 사람이 드문 곳에서 시체는 걸어다니든 누워 썩든 간에 짐승이든 몬스터든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기 일쑤인 탓에!
그리고 그렇게 데드워커를 뜯어먹은 녀석들이 데드워커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짐승 중에는 가끔 데드워커 뜯어먹다가 죽어서 데드워커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도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척 봐도 몬스터인 녀석이 데드워커 뜯어먹다가 데드워커가 된다는 이야기는 투란이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놈, 불도 뿜고 엉망진창인 날개도 펄럭거리면서 손톱으로 할퀴면서 발놀림도 꽤나 빠르잖은가!
―순전히 육체적인 반응일 뿐이다. 살아 있는 둠 로드라면 날개 꼬락서니와 상관없이 이미 날아올랐을 거야. 마법에 가까운, 거의 마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능력을 지녔으니까. 이건 확실히 죽은 놈이다.
의아해하는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나름대로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퍼억!
반쯤 형성된 파이로-칸의 팔뚝으로 굵직한 손톱을 막아내면서 투란은 낯을 찡그렸다. 손톱이 닿은 곳에서 시큰하게 스며오는 느낌이 불이면서도 조금 색다르게 톡 쏘는 듯하잖은가! 하지만 어쨌든 불꽃이라는 듯, 파이로-칸의 팔은 곧 그 느낌을 털어버리면서 힘줄과 핏줄에 힘을 북돋울 뿐이었다.
‘둠 로드라는 이름, 어째 둠고그랑 닮았다?’
투란은 불쑥 떠오른 의문을 바로 던졌다.
―음, 그 상위 형태의 몬스터라고 해야겠지. 다크 레이디에게는 헬 메이드, 둠고그에게는 둠 로드라는 상위 형태가 있는 셈이다. 시알라가 삼킨 것은 헬 메이드에게 근접했지만 여전히 다크 레이디였던 거고…… 이건 그냥 둠 로드가 죽은…… 어, 잠깐?
‘에잇, 어쨌든 괴물이잖아! 몬스터 에센스가 있겠지!’
커지려 하는 파이로-칸의 형상을 없애고, 날렵하고 작은 사람의 몸집을 활용해서 데드워커가 된 둠 로드의 품 안으로 뛰어들며 투란이 소리 없이 외쳤다.
그리고 황금매의 마법이 강대한 마력을 바탕으로 둠 로드의 형체를 움켜쥐고 땅바닥에 내팽개친 다음, 돌창을 만들어 꿰뚫었다. 아케인 포스를 바탕으로 고스트 핸드가 뻗어나오고 순식간에 형성시킨 무기의 형태까지, 투란은 단숨에 둠 로드의 덩치를 제압한 셈이었다.
그다음에는 망설일 필요가 없이, 마치 시알라가 했던 광경을 흉내 내듯이 투란은 황금매의 발톱을 내뻗었고…….
―야! 기다리라고! 둠 로드가 어떤 놈에게 당했는지 생각해야잖아!
드라고니아는 뒤늦게 이 상황이 단지 둠 로드의 데드워커가 희한하고 신기하다 할 것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황금빛 바람결이 투란과 둠 로드의 덩치를 휘감은 채로 맴도는 광경을 놓고 주변 땅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까지 구경하다 보니, 더 참을 수가 없다는 듯…… 바위로 된 지반에서 뭔가가 기둥처럼 치솟고 있었다!
콰릉, 쿠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