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2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26)
Chapter 66. 유해(遺骸)와 편지
시알라가 가늘게 눈을 뜨면서 느릿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누나, 이제 괜찮아?”
그 모습을 보자마자 멜란드가 바로 묻고 있었다. 아직은 몸을 옆으로 누인 채인 시알라가 눈동자만 움직였다. 곧 멜란드와 페란드, 제란드를 차례대로 확인하며 시알라의 입술 사이로 대답하는 소리가 밀려 나온다.
“괜찮아.”
페란드가 조심스럽게 시알라의 어깨를 짚으며 묻는다.
“앉아 볼래?”
“어…….”
시알라의 작은 대답과 함께 페란드의 손이 바로 움직였고, 시알라는 바로 몸이 일으켜지는 것을 느꼈다. 한없이 가볍게, 마치 몸에 무게가 없는 것처럼 페란드가 쓰러져 있는 듯했던 자신을 일으켜 앉히는 느낌이 시알라를 웃게 했다.
그 웃음을 보자마자 제란드가 재빨리 시알라의 앞으로 손을 저으며서 손가락으로 따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묻는다.
“누나, 잘 보여? 잘 들려?”
“시꺼.”
“음, 멀쩡하네.”
시알라가 바로 툭 뱉는 소리에 제란드가 손을 치우며 중얼거렸다.
페란드는 쓴웃음을 짓고, 시알라를 받쳐주던 손을 슬쩍 떼면서 말한다.
“정말 괜찮은지, 상태를 잘 살펴봐. 혹시 뭘 때려부수고 싶거나, 마구 할퀴고 싶거나 그런 충동이 일거든…….”
“괜찮아. 정말 괜찮으니까…… 응? 투란은?”
기우뚱하던 몸을 꼿꼿하게 세워 똑바로 앉으면서 동생들과 눈을 마주하며 대답하던 시알라는 바로 투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 녀석의 덩치에 가려진 줄 알았더니, 아예 없다니?
이런 모습은 아무래도 몬스터 에센스를 삼킨 다음에 주변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잖은가. 제란드와 페란드를 서로 마주 보며 미미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동의한다는 듯이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멜란드가 바로 등 너머를 엄지로 콕콕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말한다.
“저쪽으로 산보 갔지.”
“뭐?”
시알라는 멜란드의 말과 손짓이 대체 무슨 뜻인가 어리둥절했다.
페란드가 곁에서 다시 한쪽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설명한다.
“투란은 저쪽으로 갔는데, 이쪽에서 땅울림이 좀 심하게 일어났거든. 투란이 간 방향이 아니라서 일단 기다리는 중이야. 누나가 괜찮아지길 기다리면서…….”
“땅울림? 또 땅이 무너지고 뒤집어지는 거야?”
시알라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이번에는 제란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아니, 이번에는 그냥 뭔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땅바닥에 내다 꽂힌 모양이야. 뭐랄까, 단단한 땅 위를 듬직하고 큰 몽둥이로 아주 크게 후려친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내리친다기보다는…… 음, 사람의 한 열 배? 뭐, 그쯤 되는 크기로 뭔가 후려친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조용해졌어.”
시알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동생들이 하는 말의 의미는 명확하게 시알라에게 이해되고 있었다.
투란이 아마 주변을 정찰할 목적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고, 투란이 간 방향과 다른 쪽에서 꽤 큰 소동이 있었다. 두 방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살펴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자니 시알라의 상태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서…… 한편으로는 투란이니까 일단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신경 쓰이고 살펴볼까 말까 하는 염려가 되기는 하는 상황.
시알라가 씁쓸하니 한숨을 쉬듯 말한다.
“마법으로 멀리서 서로 이야기하는 방법 같은 거 없나?”
“있겠지. 다만…… 여기서 살아남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걸. 혹은 여기서 통하는 마법이 아닐 수도 있고.”
제란드가 대꾸했고, 시알라는 곧 공감할 수 있었다.
세란드로부터 물려받은 마법, 황금매를 이용하는 주문은 모두 이곳에서 살아남는 쪽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 응용할 수 있는지는 예상하기가 어렵지만, 당장 살기 위해서 써야 하는 마법에 집중한 까닭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 마법이 여기서 통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을 거란 점에 있어서도 다른 말 할 필요도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행이 갈라설 경우에 대한 대책을 세란드가 일부러 남겨놓지 않았을 수도 있기는 했다. 멀리서 듣는 이야기가 애절한 비명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를 상황을 투란에게 떠넘기고 있을 수만도 없잖은가?
“그러면…….”
시알라가 잠깐 찌푸린 표정으로 생각하다가 입을 열려 했고, 페란드가 냉큼 이미 검토한 바라는 듯이 말을 받는다.
“기다려 보자고. 투란이 자리 비우면서 한 말은 누나가 날뛸 때 맞기 싫어서인 것처럼…….”
“뭐?”
시알라는 표정이 조금 더 구겨진 채로 페란드를 노려봤다.
“잠깐 자리를 비운 것뿐이라고. 주변 구경한다면서. 그러니까, 오래 비울 생각은 없어 보였어. 아직 누나도 완전히 괜찮은 거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기다려보자고.”
제란드가 페란드의 끊어진 말을 이었다.
시알라는 잠깐 발끈했던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묻는다.
“근데, 이건 뭐야? 웬 움막? 먼지로 된 움막? 잠깐, 이거 혹시 전에 봤던……?”
플레임 불, 그 검은 소와 싸울 때 잠깐 투란이 네 남매를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소일 헛이라고 했어.”
멜란드가 대답했다.
제란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당장 맨땅을 뒹굴 것 같으니까, 급하게 대충 지은…… 원래 투란이 나름대로 생각한 세이프티 하우스인가 봐. 뭐, 바람막이도 되고…… 바닥도 깔끔하고…… 나름 괜찮아.”
시알라가 잠깐 눈을 껌벅였다.
제란드의 말인즉, 이 이상한 먼지 움막은 투란이 만들어놓고 갔다는 이야기인데, 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소박함을 초월한 궁핍의 정점을 찍을 듯한 집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전에는 그저 불길을 막기 위해서 대충 흙을 퍼올려 급히 지은 방벽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이게 세이프티 하우스였다니! 마법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면 정말…….
“투란이 자리 비운 지 얼마나 되었어?”
투덜거리듯이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내면서 시알라가 물었다.
멜란드가 갸웃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대답한다.
“대강 서너 시간? 그러니까 누나가 눕고 나서 그 정도 시간이 지난 셈이지?”
“짧게 잡아서 그렇고, 한 다섯 시간 정도는 지났을 거야. 생각보다 낮이 길어진 것 같으니까.”
제란드가 보태 말했다.
시알라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어졌다는 것은 그리 좋은 조짐일 수가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닌 이런 곳에서는 특히나!
페란드가 그 낌새를 바로 알아차린 듯이 담담하게 말한다.
“누나가 깨어나면 슬슬 주변을 둘러볼까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 한데 이젠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저쪽…….”
말과 함께 한쪽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시알라와 제란드, 멜란드는 얼른 그쪽을 바라봤고, 꽤 먼 곳의 지평선을 가리고 있는 듯한 울퉁불퉁한 언덕에서 투란이 주르르 미끄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작았지만, 분명히 투란이었고, 두 어깨 위에 하나씩 뭔가를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투란의 주변에 뭔가 자잘한 꼬맹이들이 나타났다.
투란처럼 언덕을 넘고는 있는데, 땅에 발을 붙이고 미끄러지는 모습이 아니라 작은 날개를 팔락거리면서 낮게 날고 있는 꼬맹이들이었다. 이 꼬맹이들은 투란을 쫓는 듯했지만, 투란 가까이 달라붙다가 발에 차이면서 옆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뭐지?”
멀리 있었지만, 강화된 시각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며 멜란드가 중얼거렸다.
시알라나 페란드, 제란드 역시 멜란드처럼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꼬맹이들은 분명히 헬 임프였다.
그런데 별로 위험한 느낌이 없다.
투란이 너무 가볍게 걷어차고 있어서일까?
“뭘 짊어지고 있는 거야?”
제란드가 중얼거렸다.
이 소리는 곧 시알라를 깨닫게 해줬다.
저 광경이 이상하게 보이면서도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 투란이 보여주는 미묘한 태도와 함께 헬 임프라고 하는 꼬마 괴물들이 투란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투란이 짊어지고 있는 것을 노리고 있다!
“도마……뱀?”
멜란드가 눈을 가늘게 하고, 강화된 시각을 한층 더 가다듬으면서 투란이 짊어진 것에 대해서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어쨌든, 마중은 나가는 게 좋겠군. 아, 누나는 그냥 있고…… 멜란드, 누나랑 함께 있어. 여차하면 네가 뿔비비 팔이랑 도마뱀 다리를 꺼내서 누나를 들고 뛰어오면 되니까. 제란드, 나랑 가보자.”
페란드가 곧 상황에 대해 어찌할 것인가를 말했다.
제란드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고. 누나, 아직은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기다려. 금방 다녀올 테니까.”
페란드와 제란드의 팔다리에 허연 털이 솟아났고, 날렵한 질주가 시작되었다.
멜란드는 형들이 꺼낸 트리니티 히엔나의 형상을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호기심은 멜란드에게도 가보라고 하지만, 시알라가 꽤나 지쳐서 축 처진 상태였다. 공연히 가까이 갔다가 예상외의 상황에 휘말리면…….
“음, 누나 기다려보자고.”
멜란드의 말은 시알라를 피식 웃게 했다.
지금 시알라가 멜란드에게 자신을 부축하거나 업고 뛰라 하면, 멜란드는 바로 뛰어갈 터였다. 그러면서도 시키는 대로 참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은근히 시알라가 가보라고 권하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시알라도 한마디 하기로 했다.
“금방 올 테니까, 조금만 참고 있어.”
“어.”
볼을 볼록이면서 멜란드는 끙끙대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시알라 곁에 선 채로 멀리 보면서 함께 기다리는 태도를 굳혔다.
다시금 떠오르는 웃음 속에서 시알라는 이런 곳에서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 새삼 고마워할 수 있었다.
첨벙!
웨이잇! 키이엣!
투란의 발이 물을 밟자, 헬 임프들이 그 물방울을 피하듯이 날개를 퍼덕대며 멀어졌다.
“꼴에 물은 싫냐?”
투덜대면서 투란은 아예 발로 물을 걷어차 줬다.
그런 투란을 향해 빠르게 다가온 제란드가 마찬가지로 물을 걷어차서 헬 임프 쪽으로 튕겨 보냈다. 투란의 어정쩡한 발차기와 다르게 제란드의 발길질은 바람결을 흔드는 듯했고, 헬 임프 몇 마리는 제대로 물을 뒤집어쓰고 바닥에 떨어졌다.
키에엣! 휘이엣!
괴성과 함께 물에 홀랑 젖은 채가 되자마자 몸에서 모락모락 안개를 피워 올리는 듯한 꼴이 된 헬 임프 몇 마리가 후다닥거리면서 물가에서 벗어났다.
“뭐야, 물에 닿았다고 바로 저러나?”
제란드가 의아한 듯이 중얼거렸다.
페란드는 투란 곁으로 다가서며 심각하게 묻는다.
“투란, 그건 뭐지? 몸은…… 심하게 다친 거야?”
이 소리에 투란보다 제란드가 먼저 놀란 소리로 반응했다.
“다쳐? 뭐 묻은 거 아니야?”
“어, 조금 뭐 묻은 거야. 이건 먹을 거.”
투란이 제란드의 염려하는 목소리에 답하고, 페란드에게 어깨에 짊어진 것에 대해 설명했다. 간단한 설명이지만 페란드는 안도하다가 ‘엥?’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먹을 거?”
길 가다 만나면 일단 피해가는 것이 좋아 보일 듯한 짐승이잖은가!
제란드는 페란드의 반응과 다르게 손을 내밀었다.
“대신 들고 갈게.”
“응? 아, 여기!”
투란은 냉큼 짊어진 두 마리를 제란드에게 넘겼다.
두 마리에게 가려졌던 투란의 몸이 드러났고, 페란드가 염려하며 물었던 것이 아주 당연한 듯한 핏자국과 긁힌 가죽 반바지의 형상이 뚜렷해졌다. 몸에는 그저 거뭇해져 버린 핏물이 번진 듯했지만, 상처가 회복되어 가는 낌새가 보이고 있었다.
제란드는 조금 전에 자신이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느꼈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정말 뭐가 몸에 묻은 수준의 사고가 아닌 모양이었다.
“아…… 지쳤어. 얼른 엎어져 좀 자고 싶어.”
투란이 한숨을 몰아내쉬면서 목소리를 높여 중얼거리고 있었다.
제란드의 입술이 달싹이려다가 멈췄고, 페란드는 몸에 살짝 물고기 비늘을 형성하면서 말한다.
“그럼, 가서 자. 아직 집…… 움막 그대로 유지되니까. 편히 자려면 멜란드에게 다시 집 짓게 해도 될 거야. 심심해했거든.”
투란은 페란드가 뒤에서 깩깩거리고 힉힉거리는 헬 임프를 노려보는 모습을 흘깃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정말 좀 자야 해.”
노골적으로 지친 발걸음을 투란이 디뎠고, 제란드가 두 마리 짐승을 짊어진 채로 그 옆을 지키듯이 걸었다. 페란드는 뒤를 지키면서, 물을 밟지 않으려 하면서도 씩씩거리고 있는 헬 임프와 주변을 경계하며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