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2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28)
하늘은 맑았고, 옅은 빛을 띤 것처럼 보였다.
배를 두드리면서 지붕에 누운 투란은 멍하니 하늘을 보는 모습이었다.
투란이 누운 자리는 벽의 꼭대기에서 툭 튀어나온 모양을 한 지붕이었고, 원래 지붕이 없는 건물에 슬쩍 얹혀놓은 듯한 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래에서 가죽을 다듬고 썰어 모양을 만들고 있는 페란드와 제란드의 모습이 훤히 보이기도 했다. 시알라와 멜란드는 투란처럼 배를 꼭꼭 채운 모습으로 각자 침상을 찾아 누워 있었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한참 만에 부르는 소리를 건넸다.
‘어, 맛있었어. 아, 넌 내가 느끼는 맛도 이미 알고 있나?’
투란은 느릿하게 배부름과 함께 찾아오는 몽롱해지는 기분을 한껏 뽐내듯이 대꾸했다. 소리를 내며 대꾸한 것이라면 아예 끄윽 트림까지 섞을 낌새가 역력했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의 태도를 싹 무시하는 듯, 아예 못 들은 듯한 말투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시작하니…….
―바위 구렁이 배 속에서 꽤 위험하기는 했지만, 황금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해도 괜찮았을 거야. 황금매도 결국은 몬스터 엠블럼이니까…… 비록 아겔페스가 만든 것은 실패작에 불과할지 몰라도, 네가 완성시킨 황금매는 분명히 몬스터 엠블럼이다. 아케인 포스를 다루는 특별한 문장이라도 일단 몬스터 엠블럼이고, 아케인 포스가 짙다고 해도 분명히 몬스터 로드의 고유한 마력 특성을 지니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싹싹 갈려나가는 건지, 슥슥 지워지는 건지! 잘 겪었거든! 위험했잖아! 이제 다시 그런 바위 구렁이 같은 놈이랑 엮이고 싶지 않다고!’
투란은 투덜거렸다.
더 생각하기도 싫다는 의지가 선명한 투덜거림이었고, 드라고니아는 아주 잠깐 침묵하는 척했지만 그래도 하던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분명히 아케인 포스의 성질이 강한 부분은 반마력에 심하게 영향을 받고 있기는 했지, 하지만 만약 그 힘이 완전히 황금매를 제압할 정도였다면…… 천칭의 문장 쪽으로 바꿀 수도 없었을 거란 말이다. 즉, 그 상황에서 문장을 바꾼 것은 무모한 판단이었고…… 황금매가 지닌 마그마 로드를 바로 꺼낸다든가……강인한 파이로-칸의 몸으로 일단 버티면서 조금 더 상황을 보는 것이 더 현명했단 말이다. 윌 라이트의 방어마법은 반마력이 아무리 짙어도 그 정도 여유는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기도 하고…….
‘칫, 알았어. 하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 없었다고. 너도 아무 생각 없었잖아! 그러니까 한참 생각하고 있다가 내가 고기 다 먹은 다음에 말 꺼내는 거잖아!’
삐죽거리면서 투란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고,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확실히 드러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드라고니아에게 핀잔까지 넣으니, 바로 발끈하는 대꾸가 돌아온다.
―바이터를 뜯어먹는 동안 아무 생각 없던 건 너지! 그런 생각 없는 녀석에게 뭔 말을 해!
‘흐흠…… 생각 없이 그런 걸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오래 해서 답을 구한 다음에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오히려 적을걸. 몬스터 로드니까, 먼저 본능에 따르는 게 답이라고. 그리고…… 내 본능이 지금 자라고 하거든? 나중에…… 아, 나 자는 동안에도 넌 깨어 있지? 그러면 이 주변이 어떻게 생겨먹었나 조사 좀 해줘.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빨리 벗어날 수 있나 알아봐 달라고. 그럼, 난 정말 자야 하니까.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해…… 지금 아무 생각도 없는 투란이라고, 나는…….’
투란은 흐릿해지는 심상 속에서 중얼거렸고, 바로 잠들었다.
새근거리는 고른 숨소리가 투란의 주변을 울리며 퍼졌다.
아주 잠깐, 투란의 오른손에 여린 빛이 어리면서 꿈틀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그대로 그 손이 움직여 투란의 낯짝을 두들겼을 듯했지만…… 쓱싹거리며 가죽을 자르고 다듬는 아래쪽의 소리가 뚜렷한 상황에서 그대로 빛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별빛이 하늘을 수놓을 무렵, 투란은 잠에서 깨어났다.
‘어? 캄캄? 아니, 밝은가?’
눈에 들어오는 하늘을 보면서, 별이 보이지만 생각보다 어둡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밤눈을 뜬 채로 그런 소리를 하냐!
버럭 튀어나오는 드라고니아의 소리 없는 외침이 투란의 뇌리를 쩌렁쩌렁하게 두드려 팼다.
‘밤눈?’
투란은 자신의 시각을 점검했고, 곧 드라고니아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다음, 눈을 뜨자마자 눈동자는 이 어둠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강화된 시각이 사용된 것이다. 윌 라이트에 새겨진 채로 효과를 발휘하는 황금매의 마법에 따라서…….
‘어라?’
이는 투란을 다시 갸웃거리게 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황금매의 마법이 효과를 발휘할 까닭이 있을까?
윌 라이트의 마법을 적당히 조절하는 일은 드라고니아가 주변 상황에 맞춰서 할 텐데?
곧 투란은 눈알을 굴렸고, 자신이 누운 곳보다 조금 더 높게 솟은 탑 같은 것이 곁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탑은 적당히 꾸며진 망루(望樓)처럼 보였고, 그 안에 어른거리는 제란드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히 주변을 바라보면서 망을 보는 태도였다.
부스스하니 투란이 몸을 일으키다 보니, 바로 제란드와 눈이 마주쳤다.
“벌써 깼어?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는데…….”
제란드의 말은 낮았지만, 어둠을 틈타 번져오듯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투란은 이 또한 강화된 청각과 관련 있는 것을 알아차렸고, 미묘하게 입가에 쓴웃음이 맴도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드라고니아는 투란 가까이에 남매가 얼쩡거리고 있으니까, ‘천칭’을 황금매로 위장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한 모양이었다. 몸을 회복하고, 휴식을 더욱 강화해 주는 것 또한 황금매의 강화효과이니까…… 덤으로 깨어나자마자 감각이 예리하게 주변에 적응하는 효과도 발휘된 듯했다.
당장 제란드의 눈동자 또한 투란처럼 활짝 열린 듯한 동공으로 빙그르 돌듯이 멀리 보는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도 했다. 그냥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주의 깊게 망을 보는 것이 아니라 넓고 강력해진 시각으로 세심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그런 모습이었다.
“뭐 볼만한 거 없어?”
투란이 망루로 넘어가면서 물었다.
제란드가 한쪽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저쪽…… 물가랑 숲이 섞인 걸로 보이는 곳, 그 앞에 꼼지락거리고 있는 녀석들…… 헬 임프라고 했지? 그 꼬맹이들인데…… 하는 짓이 괴상해. 물가에 발을 담갔다가 손을 담갔다가 하잖아?”
“음…… 어, 그러고는 화들짝 튀는구만! 뭐 하는 짓들인지…….”
투란은 멀리 보이는 헬 임프 몇 마리가 별빛 가득한 밤에 살갗 틈새로 붉은 불빛을 머금은 채로 난리 치며 까불거리는 꼴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바이터를 잡아 어깨에 짊어지고 올 때도 그랬지만, 저 녀석들은 낮게 날면서 물에 닿으면 저 괴상한 짓을 하고는 했다. 그러더니, 지금도 저기서 비슷한 짓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못 느끼지만, 아무래도 이 물이 조금 특별한 모양이야. 손에 물을 받아 올려보면, 몬스터의 형상이 슬그머니 오그라드는 그런 느낌이 있거든. 어쨌든 우리야 몬스터 로드지, 몬스터가 아니니까 괜찮지만…… 저 꼬맹이들에게는 아주 다른 느낌인가 봐.”
제란드가 투란의 말에 신중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투란이 자는 동안에 이것저것 해본 듯한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투란은 바로 묻기로 했다.
“땅이 뒤집어지거나 바위가 기어 나오거나,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거나…… 물이 불끈 치솟거나 그런 일은 없었어? 아, 느닷없이 물속에서 안개가 피어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는데?”
잠시 질린 듯한 표정을 떠올리다가 제란드가 한숨처럼 대답했다.
투란은 그 한숨에 동조하듯이 깊은숨을 몰아내쉬면서 중얼거린다.
“다행이네. 어쨌든 조용한 물가라니…….”
“그렇지, 이 주변은 조용하지.”
쓴웃음 짓는 표정으로 제란드는 다시 멀리 보는 눈길로 답했다.
투란은 금방 그 표정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멀리 보이는 풍경 속에서 바이터가 헬 임프랑 툭탁거리고 있었고, 숲의 위쪽에는 본 적 없는 도마뱀과 새가 섞인 듯한 것들이 날갯짓을 하며 날고 있었다. 딱히 털이 돋은 짐승의 행적은 눈에 띄지 않지만, 어딘가 도마뱀이랑 섞인 모양의 짐승은 생각보다 많이 보이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 얕은 물가와 저쪽의 깊은 물가에는 차이가 있다는 듯, 저쪽 깊어 보이는 수면에는 가끔 큰 거품이 푹푹 튀어나오고는 했다. 물속 깊은 곳에서 뭔가 큰 숨을 내쉬기라도 하는 듯…….
“여기는 와 본 적 없는 거지? 그러니까, 이 위로는 말이야.”
투란은 제란드에게 조금 더 지난 일을 물었다.
제란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벽을 올라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으니까. 높기도 했지만, 이 넓은 암반 위에 뭐가 있을지 궁금하지도 않았어. 겔퍼…… 우릴 데려온 마법사가 암반의 한쪽 절벽길을 잘 알고 있다고 했거든. 그래서 그 절벽을 타고 거의 숨다시피 하면서 왔었지.”
“얼마나 돌아왔지? 절벽길이 시작되는 곳, 어디쯤인가 대강 방향 잡을 수 있겠어?”
투란이 별빛을 담은 눈동자를 번뜩거리며 물었고, 제란드는 헬 임프와 바이터 무리가 엉킨 곳과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손끝을 뻗으며 답한다.
“대강이라면…… 아마 이쪽일 거야. 아까 페란드 형이랑도 얘기해봤는데, 우리가 왔던 절벽길은 어쨌든 큰 바위를 가로지르는 대신에 빙 둘러가는 형태였거든. 넘어서 가로지를 수가 없어서, 빙 돌았다고 해야 하나?”
“흠?”
투란은 이 설명에 갸웃했다.
제란드가 씁쓸한 표정으로 이 갸웃거림의 의미를 안다는 듯이 말한다.
“마법사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 지금 생각하면…… 마법사에게 능력이 없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이 위를 가로지를 정도로 강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해. 여전히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그 겔퍼라고 우릴 속이던 마법사는 어떻게든 우릴 세란드 형 앞으로 살려서 데려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흐흠.”
투란은 제란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투란을 세란드로 착각했던 아겔페스는 당당하게 네 남매를 방패막이로 들이댔었다. 아마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여기서 살아남은 세란드를 상대하지 못한다고 여기고, 네 남매를 끌어들였던 것이 아닐까?
‘분명히 대단한 마법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인 세란드가 더 강해보이기는 하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투란은 제란드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그쪽에서 뭔가 보이지 않을까 해서 들이대는 눈길이었고, 제란드는 그런 모습을 보며 몇 마디 덧붙인다.
“암반 가로 가서 절벽을 내려다봐야 확실할 것 같기는 한데…… 저기 살짝 돋아난 것처럼 보이는 울퉁불퉁한 산들이 보이지? 거기가 아마 산맥의 깊은 안쪽과 바깥쪽의 경계일 거야. 저 산자락을 타고…… 경계도시가 있을 거야.”
“오? 이제 도시 근처가 보이기까지 하는 거야!”
투란이 놀란 소리를 냈다.
제란드는 투란이 너무 좋아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머쓱하니 머리부터 긁적이며 얼른 대답해야 했다.
“아니, 보이지는 않아. 산자락을 반쯤 돌아가야 하니까. 그리고…… 보인다고 해도…… 꽤 멀어. 거의 지평선처럼 보일 테니까.”
“아하핫, 저기를 반만 돌면 되는 거야? 아주 가깝네! 아하핫!”
제란드의 말을 멋대로 챙겨 들은 듯한 태도로 투란이 유쾌하게 웃었다.
제란드로서는 뭐라 할 말이 잠시 뇌리에서 싹 사라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좋아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러나 투란의 뇌리에 드라고니아의 험한 소리는 거침없이 꽂혀들고 있는 중이었으니…….
―임프의 정원과 저기 보이는 산봉우리 사이에는 마물(魔物), 괴물(怪物), 요물(妖物)이 와글거리는 지역이 있다. 얘네가 어디서 왔나 했는데, 대체 그 지역을 어떻게 넘었나부터 확인해봐!
‘몬스터 떼가 있다고?’
느닷없이 몬스터를 부르는 다양한 호칭을 다 끄집어내는 말이었기에 투란은 제란드를 향해 웃는 표정 그대로 소리 없이 물어야 했다.
―흥! 뭐가 있는지, 넘어온 녀석들에게 물어보라니까.
드라고니아는 제대로 콧방귀 뀌는 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투란은 숨을 고르는 시늉을 하면서, 제란드에게 물었다.
“음, 그런데…… 저 산까지 가는 사이에…… 뭐 있나? 아무것도 없지? 응? 없지?”
묻는 말인데, 나오는 소리는 없다고 강요하는 듯한 낌새가 너무나도 분명하잖은가!
제란드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어 보인 다음에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꺼낸다.
“오는 길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지만…… 갈 때는 그렇게 되기 힘들 거야. 올 때는 마법사가 좀 희한한 방법으로 우릴 데려왔거든.”
“희한한?”
“투란, 풍선 타고 날아봤어?”
“풍선? 그게 뭐야?”
투란이 멀뚱거리며 되물었다.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는 그 모습에 제란드가 빙긋 웃었다.
마치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듯!
하지만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의 잔소리가 깊이 들이닥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