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2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30)
물보라 사이에서 짙이겨진 듯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시알라는 물에 젖은 투란과 동생들이 그 안개를 두른 듯이 나오는 모습을 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여전히 아래편에 놓여 있는 듯한 숲의 풍경이 짙게 깔린 융단처럼 바로 보였다.
절벽의 돌출부에 선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면서 시알라는 살짝 그 끝에 발끝을 겹쳐놓으면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숲과 절벽 사이에 빈 틈이 검은 길처럼 길게 이어진 광경이 보였다. 그 길은 숲을 향해서, 절벽을 향해서 가지를 치며 길게 이어지며, 숲의 어딘가로 스며들고 절벽의 어딘가를 기어오르는 듯했다.
“저기네…….”
시알라는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곁에 서면서 투란이 그 방향으로 눈을 가늘게 뜨는 시늉을 했다.
“흐흠, 여기서 봐야 보이지 아래에서는 안 보일 것 같은데?”
투란의 말에 시알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페란드가 대꾸한다.
“맞아. 저 아래에서는 저렇게 올라서는 길이 있다는 것도 눈으로는 확인하기 힘들어. 절벽에 바싹 붙어서 직접 걸어 다녀봐야 알 수 있지. 마법사가 길잡이 노릇을 하지 않았다면, 저 아래에서 꽤 오래 여기저기 헤매고 있었을 거야. 보기랑 다르게 저거, 폭이 좀 넓거든.”
“여기도 아직 꽤 높다고!”
멜란드는 엎드린 채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아래를 보는 자세로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 등짝을 밟고 올라서면서 제란드도 한마디 한다.
“그렇군. 정말 여전히 높네.”
“으컥! 밟지 마!”
멜란드의 투덜거림을 무시한 채로 제란드는 그 등을 밟고 서서 발돋움까지 하며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시알라가 한숨을, 페란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사이에 투란은 조금 더 눈을 가늘게 하면서 검게 번들거리는 눈동자 속에 다시 뿔수리의 눈동자를 닮아 풍경을 둘러봤다.
“이 숲, 생각보다 넘기 쉬운 건가?”
불쑥 투란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네 남매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먼저 시알라의 고개가 세차게 저어진다.
“그럴 리가 없어. 왜?”
투란의 손끝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투란의 눈가에 살그머니 금빛이 어리면서 강화된 시각을 조금 더 강력하게 사용한다는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이를 본 네 남매는 바로 눈을 똑바로 뜨고, 눈동자 속에 황금빛의 마력을 엉기게 하면서 투란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투란이 뭘 가리키고 있는지는 오래 찾을 필요가 없었다.
멀어서, 사람의 눈으로는 제대로 보일 리가 없는 곳이었지만 사방이 탁 트인 데다가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것이 장점이 되었으니…… 흙을 파 올려 낮은 벽을 두른 듯이 사방을 막고 자리 잡은 채, 잠든 듯한 몇 사람이 바로 보이고 있었다.
엎드려 있던 멜란드가 바로 벌떡 몸을 일으켰고, 제란드는 재빨리 옆으로 내려섰다. 페란드가 투란처럼 의아한 듯이 중얼거린다.
“어떻게 된 거지? 마법사의 그 방법이 알려진 걸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
투란이 곧 납득한 시늉을 했다.
하지만 제란드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가죽과 고무로 만든 풍선을 이용한 것이 아니야. 그거 넘어오면서 끊임없이 재조정을 했고, 날아 움직이는 궤도도 계속 수정했잖아. 출발하는 광경을 봤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어.”
시알라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다른 방법을 썼든가…… 아니면 그냥 저 숲을 돌파했겠지.”
투란은 ‘어?’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이 사이에 열심히 눈을 부릅뜨고 가늘게 하길 되풀이하면서 지켜보던 멜란드가 이상하다는 듯한 중얼거림을 토해낸다.
“근데…… 왜 다들 누워 있지? 자는 거라면 한 명 망보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바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멜란드가 이곳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짚어버렸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더라도 해야 하는 일인데…….
물보라 소리와 스쳐 가는 바람결이 그 침묵을 바로 깨뜨리는 듯했고, 투란이 다시 입을 연다.
“가보자고, 일단…….”
“그래야겠네.”
시알라가 무거운 소리로 동의했다.
페란드는 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깨려는 듯이 한마디 한다.
“마법사가 있다면…… 알람을 걸어놓고 다 같이 쉬는 것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이 소리는 다시 잠깐의 침묵을 불러왔고…….
제란드가 이 침묵이 싫다는 듯이 말한다.
“여기에 안전한 쉼터를 만들고 가자고. 저 아래 뭐가 있든, 일단 여기는 조용하고 물도 넘쳐나니까.”
“응, 그럼 그렇게 하고 가자!”
투란이 바로 찬성했다.
시알라도, 페란드도…… 막 먼저 뛰어내릴까를 고민하던 멜란드도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절벽의 중간, 어중간하게 낮아 보이지만 여전히 아주 높은 곳과 절벽의 맨 아래편을 잇는 듯한 묘한 줄사다리가 걸렸다. 줄사다리가 걸린 벽에는 줄사다리 모양이랑 거의 똑같이 파인 흔적도 길게 남았다. 줄사다리가 끊어지면 그 파인 홈을 사다리 삼아 올라가도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줄사다리를 따라서 내려오는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투란이 맨 처음 내려왔고, 뒤이어 멜란드가 내려섰다.
페란드와 제란드가 뒤를 이었고, 시알라는 사뿐하게 사다리가 아닌 공중에서 바닥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그런 누나를 향해 멜란드의 입이 열린다.
“힘들지 않아?”
“꼬맹이 날개가 아니잖아.”
시알라의 간단한 대답은 멜란드의 입술을 삐죽거리게 했다.
“하긴…… 몸도 좀 홀쭉해졌…… 크억!”
멜란드의 머리에서 뻐억하는 타격음이 퍼졌고, 바로 낮은 비명도 터졌다.
페란드와 제란드는 빠르게 걸어서 시알라가 멜란드의 뒷통수를 패는 광경을 못 본 척했고, 투란보다 앞장서서 주변을 정찰하는 시늉을 했다. 이런 둘을 보며 투란도 슬그머니 뒤쪽 일은 모르는 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다크레이디를 삼킨 시알라가 전보다 팔다리가 가늘어졌고 몸의 굴곡이 변했다는 점을 멜란드는 반복적으로 지적했고, 그때마다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 그 사실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던 페란드와 제란드도 맞을 뻔했다! 잠깐 남매와 거리를 둔 채로 있다가 이 광경을 지켜본 투란은 이 일에 끼어들지 않기로 결심했고!
―몸매가 다크레이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확실한데 왜 저러는 거지?
드라고니아가 궁금하게 여기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 투란은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 있었다.
‘몰라! 가끔 당연한 소리를 해도 성질내는 여자들이 있다고! 게다가 누나랑 동생 사이 일이잖아? 나는 모르는 사정이 따로 있겠지! 그러니까 끼어들지 않을 거야!’
그러고 나서 드라고니아는 몇 마디 더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더 따지지 않았다. 투란이 하는 짓이라고는 페란드나 제란드처럼 멜란드 맞는 광경을 외면하고 스윽 비켜 가는 것뿐이므로!
지금도 멜란드와 시알라가 툭탁대는 소리를 뒤에 남긴 채로 페란드와 제란드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투란도 얼른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이 작은 소란과 전진은 주변에서 미묘한 반향을 일으키고…….
투란은 뭔가가 나올 듯 말 듯 하면서 끝내 잠잠한 것에 살살 간지럽다고 느꼈다. 확 튀어나와 주면 시원할 듯한데, 절대로 나올 리가 없는 듯한 이 묘한 분위기는 뭘까?
제란드도 비슷한 것을 느낀 듯했다.
“조용하군.”
이 거슬린 듯한 말에 대해서 페란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한다.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 거 아냐?”
투란이 ‘응?’ 하며 페란드를 바라봤고, 제란드는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면서 대꾸한다.
“그래, 벌레 한 마리도 없지. 땅도 물기 없이 마른 듯하고…….”
페란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멜란드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데…….
“에잇, 누나 미워!”
이어서 곧바로 세차게 땅을 박차는 음향과 함께 멜란드가 툭 튀어나와 앞을 내달리고 있잖은가!
파파팍!
“더 맞고 싶냐!”
뒤이어 시알라도 뛰기 시작했고!
페란드와 제란드가 잠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쉬었다.
투란은 움찔하다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는 잠깐 이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듯…….
―뭐냐? 왜들 저래? 분위기 이상한데 왜 갑자기 소란이야?
이렇게 묻고 있었다.
‘아, 유인하는 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소란을 떨어서 뭔가 노리는 채로 숨은 놈을 끌어내는 거지. 아니면…… 그냥 생각 없이 다투는 거든가.’
―그냥 생각 없이 저러는 건 확실히 아니군. 움직이면서 아케인 포스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더 예리하게 끌어올리고 있어.
곧 드라고니아가 둘의 상태를 파악하고 납득한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지?’
투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별것 아닌 일로 보이지만, 세심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남매였다.
투란이 이야기를 통해 듣던 베테랑 모험가, 헌터의 모습이 슬그머니 드러나고 있는 셈이었다. 이야기로 들을 때는 어째서 그런 모험가와 헌터를 주변 사람들이 못 알아볼까 했는데, 지금 투란은 분명히 이를 알아차리고 있잖은가. 왠지 이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이 즐겁다!
지금 뭔가가 시알라와 멜란드에게 이끌려 나온다면 제란드와 페란드가 바로 이에 대응할 것이고, 시알라도 멜란드고 거기에 호응해서 맞설 것이다. 투란은 그저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움직여도 될 여유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는…….
“달루스?”
멜란드가 가장 앞장서서 도착하자마자 누군가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바로 입에 담은 이름이었다. 뒤이어 도달한 시알라는 의아해했다.
“달루스라니? 그 베테랑 헌터?”
“어, 바로 그 달루스야!”
멜란드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하면서 손끝으로 한 사람을 분명하게 가리켰다.
그리고 조금 늦게 당도한 제란드가 낮고 날카롭게 말한다.
“죽었군. 모두…… 조심해. 아무거나 만지지 말라고.”
뒤이어 페란드가 조금 더 주변을 빙빙 돌면서 굵은 목소리를 낸다.
“아무것도 없어. 왜 죽은 건지 알겠어?”
“아니, 그냥 잠든 거 같은데…… 정말 숨도 안 쉬는걸?”
멜란드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고, 여전히 당황스러운 기분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시알라가 그런 멜란드의 어깨를 한 손으로 꽉 잡으면서 말한다.
“정신 차려.”
“어? 어…… 하지만, 달루스라고! 상급 헌터 달루스!”
“그래, 그러니까 여기까지 왔겠지.”
“절대로 안 죽을 것 같은 사람이었어.”
“멜란드!”
“어? 아, 미안해…… 정신 차릴게.”
멜란드는 시알라의 손이 조금 더 억세게 어깨를 누르는 것을 느끼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시알라가 잠시 그런 멜란드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뗐다.
제란드와 페란드는 흘깃 멜란드를 봤고, 조금은 납득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멜란드가 누나와 형들에게 달려와서 달루스를 직접 봤다고 흥분했던 지난 일이 자연스럽게 이 상황과 겹쳐지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투란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에, 뭐야? 누…… 키린?’
뇌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빠른 말소리, 점점 느려져 가는 듯한 남매의 동작과 늘어지는 목소리!
멜란드의 입에서 달루스란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투란은 잠시 남매와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에 빠져든 느낌으로 키린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여어! 오랜만! 드디어 도착했구나! 그래, 어디에 도착했어? 어디든 도착했으니까, 이 마지막 편지가 전해지는 걸 거야! 아하핫.
이렇게 시작한 키린의 말은 점점 빨라지며 이어진다!
―그 사이에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만나기는 했을까? 혹시 시체만 보게 되었을까? 투란, 정말 여러 가지로 궁금해! 하지만…… 어쨌든 투란은 도착했어. 산맥이 깊은 곳, 안쪽과 바깥이 경계 지는 곳에 말이야! 아마 세 곳 중 한 곳일 거야. 투란, 지금 뭐가 보여? 불타면서 불 지르는 늪이 가득 넘쳐나는 계곡이야? 검푸른 이끼 가득한 나무껍질에 붉은 잎사귀가 가끔 나뒹구는 울창한 숲? 물결이 칼날처럼 빠지는 것은 일단 동강 내는 강?
‘뭐여, 그게! 아니, 잠깐? 숲?’
이제는 시간이 완전히 정지해버린 듯한 풍경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투란은 눈앞에 나타난 누군가의 유해(遺骸)와 키린의 시끄러운 편지 사이에 자신이 덩그러니 내던져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키린이 투란이 나가야 할 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마지막……?’
그런데 진짜 마지막일까, 이 뜨거운 오러로 머리와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강제주입의 냄새가 풀풀 휘날리는 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