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3)
하늘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어두운 빛으로 물들어 갔다.
‘밤……?’
투란은 이게 밤이 다가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불꽃 구름처럼 하늘을 덮는 그림자가 새로 생겨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기 위해서는 그저 계속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하늘은 컴컴해졌고 희미한 별빛이 여기저기서 일렁거리는 것이 조금씩 보였다. 흐린 하늘이라 별빛도 흐려 보이는 느낌이었다.
밤이 찾아오고, 낮이 물러갔다는 느낌이 투란에게 평온한 안도를 느끼게 해 줬다. 뭔가 제대로 된 시간, 정상적인 세상으로 돌아왔다고 알려 주는 것 같잖나. 하지만 만약 저 절벽 너머로 가게 된다면……? 투란을 이곳에 던져 넣은 물 더미가 때려 부숴 놓은 그곳까지 간다면 다시 그 풍경을 보게 될까?
‘보고 싶지 않다고.’
툭 튀어나온 의혹에 대해서 투란은 자신의 기분을, 자신의 짧은 생각을 간단히 매듭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찾아오고, 별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순간이 다가왔음에도 전혀 매듭짓지 못한 생각과 기분은 투란을 휘감고 놓아줄 낌새가 없었다.
‘고무쇠.’
이놈이 문제였다.
기억 속에서,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와 고무쇠의 몬스터 아머를 지닌 여자 용병이 툭탁거리는 모습이 다시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는 듯했다.
“음하핫! 사냥 난이도 중급 중에서 상급! 그래, 그래서 중상급이라고 하는…… 어? 아, 준상급인가? 아무려나! 그게 이 몸이 품고 있는 몬스터 고무쇠라 이거야!”
“시체 줍기나 한 주제에 큰소리는…….”
“시, 시꺼! 내가 목숨 거는 꼴을 봤으면서!”
“그래도 시체 줍기는 시체 줍기지. 큰소리치다가 죽는 것보다는 자기 수준을 확실히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알아, 안다고!”
시체 줍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고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게 전혀 가능하지 않은 상태의 투란이기도 했다.
깔끔하게 이 자리를 뜨고 언젠가 먼 미래에 다시 고무쇠를 만날 기회를, 그때는 주저 없이 사냥하거나 삼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냉정하고 좋은 판단이었다. 분명히 그렇기는 했다.
하지만 투란은 고무쇠를 깔고 앉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계속 되새겨지는 것은 고무쇠를 꺼내 자랑하는 몬스터 로드, 고무쇠를 소재로 삼아 만든 몬스터 아머를 두른 용병의 자태, 그들이 보여 준 고무쇠란 괴물의 능력!
잠시 손을 웅크리며 투란은 고무쇠가 담가진 물을 퍼 올렸다.
아무 일 없는 그냥 물이었다.
악마의 심장 넝쿨 가닥에 닿으면 얌전히 흡수될 뿐이다.
밤이 깊어지기 전에 혹시나 해서 마셔 봤지만, 역시 물이었다.
핏방울이 떨궈지지 않는 한, 그냥 물인 것이다.
‘하지만 피가 흐르는 살에 닿으면 스며들어 피를 마셔 버리지.’
다시 혀끝으로, 넝쿨 가닥과 맨살의 틈새에 스며들며 이 이상한 물이 저지르는 일을 느끼고 관찰하며 투란은 낯을 구겼다.
낮이 밤이 되었지만, 그래도 고무쇠를 축 늘어지게 해서 말려 죽인 물방울의 성질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끔 밤과 낮이 완전히 다른 몬스터도 있다고 하던데, 이놈은 밤낮과 성질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었다.
‘여기 안개도 이 물에서 배어 나온 것 같고.’
사람으로 숨을 좀 쉬어 보려 했다가 코피 터지게 한 것이 이 안개였다.
안개가 맺혀 흐르는 이슬은 딱 이 웅덩이의 물방울이었고!
잠시 투란은 손을 높이 올려 봤다.
손으로 하늘을 움켜쥐는 시늉을 해 봤다.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이전과 확실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무에 매달려 두 손으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끙끙거리다 떨어지는 일 따위는 이제 없었다. 이제는 가볍게 한 손으로 매달릴 뿐 아니라, 그냥 한 손만으로도 나무를 타고 올라갈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이 정도 힘으로는 이곳을 벗어나기 어렵다.
매 순간 찾아오는 위험에 대처할 수가 없다!
고무쇠를 삼킬 수 있다면, 그래서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가 된다면 그 강한 탄력 있는 팔과 다리로 수십 미터를 껑충거릴 수도 있고 높은 곳에서도 떨어질 것을 무서워 않고 거침없이 움직일 수 있으며…….
‘그만해라, 그만!’
투란은 자기 볼을 꼬집으면서 억지로 생각을 멈췄다.
떠오르는 생각은 모두 고무쇠의 그 기묘하고 신기했던 모습이다.
찌그러지고 구겨져도 금방 펼쳐지는 몸이라든가, 안팎을 가리지 않고 휘청거리며 꺾이지만 뼈가 부러지는 일 따위는 전혀 없는 고무의 성질과 강철 칼날도 챙챙거리며 튕겨 내는 쇠의 성질이 섞인 몬스터!
고무쇠를 보여 주고 자랑한 몬스터 로드는 지금보다 더 어린 투란에게 그 기괴함으로 동경을 심어 줬다. 언젠가 몬스터 로드가 되어 자신도 고무쇠를 삼켜 보겠다는, 그러고 싶다는 야망을 품게 해 줬다.
‘보석 말고 처음이었구나.’
투란은 꼬집던 볼을 놓으면서 기억해 냈다.
무엇인가를 갖고 싶다, 무엇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몬스터 로드가 보여 주는 고무쇠의 능력을 보면서!
그리고 샤오콴 마을을 홀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이들을 보며 그 작은 야망을 더욱 크게 키웠다. 그들은 몬스터 헌터이거나 몬스터 로드였고, 동료 없이 혼자라도 언제나 함께 하는 몬스터를 품은 이들은 몬스터 로드였다.
어린 투란에게 몬스터 로드가 품은 몬스터는 한 몸이 된 동료, 친구처럼 보였다.
조금 더 생각이 굵어진 다음에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는 보다 현실적으로, 샤오콴 마을을 떠나 살기 위해서 몬스터 로드가 되고 싶어졌다.
제아무리 신기한 도구를 갖추고 뛰어난 역량을 키운 몬스터 헌터라도, 결국 그 몸에서 도구를 놓칠 때가 있거나 뺏길 때도 있다. 하지만 몬스터 로드가 한번 품은 몬스터를 그 허락 없이 가져가거나 뺏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멍하니 투란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려다보면 볼수록, 도무지 이 고무쇠 곁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이게 뭐지? 보석도 이젠 잊은 것 같은데…….’
보석을 생각할 때마다 느껴졌던 갈망과는 다른 이상한 집착을 투란은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다. 가슴속 악마의 심장을 통해 냉정하게 생각을 가다듬어보면, 이 집착은 정말 이상했다.
악마의 심장을 유지해야 하는 지금 투란은 이놈을 삼킬 수가 없다!
한데 삼키고 싶었고, 그럴 방법이 없나 찾고 있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처음부터 알았다.
그럼에도 투란은 기적을 기대하며 여기 주저앉아 있었다.
‘정말 어떻게 안 되나?’
가슴을 더듬으면서, 지금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 문장을 향해 투란은 소리 없이 되뇌었다.
“문장을 믿어라. 모든 비전(秘傳)을 가능하게 해 주는 가장 깊은 지혜가 담겨 있고, 그 지혜가 몬스터 로드를 낳았다. 그러니, 문장을 믿어라. 그게 몬스터 로드의 가장 중요한 비전이니까! 몬스터 로드가 되고자 한다면, 언젠가 될 거라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거야. 문장을 믿는 것!”
‘누구였더라?’
투란은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희한한 뜨내기였었다.
그 뜨내기 때문에 사기 치던 연금술사가 그 귀한 천칭을 뺏겼고, 그 앞에서 천칭이 박살 났다.
‘꽤 복잡한 천칭이었는데 어떻게 사기 치는 걸 알았을까?’
그 시절의 의문을 다시 떠올리면서 투란은 머리를 갸웃했다.
그 사기꾼 연금술사가 사용하던 천칭은 저울 손이 두 개만 달린 그런 것이 아니었다. 중심대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접힌 저울 손이 있었고, 저울 손마다 다른 무게를 잴 수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무게를 동시에 재서, 중심대의 꼭대기에 있는 접시에 올려놓으면 약물 레시피가 완성되는 거라던 천칭.
연금술사의 천칭이라고 했다.
물론 사기꾼이 그렇게 대단하고 정교하다고 자랑했던 천칭은 하품이었고, 겨우 기초만 갖춰 무게만 재는 기본 천칭일 뿐이라고 뜨내기는 비웃었다.
“융합의 그릇조차 없는 것이 어떻게 레시피 천칭이냐? 웃기고 있군!”
투란은 그 제대로 된 천칭이란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기초만 갖춘 기본뿐인 천칭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했고 놀라웠는데, 스윽 가슴을 문지르다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문장의 천칭은 꽤 단순하지?’
몬스터 엠블럼이 원래 그렇기는 했다.
샤오콴 마을에 들락이는 몬스터 로드들이 가끔 제대로 쉬겠다고 했을 때, 그들 가슴에 나타나는 것은 매의 문장이든 천칭의 문장이든 그냥 시커먼 얼룩처럼 보였다. 가까이 들이대고 잘 보면 매의 머리와 발톱 모양이라든가 저울 손과 중심축의 모양이 보인다고 하지만, 스쳐 가며 보면 까만 얼룩이다.
거기에 기초인지 뭔지 하는 그 사기꾼 연금술사의 천칭을 들이댄다면 그야말로 풀잎 지붕 집이랑 성벽 속의 궁전을 비교하는 꼴이고!
“하아…….”
한숨을 내쉬며 투란은 발라당 뒤로 누워 버렸다.
찰랑이는 물살이 허리와 등을 타며 어깨에 닿는 것이 느껴졌고, 그 아래 출렁이는 고무쇠의 가죽에 손발을 문지르니 부드러웠다.
‘갖고 싶다! 갖고 싶어!’
소리 없이 투란은 허공을 향해 투정을 부리고, 분통을 터뜨렸다.
허공은 아무 대답 없이, 고요한 밤의 풍경이 가득 채워진 것을 보여 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드러누운 채로, 투란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금 더 솔직하게 깨닫고 있었다.
‘왜 안 되는 거냐고!’
몬스터를 형성하고 유지한 채로 새로운 몬스터를 삼켜 받아들이는 것, 몬스터 엠블럼에 당연히 있어야 할 능력이 아닌가? 어째서 새로운 몬스터를 삼킬 때는 형성하고 있던 몬스터를 해체한 다음, 다시 사람인 채로 해야 할까?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매의 문장이면 되는 거 아닐까?’
떼를 쓰며 생각하다 보니 결국 옆으로 새는 의심마저 떠오르고 있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음에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매의 문장이든 천칭의 문장이든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다.
두 문장이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마법인 것이 아니었다.
뭔가 문장의 특성에 대해 느끼는 것은 굉장히 수준 높은 몬스터 로드에게나 가능한 일이고, 투란처럼 갓 태어난 애송이 같은 몬스터 로드에게는 모든 문장이 다 똑같은 것이라고 했다.
‘싫다고! 똑같은 거!’
바락바락, 투란은 누군지 희미한 기억 너머에서 나불대는 자를 향해 소리 없이 외쳤다. 어린애처럼, 뭔가 특별한 것을 소망한다고 아주 솔직하게 골부림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았다.
주변은 고요하고, 저 절벽에 가려진 저편의 일도 깡그리 다른 세상처럼 상관없이 느껴질 뿐인 채로 투란의 입에서는 다시 길고 깊은 한숨이 새 나왔다.
‘어?’
허공에 뭉클거리는 입김을 보면서 투란은 문득 주변이 꽤나 서늘해진 것을 알아차렸다. 저 절벽 너머에서 서리 안개가 넘어온 것일까? 그렇다면 하늘에 여러 개 둥실거리던 태양이 없는 이곳은 전부 다 얼어붙었을 텐데?
‘그냥 추워진 것뿐인가.’
천천히 다시 두 팔로 버티고 몸을 일으키며,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으로는 고무쇠의 머리 아래쪽 가죽을 긁적거리며 투란의 눈길이 주변을 훑었다. 잠깐 사이에 뭔가 나타나 다가오거나 하지 않았나 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조금 더 고무쇠를 부여잡고 미련 떨어도 될 듯싶다.
“그만해라, 제발.”
하지만 투란은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바로 퍼뜩 귓가로 들려온 자기 목소리에 놀라 긴장도 했다.
곧이어 쓴웃음과 함께 자신을 향한 어이없어하는 한숨이 다시 흘렀다.
괜한 소리를 냈다가 이상한 괴물을 부르는 것이 아닐까 바로 걱정하는 꼬락서니라니! 그래서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왜 소리를 내기는 내나!
도대체 왜 이리 자신은 한심한 것일까?
가슴 깊은 곳에서 투란은 자신을 향한 답을 바로 꺼낼 수 있었다.
‘약해…….’
약해서였다.
뭔가 일이 터지면, 계속 휩쓸리기만 하고 있는 탓이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겨우 한 가지 갖게 된다고 생각 없이 샤오콴 마을을 떠난 탓이었다!
몬스터 로드가 된다면, 그래서 고무쇠 같은 몬스터 하나만 제대로 품게 된다면 세상 어디에든 자유롭게 다녀볼 수 있다는 희망에 속았기 때문이다.
눈앞에 고무쇠가 널브러져 있는데, 시체 줍기라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심한 꼴로 넋 놓고 있는 풋내기, 애송이가 바로 투란 자신이었다.
‘싫어. 이런 거.’
계속 이렇게 주변을 돌아보고, 안 되는 일투성이라고 투정만 하면서 숨 쉬고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악마의 심장만 있어도 어떻게든 이 안에서 버틸 수 있다고 숨죽인 채로 안도할 뿐인 한심한 풋내기 몬스터 로드, 투란 자신이었다.
“……문장을 믿는 것! 그게 바로 기적을 일으키고, 새로운 비전을 향한 문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될 거다!”
“그래, 믿고 싶다고, 믿고 싶어. 우선 배 좀 채우고.”
투란은 고무쇠를 보며, 천천히 샤벨투스의 이빨을 꺼내 들었다.
과연 고무쇠의 맛은, 그 양분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