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3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31)
Chapter 67. 황금광의 날
‘저, 저번이 마지막 아니었나!’
―아니었을걸. 키린은 저번 편지에서 그런 말 한마디도 안 했을걸!
‘왜, 왜 지금!’
―도착했다잖아.
‘야, 너!’
투란이 드라고니아랑 소리 없이 툭탁거리는데, 키린의 세찬 목소리가 강렬한 반향과 함께 밀려온다!
―집중해, 투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잖아! 역시, 확실하게 머릿속에 새겨 넣어 주는 것이 좋겠지? 으흠, 살짝 아프겠지만…… 뭐, 투란도 이제는 익숙해졌을 거야!
‘아니요! 전혀! 으에에!’
―엄살 부리지 말고, 집중해! 집중하면 덜 아플지도 모르잖아!
‘지, 집중! 집주―웅! 야, 계속 뜨겁잖아!’
―어쩔 수 없나.
‘야! 너, 인마!’
슬그머니 드라고니아에게 정신을 분산시키면서, 마음 깊이 스며오는 불꽃의 뜨거움에 투란이 버티려 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신의 분산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격렬한 메아리처럼, 키린의 말이 이어진다.
―집중하라고, 투란. 뭐, 어쨌든 간에 잊지는 않게 해줄 테니까. 안심해도 좋아! 자,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말이지…….
투란은 곧 뇌수(腦髓)를 녹이면서 골수(骨髓)에 스며오는 듯한 강렬한 오러의 격진(激震)을 느끼면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키린의 편지……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정말로 잊을 수가 없는 각인처럼, 키린의 이야기는 완전히 투란을 사로잡듯이 새겨졌으니…….
그러는 사이, 투란에게는 세상이 멎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오로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키린의 말, 키린이 불꽃으로 그려내는 형상뿐이었다. 한눈팔거나 잠깐이라도 마음 한구석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그렇게 키린의 환영은 투란에게 긴 이야기를 한순간에 전하며 마무리 지었고 미소와 함께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인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투란이 날 찾아오고 싶다면, 베오기탄을 찾아가. 베오기탄은 산맥 남부지방에 있는 도시야. 거기서 내가 알려준 암호문을 이용해서 빅대디를 만나. 그러면 샤크레온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샤크레온에게 나에게서 들은 대로 왔다고 하면 돼. 투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려도 괜찮아. 샤크레온은…… 항상 베오기탄에 있을 테니까.
‘항상?’
투란은 서서히 머리부터 몸이 모두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의아해했다.
키린이 끝마무리하는 한마디는 마치 수십 년의 시간을 염두에 둔 듯하잖은가?
투란이 아무리 늦게 간다고 해도 몇 년 걸릴 리가 없는데…… 이 산맥 깊은 곳에서 일단 벗어나기만 한다면 아무리 빙빙 돌아가도 기껏해야 한 십 년이면 갈 수 있는 곳일 텐데? 설마 세상 끝 어딘가의 도시도 아닐 텐데!
―누구냐, 그놈은 불사신인가?
드라고니아가 갑자기 꺼낸 소리는 투란을 한층 더 어리둥절하게 했다.
‘뭐? 불사신?’
의아해서 되묻고 나서 잠깐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는 것을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곧 드라고니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시늉으로 대꾸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급작스러운 사고가 많다고 하잖아. 서로 죽이고 뺏는 일도 생각보다 흔하고 말이야. 어떤 면에서는 짐승이나 괴물보다 더 위험한 짓을 서로에게 저지른다고 하더군. 그런데 키린은 그런 것 상관없이 샤크레온이란 작자가 널 기다릴 수 있다는 것처럼 말하잖아. 그놈은 어떤 일이 생겨도 죽지 않는 거냐고.
‘흠, 과연…….’
아주 잠깐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긍정적으로 어울려 주려 했다. 그러나 곧 욱하고 치솟는 반발이 투란의 뇌리에서 소리 없이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그럴 리가 없잖아! 뭘 얼버무리려면 제대로 얼버무려! 말해주기 싫거든 그냥 싫다고 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들어!’
―음? 갑자기 똑똑해졌냐? 역시…… 학습은 강제로 주입하는 게 효과가 크군.
‘이, 이보세요?’
―지금은 말해주기 싫군. 말하고 싶지 않아. 그보다, 저거 누군지 아는 모양인데?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왠지 으스대는 듯한 낌새를 노골적으로 풍겨내는 것을 느꼈지만, 달루스라는 이름과 함께 멜란드가 당황해하고, 시알라가 달래고, 제란드와 페란드가 주변을 한층 더 경계하면서도 죽은 이들에 대해 살피는 광경이 제대로 보인다는 것부터 신경 써야 했다.
어느 틈엔가 멈춰있던 세상이 멀쩡하게 다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라니!
조금 전에 자신의 뇌리에 스며들고 뜨겁게 새겨지던 모든 것이 그야말로 한순간의 착각인 듯하잖은가!
투란 자신이 완전히 잠깐 미쳐 있었던 듯도 하고!
키린이 오러를 이용해 무슨 짓을 했는가, 살짝 되짚어 보자마자 투란은 자신도 비슷한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악마의 심장’으로 더 빠르게 생각하면서 자신만을 가속시키는 것……. 하지만 투란은 자기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닮은 경험을 시켜줄 수가 없고, 투란이 몬스터의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일을 키린은 그 독특한 오러만을 이용해서 해낸다는 차이점도 분명했다.
미묘한 한숨이 투란의 가슴에서 맴돌았다.
꽤나 강해졌다고 으스대던 기분이 팍 수그러드는 듯했다.
아직도 전설의 괴물 왕자님과 자기 사이에는 꽤나 심한 격차가 있다는 것을, 키린이 전한 이야기 속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 이 오러를 다루는 재간만 해도 아직은 투란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잖은가.
‘어흐으…… 이제 어쩐다?’
남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투란은 흘깃 숲을 바라봤다.
‘역병의 수해’, 그 이름에 걸맞은 저곳을 통과하기 위한 조건 또한 키린이 이야기해줬다. 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돌아서라면서…… 하지만 놀랍게도 투란과 네 남매는 이미 그 조건을 갖췄다!
그럼에도 투란은 또 다른 이야기를 더듬으면서 생각해야 했으니…….
‘다른 곳을 찾아갈까?’
새로운 지식과 함께 새로운 고민이 저절로 투란을 찾아온 탓이었다.
왜냐하면…….
―가장 곤란한 곳이 플레이그 포레스트야. 거긴 지날 수 있다고 해도, 뭘 집어서 나가면 안 되거든. 심지어 갖고 있던 물건이라면, 버리고 나와야 해. 안전하게, 몸만 들어갔다가 몸만 나와야 하는 곳이지. 갖고 들어가거나 입고 들어간 것은 전부 내버리고 나와야 하는 곳이라서, 투란에게 가장 좋지 못한 길이 될 거야. 만약 그곳을 지나면서도 안전하게 뭘 가지고 옮기려고 한다면, 마법으로 만든 주머니가 필요해. 역병이라고 불리는 숲의 힘을 차단하고, 물건을 잔뜩 담아 옮길 수 있는 그런 주머니 말이야. 하지만 다른 두 곳은…… 살아나올 수만 있다면, 뭐든 집어서 나와도 괜찮아. 그리고 꼭 뭘 집어 들고 나와야 해, 투란. 절대로 빈손으로 나오면 안 돼!
아주 생생하게 되새겨지는 키린의 이야기!
빈손이면 안 된다는 까닭은 투란도 바로 납득할 수가 있었다.
‘금전…….’
키린이 말한 세 곳은 ‘역병의 수해’와 ‘불꽃늪 계곡’, ‘칼날 강’이었다.
어느 곳이든 무시무시한 환경이었고, 끔찍한 녀석들이 숨어지낸다는 점은 마찬가지겠지만…… ‘역병의 수해’가 아닌 다른 두 곳은 살아나올 수 있다면 그 안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든 뭐든 들고 나와도 상관없다고 했다. 아예 그럴듯한 몬스터를 쳐죽이고 그 잔해를 갖고 나와도 되는…….
그렇게 가지고 나온 것은 돌멩이 하나라도 희귀한 것이기에, 누구든 알아볼 수 있는 자에게 가져가면 금전(金錢)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역병의 수해’만큼은 아니었다.
‘역병의 수해’, 이 숲에서는 돌멩이 하나도 들고 나와서는 안 된다!
그 속에 정체 모를 역병의 힘이 담겨 있을 테니까.
산맥 바깥 지역에서 역병의 힘이 풀려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므로! ‘역병의 수해’에서 들고 나온 것을 알아본 누군가가, 계속해서 숨을 쉬며 멀쩡하게 살아 있을 거란 보장을 전혀 할 수가 없다. 금전을 꺼내고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게 된다.
키린이 거듭 강조한 부분이었다.
물론 그냥 통과할 능력이 된다면, 빈손으로 나갈 작정을 했다면 상관없었다.
그러나 투란은 알고 있었다.
샤오콴 마을까지 찾아왔던 사람들…… 그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산맥의 깊은 곳과 아주 가깝다는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샤오콴 마을까지 찾아온 까닭이 바로 금전 한 닢이라도 벌자는 이유가 아니던가.
짐승처럼…… 혹은 몬스터처럼 이런 야생(野生)만이 넘쳐나는 험한 곳에서 멋대로 굴러다니면서 이것저것 잡아먹고 뜯어먹으면 살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길 가다가 나무 열매 하나라도 멋대로 뜯어먹으면 곤란해진다!
누군가가 소중히 키운 것일 수 있으니까.
그런 소중한 것을 받아내려면, 금전이…… 돈이 필요하다!
금전 몇 닢이면, 인간으로서 살기 엄청나게 편안해진다고 하잖던가.
그러니까 나가는 길에 돌멩이 몇 개만 집어가면 그런 금전이 나온다는 키린의 말을 투란은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정말 눈앞에 있는, 넘기만 하면 되는 숲을 앞에 둔 채로 살짝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투란, 저 시체들이 가진 것.
드라고니아가 끙끙거리며 머리가 식으려다가 달아오려는 투란에게 속삭였다.
‘응? 시체…… 가진 것?’
투란은 다시 네 남매가 시체 사이를 오가면서 대체 어떻게 죽었는가, 그들이 죽은 까닭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고…….
“노출된 곳에 상처가 있기는 하지만…… 치료된 거야.”
“치명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음, 장비를 봐도 그래. 장비가 망가진 느낌은 전혀 없어.”
“대체 어떻게 죽은 거지?”
제란드와 페란드가 시체 사이를 오가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잠시 멍하니 이를 보던 투란은 곧 머리가 저절로 갸웃하면서 치솟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군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세란드나 시알라네는 분명히 아겔페스의 방법으로 저 크고 넓은 숲을 넘었겠지? 그러니까 안전한 높이에서 역병의 힘인지 뭔지 영향을 받지 않고…… 그런데, 저 사람들은 몸에 상처도 없이…… 딱 역병에 죽은 꼴이 되기는 했지만, 넘어오기는 했다? 즉, 넘어와서 죽었다? 아니면…… 죽은 다음에 누가 여기에 옮겨놨다? 아니, 잠깐 그러면…….’
뭔가 울컥하고 투란의 가슴에서 치솟았다.
이렇게 맹한 태도로 구경을 할 때가 아니었다.
조급함이 바로 투란의 마음 속에서 물컹거릴 때, 드라고니아가 하던 말을 잇겠다는 듯이 떠든다.
―저 시체들의 장비는 모두 마법…… 어?
투란의 의지가 확고해졌다.
이 상황에서 뭘 하든 해야겠다는 결의가 차올랐다.
윌 라이트가 이에 호응했고, 황금매의 문장 속에서 세란드가 골라냈던 마법의 주문목록이 한순간에 투란의 마음속을 스쳐 가며 검토되었고, 그중 하나가 선택되었다.
투란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오른손을 내밀었고, 강렬한 의지를 담아 주문을 외쳤다.
“퓨리파잉(Purifying), 클렌징!”
―야, 그건 중첩정화(重疊淨化) 주문!
드라고니아가 윌 라이트를 통해 발현되는 마법에 놀랐다.
그리고 그 마법에 휩쓸려버린 네 남매는 더 놀랐다!
“우에에에엣?”
멜란드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며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듯이 휘두르며 뭔 일인가 살폈고…….
“꺅!”
시알라는 자기 입에서 나온 짧은 비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로 날개처럼 망토를 젖혀 휘날리면서 매섭게 눈길을 뿌려댔다. 멜란드가 보는 방향과 다른 곳을 향해서…….
“후욱!”
페란드는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자신의 주변을 휩쓰는 마법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가를 지켜보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뜬 채로 보던 방향을 바라보는 채로 다가올 변화에 묵직하게 대응하는 태도였다.
그 사이에 제란드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았고, 두 손에 작은 칼날을 쥐면서 이제까지 살펴보던 시체를 주시했다. 한 바퀴 도는 사이에 투란의 주문이 어떤 공격, 방어라기보다는 주변을 아주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마물이나 요물이라 불리는 것들이 지닌 좋지 못한 영향력을 밀어내고 치운다는 것을 알아차린 덕분에 제란드는 지금 가장 일행에게 좋지 못한 분위기를 뿌리고 있는 달루스 일행의 시체에 주시한 셈이었다.
그리고 달루스 일행의 시체는 남매 곁에서 그 좋지 못한 영향력의 징후를 바로 드러내고 있었다.
“시체가 부스러져! 뭐가 나온다!”
제란드는 각자 다른 방향을 주시하는 시알라, 멜란드에게 외쳤고 페란드가 눈매를 구기면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을 확인했다.
시체의 살갗이 헤진 누더기처럼 변하면서, 그 안에서 검은 가루가 곱게 흐르며 퍼져 나가고 있었다. 투란이 외친 주문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