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3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36)
Chapter 68. 용의 금광
물가에서 모닥불이 타오르고, 불빛이 물결을 따라 흩어지며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멀리서 보면 작아 보이는 모닥불이었지만 정작 그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키를 가볍게 두어 배는 넘을 듯한 불길을 피워 올리는 중이었다.
그 불길 속에는 두툼하고 넓은 담요가 뭔가를 둘둘 말고 있는 채로 놓인 채였다. 담요는 불길을 꾸역꾸역 삼킨 듯했고, 불길은 담요를 관통하듯이 휘저으며 물결 위로 자신을 반영하고 있었다.
얼굴에 불빛을 드리워 붉어진 색채를 띤 채로, 멜란드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누나와 형들을 향해 묻는 것처럼 중얼거린다.
“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음, 이렇게 불로 장례를 치러줄 때도 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투란은 이 소리에 ‘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멜란드의 말처럼 사람의 시체를 수습해서 매장(埋葬)을 하든 화장(火葬)을 하든 할 때면 신전 사람이라든가, 나이 든 누군가…… 혹은 죽은 이와 관계가 좀 있는 사람이 나서서 뭐라고 말하고는 했었다.
그나마 그럴 여유가 있을 때는…….
“멜란드, 달루스를 아는 사람은 멜란드뿐이잖아? 그럼, 멜란드가 뭐라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투란이 하는 말에 페란드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고, 제란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태는 소리를 꺼낸다.
“그러네. 달루스를 알아본 것도 너고…… 우리야 말로만 듣던 사람이고, 직접 구경 가서 본 건 멜란드 너뿐이네. 어쨌든…… 우리 중에 그나마 낯이 익은 사람이니까, 잘 가라고 뭐라 해줘.”
“에? 으읏.”
뒤늦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멜란드는 입술을 핥는 혀놀림으로 자신이 많이 난감해한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제란드의 말처럼 멜란드만이 달루스를 먼발치에서나마 본 적이 있었고, 누나와 형들이나 투란에게는 그저 이곳에서 만난 시체에 불과했다. 대부분 이런 장례에서는 그나마 낯이 익은 사람이 죽은 자를 위한 말을 하는 것이 나름대로 맞는 듯한데…….
“어, 뭐라고 해야 하지?”
멜란드에게는 꽤나 낯선 일이었다.
시알라가 그런 멜란드를 흘깃 보고는 한숨을 쉬듯이 말한다.
“달루스, 우린 당신을 여기서 이런 모습으로 만날 줄은 몰랐어요. 우리 막내가 당신을 달루스라고 하니까 당신이 달루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군요. 혹시 당신이 달루스가 아니더라도 당신네 일행이 남긴 유품을 맡았으니까, 당신이 달루스 팀의 달루스라면, 팀의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게요.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도록, 지켜봐주길 바라요. 요새도시의 베테랑 헌터인 당신네조차 무사하지 못했던 이곳에서…… 우리가 무사히 나가 당신네 팀을 만날 수 있게, 가호해주길 바라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엉뚱한 부탁을 하는 거겠지만…… 죽은 당신들이니까…… 우리가 당신들을 보고 더욱 살기를 바란다고 욕하지는 말아줘요. 그럼, 잘 가요.”
멜란드는 귀를 쫑긋하고 누나의 말을 들었고, 제란드와 페란드는 고요하게 불타는 담요와 함께 재가 되어 흩날리는 달루스 일행의 잔해를 바라봤다.
투란은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면서 시알라의 말을 잘 기억해뒀다.
언제가 오러클 워리어라던 아저씨가 성기사인가 사제인가 하는 신전 소속의 누군가를 장례 치를 때랑은 완연히 다른 시알라의 말이었다. 죽어서 신의 곁으로 가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 따위랑은 전혀 상관없는…….
‘원래 헌터끼리 인사하는 말이었나?’
죽은 동료를 향해 술잔을 들어 올리면서 미친 듯이 외치던 헌터의 모습이 지금 불길 속에 타오르는 달루스 일행을 향해 말하는 시알라랑 겹쳐지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투란에게는 꽤나 오래전의 일이었고, 거의 잊고 있던 상황이었다.
누군가 죽고, 그 죽은 이를 보내며 기억 속에 묻어버리는 듯한 사람들이 보이는 기묘한 모습들…… 어째서 그렇게 격렬한 감정을 토해내는가, 어린 투란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몬스터 헌터로서, 샤오콴 마을에 오는 이들 중에 멀쩡히 살아 돌아간 이들보다는 거기서 죽는 경우가 더 많았고…… 샤오콴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오늘이 아니면 내일, 어제의 누군가처럼 다른 누군가가 겪을 일에 불과했고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갑자기 모두 죽어서 기억해줄 사람조차 남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치워야 할 시체가 늘어나서 일손이 바빠질 뿐이었다. 그대로 두게 되면 시체를 뜯어먹기 위해서 주변의 마수가 다가오든가, 몬스터가 찾아와 시체를 찾는답시고 주변을 맴돌면서 엉망진창의 사태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때문에 샤오콴 마을에서는 누가 죽든, 가까이 있는 시체는 꼭 거둬서 처리해야 했다. 죽은 이에 대한 어떤 감정보다도 그 뒤에 벌어질 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시체 처리는 딱히 장례라고 하기도 곤란했고…… 그나마 동료가 있거나 낯을 익힌 누군가가 있을 경우에나 슬그머니 장례 비슷하게 치러지는 일거리에 불과했다. 낯선 이들의 죽음에도 뭔가 꼭 격식을 갖춰서 대신 보내주겠다고 나서는 오러클 아저씨가 어린 투란의 눈가에 비칠 때까지는!
문득 떠오른 기억은 짙은 추억이었고, 그 오랜만의 감상 속에서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때는 하품을 하거나 지루한 표정을 짓거나 하면 오러클 워리어, 그 아저씨는 쏜살같이 달려와서 애들 머리 위에 망치질하는 주먹을 떨구고는 했었다. 진심으로 힘껏 때렸다면 머리통이 사라져 죽은 애들 시체가 새로 남았겠지만,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그냥 지나가는 일로 여기지 말라고 이어지는 꾸지람을 듣는 애들이 울어 버릴 정도의 가벼운 손짓에 불과했다.
그리고 철없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저절로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을 끝장내는 죽음을 가능한 한 나중에 겪고 싶다고…….
피할 수 없다 해도 가능한 한 가장 늦게 겪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어른이 되어서 넓은 세상의 온갖 신기한 것을 보러 가고 싶다고!
―투란…….
‘응?’
고요하게, 소리 없는 은밀함을 잔뜩 당긴 활시위처럼 긴장시켜서 드라고니아가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투란은 잠시 떠오르는 추억에서 벗어났다.
―너, 죽음에 대해 어째서 그렇게 익숙하지?
‘응? 무슨 소리야?’
―이 산맥이 워낙 살벌한 곳이고 섭리의 생명에게는 가혹하고 잔인한 곳이기는 하다만…… 너는 이런 상황과 무관하게 뭔가 죽음에 대해서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떨지도 않고…… 오히려 죽음이 찾아오면 가볍게 인사하고 맞을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어이! 내가 무슨 꿀과자 나눠주는 죽음의 사제 할배냐?’
―응? 죽음의 사제랑 만난 적이 있었나! 과연!
‘뭐가 과연이야!’
투란은 얼굴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눈길을 고정한 채로 눈앞에 없는, 문장 속에서 반짝거리는 별무리를 향해 외쳤다. 투란의 정신 깊은 곳에서 별무리는 반짝거렸고, 아주 태연하고 고요한 소리로 대답한다.
―꿀과자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만…… 죽음의 사제는 생명을 지닌 모든 종족에게 이야기를 전하며 돌아다니니까…… 아마도 인간에게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했겠지. 그 이야기를 들은 자와 듣지 못한 자, 그 이야기를 마음에 새긴 자와 새기지 못한 자 사이에서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 이야기가 네 마음속을 맴돌고 있던 덕분에 너 홀로 이 산맥 깊은 곳을 헤매면서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할배, 약간 머리가 어떻게 되어서 오러클 아저씨도 슬슬 피할 지경이었거든? 꿀과자 나눠주면서 죽음은 꿀처럼 달콤한 축복이니까, 겁낼 필요가 없네 뭐네 하던…… 정말 살짝 미친 할배였다고. 그 할배가 마을에 한 두어 달 머물렀는데, 그 사이에 다들 슬슬 피해 다닐 지경이었으니까.’
투란은 투덜거리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드라고니아가 이야기를 듣고, 투란이 만났던 죽음의 사제 할배가 얼마나 엉뚱했는가를 알기 바라면서, 절대로 그런 미친 할배의 이상한 소리 따위를 투란은 물론이고 다른 애들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투란의 열렬한 외침에 드라고니아는 뭔가 미묘한 웃음기를 머금은 말투로 대꾸한다.
―그들이 신언(神言)을 전하는 방식은 아주 특이하지.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전혀 그 흐름을 알 수 없는 예언(豫言)을 뻔뻔하고 당당하게 토해내니까, 정작 그 순간이 닥쳐오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어지간한 대현자라 하더라도 죽음의 사제가 내뱉는 말은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우니까…….
‘야, 그 미친 소리를 알아듣는 작자면 똑같이 미친 거라고! 얼마나 괴상한 이야기인지, 넌 직접 들은 적이 없지? 죽음은 축복이니까 겁내지 말라면서, 피하려고 발버둥 치지 말라면서 뭐라는지 알아? 그 축복을 온전하게 거두려면 최후의 순간까지 전력을 다해 살아야 하니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하는 거고, 그걸 남들이 추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상관하지 말라는 거야. 그게 말이 되냐고!’
투란은 어린 시절, 그 어린 나이에도 ‘이 할배 미쳤나? 대체 뭔 소리냐고!’라며 따지고 들 수밖에 없던 기분이 되살아나는 듯해서 소리는 내지 않은 채로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겁내지 말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라면서, 그 축복을 온전하게 얻을 자격은 마지막 숨결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이니 뭐니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할 수 있는 온갖 짓을 다 하면서 살려고 애쓰라는 소리는…… 결국 죽기 직전까지 아주 더럽고 추악하게 보이더라도 몸부림치며 악을 써서 버티란 말일 수밖에 없었다.
그 소리를 듣던…… 키가 좀 빨리 자라서 머리도 좀 컸던 로잭은 ‘아니, 이 할배는 대체 왜 죽음의 사제라고 한데? 저렇게 악착같이 살라는 소리를 하면, 삶의 사제니 뭐니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투덜거렸다. 투란은 그런 로잭의 말에 ‘오, 맞아! 그렇구나!’라고 감탄했었고.
드라고니아는 투덜대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투란에게 실실 웃는 말투로 이야기한다.
―죽음의 사제가 말하기를…… 죽음은 생명이 맺는 마지막 결실(結實)이라고 하지. 그 한 번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삶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밑거름 삼아 유지되는 것이라고.
‘너도 그 할배처럼 헛소리할 작정이었던 거냐? 그런 헛소리 말고! 금광 찾는 법이나 이야기해 달라고! 저 달루스 일행의 장비는 아무리 비싸도, 여기서 온전하게 들고 나가도 결국 팔지도 못할 물건이라잖아! 그러니까 금광 찾는 법이나 빨리 가르쳐 달라고!’
투란은 결국 꿀과자 주면서 침을 질질 흘리던 할배의 낯짝을 열심히 기억 저 너머로 날려보내면서 현재에 집중하려 했다.
달루스 일행의 시체는 마법으로 자아낸 흙담요에 감겼고, 절벽 중턱에서 폭포가 파낸 연못 주변에서 긁어온 나무 부스러기와 가지를 깔아둔 채로 마법으로 일으킨 불길에 재가 되어 흩어지는 중이지만, 그 전에 일행의 장비는 모두 벗겨져서 한쪽에 곱게 쌓였다. 특히나 그들의 네임 태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세 형제는 손대기 어렵고 보기 거북한 시체의 안팎을 정말 세심하게 뒤지기도 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아주 잠깐 얄팍한 기대를 했었다.
그들의 마법장비를 가져가 팔 수 있을까 하는 기대였다. 드라고니아가 그 장비가 제작된 공방을 알 정도라면, 수가 적지 않으니까 정말 금전 백 수십 닢은 될 수도 있을까 하는 야무진 희망을 품어본 것이다.
하지만 투란의 그런 꿈은 그 장비를 네임 태그와 함께 달루스 팀의 다른 멤버들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멜란드의 강력한 의견이 박살 내줬다.
달루스 팀은 그 시작인 베테랑 헌터 달루스가 여기서 죽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또 다른 달루스…… 여기서 죽은 달루스의 동생인가 하는 사람이 계속 유지하고 있을 거란 이야기였다. 애초에 거의 백여 명 가까이 되는 팀이었고, 그 우두머리와 함께 열 몇 명이 죽어나갔다 하더라도 팀은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므로.
거기에 제란드와 페란드가 곁들인 말에 따르면, 달루스 팀이란 호칭은 원래 달루스 형제가 그 팀의 우두머리가 되었기 때문에 팀 리더의 이름을 따라 고쳐진 것이고 그 전의 팀 리더 시절에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그러나 그 전통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 유명한 헌터 팀이라 했다.
그러니까 그들의 장비를 슬쩍 내다 팔거나 하는 일은 안된다는 것.
그랬다가 백여 명이 넘는 헌터, 그것도 반 이상이 확실한 베테랑이고 나머지 반도 베테랑에 근접한 실력을 지닌 헌터 떼랑 다투고 싸우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것!
그래서 투란은 다시 드라고니아가 ‘필요할 때 캐 쓴다!’라는 금과 은, 보석의 행방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지금 그럴듯하게 여기까지 와서 죽어버린 달루스 일행의 뒷정리를 하느라 잠시 뒤로 미룬 것이지만, 미친 할배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라면 다시 캐물을 때가 된 셈이므로!
이런 투란의 물음에 드라고니아도 거의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응하는 말을 꺼내는데…….
―도대체 키린에게 무슨 소리를 들은 거냐? 그것부터 말해봐. 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따지는 짓은 하지 말고.
‘왜 되지도 않는 짓이냐고! 네가 말한 거잖아! 필요할 때 캐 쓴다며! 그러니까 나도 필요하면 캐 쓰게 해달라고!’
다시 절벽을 기어오를 때의 툭탁거림으로 돌아간 듯했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그 방법을 쓰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모자란다고 말해주지 않으려 했고, 투란은 그게 대체 뭐냐고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리고 이런 집요함에 대한 대응으로 드라고니아는 키린이 뭐라 했는지부터 말하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