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38)
어미 드레이크는 자신의 새끼 시절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새끼를 내려다봤다. 새끼 드레이크는 그런 어미를 올려다보고, 자기 앞에 놓인 작은 바위를 바라보고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작은 바위에는 거뭇하고 광택이 맴돌면서 보기에는 그저 단단한 듯한 얼룩이 짙고 깊게 퍼져 있었다.
어미 드레이크가 입가를 살짝 실룩이면서 새끼를 재촉하자, 새끼 드레이크는 어미를 흘깃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계속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다. 아무래도 어미가 먹을 것이라고 권하는 작은 바위, 맛보라고 권하는 거뭇한 얼룩이 수상하다고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새끼의 망설임을 어미는 여유롭게 바라보며 입가의 실룩임을 참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저 거뭇한 얼룩의 맛을 보게 하기 위해서, 한 사흘 정도 굶겨놨으니까! 한창 닥치는 대로 먹으면서 자라야 할 새끼는 절대로 지금 앞에 놓인 먹을 것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물론 새끼가 보이는 주저하는 태도는 어미에게는 약간 뜻밖이기는 했다. 자신이 어린 새끼였던 시절, 자신의 어미가 권하자마자 자신은 덥석 저 얼룩진 바위를 물었으니까!
배가 고픈 새끼 시절에는 정말 뭘 조심하는 법을 모르는 법이니까.
‘걸리지 않았지.’
투란은 생생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감정, 뇌리를 화끈거리게 할 정도로 지독한 드레이크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냉정하려 애썼다. ‘악마의 심장’이 이를 도와 아주 냉혹한 마음으로 그 기억을 바라보게 하지만…… 드레이크의 선명한 기억, 또렷한 감정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투란을 덮쳐누르려 했다. 만약 투란이 그 어미 드레이크의 에센스를 저 아래로 내버리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드레이크의 형상을 꺼낼 정도로 강렬했다.
그러나 투란에게는 지금 그 에센스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자라려면 한참 멀고 먼 새끼의 에센스.
꺼내고 싶어도 꺼낼 수 없는 형상이 기억만을 남긴 채로 투란의 마음에 깊이 번져갈 뿐이었다. ‘악마의 심장’은 이를 보다 선명하게, 냉정하게 거리를 둔 채로 더듬게 해주고!
덕분에 투란은 어미가 새끼를 슬그머니 골탕 먹이려 했다가 당황했던 그 순간을 되짚으면서 서글픔과 함께 유쾌함을, 즐거움과 함께 아련한 애절함을 동시에 품으면서도 분명하게 거기에 이를 때까지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뭐냐, 투란?
투란의 마음을 느끼면서 드라고니아가 조금 당황한 듯이 묻고 있었다.
‘응? 아…… 그랬지, 참…….’
투란은 새삼스럽게 드라고니아가 ‘악마의 심장’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마음, 생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늘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꽤나 느슨하게 이것저것 전부 다 알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너네 일족과는 다르겠지만, 드레이크도 새끼를 비슷하게 가르치거든.’
―그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어째서 그 위험했던…… 지금도 충동에 휩싸일 수 있는 위험한 기억을 되살리려 하냐고!
‘어? 어라? 너, 내가 뭘 생각하는가 알고 있었네? 그런데 뭐가 궁금해?’
―이렇게 또렷하게 심상화(心想化)하려 드니 알 수밖에 없지! 당장 윌 라이트조차 깜박거리면서 반응하고 있잖아!
‘에? 어?’
투란은 퍼뜩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샤벨투스의 이빨을 감춰둔, 그리고 드라코눔의 고유마법이라는 윌 라이트가 근거로 삼게 해둔 오른손 주변으로 미묘한 광채가 일렁이고 있었다. 자세히 봐야 제대로 보이는 광채였지만 오른손이 조금씩 밝아졌다가 흐려졌다가 하는 상태는 저절로 보는 눈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왜 이런데?’
어리둥절해서 투란이 물었다.
―왜 이러긴! 강력한 의지에 강하게 반응한다고 했잖아! 넌 지금 전혀 흔들림 없이 위험한 기억을 더듬고 있다고! 우연히 스쳐 간 생각 따위가 아니라, 너 자신의 강한 의지로! 그러니까 그 충동에 휩쓸릴지 모르는 위험에 대응해서 내가 윌 라이트에 기본적으로 새겨둔 정신방어의 주문이 바로 대기상태에 들어간 거다!
‘헐? 그런 것도 해놨어?’
―왜, 지워놓을까? 언제라도 충동을 과시하면서 미쳐 날뛰고 싶어?
‘누가! 쳇…… 그런 좋은 거 해놨으면 미리 말 좀 해놓으라고.’
투란은 살짝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윌 라이트의 이 미묘한 광채를 누가 엿보지 않을까 조심하는 셈이었다.
주변에서 어떤 시야도 느껴지지 않았고, 여전히 흐릿한 별빛이 박힌 밤하늘만 산뜻하게 펼쳐진 채로 세상을 굽어볼 뿐이었다.
―아까부터 뿌려놓은 프로브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도대체 지금 뭘 하려는 거냐니까!
‘뭘 하긴…… 일단 조심부터 하는 거지!’
투란은 슬쩍 세이프티 하우스를 바라봤다.
프로브를 통해서, 네 남매가 모두 침대에 누워 있었고 다시 깊은 잠결에 휩쓸리려 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고, 느껴졌다.
―조심?
투란의 태도에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어이없어하는데, 투란은 보다 빠르게 주변을 한 번 더 훑어봤고…… 한 곳을 찾아내서 잽싸게 발걸음 소리까지 죽인 채로 옮겨간다!
폭포의 물보라가 짙은 자리였고, 바로 그 폭포 아래로 들어가면 쉽사리 눈에 띌 리가 없는 자리였다. 뭘 하든 일단 물보라가 안개처럼 장막이 되어 줄 곳인데…….
촤아!
“이큭?”
물에 발을 딛고, 몸을 담그면서 푹 잠길 듯이 휘적거리며 움직이자 바로 투란의 왼팔에서 잔물결이 일어나며 휘드라곤이 반응하고 있었다. 투란의 몸에 얇은 물결이 번져가며 상처를 찾고, 메우려 하는 정령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야말로 약속된 것인데…….
―지금 네 몸이 지나치게 건조한 상태라서 그렇다. 저 아래에서 좀 심하게 날뛴 탓이야. 사람에게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좋지 않으니까, 정령이 네 생명의 보호를 위해 나선 셈이지.
드라고니아가 조금 전의 의문을 잠시 접어둔 듯, 슬그머니 투란을 다독이듯이 설명해줬다. 투란에게도 설명을 재촉하는 듯한 낌새였고, 투란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라, 지금은 괜찮으니까.”
투란은 자신의 왼팔을 오른손으로 토닥이면서 ‘천칭’을 통해 살짝 오러를 끌어내 왼팔로 흘려넣었다. 강한 생명의 힘에 안도한 듯, 휘드라곤이 곧바로 살갗 깊은 곳으로 잠겨들면서 고요해졌다. 그러면서 이미 폭포의 물보라 짙은 곳에 도달한 탓에 투란의 몸은 굳이 휘드라곤이 어떻게 하지 않았어도 완전히 젖은 꼴이었다. 보다 짙고 축축하게!
얼굴을 씻듯이 두 손으로 잠시 문지르고, 투란은 물보라를 밀어내듯이 숨결을 토해내면서 소리 없이 말한다.
‘드레이크는…… 사물을 감각으로 배워. 네가 말한 것처럼, 일단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몸을 부딪쳐 보고, 귀를 기울이고…… 엄청나게 눈이 좋기는 하지만 그 눈으로 뭔가 파악하기보다는 뭔가 닿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닿아서 위험한 것이 뭔지, 한 번씩 닿아 보는 것도 새끼 드레이크가 배우는 방식이지. 뭐, 그러다가 혀가 달라붙는 바위도 핥아보고 말이지.’
말을 하면서 투란은 드레이크의 기억을 심상 속에 품었다.
어미 드레이크가 새끼였던 시절, 작은 바위의 검은 얼룩을 핥다가 혀가 달라붙어서 울고불고 잠깐 난리 치다가 불을 뿜어내서 겨우 벗어났던 추억…… 그리고 그 추억에 따라 자신의 새끼를 골탕 먹이려고 했다가, 수상함을 느낀 새끼가 불부터 뿜어내서 바위를 구워버렸고, 검은 얼룩이 아주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먹을 것이 돼 버린 꼴에 살짝 당황했던 일!
어미가 종종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짓을 시키려 한다는 것을 겪어서 알고 있던 새끼가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을 한 경우였다. 그렇게 어미에게 똑똑함을 자랑하던 새끼였는데…….
투란은 다시 새끼를 잃었던 어미의 분노가 배 속에서 팽창하는 것을 느꼈다.
고르고니아를 모조리 죽이겠다는 격노가, 기억 너머에서 되돌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곧바로 ‘악마의 심장’이 냉정하게 피의 흐름을 억눌렀고, 화끈거리는 머리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기억은 기억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듯!
―투란!
‘괜찮아. 아무튼…… 드레이크는 바위 맛을 기억해. 냄새도, 감촉도 모두 다르게 느낀다고. 네 말대로, 분별하는 거야. 사람의 감각이 아니지. 그러니까…….’
투란의 이마에 작은 금빛이 어른거리면서 조그마한 혹처럼, 하지만 완연한 각질(角質)이 도톰하게 자리 잡았다. 투란의 눈동자는 사람과 전혀 다른 형태로 변했고…… 엉덩이 골이 드러나야 할 곳을 덮는 조그마한 꼬리가 물결을 휘젓기 위해 팔딱대기 시작했다. 등짝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날개가 금빛 비늘가죽을 찰랑이며 불쑥 튀어나와 물보라에 젖기도 했다.
새끼 드레이크의 혀를 날름거리면서, 투란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물맛을 느꼈고…… 손바닥에도 금빛 비늘이 돋은 채로 금전 한 닢을 쥔 것을 확인했다.
―투란?
이제는 조금 질렸다는 듯한, 완전히 어이없어 포기했다는 듯한 드라고니의 한마디가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이번에는 대꾸하지 않고 투란은 금전의 맛에, 냄새에…… 물보라에 반향되는 작은 울림이 들려오는 느낌에 집중했다. 드레이크의 어린 눈빛은 금전의 형태를 전혀 다르게 더듬기도 했고…….
어느 순간, 투란은 보다 과거의 기억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새끼를 키우다 잃었던 마지막 순간이 아닌, 까마득하게 더 오래된 기억…… 아직 새끼인 채로 어미의 보호를 받으며 이것저것 맛보면서 사고치고 다니던 시절!
지금 투란이 품은 새끼 드레이크가 겪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겪으며 성장하던 시절, 그때도 이런 맛을 느낀 적이 있었다. 두툼하게 튀어나온 돌덩이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물가의 진흙바닥 속에서.
그런 맛을 지닌 것이 어떻게 보이고, 어떤 소리를 내는가도 기억해냈다.
하늘을 누비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맛보고, 냄새 맡고, 더듬어보던 것들이 지상(地上)에 어떻게 깔려 있는가를 굽어보는 것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추억이었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 맛도, 냄새도, 감촉도, 귀에 들려오는 울림도 느낄 수 없지만…… 드레이크의 눈은 높은 하늘에서 그런 모든 것을 깊숙하게 파고들 듯이 볼 수 있었다. 때문에 높이 날면서 어디로 내려가야 더 기분 좋게 잠들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했던 시절…….
‘응?’
차갑게, 시원하게 꿈틀한 ‘악마의 심장’이 잠깐 투란의 생각을 멈춰 세웠다.
전혀 색다른 기억이 ‘투란’에게서 스며나왔다.
감정적인 부분을 치워놓은 채로, 아주 다른 관점에서 드레이크의 기억이 검토되며 드러난 듯한…….
높은 하늘, 굽어보는 땅, 들쑥날쑥한 풍경, 불타는 쪼그마한 것들―씹으면 입안에서 기분 좋게 따끔거리는 불꽃을 터뜨리기도 하는 헬 임프! 조금 더 큰 녀석들은 아주 눈치가 빨라서 잘 숨지만, 이 쪼그만 것들은 허우적대다가 드레이크에게 자주 걸렸다. 그리고 가까운 곳의 넓은 숲은 끈적이는 음침함이 기분 나쁘지만, 손쉬운 사냥감이 가득해서 종종 들렀다!
‘어라?’
드레이크는 ‘임프의 정원’, 이 암반 지역 정상인 네키아의 호숫가에 대해서는 기억하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호수를 치워놓는다면, 드레이크는 이 주변의 지형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손쉬운 먹잇감을 원할 때는 종종 들렀으니까.
저 ‘역병의 수해’에!
온갖 기묘한 맛은 예상할 수 없었고, 가끔 혀끝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면 이보다 더 좋은 식당이 없다.
완전히 자라서, 자신의 어미를 잃은 채로 살기 시작하면서 아직 새끼를 얻지 못했던 드레이크에게 이곳은 꽤 즐거운 놀이터였다. 어미에 대한 그리움, 심심하지 않은 여러 가지 잡것들…… 무엇보다 별로 위험한 것이 없는 편안함!
할짝!
투란은 반사적으로 혀를 날름거렸고, 새로운 입장으로 이 맛의 기억을 떠올렸다.
드레이크는 자라면서, 광물을 먹어치울 수 있게 된다. 뭐든 닥치는 대로 그냥 삼키고 필요 없으면 꼬리 아래로 싸 내릴 수 있으니, 바위를 뜯어먹는 짓에 대해 큰 부담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꼭 먹어야 하는, 드레이크의 몸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을 지닌 광물도 있었다.
본능에 따라 그런 광물을 찾아 땅을 파기도 하고, 압도적인 시각으로 땅가죽을 관통해 보면서 헤매며 날기도 한다.
골든 드레이크, 투란이 삼키고 지워야 했던 녀석은 이 근처에서 그런 영양가 있는 광물을 많이 삼키고 꽤 강해졌다!
할짝.
‘이 맛이잖아?’
할짝!
‘그래, 바로 이 울림! 바로 이 촉감! 이 냄새!’
할짝, 할짝.
―투란? 투란! 먹지 마!
‘어? 에, 엥?’
막 새끼 드레이크의 이빨을 드러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금전을 아작아작 씹어보려다가 쇠뭉치로 패듯이 들려온 소리에 투란은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날개랑 꼬리도 조금 더 커진 채로 팔딱대고 있다?
―야, 인마! 넌 몬스터 로드야! 몬스터 드레이크가 아니라고! 먹지 마! 아무리 골든 드레이크라도 새끼는 금을 먹어봐야 비늘에 금박을 입히지도 못하는데, 왜 먹으려고 들어!
‘골든 드레이크는 금 먹고 몸이 금박 되어서 금색이 되는 거였냐?’
어이없는 자신의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어이없어하면서 투란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