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4)
키이익, 아득.
에퉤엣!
입안 사이에서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났고, 이빨이 오히려 시큰하게 부서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파열되는 소리가 골을 울렸다. 때문에 투란은 더 씹을 생각을 못하고 격하게 뱉어 낼 수밖에 없었다.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뱉어 낸 고무쇠의 조각, 샤벨투스의 이빨로 얇게 저민, 부드러운 고무쇠의 살갗을 미끄러지지 않게 겨우 꼬집어 올리고, 손목에 힘을 꽉 줘서 겨우 떠낸 얇은 육포인 녀석을 보며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못 먹어? 씹히지도 않고…… 목이 그냥 턱 막히나.’
저며 낼 때, 조금 힘겹다고 생각은 했다.
샤벨투스의 이빨이 지닌 예리함에도 고무쇠의 살갗은 뻑뻑하고 질기게 힘을 잔뜩 줘야 얇게 베어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작은 조각을 입안에 넣기가 무섭게 느껴진 것은 단단한 쇠맛,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는 느낌!
먹을 수 없는 것을 입에 넣었을 때, 반사적으로 뱉을 수밖에 없는 그 감각을 악마의 심장이 일으켰다. 이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삼켜도 소화할 수 없는 거라고!
‘이게 뭐냐고!’
뭔가 울컥한 기분이 되어 투란은 잠시 고무쇠를 내려다봤다.
푹 꺼지고 마른 가죽만 남은 녀석인데, 역시 어린 투란으로 하여금 호기심과 동경을 품게 할 정도의 대단한 놈이다! 투란이 갖고 싶다고 찍고 쉽게 버리지 못하게 할 정도의 위용을 보이잖은가?
‘아, 이게 아니고!’
굴러가는 생각을 놔두다 보니, 투란은 ‘그래, 이럴 줄 알았어!’ 하며 실속 없이 좋아라 하는 멍청이가 된 느낌이었다. 돌연 힘이 쭉 빠지면서 더욱 배고프고, 허기가 온몸을 덮치는 듯해서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먹지도 못하고, 몬스터 로드로서 삼킬 수도 없다.
이건 마치 고무쇠가 그를 약 올리기 위해서 여기 드러누워 뒈져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냥…… 포기할까?’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생각이었다.
딱히 다른 방법도 없으니까.
이곳에서 악마의 심장을 해체하고 피를 토할 각오까지 고무쇠를 삼키려고 한다면, 바로 죽는다. 문장이 고무쇠를 삼키기 전에 투란은 숨을 제대로 못 쉬고 물방울에 바싹 마른 몰골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고무쇠 위에 투란의 껍질이 바싹 마른 채, 고무쇠와 다른 점이라고는 마른 껍질 속에 뼈다귀가 좀 있다는 것에 불과한 꼴로 겹쳐진 시체가 될 터!
‘기적을 원해.’
투란은 하늘을 보며, 흐릿한 별빛을 향해 소리 없이 속삭였다.
속삭임을 몇 번 더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긁적긁적.
투란은 다시 고무쇠를 내려다봤고, 자신이 결코 이놈을 그냥 두고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이 정도 몬스터를 지니지 못한다면 여기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쪽이 제대로 된 판단이라 여겨졌다.
다시 불길과 물결의 대혼란 속으로 휩쓸려 간다면,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듯싶잖은가!
‘그런데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냐?’
이것이 문제였다.
그냥 비는 것만으로는 몬스터 엠블럼이 알아서 뭔가 해 주지 않는다.
아무리 믿는다고 자신에게 되뇌어도 그냥 악마의 심장만 별일 없다는 듯이 가슴속에서 두근거릴 뿐이다. 그리고 정말 몸 곳곳에 별일 없다는 것을 확인하듯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몬스터 로드로서 확장된 능력이랄까?
투란은 더 깊이 생각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몬스터 엠블럼으로 몬스터를 삼키는 여러 가지 방법, 항상 먼저 형성시켰던 몬스터를 해체함으로 시작되기에 그중 한 가지도 지금 쓸 수 없었다.
‘생각해 봐, 생각해!’
투란의 머리가 찌근거렸다.
마치 머릿속 혈관에 스며든 넝쿨이 더 깊이, 더 넓게 기억을 헤집는 듯한 느낌이 피어나고 뒷골까지 찌릿해졌다. 경험이 없고, 애매모호한 이야기 속에서 투란이 건져 낸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문장이 몬스터를 삼키게 하기 위해 손으로 문장에서 뽑아낸 피의 각인을 옮기는 것, 이를 더 짧고 빠르게 하는 방법은 손을 쓰지 않고 그냥 가슴에 붙이는 것이다.
천천히 일단 투란은 고무쇠의 늘어진 가죽 위로 엎어졌다.
살살 부드러운 가죽을 두 손으로 긁듯이 끌어모아 가슴에 대보니, 그럭저럭 문장이 자리 잡은 가슴 언저리에 닿을 듯했다. 하지만 지금 문장은 몬스터를 형성시킨 탓에 그 자리에 드러나지 않았다.
고르게 숨을 쉬면서, 투란은 잠시 물을 들이쉬었다.
입으로 마신다기보다는 몸에 닿은 물을 모두 살갗을 통해 걸러내듯이 들이쉬고, 심장의 고동과 함께 온몸으로 퍼뜨렸다. 그러다 보니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 몸 밖에서 뭔가 흡수하는 덩굴줄기는 미묘하게 투란의 핏줄과 나눠져 있었다. 심장 안으로 이어지면서 강한 맥동이 일어날 때 비로소 덩굴줄기의 가닥이 흡수한 것이 투란의 몸으로 퍼져 가는데, 그 과정에서 악마의 심장이 뿜어내는 뭔가가 작용하며 투란의 몸을 지켜 주고 있었다.
고무쇠를 말려 죽인 물방울이 투란의 몸속에서 피를 갈취하지 못하게, 이전에 먹었던 다른 것들도 그 맹독이 투란의 몸에 효과가 없게 한 것처럼!
‘이 녀석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고무쇠를 삼킨다!’
투란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었다.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이 기적이라 하니 기대 보려는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투란은 고무쇠 위에 엎어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가슴속에서 뛰는 중이라고, 문장은 절대로 몬스터를 삼키기 위한 변화를 드러내지 않았다.
생각하고 기대하고, 믿는다고 중얼거리고…….
그래 봐야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느릿하니 악마의 심장만 두근거릴 뿐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악마의 심장을 해체부터 하라는 듯이.
‘그러면 죽는다고! 난 죽을 생각은 없어!’
문장을 향해 투덜거리지만, 그래 봐야 투란에게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 될까?
“문장을 다루는 거?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는 기분이지? 아무도 잡을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는 그런 느낌이야. 그러니까 문장을 몸에 새기게 되면 손가락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지.”
떠오르는 기억에 투란의 인상이 구겨졌다.
투란의 가슴에 보이드 엠블럼이 심어지기 전, 새겨진 문장을 어떻게 다루냐고 물었던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투란은 분노가 치솟고 증오가 뼛속 깊은 곳에서 배어 나오는 듯했다.
‘별 도움도 안 되잖아!’
예전에 보다 짧게 들었던 이야기만도 못했다.
“너, 생각하고 숨 쉬냐? 그렇게 돼. 궁금하면 새겨 봐.”
몬스터 엠블럼을 새기기 되면, 몬스터를 앞에 두고 삼키고 싶어 하면 저절로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어떻게 몬스터 에센스를 삼킬 수 있는지, 어떻게 삼킨 몬스터의 형상을 끄집어낼 수 있는지.
악마의 심장을 품은 지금 분명히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투란이 지금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그렇게 저절로 아는, 본능 같은 부분이 아니었다.
툭, 툭.
투란은 머리를 고무쇠의 가죽에 부딪쳤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생각, 무기력한 자신에 짜증이 났다.
기적을 바라는데, 기적은 쉽게 찾아올 낌새가 없다.
대신 떠오르는 것은 샤오덴 할배의 비웃음.
“뭐, 인마? 할 수 없는 일을 무조건 해내는 방법이 없냐고? 날개도 없이 날겠다고 파닥대다가 다리몽둥이 부러진 꼴을 보고 생각한 게 그거냐? 할 수 없는 일은 아예 하려고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부터 해야지!”
‘젠장.’
샤오콴 마을의 아이 중 한 녀석, 탐구심이 강하고 자기는 너무나 똘똘해서 뭐든 해낼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뭘 어떻게 처먹고 다니기에 그런 큰소리를 치는지 알 수 없는 녀석에게 ‘넌 날개가 없으니 못 날아!’라고 누가 그랬다.
그러자 녀석은 자기한테 뛰어난 재능이 있기 때문에 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두 팔을 파닥대며 뛰어내려 그걸 증명하려고 했다. 그 결과, 그냥 두 다리가 부러져서 살갗을 뚫고 나올 지경의 중상을 입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샤오덴 할배가 그 뼈를 다시 맞춰 주면서 다른 곳이었다면 평생 두 다리를 절룩대며 사는 병신이 되었을 거라 말했다.
그때 투란은 궁금해서 물었다.
날개 없이 나는 것,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일을 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뼈를 맞추는 샤오덴 할배를 보고 있는 사이, 문득 투란은 샤오콴 마을에서 이 할배가 못하는 일이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물었던 것인데, 그렇게 비웃음만 가득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다리가 부러졌던 녀석조차도 투란의 물음이 바보 같다고 웃었다. 두 다리에 나무판을 대고 꽁꽁 묶고 앉아 있던 녀석이!
‘그러고 보니 알킨이 그 뒤로 그 녀석이랑 놀지 않았던가?’
다리가 부러지기 전까지는 뭔가 큰소리를 쳐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였는데, 다리가 부러지고 나니 그냥 녀석은 허풍 치는 멍청이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마을 아이들은 슬슬 그 멍청이랑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지금 그 녀석이 한 멍청한 짓을 하려는 걸까?’
냉정하게 생각하며 되뇌어 보자, 바로 ‘응!’ 하는 힘찬 대답이 들려오는 듯하다!
“크아!”
투란은 입으로 꽥 소리를 치며 돌아누워 버렸다.
엎어진 채로 한참을 있었는데,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답답해서 고무쇠를 더 쳐다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돌아누우니, 어느새 선명해진 별빛이 보이고 있었다.
마치 이제는 불꽃 구름이라든가 서리 안개의 험한 꼴을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는 듯이.
천천히 손을 위로 올리며, 투란은 손으로 별을 잡는 시늉을 해 봤다.
잡히는 것은 없었고, 등짝에 닿는 새로 밀려드는 얕은 물방울의 찰랑임이 쑥쑥 몸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만 느껴졌다.
‘이렇게 닿기만 해도 물을 마신다……라.’
몸에 일어난 변화를 새삼스럽게 여기며 투란은 잠시 손가락 사이에 별빛을 끼워 봤다. 활짝 펼친 손가락 틈새로 보이는 별빛은 투란이 멍청한 짓을 하는 동안 아주 잘 지켜봤다는 듯이 반짝거렸다.
‘어떻게 하면 문장에 닿을 수 있지?’
순간적으로 돌연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이 투란을 흠칫하게 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고무쇠를 보며 한 짓을, 투란은 되새겨 봤다.
‘아무것도 안 했네?’
고무쇠가 부드러운 촉감인 것은 손끝, 발끝까지 닿는 살결로 잘 느껴 봤다.
먹어볼 궁리로 샤벨투스의 이빨로 엷게 저며 내기도 해 봤다. 이건 좀 힘든 짓거리였다.
하지만 몬스터 엠블럼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몬스터 엠블럼—새로 생긴 손가락—은 그냥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손가락은 그저 악마의 심장에 걸린 채일 뿐이었다.
이제까지 투란은 그저 소리 없이 빌고만 있었다.
전혀 문장에 그 마음이 닿지 않은 채로!
‘나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자신의 상태를 새삼 느끼면서 투란은 발딱 몸을 일으켜 앉았다.
문장을 믿으면 문장이 기적을 일으키고 비전을 얻게 해 준다는 것, 그게 가만히 눈만 깜박거리면서 ‘내 소원은요.’라고 중얼대고만 있으란 뜻이 아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러고 있었을까?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말이 어떤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두 손을 폈다 쥐었다 하며 투란은 자신이 어째서 행동하지 못했는가, 왜 생각만 하고 있었는가를 되새겨 봤다.
‘손가락이 아니니까.’
답이 아주 빠르게 나왔다.
‘천칭의 문장’은 이 손을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마음에 거기에 닿아 있어야 비로소 움직인다!
아주 당연한 일인 듯한데, 투란은 몬스터 로드로서 ‘행동’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되새겨 보고 있었다. 텅 빈 채로 발버둥 치고, 악마의 심장을 삼키고, 형성한 악마의 심장이 겁을 집어먹고 배신하는 듯했던 것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팔다리를 움직이듯 숨을 고르듯이 문장의 힘을 사용하고 그 능력에 기대 왔다. 그런데 지금 투란은 그 자연스러움이 허용하지 않는 시도를 하려 들고 있었다!
순 억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