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4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43)
‘맛있다!’
새로운 ‘맛’은 투란의 관심을 완전히 집중시켰다.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리든, 마음 깊은 곳에서 누가 뭐라 떠들든 상관없이 투란은 이 맛에 집중해야 했다. 순수한 본능, 블랙 애시를 통해 형성한 마그마 로드의 본능은 이 ‘맛’의 무늬에 완전히 몰입하는 충동이었고…… 너무 맛있어서 투란은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이 무늬는 보다 잘 짜여 있었고, 보다 균형을 갖추고 있었으며 조금 전의 맛있는 것보다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이 무늬와 아까의 무늬, 거기에 투란 스스로 형성한 마그마 로드의 아름다운 무늬까지 겹쳐지게 되면 이전보다 훨씬 ‘맛’있는 무늬가 생겨날 듯싶잖은가!
‘맛있는……?’
맛에 집중하던 투란의 마음 한편에서 차가운 뭔가가 쿡쿡 쑤시듯이 치솟았다. 이 충동에 휩쓸리는 투란과 다른 ‘투란’이었다. 심장 깊은 곳에서 완연히 다른 맥동을 만들어내면서 ‘투란’은 투란에게 냉정한 사고(思考)를 던져넣고 있었다.
용암의 호수를 이뤘던 마그마 로드, 황금매를 통해 삼킨 그 정수는 ‘천칭’ 속에서 완성된 마그마 로드와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었다. 더욱 거칠고 사나우면서 넓고 깊은 형상(形狀)…… 투란이 폭동이라도 일으킬 작정이라면 거침없이 다시 크고 넓은 용암의 호수를 만들어낼 정도의 깊이가 황금매의 마그마 로드에게는 갖춰져 있었다.
‘천칭’의 마그마 로드는 그보다 정교하고, 아름다웠고…… 작았다.
작고 가늘면서 뭉치지도 못한 채로 터지는 블랙 애시로부터 태어난 때문인 것처럼!
‘그래도 약하지는 않아.’
투란은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천칭’을 유지한 채로 용암의 호수를 이룬 거대한 마그마 로드와 맞닥뜨렸다면, ‘천칭’의 마그마 로드가 용암의 호수를 흡수했을 거라고!
깊은 세월을 간직한 거대한 마그마 로드이지만, 블랙 애시가 되어 터져 나가는 균열(龜裂)은 분명히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균열을 지닌 마그마 로드에게 ‘천칭’에서 태어난 완벽한 무늬인 마그마 로드가 삼켜질 리가 없다!
‘경험.’
투란은 한마디를 기억해냈다.
그 한마디에 얽혔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아무리 좋은 체격에 뛰어난 기술을 단련했다고 해도, 덤으로 온갖 장비로 처바르고 있다고 해도…… 몬스터 앞에서 얼어붙으면 다 소용없다고! 몬스터를 본 적도 없는 놈이 헌터 짓을 하면 안 되는 까닭이 바로 그거잖아! 전혀 본 적도, 심지어 들은 적도 없는 몬스터가 앞에 있다고 해도 헌터는 움직여. 그게 바로 경험의 차이에서 나오는 격차라고!”
아마 오러클 워리어가 자신이 이끄는 신전의 사제들 앞에서 울화를 터뜨리면서 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혹은 다른 헌터들이 신참을 놀리면서 내뱉던 소리든가…… 비슷한 이야기는 몇 가지나 되었고, 모두 같은 요점을 지녔다.
투란은 문지기 데몬을 다시 기억해냈고, 그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던 ‘천칭’의 마그마 로드의 상태를 되새겼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본능과 충동.
‘침착하게, 냉정하게.’
‘투란’이 투란에게 속삭였고, 투란은 본능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면서 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마그마 로드를 지켜보며 다시 ‘알아’차렸다.
‘경험.’
마그마 로드는 암반을 녹이며 땅속을 흘러다니는, 상상을 초월한 고열을 발생시키지만 그 뜨거움을 모두 자신의 안쪽으로 갈무리해 놓을 수 있었다. 그 껍질은 마그마 로드가 땅을 녹이고 흐르면서 섭취한 것들…… 잡다하고 엉망진창인 온갖 광물, 시체, 썩은 나무 따위가 땅속에 묻히고 삭혀진 것들을 바탕으로 자아낸 무늬!
결코, 순수한 블랙 애시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껍질이 아니었다.
투란이 사용하는 검은 결정, 블랙 크리스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마그마 로드의 결정질은 원래의 마그마 로드에게는 정상이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온갖 잡다한 것의 무늬가 정교하게 서로 짜 맞춰지는 일 따위는 기적에 가까운 탓에 셀 수 없는 균열이 당연히 생겨나고, 마그마 로드의 정수가 방출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 방출을 통해서 블랙 애시가 생겨난 것!
그런 유출(流出)은 결국 사람으로 치자면 쉴 새 없이 피를 질질 흘리는 상태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흘러나간 피를 다시 몸 안으로 되돌리는 일이 필요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마그마 로드는 한자리에 처박혀서 흘러나간 피, 블랙 애시를 채취하기 위해 용암 상태를 유지하고 버틴다!
‘뭐, 꼭 그러지 않아도 어디 다치거나 죽는 일 따위는 없을 테지만…….’
탐욕스럽게 새로운 무늬를 습득하고, 정수 속으로 통합시키는 마그마 로드의 본능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블랙 애시가 질질 새 나간다고 해서 아프거나 언젠가 흩어져 죽을까 봐 무섭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에 대한 집착.
용암의 뜨거움에 버텨내는 것에 대해서 호기심을 잔뜩 보이던 꼴도 결국 그 집착을 바탕으로 한 셈이라는 것.
새로운 이해는 투란에게 살짝 한숨 돌릴 여유와 함께 주변을 향해 조금 더 관심을 퍼뜨렸다.
―금까지 먹어치우냐! 금 찾으려던 거였잖아! 투란!
되풀이되는 드라고니아의 높은 소리를 겨우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뭐? 금? 먹어?’
이게 무슨 말인가?
퍼어― 펑!
검은 장막이 허공에 불꽃을 피워내면서 바람에 휘날리는 안개처럼 흩어지면서 아쉬움을 남기는 듯한 폭음을 터뜨렸다.
“어? 끝났나 보다!”
멜란드가 그 광경에 바로 외쳤다.
페란드는 위를 올려다보면서, 여전히 높은 공중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시알라를 향해 외친다.
“누나, 뭐가 보여?”
시알라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에 빠르게 흩어지는 장막 쪽으로 날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제란드가 바로 시알라의 비행을 쫓듯이 뛰었고, 페란드도 뛰었다.
멜란드는 배낭을 다시 등 높이 챙겨 올리면서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인 네 남매가 도착해보니…….
거대한 암반에 붉은 쇳물이 옅고 가늘게 녹아 흐르는 구멍이 나 있었다.
너무 큰 구멍이라서 거기에 큰 집 한 채 정도는 가볍게 담아 놓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집 한 채는 몇 층으로 겹쳐놓아도 될 듯이 깊기도 했다.
그 깊은 구멍 한복판에 투란이 있었다.
꽤 지친 듯한 모습으로 쪼그린 듯도 하고, 그냥 주저앉은 채인 듯도 했다.
시알라가 바로 공중에서 투란 가까이 내려앉으면서, 가능한 한 눈높이를 앉아 있는 투란에게 맞추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투란? 내 소리가 들려?”
가끔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의 형상을 해체하고 나서도 주변의 상황에 전혀 반응할 수 없는 멍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주변의 자극은 몬스터 로드에게 위협으로 다가설 때도 있고…… 지친 몬스터 로드는 아주 쉽게 폭동 상태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므로 시알라는 언제라도 뒤로 물러설 준비를 하고 물어야 했는데…….
“어? 아…… 괜찮아. 잘 들려.”
지친 기색으로 멍하니 고개를 돌리던 투란이 꽤나 공허한 눈길로 대답하고 있잖은가. 마치 뭔가 중요한 것을,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그 눈빛은 시알라를 의아하게 했고 확실히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가온 세 형제도 투란의 텅 빈 듯한 목소리를 들었으니…….
“다친 곳은 없어?”
“그냥 지친 거야?”
페란드와 제란드가 이렇게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서 물었고…….
“우앗, 금이닷!”
멜란드는 짊어진 배낭을 고쳐매려 눈길을 돌리다가 버럭 외치고 있었다.
전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뜬금없는 멜란드의 외침은 바로 누나와 두 형의 관심을 끌었다. 아주 좋지 못한 방향으로!
“멜란드?”
“대체 지금 무슨 헛소리를……?”
시알라가 두통이 피어난다는 듯한 찌근거리는 표정으로 화난 소리를, 페란드는 도대체 멜란드가 뭘 보고 있느냐고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림을 토해내는데…….
“아니, 그러니까!”
멜란드도 자신이 지금 할 말이 아닌 소리를 했다는 것을 조금 느끼기는 한 듯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 손가락은 한쪽을 맹렬히 가리키고 있었다. 허공에 구멍이라도 낼 듯한 손가락질이었다! 여기에 조금 늦게, 멜란드의 눈길을 따라가 보던 제란드의 중얼거림이 덧씌워진다.
“황금이야. 진짜…… 같은데?”
그리고 여기에 조금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던 투란이 느닷없이 반응했다.
파파팟!
“투란?”
네발짐승처럼 파닥거리면서 뛰쳐나가는 투란의 꼬락서니에 시알라가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화들짝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이 상황에서 황금이란 말에 저렇게 반응하는 까닭이 뭔가!
세 형제도 잠시 침묵한 채로 투란을 바라봤다.
조금 전에 서로 주고받던 소리는 까맣게 잊은 듯!
그런 눈길 앞이었지만 투란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멜란드의 관심을 잠시 빼앗고 제란드가 확인해준 황금 앞에 엎어진 채로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금이야, 금! 그런데 이게 얼마나…….”
살짝 목이 멘 것처럼 투란이 갈라진 소리를 내기까지 하잖는가.
처음 반짝이는 꼴을 보고 뭔가 해서 눈길을 돌렸다가 입을 열어 누나와 형에게 따가운 눈길을 받았던 멜란드였지만, 저런 투란의 모습에는 뭔가 할 말이 없어진 듯이 침묵을 유지했다.
페란드나 시알라 역시 이럴 때는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당황한 채인데, 제란드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투란 곁으로 가고 있었다.
투란이 손끝으로 살살 건드리면서, 만지면 어디론가 사라질 듯해서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를 보며 제란드는 대담하게 칼을 뽑아 황금을 찔렀다.
“윽?”
자신이 찔린 듯한 소리를 투란이 냈다.
제란드는 칼을 비틀었고, 황금의 깊이를 가늠하면서 노출된 넓이까지 확인하며 중얼거리듯이 투란에게 말한다.
“두꺼워. 여기 박혀 있는 정도라면 대강 금전 수십 닢은 나오겠는걸.”
“수십…… 닢?”
투란의 목소리가 조금 더 갈라진 채로 나왔다.
제란드는 투란이 놀라는 것이라 여겼고, 주변을 좀 더 넓게 둘러보면서 대꾸한다.
“이 정도 황금이 이렇게 노출되었다면, 이 주변에 조금 더 있을지도 몰라. 이 크기로 하나둘 정도만 더 찾아내도 백 닢은…….”
“차, 찾아! 찾아야 돼!”
투란이 반쯤 울먹이는 건지, 울부짖는 건지 모를 소리로 빠르게 뱉는 말이었고 제란드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도대체 이 금에 대한 집착은 뭔가?
어째서……?
“찾아보자.”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귀를 기울이던 시알라가 큰 소리를 냈다.
제란드는 새롭고 색다른 의문을 담은 눈길로 시알라를 바라봤다.
잠깐 누나가 투란의 이런 모습에 적극 호응하는 까닭이 뭔가 궁금하다는 듯했지만, 제란드도 곧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찾아봐야겠네.”
페란드도 조금 씁쓸한 표정을 띤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멜란드는 이런 분위기가 싫은 듯이 한마디 한다.
“달루스 팀보다 우리가 더 부자가 되는 것 같은데? 단숨에 금전 수십 닢이라니…… 잘 찾아보면 2, 300닢도 문제없을 정도잖아?”
제란드가 이 소리에 살짝 차갑게 대꾸한다.
“시체가 된 일행이 네 닢 정도의 금전을 지녔잖아. 가지고 있던 장비만 해도 전부 따지고 보면 백 닢 이상은 될 테니까…… 달루스 팀의 진짜 재산은 금전 수백 닢은 거뜬할걸.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멜란드의 입술이 삐죽거렸다.
“그쪽은 능력 있어서 선금도 받는다고! 그 선금으로 산 장비가 비싸 봐야 빚이잖아. 투란이 찾아낸 황금은 갚을 필요가 없는 거니까, 완전 이득이라고!”
“그렇기는 하군. 그러면 조금 더 둘러보자. 이 정도가 전부일 리가 없어. 갈아엎어졌지만, 이 정도 황금이 노출될 정도라면 분명히 큰 금광이 여기 있었을 수도 있거든.”
제란드는 순순히 멜란드의 말에 동의하면서 일어섰다.
시알라와 페란드는 황금을 앞에 두고 꼼지락거리면서 멀어지기 싫어하는 투란의 모습을 흘깃하고는 묵묵히 주변을 돌아보려는 듯이 움직였다.
멜란드는 투란 곁에 슬쩍 짐을 남겨둔 채로 황금을 보며 혀를 날름하고는 제란드의 뒤를 따라 주변을 샅샅이 뒤지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란은…….
―말 안 해줄 거냐?
드라고니아의 기묘한 야유를 듣고 있어야 했다.
‘시, 시꺼!’
―여기 남은 거, 순전히 찌꺼기라고…… 알짜배기 큰 황금은 홀랑 갈아 마셨다고 말해줘야잖아? 너무 맛있어서 정신줄 놓고 먹어치우고 남은 찌꺼기지만, 잘 찾아보라고 말해줘야지. 네 걱정하고 있는데!
‘닥쳐! 닥치라고! 으아, 아까워! 아깝다고! 키린이 말한 금전을 다 채울 수 있었는데! 억울해! 황금이 막 몰려왔다고! 그런데 그걸……!’
―신나게 들이마셨지. 흠…… 황금의 샘을 통째로 들이켠 격인가? 아니면 몰려드는 황금을 그냥 넙죽 받아 마셨다고 해야 하나?
‘닥쳐어어!’
눈앞의 황금, 금전으로 수십 닢이 된다는 조각을 보면서 투란은 눈물이 찔끔거리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그마 로드가 맛있어하며 삼킨 황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