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4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46)
Chapter 70. 수해(樹海)를 바라보며
반짝, 반짝!
스르륵 녹아내리는 금이 바닥에 놓인 굵직한 알 같은 금덩이 위로 옮겨지면서 도도하게 찰랑거리는 반사광을 흘렸다.
툭.
금이 흘러서 새 나간 잡석은 옆으로 가볍게 내던져졌다.
“그럭저럭, 다 골라냈지?”
시알라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담담한 척하려 했지만, 바닥에 쌓인 금붙이…… 덩어리진 것, 얇게 벗겨진 것, 두껍게 갈린 것…… 진흙이나 찰흙으로 여기고 장난이라도 해놓은 듯한 모양을 한 채로 바닥에 모인 금은 저절로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
“이거…… 수, 수십 닢은 되겠지?”
꿀꺽거리는 목젖을 울리면서 멜란드가 간신히 입을 연 듯이 말했다.
제란드는 이런 소리에 바로 코웃음을 치듯이 대꾸하는데, 애써 오기를 부리는 듯한 인상이 조금 짙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백 닢은 넉넉히 넘을걸.”
분명히 허세 부리는 듯한 형의 말투였지만, 멜란드의 귀에는 그런 말투가 품고 있는 분위기 따위는 전혀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배, 배, 백 닢! 그, 그 정도면…….”
페란드가 그런 막내를 보면서 애써 한숨을 쉬었다.
“집어 올 때부터 짐작하고 있던 거 아니야? 뭘 새삼스럽게…….”
이 또한 제란드처럼 미묘한 오기가 섞인 말투였고, 시알라처럼 담담하려고 애쓰는 목소리였다.
멜란드가 바로 항의하듯 대꾸한다.
“짐작 못 했어! 보라고, 이쪽은 그냥 돌이 더 많잖아! 저런 거랑 섞여 있으니까…… 몇 동이를 퍼내고도 겨우 손톱만큼 모이는 사금(砂金)처럼,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두 형이 입을 다물었다.
금이 섞인 광물이란 것은 확실히 이리저리 걸러내고 정제하다 보면, 아주 적은 금이 나올 뿐이고 대부분은 잡석, 가끔 쓸 만한 광물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용도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돌이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금박처럼 들러붙어 드러난 경우에 대해서 네 남매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심지어 헬 임프의 불꽃으로 이 자리에서 걸러낸 금의 총량은, 멜란드가 새로 만든 배낭에 마구 담아 온 돌에서도 상당한 양이 나와서인지, 거의 3, 400닢은 거뜬해 보였다.
생각 없이 반짝이는 것을 주워 온 탓이기도 한 듯했고, 멜란드만 노골적으로 배낭을 만들었을 뿐이지 다들 열심히 긁어모은 꼴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었다.
하지만 네 남매 누구도 몇백 닢이란 말은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막내의 말처럼 정말 짐작도 못 했고, 이런 금으로 뭘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만 하려 해도 먼저 정신에 경련이 일어나는 기분이었으니까!
때문에 느닷없이 고요하다고 하기 까다로운 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이 침묵이 부담스러워진 시알라가 억지로 입을 연다.
“좋아하기에는 너무 일러. 우린 아직…… 저 숲을 넘기는커녕, 숲에 들어가지도 않았다고. 정신 놓지 말아.”
“그, 그렇지! 맞아, 맞아!”
멜란드는 조금 과장된 모습으로 시알라의 말에 호응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페란드와 제란드는 깊이 파고드는 씁쓸한 기분을 느낀 듯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의 금더미…… 무게로 달면 겨우 백 킬로그램에서 몇 십 킬로그램이 덧붙여진 정도에 불과했고, 금이 붙어 있던 돌의 무게는 그 몇 배였다. 그런 무게를 가볍게 집어올 수 있을 정도로 네 남매의 힘은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이 붙었다고 좋아하기 전에, 이런 힘으로도 겨우 버틸 수 있는 곳에 발 딛기 전에 이 금더미의 한 귀퉁이…… 절반도 아니고 그냥 10분의 1 정도만 있었다 해도…… 세란드부터 멜란드에 이르는 다섯 남매의 삶에는 몬스터의 그림자조차 소문으로 듣는 평온함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몬스터를 직접 마주 봐야 하는 삶을 피할 수 없었다 해도, 이 금더미의 10분의 1 정도만 있었다면 훨씬 좋은 장비와 조건을 갖춘 채로 역경(逆境)과 고난(苦難)에 마주 설 수 있었을 터였다.
“여섯 닢이었나?”
제란드의 중얼거림은 느닷없었다.
하지만 페란드는 그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닢, 나머지는 은전 여든 닢 정도였지. 어림잡아 금전 한 닢이라고 우겼지만…… 꽤 애매했어. 은전 대 금전 비가 갑자기 120 대 1이 돼 버렸잖아.”
“앗, 그거! 분명히 우리한테 사기 치려고 했던 거야! 우리가 아는 가게 녀석들끼리 입을 맞춘 거였잖아!”
멜란드도 제란드와 페란드가 주고받는 말뜻을 알아차린 듯이 으르렁거렸다.
세 형제가 지난 일을 회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알라는 한숨을 쉬었다.
“그거, 잊기로 했잖아. 세란드 오빠를 찾기 위해서, 마법사와 함께 이 깊은 곳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잊기로 했잖아. 이제 와서 그 장비 맞출 때의 일을 왜 되새기니? 게다가 그 금전 여섯…… 다섯 닢하고 은전 팔십 닢 중에서 금전 세 닢은 마법사에게 받은 거였잖아. 잊어버려. 그딴 일…….”
세 형제는 나직하지만 분명한 누나의 말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세 형제의 눈길은 누나의 눈동자가 금더미에 고정된 채란 것을 확인하고도 있었다. 그런 누나의 흉내를 내듯 세 형제도 쌓여 있는 금더미에 눈길을 고정하니, 확실히 예전에 마법사 겔퍼와 함께 산맥의 깊은 곳으로 떠날 무렵에 장비를 정비하기 위해서 썼던 금전 따위는 아픈 추억과 함께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간다!
그렇게 잠시 금더미를 바라보다가 제란드가 다시 불쑥 입을 연다.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되었어.”
이번에도 페란드는 이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듯이 대꾸한다.
“그래…… 슬슬 주변을 다시 확인하고, 마중 나갈 준비를 해야지.”
“응? 마중?”
멜란드는 잠깐 의아한 표정부터 지었다.
아무래도 금에 지나치게 몰입한 듯한 멜란드의 모습이었지만, 시알라부터 시작해서 두 형이 찌푸린 눈매로 살짝 노려보는 순간 멜란드는 바로 한마디 덧붙이면서 알아들은 시늉을 한다.
“너무 걱정하는 거 아냐? 이 근처는 투란이 잘 아는 곳이잖아. 뭐 좀 변해서 놀란 것 같기는 했지만…… 보라고, 진짜 용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잖아! 투란도 지난 일을 생각하다가 조금 늦을 수도 있잖아!”
막내의 항의는 조금 먹힌 듯했다.
투란의 구체적인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만약 이곳에 오게 된 투란의 사연이 네 남매의 경우랑 아주 조금이라도 닮았다면…… 사실 거의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이곳에서 금을 발견했을 때 투란의 기분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이런 금을 놔둔 채로 계속 움직여야 했을 때의 기분도!
거의 포기한 채로 떠났다가 어떻게 돌아와 보니, 생김새는 싹 변해 있고 괴상한 바위 괴물이 쿵쾅거리고 있는 꼴이라면…… 네 남매도 투란처럼 화낼 수 있었다. 그런 기분이 된다면, 네 남매로서도 괴물의 능력을 가늠하며 냉정하게 물러서기보다는 뭐든 집어 던지고 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네 남매는 이런 금을 보질 못했고…… 덕분에 냉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금을 보고 난 다음에는, 투란이 어떤 기분이었고 뭣 때문에 주변을 좀 더 둘러보고 싶어 하는지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당장 눈앞에 끌어모은 금의 절반만 들고 나간다 해도, 어느 도시에 가서든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사람답게…… 몇 년을 그냥 놀고먹으면서 살 수 있잖은가! 아껴 쓰고 도둑맞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냥 죽을 때까지도 편안하게 살 수도 있어 보인다!
“시간 약속 했으니까…… 시간 되면 일단 주변 정찰이라도 시작하자고.”
제란드가 조금 무거운 숨을 토해내면서 말했다.
페란드도 고개를 끄덕였고, 시알라 역시 마찬가지란 듯이 말한다.
“그래야지. 너무 아쉬워하다 보면 하지 않을 실수도 하는 수가 있으니까.”
“흠? 투란이? 흐흠…….”
멜란드는 누나와 형들을 가늘게 뜬 눈으로 보면서 ‘진짜 그렇게 생각해?’라는 표정과 말투를 흘려내고 있었다. 그 꼴에 바로 시알라가 짧고 세게 말한다.
“금덩이로 한 번 맞아볼래?”
“마, 맞아볼까?”
꿀꺽, 갑자기 목젖을 울리면서 나온 멜란드의 대꾸가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잖은가!
페란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멜란드를 쳐다봤고, 제란드는 갸웃하면서 이상한 말투로 덧붙이는 소리를 한다.
“어, 일단 죽지는 않을 테니까. 금덩이로 세게 맞아볼 기회가 흔하지도 않잖아? 그거, 어, 꽤 괜찮은…… 농담이야.”
주절거리다가 노려보는 누나의 눈길, 슬그머니 꿈틀대는 그 손길에 제란드의 말은 재빨리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이미 시알라의 손은 제법 큰 금덩이에 닿아 있었고, 어찌 되었든 동생 둘에게 금으로 쳐맞는 느낌을 선물하려는 듯한데…….
“누나, 잠깐! 알람에 뭔가 걸렸어.”
페란드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하고 있었다.
이는 곧바로 제란드와 멜란드가 일어서게 했고, 시알라도 진지하게 손을 털면서 일어섰다.
“어느 쪽이야? 어느 정도 되는 녀석이지?”
“잠깐만…….”
페란드는 닫혀 있는 문 너머를 보는 표정으로 조금 곤혹스러워하며 누나의 물음을 늦췄다. 제란드가 그 모습을 보고는 머뭇거림 없이 바로 문 곁에 서면서, 살짝 문을 밀어 틈새로 밖을 내다본다. 멜란드도 제란드 맞은편으로 서면서 두 팔에 허연 털이 돋게 하고 있었다.
시알라는 문 정면으로 서면서 페란드를 향해 중얼거린다.
“워처(Watcher)에 시각을 제대로 걸어놓지 않았어? 느낌만으로 알려고 하지 말라니까.”
“난 양쪽을 동시에 보는 게 어렵다고 했잖아! 그래서 알람 형식으로 해놨고!”
페란드가 누나의 말에 투덜거렸다.
경계와 감시의 주문인 ‘워처’, 이 복합적인 주문은 마법을 사용한 자의 감각 한쪽에 주변을 경계하고 감시한 내용을 항상 전달해주지만, 그로 인해서 항상 두 곳을 보고 듣고 느낀다는 점 때문에 사용자의 감각에 지나친 부담을 주기도 했다.
때문에 페란드는 접근하는 것의 질량, 속도 정도를 조금 멀리 감지하게 ‘워처’의 주문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기 어려웠고, 시알라는 타박을 했다.
“투란인 모양인데? 뭘 끌고…… 와?”
문틈 너머를 보던 제란드의 말꼬리가 조금 기묘하게 뒤틀린 채로 큰 소리가 되고 있었다. 제란드의 신호에 따라 튀어나갈 준비를 하던 멜란드가 그 모습에 ‘응?’ 하면서 얼른 문틈 너머를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데…….
“와아! 와? 우어?”
제란드가 낸 놀란 소리쯤은 자신이 압도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듯한 괴상한 소리를 훅훅거리는 숨결을 섞어 토해냈고, 머뭇거림 없이 바로 문을 열어젖히면서 뛰어나가고 있잖은가!
시알라와 페란드는 ‘어?’ ‘야!’ 하다가 제란드까지 멜란드 뒤를 따르듯이 문틈을 비집고 나가는 모습을 봤다. 이쯤 되면 나간 녀석들이 완전히 열어놓지 않은 문을 열고 세이프티 하우스 밖의 풍경을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둘이 문을 활짝 열면서 세이프티 하우스의 문턱을 넘었고…….
“어? 여어! 마중 나왔어?”
투란은 밝게……가 아니라, 밝은 척하는 모습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 척하는 모습이 네 남매에게는 너무 또렷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눈가에 축 늘어진 거뭇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씩씩거리면서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이 가득한 데다가 낑낑거리면서 끌고 있는 두 가닥 밧줄…… 어깨에 걸쳐서 두 손으로 꽉 쥔 밧줄은 바닥에 넓적하게 깔린 융단…… 차라리 수레를 만드는 편이 좋았겠지만 바퀴가 굴러가는 형태를 제대로 만들 수가 없어서 그냥 뭔가 올려놓을 깔개로 만들었다는 티가 팍팍 나는 두꺼운 담요 같은 것에 밧줄은 이어진 채였고, 그 위에 올려진 것은…….
“정화 주문 좀 부탁해! 아, 이거 담아둘…… 헛간 같은 것도 하나 지어줘. 세이프티 하우스로 지어줘!”
무슨 생각을 하기 전에 투란이 끙끙거리면서 하는 말이 세차게 네 남매의 가슴에 와닿았다.
바로 시알라가 힘차게 외치기 시작하니…….
“퓨리파잉, 클렌징!”
멜란드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누, 눈부셔! 젠장, 세이프티― 하우스!”
쿠륵, 쿠르륵!
거칠게 주변에서 돌이 치솟으며 벽을 쌓았고, 위쪽에서 맞물리면서 천장을 만들며 매듭지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으앗, 캄캄해!”
투란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흘렸고…….
“리틀 토치!”
제란드가 바로 작은 횃불의 형상을 몇 개 띄웠다.
“오, 밝아졌네. 우와, 먼지 털어내서 그런가, 엄청나게 반짝이네?”
투란은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이 주저앉아 뒤돌아보면서, 퀭하니 파인 듯한 눈길로 자신이 끌고 온 것을 보면서…… 미묘하게 으스스한 피로가 가득 채워진 느낌이 맴도는 목소리를 크게 토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네 남매 누구도 그런 투란의 상태에 관심을 둘 수가 없었다.
일단 투란은 어디 다치지 않은 채로, 그저 조금 지친 듯한 모습으로 멀쩡히 살아 있었고…… 저 말이 될 리가 없을 듯한 큰 덩어리…… 시알라의 중첩정화 주문을 쳐맞은 다음에 묻어 있던 얼룩 티끌이 벗겨진 순간부터 멜란드의 비명처럼 번쩍이는 금광(金鑛)을 통으로 끌어낸 듯한 바위가, 설마 전부 진짜 금일까?
이 의문이 네 남매를 잠시 침묵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