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48)
―잠깐은 무슨 잠깐! 딴짓하면서도 모두 듣고 잘 기억했다면서? 그렇다면, 계속 딴짓해라! 내가 친절하게 마법의 기초를 새겨줄 테니까! 와아,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이 모조리 처리되니, 아주 행복하지! 그래, 당연히 좋아해야지! 행복해서 목이 멜 정도가 돼야지!
‘까먹는다고! 사람에게는 망각이란 것이 있다고! 정리하지 않으면 홀랑 잊어버리니까, 그러니까…… 키린이 그렇게 가르쳐줬구나. 어흣!’
드라고니아의 압박에 되는 대로 답하던 투란은 문득 키린의 학습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며 깨우칠 수 있었다. 똑같은 내용을 두어 번 더 점검하듯이 묻고 답하게 하면서 키린은 투란이 나름대로 강제주입된 지식을 정리할 틈을 줬다.
사람에게 망각이라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랬는데, 이제야 투란은 그 의미를 깨우친 셈이었다.
―무슨 이야기냐, 그건?
‘아하하, 아하핫. 하아…….’
웃다가 한숨을 쉬었지만, 투란은 소리 내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눈을 감은 자신의 모습이 또렷하게 느껴졌지만, 투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으름 피우듯, 계속 눈을 감고 침대 위에서 뒹구는 자세로 투란의 생각은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져 갔다.
―투란? 투란!
‘듣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좀 들으라고.’
사라진 자신을 찾으려는 듯한 기척으로 드라고니아가 다시 ‘의지의 외침’을 터뜨리려 하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차분하게 대꾸했다. 너무 차분하고 냉정해서 드라고니아마저도 차분하게 냉정하게 만드는 말투였다.
그리고 투란의 마음은 그보다 더 침착하고 고요하며 맑아져 갔다.
그 맑은 느낌 속에서 문득 투란이 묻는다.
‘나, 네 모습 얼핏 본 적이 있었나?’
―뭐? 무슨 소리냐?
살짝 떨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시침 떼듯이 되물어 왔다.
투란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정확한 기억으로 남지는 않은 것 같아. 무늬가 제대로 새겨지지 않았지. 말했듯이 사람은 잊는다고, 과거를 망각해서…… 마치 없는 일처럼 여겨. 바보 같은 짓이기는 하지만, 그 덕분에 편안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일도 잊을 때는 그냥 바보가 되는 거지! 아무튼…… 머리로 기억하는 게 뭔지 이제 좀 알겠어. 그러다 보니까, 나 정말 아슬아슬하게 넘어간 일은 전부 잊고 있던 것 같거든. 네 모습도…… 드라고니아의 형상이란 것도, 흐릿하지만 아주 짧게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으로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아, 혹시 네가 간섭한 거야? 마법의 기초를 새겨주는 것처럼, 아니 이건 반대로 지운 건가? 그렇게 할 수 있어?’
―기억의 각인과 삭제는 그렇게 마구 하는 일이 아니고, 할 수도 없다. 그런 게 되면 당장 네 머릿속에 내 마법의 지식을 전부 쑤셔 박아놨겠지! 그러면 내가 이렇게 밤새도록 떠드는 노고에 시달리지 않았을 테고!
‘그, 그러네? 아하핫. 어? 우리 벌써 하룻밤 샜어?’
―그래! 미친놈처럼 내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억지로 그렇게 금붙이를 모아 묶어서 가져왔잖아. 순수한 오러를 기반으로 한 체력만으로 거의 삼만 킬로그램 가까운 금덩이를 끌고 왔으니, 당연히 지치지!
‘그렇게 많이 모았어! 우아, 그냥 보이는 대로 긁어 담았는데!’
―다 모은 것도 아니고, 모으다 지쳐서 그냥 왔잖아. 보기만 해도 어이없고 한심한지, 저쪽에서 밤새 구경을 하더군.
‘응? 밤새 구경?’
투란은 부스스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둘러보니 세이프티 하우스, 이쪽 문턱 너머로는 남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쓴웃음 지었다.
‘하긴…… 그렇게 걸러내서 깨끗하게 뭉쳐놓은 황금 바위는 보기 쉽지 않지!’
가져온 황금은 단순히 긁어모으기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되새기며 슬쩍 우쭐대는 투란의 기척이 확실하게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졌다.
―황금을 정제(精製)하지 않았다면 부피가 훨씬 더 컸을 테고…… 그 탓에 더 무거워서 가져오기도 힘들었겠지! 용암호수의 마그마 로드가 되지 않으면 가져올 수 없었을걸!
투란은 이 말투 속에서 뭔가 이를 가는 듯한 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금붙이를 모으면서 윌 라이트의 마력을 열심히 소모할 작정으로 휘둘러 댄 탓인 듯도 했다.
‘음, 퓨리파이 주문이 금만 쏙쏙 뽑아낼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참 쓸모가 많았지?’
―헐? 너, 그거 기대하고 쓴 줄 다 알거든!
‘이힛! 에헴!’
시치미 떼려다 들통나자 아예 자랑하는 시늉을 해버린 투란이었다.
이는 드라고니아가 잠깐 어이없어 고요하게 만들었고, 투란은 다시 ‘악마의 심장’을 통해 정제된 기억의 무늬에 대해서 되새기고 정리했다. 그리고 어떻게 ‘악마의 심장’이 몸을 재생해내는가를 더듬었고, 섀도우 하트라고 일컬어지는가를 생각했다.
‘악마의 심장’은 이런 투란의 사유(思惟)를 보조하듯, 뇌수(腦髓)와 골수(骨髓)에서 활발하게 그물질을 했다! 이는 투란에게 까마득하게 잊었던 것을 살짝 엿보듯이 되살아나게 했다.
‘아, 잊어서 다행이었던 것도 기억나냐…….’
아직 기억을 되새기는 일에 자신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부터 투란은 알아야 했다.
기억을 되새김질한다면 좋았던 일만 더듬고, 기분 나빴던 일이라든가 얼른 잊고 싶었던 것 따위는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에 대한 분별없이 ‘악마의 심장’은 투란의 정신 깊은 곳에 새겨져 있던 지난 일을 들춰내면서 그 기억이 어떤 무늬가 되는가를 새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살짝 한숨을 쉬면서, 흙으로 부드럽게 자아낸 침대 위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투란은 자신이 보석에 미친 아이로 불리던 시절의 일을 다시 망각 너머로 흘려보내면서, 몬스터 로드로서 새롭게 시작한 삶을 더듬었고…… 그 한편에서 사람의 삶과는 전혀 다른 드레이크의 삶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그거, 몬스터 로드의 폭동이 아니었구나. 드레이크의 능력 때문이었지, 내가 드레이크의 형상을 다루지 못한 게 아니었어!’
―무슨 얘기냐?
‘응? 아…… 드레이크가 되어서 날뛴 일 말이야. 나는…… 어쨌든 드레이크의 몸은 다룰 수 있었는데…… 드레이크가 자기 능력으로 나랑…… 내 정신이랑 엮어지면서, 헷갈렸던 거야!’
―이제 와서 새삼스럽긴…….
‘새, 새삼스럽냐! 난 순전히 드레이크의 본능을 다루지 못한 걸로 생각했었다고! 그러니까…….’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 아닌가? 드레이크의 능력에 휩쓸렸든, 몬스터의 본능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든. 몬스터 로드로서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
‘에, 그건 또 그런가?’
입맛이 쓴 듯이 혀를 날름하고 투란은 다시 네 남매를 만나서 여기까지 오던 과정을 되짚어갔다. 처음의 낯선 상황…… 세란드의 억지 탓에 진실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던 것, 한편으로는 투란 스스로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 파워 서클, 황금매, 마법사…….
기억의 무늬는 쉴 새 없이 엮였고, 새롭게 형성되는가 하면 아주 낯익다가도 낯설었다. 지난 일을 되새기는 것이 마치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듯했고,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시원한 기분이었다.
투란은 기억이 어느 한구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오르게 했고, ‘악마의 심장’은 떠오른 기억을 무늬로 그려내면서 차곡차곡 정리해 쌓는 듯했다.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깊은 곳에 간직하듯!
그 흘러가는 기억 속에서 키린이 남긴 지식이 다시 투란의 몸에서 오러를 자극하면서 움찔거렸고, 투란은 다시 보기 싫다고 징징거렸던 키린의 편지가 또렷하게 그 순간을 재현하는 듯한 과정도 겪었다!
‘꺄아아아!’
―뭘 하는 거야!
반사적으로 마음으로 울린 투란의 비명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했고, 투란은 곧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서…….’
―그래? 몸으로 기억한 탓이란 말이지? 흐흠…….
‘흉악한 궁리하지 말고! 그보다, 세란드의 요술! 제란드를 구할 때, 내가 미로로 들어갈 때 잠깐 썼었지?’
―그렇다만?
갑작스러운 물음에 드라고니아가 조금 의아함을 드러냈다.
처음 시알라 남매와 투란이 일행이 될 때, 세란드가 투란을 꼬드기려고 궁리해낸 것이 바로 요술이었다. 황금매의 깊은 곳에 자신을 가두고 그 형상을 투란이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괴물인 세란드의 능력을 빌려 쓸 수 있다고 한 요술.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가 있었고, 투란도 제란드를 구할 때 반사적으로 잠깐 써먹을 뿐이었다.
‘그거 뭐라고 했었지? 너, 이름까지 지어놨잖아?’
―리틀 점프. 용케 기억해냈군?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홀랑 잊고 있었던 부분을 짚는 것처럼 빈정거리며 놀리는 소리를 흘렸다. 입술을 삐죽하면서 투란도 대꾸한다.
‘음, 뭐…… 그 미로 속으로 들어갈 때는 썼지만 나올 때 쓸 수가 없었잖아. 그때 무지하게 짜증났었다고. 암튼 그때 뭐라 뭐라 네가 말이 많았잖아. 리틀 점프는 좋은 능력이지만, 그 제약과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광야의 미로는 리틀 점프를 사용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으니까. 시공(時空)의 형질에 직접 변형을 가하는 그런 미로 속에서 리틀 점프 같은 능력은 오히려 해롭게 작용한다고…… 그러니까 말리느라 말을 많이 하기는 했지.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그걸로 저 숲을 넘을 수는 없다. 너무 넓어. 황금도 아주 무거워서 리틀 점프로 옮기는 건 무리다!
‘쳇……. 괴물 세란드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어서 그런 거잖아.’
―뭐, 그런 점도 있지.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요술이니까. 그건 기뻐하고 좋아해야지! 제대로 활용한다면……, 리틀 점프가 다른 곳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내가 강조했던가?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아앗! 아, 지금 그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 몬스터의 능력을 빌려 쓰는 요술인 리틀 점프 말고, 원래 마법사란 아주 멀리 단숨에 옮겨가는 재주가 있잖아?’
살짝 흥분한 투란의 물음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아주 본격적으로 빈정거리겠다는 듯이 대꾸하는데…….
―원래? 원래 마법사란 마력 말고는 아무 재능도 없는 경우를 말하는 거야!
‘아, 진짜! 안다고, 알아! 그 마력을 세계의 섭리와 교류시켜서 온갖 능력을 발휘하는 자가 바로 마법사! 연구하고 지식을 쌓아야 하는 까닭! 그러니까, 그중에 있잖아! 여행 마법!’
결국 투란이 끙끙거리면서 마법의 기초 한구석을 들춰서 달래는 소리로 다시 물어야 했다. 이번에는 조금 진지하게 드라고니아가 답해주는데…….
―아케인 저니(Arcane Journey)에 대해서 묻는 거라면, 이 춤추는 산맥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마법이다. 그 마법으로 여기서 벗어날 생각이라면, 완전히 잘못 짚었어. 산맥 안쪽에 가까워질수록 쓸모가 없지만, 하도 불안해서 상아탑의 마법사들도 산맥의 영향이 뚜렷한 고대 왕국의 영토 내에서는 거의 쓸 궁리를 하지 않는 마법이라고.
‘누가 그걸로 빠져나갈 궁리를 한데? 안 해! 궁금한 건, 그 마법이랑 드로위! 둘을 하나로 묶는 이상한 주문이 있었잖냐고!’
―아스널? 아케인 아스널(Arcane Arsenal) 말하는 거야?
퍼뜩 기억난 듯, 드라고니아가 확인하며 되물었다.
투란은 그 말투 속에서 드라고니아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자신이 확실히 짚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조금 우쭐대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그래, 그거! 세란드가 넘겨준 스펠 리스트…… 주문목록에 분명히 있었어! 아케인 저니랑 엮인 부분 때문에 넌 그냥 넘긴 그 주문 말이야! 금색의 마도사도 까다롭게 여기고 사용하지 않았다고, 세란드가 스펠 리스트에 잔소리 덧붙여놓은 그 주문!’
―까다롭게 여길 수밖에 없지. 아케인 아스날은 상위 마법 중에서도 난이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경우니까. 주문을 외워서 쓰는 마법도 아니고, 마법의 각인과 아티팩트, 특정한 장소에 단단히 묶어둔 특별한 매개체를 이용해야 겨우 실현되는 마법이기도 하고……. 그걸로 금덩이를 빼돌릴 궁리는 하지 않는 게 좋을걸. 여기서 마법 주머니 만드는 시간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걸릴 테니까!
‘아, 정말…… 사람 말을 좀 들으라고! 누가 마법의 보고(寶庫)를 여기다 만들어서 금덩이 처박아 둘 궁리를 한댔냐고!’
―그럼, 왜?
드라고니아는 전혀 쓸모가 없는 주문에 대해서…… 다른 곳이라면 고려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쓸 수 없는 주문에 대해서 투란이 왜 자꾸 짚으로 하는가 의아해했다.
아케인 아스날, 이는 투란이 마법의 보고라 부른 그대로 ‘이상한 무기창고’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특별한 마법이었다. 한 장소에 가지런히 쌓아둔 무기를 아주 먼 곳에서 바로 꺼내쓸 수 있게 해주는 대마법(大魔法)이었고, 아케인 저니라는 공간의 영역을 다루는 마법을 바탕으로 원하는 물건을 바로 꺼낼 수 있는 서랍 마법, 드로위가 엮인 특별한 경우였다.
너무 미묘하고 특별한 마법인데, 투란은 왜 이를 거론하는가?
‘그거, 여우의 능력과 닮았잖아.’
―뭐?
‘아빈가의 숲! 거기 여우 말이야! 세란드가 요술로 빌려준 능력도 바로 여우를 삼켜서 갖춘 능력이었고! 그 여우, 바위를 막 뱉어냈었잖아.’
드라고니아는 겨우 투란이 무엇을 기억했는가 눈치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