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50
몬스터×몬스터: 외전 편 (1)
1. 달루스의 기억
쿨럭.
아, 이것도 기억이 되려나?
실수했군.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애초에…… 쿨럭.
애초에 모든 상황을 기록할 수 있는 메모리 오브(Memory Orb)를 사야 했어.
간신히 금액을 맞출 수 있었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 이제 와서 후회가 되는군.
그래, 이제 와서.
죽음이 숨통을 더듬는 지금에서야 후회가 되는 일이라…….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난 후회하지 않았을 거야.
계속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이 달루스에 대해 모르느냐고 큰소리쳤을 테고 자신이 내린 판단에 대해서 머리카락 끝에 붙은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 그게 바로 나다.
달루스!
달루스 팀의 리더이며 디퍼 다커 포레스트—플레이그 포레스트—를 정복할 자!
달루스, 그게 바로 나니까!
쿨럭, 쿨럭…….
쥐어짜 낸 허세가 피랑 함께 토해진 기침에 섞여 날아가네.
다른 때랑 달리 이게 허세란 걸 금방 알 수 있어.
다시 후회가 내 영혼 깊이 느껴지거든. 후회하는 놈이 큰소리치는 거, 허세일 뿐이야.
어째서 이렇게 죽음을 앞에 두고 허세를 부릴까?
어째서……?
침착하자, 죽음이 앞에 있다고 해서 판단을…… 마지막일지 모를 판단을 흐릿하고 멍청하게 할 수는 없어. 이럴 때일수록 믿어 봐야 하잖아, 자신의 판단을!
쿨럭.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 의심하면 베테랑 헌터가 될 수 없다.”
내게 팀을 물려주고 이름을 바꿔도 좋다고 했던 칼베인 씨의 말이지. 그리고 그의 말은 언제나…… 아니, 이제까지 옳았어.
늦은 판단으로 죽어 간 녀석들을 지켜봤고, 난 살아남았으니까.
한 번의 실수로,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죽는 녀석들을 보면서 난 살아남았으니까.
머뭇거리지 않는 신속한 판단, 일단 결정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한 것.
헌터에게는 꼭 필요한 재능이지……만 동시에 이게 넘쳐흐르는 놈들은 의외로 빨리 죽게 만드는 독이기도 해. 생각 없이 반응했다가 딱 한 번 삐끗해서 죽는 경우가 바로 재빨리 내린 판단이 실패했을 때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 독은 내게 통하지 않았어.
나는 언제나 옳은 판단을 했고, 그 때문에 살아남았어!
저 플래그 포레스트, 역병의 수해를 돌파한 다음에도 살아남았잖아!
그래, 그렇게 살아남았는데…… 쿨럭!
대체 왜 지금 이렇게 죽어 가고 있는 걸까?
달루스, 너는 왜 지금 이렇게 죽어 가면서…… 동료의 시체를 옆에 놓은 채로 마지막 기억을…… 이 유언을 마법의 태그(Tag) 안에 심어 넣고 있는 거지?
무엇을 잘못 판단한 거냐?
그저 운이 나빴던 거냐?
아니면…… 쿨럭.
죽음이 더 짙게 느껴진다.
헛소리로 이 기억을 더 어지럽게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이 달루스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저 역병의 수해를 돌파했다는 진실만큼은 반드시 세상에 남겨 둬야 하니까!
쿨럭…… 그래, 기억을…… 증거가 되는 기억을 남기는 거야.
정신 차려라, 달루스!
심장을 찔려도 미쳐 날뛰는 빌어먹을 비비나비 떼 속에서도 살아남았잖나!
사람을 그냥 삼키려 했던 뱀, 머리가 둘 달렸던 그 미친 뱀의 아가리도 찢어발기고 살아남았잖아!
온갖 두드러기가 바위처럼 돋아난 채로 미쳐 날뛰는 곰의 발톱도 피해서 살아남았어! 스치기만 해도 바위가 석둑석둑 갈라지는 괴물 발톱이었다고! 거기서도 살아남았는데…….
젠장!
쿨럭!
위장이 뭉클하고 팔다리가 욱신거리며 조여든다.
뭐가 조이는 건지 모르겠다.
뭐가 내 숨통을 이렇게 천천히, 느리게 조이면서 날 죽이려는지 모르겠다.
팔다리가 꽉 묶인 것처럼 멈춰진 채이고, 숨을 쉬려 할 때마다 허덕거리며 기침을 해야 겨우 숨통이 살짝 트인다.
정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그러니까 달루스, 침착해라.
하아…… 하나, 둘…… 세에엣!
앞뒤 없이 생각하지 마라, 침착하게 하나씩 기억해 내라.
하나, 둘…….
그래, 처음부터 되새기자.
모든 상황의 처음…… 내가 헌터가 되었을 무렵? 아니, 그건 너무 오래된 일이고 그때부터 더듬으면 지금 바로 내 곁에 있는 죽음이 비웃겠지. 그런 짓은 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이 역병의 수해를 돌파하는 일이 내게 지금 죽음을 마주하게 했으니, 거기서부터 생각하고…… 기억해 두자.
“돌파? 그러니까, 플레이그 포레스트에서 망가지지 않을 마법 물품을 원한다는 겁니까? 거길 뚫고 나갈 계획이라고요? 진짜? 아, 뭐…… 큰소리치는 사람은 많이 봤습니다만, 왜 그래야 하는데요? 거기서 넘어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운 일 많잖아요? 정벌? 그 숲을? 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맞아요, 비싼 물품 사겠다는 분께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군요. 음, 그러니까 말씀하신 조건을 갖춘 물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군요. 예? 아, 간단한 분류예요. 비싼 거랑 싼 거랑. 참 쉽게 분류해 놨죠?
룬디아크의 공방에서 물품을 구입할 때부터가 갈림길이었어.
그래, 그때 세상의 소문을 정보라고 열심히 주워들은 다음에 우리는 룬디아크 공방을 찾아갔어. 그 소문 때문에 내 판단이 뒤틀리고, 잘못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지.
역병의 수해를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구한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어째서 공방의 판매 담당이라는, 자칭 물품 구매를 도와주는 상담을 맡고 있다는 그놈이 한 말이 진짜 정보였어.
하지만 세상에는 그 녀석에게 사기당했다고, 그 녀석한테 주머니 털렸다는 놈들의 투덜거림이 가득했지.
그래서 나는…… 우리는 녀석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거야.
아니, 귀는 기울였지만 절반 정도만 신뢰했다고 해야 하나?
녀석이 룬디아크 공방의 제작품에 대해서, 그 물품의 성능과 효과, 사용법에 대해 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고 하면 대충 맞을까? 가격이라든가, 그 뒤에 붙어 있는 소문이 좋지 않은 ‘빌려 쓰고 돌려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코웃음을 쳤으니까…… 아마 맞을 거야.
룬디아크 공방이 자신들이 만든 물품을 빌려주고 돈을 받고, 사용한 후에 물품을 다시 돌려받는다는 얘기에 대해서 우린 깊이 파고들지 않았어.
그 얘기의 이면…….
연금술사들이 귀에 지겹게 꽂아 넣는 소리, ‘사물의 이면에 주의하라.’라는 말을 무시할 때처럼 룬디아크 공방의 그 해괴한 ‘대여해 주는 마도구’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지.
그게 우리의 첫 번째…… 아니, 나 달루스가 내린 잘못된 첫 번째 판단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대여받은 마도구를 사용했던 놈들은 대부분 투덜거릴 때까지 살아 있었잖아. 룬디아크의 마도구를 가져가서 죽은 놈들은 불평을 토해낼 만큼 오래 살지 못했던 거고. 빌려 간 마도구를 돌려줄 때까지 살아남은 놈들이 투덜거린 거였지.
그 의미를…… 난 이제야 느낄 수 있어.
사 가는 사람을 위해 상담을 맡았다는 그 녀석이 흘린 말들 중에 분명히 경고가 있었다는 걸, 이제 난 분명히 알 수 있어.
죽음이 곁에서 내 숨을 세고 있는 지금……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분명히 알 수 있어.
그때 난 그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는 걸.
하지만 그때 내가 관심을 가졌던 건…… 빌려 쓰는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마법 물품이 무엇인가뿐이었지.
하아…… 쿨럭.
젠장!
한심했고, 생각이 없었어.
빌려주는 마도구란 결국 빌려 간 놈이 살아서 돌려주게 된다는 뜻이었는데, 죽는 일이 생길 경우라도 룬디아크 공방이 직접 나서서 그 마도구를 회수하며 최소한의 뒤처리…… 마도구를 빌린 녀석을 끝장낸 놈을 끝장낸다든가 하는 뒷일을 알아서 해 준다는 뜻이었는데!
나는…… 그런 일은 필요 없다고 여겼지.
이 달루스가 자신의 일을 남에게 맡길 리가 없다고, 설혹 그것이 죽은 다음의 복수라 해도.
나는 달루스고, 우리는 팀이니까!
우리 일을 유명하다고 해서 공방에 떠넘길 수는 없었어.
다시 더듬어 보면, 룬디아크 공방이 자신들의 마도구를 회수해 간 얘기 중에서 몬스터를 끝장낸 경우는 없었지. 그게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정말 신경 써서 얘기를 검토하고 이면을 더듬지 않아서 눈치채지 못한 거야.
흐흣, 어째서 그 회수하는 얘기의 대부분이 들고튄 놈들의 멍청한 일인지에 대해서 웃느라 바빴지.
그 빌려주는 마도구에 특별한 마법의 각인이 있어서 룬디아크 공방이 추적할 수 있다는 정도는 쉽게 생각했는데…… 정작 빌려 쓰고 약속대로 돌려준 놈들이 거의 대부분 죽었다는 얘기는 헛소문이고 살아서 투덜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 아니, 아예 그런 생각은 하질 않았네.
그때 우리…… 아니, 내 얘기군.
내가 생각한 건 마도구의 가격뿐이었어.
빌릴 가격에 살 수 있는 마도구.
그걸로 역병의 수해를 돌파하고, 그 업적을 이룬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 빌려 쓴다는 생각은 아예 치워 버렸지.
그래서 나…… 이 달루스가 지금 여기서 죽는 건가?
하하핫, 쿨럭.
죽음이 내 생각을 휘젓고, 나를 더 멍청하게 만들려나?
아니면 내가 원래 멍청했던 것뿐인가?
마법의 태그 속에 어째서 멍청한 소리만 잔뜩 집어넣고 있지?
정신 차리자.
침착해라, 달루스.
이 마법의 태그는 내 기억을 담고 잠길 거다.
그 잠금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내 동생, 남은 달루스 팀을 이끄는 내 동생의 목에 걸린 태그.
만약의 경우에 남겨진 팀을 이끌고 달루스의 이름을 지켜나갈 내 동생에게…… 내 목에 걸린 네임 태그가 전해질 수 있을까?
아하하…….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직접 여기 와서 가져가 줘야 하는데?
어쩌면…… 이곳에서 나와…… 수해 돌파의 위업을 함께 세운 동료의 시체가 몇십 년…… 아니, 몇백 년을 썩어 가며 뒹굴기만 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 기억은 결국…… 영원히 파묻힐지도.
아하하!
정신 차려라, 달루스!
마지막 순간의 기억을 자포자기한 채 끝낼 셈이냐?
그런 거, 나답지 않잖아!
그러니까 기억해 내라.
저 역병의 수해에서 내가 만난 것들, 우리가 거쳐 온 것들에 대해서!
언젠가는 누군가가 우리의 유해(遺骸)를 찾아내서 세상에 가져가 알려 준다고 믿고서 기억을 담아 둬야 한다!
후아핫! 하나, 둘…….
가장 먼저 역병의 수해에서 만난 몬스터는 쟈칼릭.
재칼릭이라고 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쟈칼릭이 맞을 거다.
쟈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웨어울프처럼 사람 흉내를 내듯이 두 발로 뛰고 앞발이 거의 손이 되어 있는 몬스터다. 녀석들이 사람의 모습이 되는 일은 없다. 그저 네발짐승이 두발짐승이 된 것처럼 생겨 먹었을 뿐이다.
그리고 실제 쟈칼과 머리통, 몸의 얼룩진 털 따위 외형만 닮았을 뿐이지 절대로 짐승인 쟈칼이 아니다.
녀석들은 히엔나처럼 오염된 이빨을 지녔고, 히엔나처럼 짐승―마수―에 가까운 몬스터이다. 경험이 있는 몬스터 헌터라면, 넉넉한 체력과 칼솜씨만 충분하다면 대처하기 어렵지도 않다.
목을 따거나 심장을 찌르면 죽고, 몸에 상처가 나면 머뭇거리다 많은 피를 흘려서 죽기도 하는, 몬스터치고는 꽤나 정상적인 놈이니까.
그래, 그게 원래 쟈칼릭이다.
우리가 알던 쟈칼릭, 바로 그 하급 몬스터 말이다.
하지만 이 수해 안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 넓디넓은 숲에 사는 쟈칼릭이 숲 밖의 쟈칼릭과 다른 점은 그 외모에서도 뚜렷했다. 털이 빠진 혹과 두드러기가 잔뜩 돋아 있었고, 가끔 눈두덩이가 완전히 둥근 곰팡이 덩어리처럼 뭉친 놈도 보였는데 그 꼴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생김새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놈들의 행태는 쟈칼릭 그대로였고, 지금 되새겨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쟈칼릭이다.
단지 이 역병의 수해가 쟈칼릭을 외모만이 아니라 능력, 몬스터로서 지닌 괴상함마저 뒤틀었을 뿐.
그 두드러기…… 듬성한 털을 밀어내고 돋아난 혹이 울퉁불퉁하니 잔뜩 맺힌 자리에는 칼이 쉽게 박히지 않았고, 억지로 심장을 관통시킨 그 일격에도 놈들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
목을 확실히 잘라 떨궈 버려도 놈들은, 이 수해의 쟈칼릭은 며칠을 더 움직였다.
머리통을 찾아 그 목 위에 올려놓으면 정말 다시 붙을지도 모른다.
그런 빌어먹을 경우를 막기 위해서 재빨리 우리 마법사가 놈들에게 불을 붙여 버린 탓에 정확한 결과는 모른다.
불은 놈들을 겁줬고, 꽤 쉽게 쫓아 버렸다.
물론 놈들은 다시 왔다.
수해를 지나는 동안, 처음에 만났던 놈이 끝까지 주변을 맴도는 꼴도 봤다.
그리고 그렇게 이상해진 비비나비 역시 그런 쟈칼릭만큼이나 많았다.
……그래, 너무 많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