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53
몬스터×몬스터: 외전 편 (4)
룬디아크 공방에서 뭘 사려는 놈이 룬디아크 초대(初代)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 또한 앞뒤가 어긋난 짓거리였다.
룬디아크 공방을 세운 초대 룬디아크, 그 이름을 물려받은 2대, 3대의 룬디아크라면 몰라도 초대 룬디아크를 의심하는 것은 공방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짓은 그들 물건을 아예 사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뭐라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새끼는 우리가 그러기를 기대한 듯싶다.
그 핑계로 우리에게 물건을 팔지 않으려고 한 것일까?
그래서 우리가 여기 도전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일까?
그렇게 착한 새끼일 리가!
쿨럭!
역시…… 이상한 공방이었다.
좋은 놈들인지 나쁜 놈들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으니…….
뭔 놈의 잔소리가 그리 많았는지!
나름대로 귀중한 정보가 숨어 있을 거라 여기고 듣던 우리 마법사까지 귀 아프다고 버럭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뭔가 알고 있는 놈들이기는 했겠지.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 효과가 있는 마도구를…….
쿨럭!
정신이 혼미해서인가, 생각이 자꾸 옆으로 샌다.
아니면 기억해야 할 것을 외면하고 싶어서 스스로 이러고 있는 걸까?
하, 하, 하.
아무래도 난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태그에 기록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저 역병의 수해를 지나왔는지, 무엇을 잃어버려야 했는지…….
그래,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속에 담긴 고통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분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할 수밖에 없으니까.
쿨럭.
……어디까지 기록되었을까?
잠시 정신이 사라졌나? 내가 기절했던가?
숨통은 여전히 조여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다니…… 한심하군.
아무래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는 모양이다.
이렇게 정신이 들락날락하다가 죽어 버리는 꼴을 자주 봤잖아, 달루스.
그러니까 집중해라.
태그에 대해서…….
마법사는 태그의 기묘한 작용에 대해 며칠을 신경 썼다.
어째서 죽은 녀석들의 태그가 계속 산 사람의 것처럼 신호를 보내오는가, 어째서 길 잃은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외치듯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가.
룬디아크 공방의 마도구라도 잘못 만들어졌을 수 있고 어긋난 채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은 했지만, 마법사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 더 신경을 쓴 셈이다. 우리에게 한 말은 그저 우리를 다독이고 위험한 곳으로 가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을 뿐이다.
팀 리더인 나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며칠을 끙끙거리며 혼자 고민했던 마법사지만, 결국은 내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찾아왔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일이었지?
기억이 헷갈린다.
역병을 뒤집어쓴 몬스터 떼가 와글거릴 때였나?
그나마 한적한 곳에서 하루를 쉴 수 있게 되었을 때였나?
우리 주변을 맴도는 태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한참 뒤의 일인 것 같긴 한데…….
쿨럭.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충이라도 기억해 보자.
내 기억이 온전하지 않더라도 다른 녀석들의 기억을 통해 우리의 태그가 한자리에 모인 다음에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테니까,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 정확하게 되새기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된다.
그러니까 음…….
어쨌든 마법사는 내게만 몰래 이야기했다, 주변을 맴도는 태그가 어쩌면 정상적으로 작용하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소리칠 뻔했다.
크게 소리쳤으면 정말 큰 실수였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너무 기가 막혀서 내 목소리는 낮게 나온 모양이었다. 마법사는 그걸 내가 아주 침착하고 신중하게 듣는다고 여겼고.
뭐, 늘 있는 일이다. 내게는 너무 어이없으면 목소리가 가라앉고 조금 낯짝이 단단해지는 버릇이 있다. 다들 그걸 냉철해진다고 말하는 모양이지만…… 굳이 내가 그 생각을 고쳐 줄 필요는 없잖아?
아, 내 버릇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지.
그러니까 음…… 그래, 마법사가 한 말은 대강 이랬다.
우리가 죽음을 확인한 동료들, 역병의 수해에 발을 들이자마자 당한 공격에 죽은 줄 알았던 멤버들이 이 숲의 힘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이야기.
죽어야 했지만, 죽지 못한 채로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뭔가 대단히 기괴한 이야기지만, 원래 몬스터가 엮인 일에 이 정도 기괴함은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잖나?
그래서 난 데드워커일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었다.
마법사는 아니라고 했다.
난 왜 아니냐고 좀 짜증 내면서 따졌……던가?
아니, 마법사가 룬디아크 공방에서 들었던 얘기를 꺼내서 좀 울컥했던가?
아무튼 마법사가 한 얘기의 요점은 간단했다.
룬디아크 공방의 마도구는 착용자가 데드워커가 될 경우, 죽음으로 여기고 작용을 중지한다는 것.
데드워커인 채로 마도구의 힘을 쓱쓱 꺼내 사용하면 그것도 굉장히 문제가 될 테니까 애초에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놨다는 이야기였다.
뭐, 그런 경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기는 하다.
예전에 엄청나게 좋은 검과 방패, 갑옷을 걸치고 설쳐 대던 기사 나부랭이가 어설프게 뒈졌다가 벌떡 일어난 탓에 그놈 잡으려고 여러 사람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될 놈이랑 엮이지 않게 팀을 운영하는 것도 팀 리더의 재주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팀 멤버가 데드워커가 된다?
그건 정말 내 상상에서 벗어난 일이고, 한편으로는 있을 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린 데드워커가 되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데드워커를 발생시키는 대부분의 상황이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몬스터 헌터 짓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숲…… 괴상한 역병이 넘쳐 나는 이곳에서는 어떨까?
어떤 장담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마법사는 말했다.
절대로 데드워커가 아니라고, 우리의 대비와 무관하게 룬디아크 공방의 네임 태그는 데드워커의 목에 걸린 채로 살아 있다는 신호 따위는 흘리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지 물어본다 해도 그 설명을 알아들을 자신이 없었다.
팀 리더로서 우리 팀의 마법사를 놓고 말다툼을 하는 것도 바보짓이고.
그래서 난 보다 실질적인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살아 있다면, 만약 이 숲의 이상한 힘으로 죽을 상황인데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라면, 이 망할 놈들이 왜 바로 돌아오지 않고 주변을 맴돌고만 있단 말인가!
이런 내 물음에 대해서 마법사가 보인 태도는 내게 충격을 줬다.
그렇게 진지하게, 그렇게 서글픈 눈으로 말하는 마법사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 말투가, 그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경우, 여전히 자신을 팀 멤버라고 여기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할 수가 없는 경우! 달루스, 만약 자네가 정신은 온전한데 몸이 완전히 괴물에 파먹힌 상태라면 어쩌겠나? 자네 몸을 파먹은 괴물이 언제 자네 주변 사람을 뜯어 먹을지 모르는 상태라면? 어쨌든 자네는 자네 의지대로 움직이지만 자네 주변에는 아주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면?”
그때 난 무슨 몬스터 로드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부적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삼킨 몬스터를 억누르지 못해서 도시 주변을 맴도는 몬스터 로드.
마법사의 얘기는 딱 그놈들에게 알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팀에는 몬스터 로드가 없다.
한데 그런 상태라고?
그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그때 나는…… 되돌아보지 않고 전진하기로 했다.
돌아올 수 없게 된 놈들을 배려하다가 함께 있는 놈들에게 해로운 일이 생기도록 둘 수는 없었으니까.
팀 리더로서, 나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해코지할 일은 없는 거죠?”
너무 차가웠을까?
너무 지독했을까?
마법사는 내 말에 정말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문득 궁금하다. 마법사는 내게 무슨 대답을 기대했을까?
어찌 된 상황이든 살아 있는 동료니까 데려와야 한다고 말하기를 원했을까?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더라도 연락할 방법을 찾아서, 따로 움직이더라도 우리가 여기 들어온 목적을 완수하는 데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야 하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다.
한 가지 걱정만 했다.
죽을 수도 없는 꼴이 되어 정신만 사람인 채라니…… 그건 대체 얼마나 더러운 기분일까?
남은 팀 멤버들에게 그런 일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법사에게도 입을 일단 다물자고 했다.
혼란은 우리를 위험하게 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전진했다.
나는 이 역병의 수해를 돌파하는 것만을 생각했다.
돌파하고 나면 어떤 답이든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쿨럭…….
계속 소란스럽고 위험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쉬는 날이 생겼다.
사나흘에 한 번씩, 주변이 고요해지는 날이라고 할까?
그게 이 숲의 어떤 특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숲 깊은 곳으로 들어설수록 숲이 잠드는 시간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마법사만 빼고 다들 그렇게 멋대로 이야기하고 추측했다.
하지만 나와 마법사는 따로 이야기해야 했다.
우리 주변이 조용해질 때, 주변을 맴돌던 태그가 어느 정도 간격을 둔 채로 멀어지면서 그쪽 주변이 시끄러워진다는 사실을 마법사가 알아냈기 때문이다.
과연 이대로 계속 숨겨야 할 이야기인가?
나는 고민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지는 못했다.
그럭저럭 더 이상 희생이 없을 거라고 여길 무렵이었는데 다시 동료를 잃었고, 그로 인한 상황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으니까.
쿨럭.
그건…… 그동안 쌓였던 모든 감정을 다 터뜨린 사건이었다.
그 시작은 간단했다.
숲의 특성에 따라 고요해졌다고 생각한 날, 땅이 뒤집어지면서 뭔지 모를 덩어리가 튀어나와 우리 중 한 명을 낚아채 간 것이다.
그리고 그 덩어리에서 우리는 사라져 간 동료의 태그를 확인했다.
내게는 마치 죽은 놈이 되돌아와서 산 놈을 데려간다는 유령 이야기랑 똑같은 상황이었다.
마법사도 비슷하게 느꼈을 것이다.
우리 둘에게는 뭔가 배신감을 주는 사건이었지만, 다른 동료들에게는 잃어버린 동료의 증표를 어째서 괴물이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혹을 심어 준 일이었다.
그 의혹은 다시 마법사가 태그를 감지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불러왔고, 마법사는 채여 간 녀석의 태그가 채 간 놈의 태그와 함께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다들 둘이 함께 있는 거라고 납득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상하게 움직이던 태그가 모두 함께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죽었다고 여긴 놈들이 모여서, 살아 있는 우리 중 한 명을 납치해 간 셈이었다.
아주 이상했다.
어째서, 거의 두 달이 넘는 동안 주변을 맴돌기만 하던 그들이 어째서 갑자기 납치를 시작한 건가?
나는 결단을 내렸다.
마법사에게 그동안 감추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고, 모두의 의견을 듣기로.
내가 왜 그 이야기를 감춰 왔는가도 털어놓기로.
그리고……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우리에게 찾아온, 역병에 대항해야 하는 상황…….
우린 덫에 걸린 꼴이었다.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