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5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51)
Chapter 71. 라비엔을 향해
요새 도시 라비엔으로부터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느긋하게 혹은 빠르게 사나흘을 걸어가면 도달하는 숲…… 이 숲은 종종 춤추는 산맥의 남서쪽에 있다는 대수해(大樹海)와 비교되어 마찬가지로 ‘수해(樹海)’라고 불린다.
하지만 산맥 남서쪽의 대수해처럼 어디서 보든 지평선이 보일 지경이라 할 정도로 광대(廣大)한 숲은 아니었다.
산맥의 깊은 곳을 향해 굽이치면서 번져 나가고, 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 짙고 깊은 숲이었기 때문에 ‘수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라비엔의 얼간이들이 대수해를 본 적이 없어서 과장해서 붙인 이름이라고까지 한다.
하지만 라비엔 남서쪽의 작을지도 모르는 ‘수해’의 위험함은, 너무 넓기 때문에 위험할 수밖에 없잖냐는 대수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 부분까지 감안해서, 이 작은 ‘수해’는 ‘역병’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어 있기도 했으니…….
‘역병의 수해’가 시작되는 곳은 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김없이 우거진 덤불과 울창한 나무가 장벽처럼 늘어서 있었다. 마치 넓은 황갈색의 흙이 자욱한 들판은 여기서 끝난다고 선언이라도 하는 듯한 숲의 색채는 짙은 녹음이 검은 그림자가 뒤엉킨 듯했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녹색이라고, 어떤 이들은 시커먼 그림자가 나무 흉내를 내는 듯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보든 간에 황갈색 토지를 넘어서, ‘역병의 수해’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이 세상을 뜬다는 의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취급을 받았다. 한번 들어가면, 멀쩡히 살아나올 수 없는 숲이라는 점에는 다들 의견이 일치하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병의 수해’에서 뭔가 나올 경우라면, 튀어나온 뭔가는 결코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고…… 틀림없는 몬스터라고 한결같이 단정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요새 도시 라비엔의 상식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식에 도전하는 멍청이는 아주 가끔 나올 뿐이다.
그런 멍청이들의 뒷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그 멍청이들이랑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때문에 라비엔의 누구도 이 ‘역병의 수해’ 근처를 맴돌면서 지켜보는 일 따위는, 아주 특별한 때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의 일 또한 목격자가 없는데…….
파직, 사르륵!
‘역병의 수해’ 한구석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허공을 향해 구멍처럼 붉은 자취가 피어났다.
퍼억!
재가 튀어올랐고, 불티가 함께 휘날렸다.
그런 자취를 남기는 채로 사람의 형상이…… 자신의 체격보다 더 커 보이는 길쭉하고 굵은 보자기로 감싼 뭔가를 등에 짊어진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그 몸에서는 가벼운 불꽃이 넘실거리며, 조금 전에 불구덩이에 있다가 튀어나온 것이 아닌가 싶은 분위기였다.
누군가 봤다면 분명히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달아나!’라고 외쳤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외침이 튀어나와 구르는 자의 입에서 크게 터져 나온다.
“잠깐! 잠깐만 누나! 오해야, 오해라고!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누가 들어도 ‘역병의 수해’에서 튀어나온 사람 입에서 나왔을 듯한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꾸가 숲 안쪽에서, 불꽃의 날개가 펄럭이는 듯한 모습과 함께 튀어나왔다.
“닥쳐! 변명하지 마! 오늘은 아주 널 내 손으로 죽여주겠어! 애냐? 애냐고! 뭐 신기하다고 건드리지 말라는 걸, 자꾸 건드려! 보면 몰라? 벌통이잖아, 벌통! 그냥 벌통도 아니고, 뼈를 삭혀 먹는 벌떼가 와글거리는 벌통이었잖아! 죽어! 네 헛짓거리에 우리가 뭔 일 나기 전에, 그냥 네가 죽는 게 낫다!”
화르르륵!
퍼억, 퍽, 퍽!
“아니라고! 내가 일부러 그러지 않았…… 아, 그만 때려! 아프잖아!”
“죽으라니까, 겨우 아픈 걸로 끝이냐! 죽으라고! 좀 죽어!”
퍼어억!
요란한 소리는 요란한 광경과 잘 어울렸다.
휘날리는 망토는 불꽃이 너울거리며 들러붙은 채였고, 그 움직임은 마치 진짜 새의 날개처럼 역동적이었다. 그 불꽃이 휘감긴 시알라의 주먹이 먼저 튀어나온 멜란드를 거침없이 팬다.
“어? 숲이 끝났어?”
느긋한 소리와 함께, 타오르는 덤불과 나무를 밀어 무너뜨리는 모습으로 제란드가 걸어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곧 그 곁을 향해 거칠게 방패를 내세워 나무를 밀어붙이는 듯한 동작으로…… 온몸을 감싼 갑옷과 면갑(面甲)까지 내린 투구로 중무장한 모습을 한 페란드도 걸어 나왔다.
얼핏 제란드의 중얼거림을 들은 듯, 페란드가 뒤늦게 말소리를 내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응? 끝났다고? 어? 숲이 끝났네?”
제란드는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조금 큰 목소리로 외친다.
“누나, 그만하고…….”
“뭐? 너도 한패냐? 너도 이 멍청이랑 한통속이냐!”
“주변을 좀 보라고!”
시알라의 과격한 대꾸에 제란드는 한층 더 목소리를 더 높여서 외쳤다. 그리고 바로 제란드의 입가에서는 깊고 짙은 한숨이 푸욱 새 나온다.
페란드가 이런 제란드를 흘깃하며, 그 옆을 스쳐 가며 보태 말한다.
“누나, 이번에는 멜란드가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어. 그냥 발이 미끄러져서…….”
“왜 미끄러져? 거기서 왜 미끄러지냐고! 응? 미쳤으니까 미끄러진 거지? 그렇지? 그래, 이런 미친놈이랑 숲을 헤매고 있으…….”
시알라는 다시 더 세게 주먹을 내리찧기 위해 치켜올리면서 치솟는 울화를 거침없이 토해내는데, 멜란드가 그 아래에 밟힌 채로 목청껏 외치며 그 말을 끊는다.
“아냐! 숲이 아냐! 여긴 더 이상 숲이 아냐! 흙! 이 흙을 좀 보라고! 숲을 넘었어! 넘었다니까! 누나, 정신 차려!”
“누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퍼억!
시알라의 한 방은 결국 멜란드의 이마빡을 내리찍었고, 필사적으로 옆에서 한 움큼의 흙을 쥐어 올렸던 멜란드의 손이 풀리며 흙먼지가 풀풀 휘날렸다. 더불어 멜란드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땅에 그대로 찧은 채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결국 멜란드를 완전히 기절시킨 꼴로 만든 다음에야 시알라는 후욱거리는 거친 숨결과 함께 몸을 똑바로 세우면서 주변을 둘러봤고…….
“뭐야? 숲이 끝났네? 어? 그럼, 이 망할 벌떼는 쫓아오지 않는 거야?”
겨우 알아차렸다는 듯이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제란드가 슬쩍 뒤돌아보면서 대꾸한다.
“그런 것 같은데?”
누나와 동생의 말이 오가는 소리를 들으며 페란드는 돌아볼 일 따위는 없다는 듯, 앞을 보면서 깊은 숨결을 토해내듯이 말한다.
“건넜어. 진짜로…… 걸어서…… 투란, 우리가 정말로…… 투란?”
페란드는 자신이 내던 소리에 흠칫하면서 멜란드를 보고, 시알라를 봤다. 그 주변을 재빨리 훑어보는 눈빛도 빠르게 뿌렸지만, 페란드는 결국 투란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페란드를 통해 겨우 알아차렸다는 듯, 제란드가 흠칫하면서 주변을 조금 더 넓게 둘러보며 말한다.
“먼저 나와 있지 않았어? 잠깐, 그럼 대체 어디로?”
순간, 거대한 울림이 숲 주변을 울리며 퍼졌다.
쿠오오오!
네 남매가 뭐라 하든 다 덮을 듯한 큰 울림이었고, 짙푸르고 검은 나무와 덤불 한복판을 가르듯이 숲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뭉클거렸고, 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그 안에 휘말린 나무, 덤불을 순식간에 불티가 휘날리는 재로 바꿔버렸다.
쿠오오오오옹!
뭉클거리는, 이제는 완연히 불구름이라고 부르는 것이 딱 어울리는 형상의 꼭대기가 한 번 더 부풀면서 붉은빛이 짙고 여린 차별이 무늬를 드러냈다. 사람의 눈, 코, 귀 입을 흉내 낸 듯한 무늬는…… 마치 하늘을 향해 크게 입을 벌린 얼굴 같았고 포효와 같은 거친 소리를 웅장하게 토해내면서 사방을 둘러보는 듯했다.
쿠오오! 쿠웡!
“파이로, 이쪽이야!”
제란드가 입에 손을 대면서 먼 곳을 향해 외치듯이 꿈틀거리면서 서서히 사람의 상반신…… 뭉클거리면서 서서히 부푼 가슴근육을, 팔근육을 만들면서 우람한 형상을 꾸며대는 불구름을 향해 외쳤다.
쿠어!
불타는 뭉게구름이 얼굴 모양을 하고 돌아보듯, 치솟은 불구름의 머리인 듯한 부분이 빙글 돌면서 거친 울림이 퍼졌다.
그리고 불타는 뭉게구름의 거인이 두 팔을 높이 쳐들었다.
휘르르르, 퍼어엉!
거칠고 사나운 불길이 어떤 소리를 낼 수 있는가를 과시하면서 제란드가 있는 쪽을 향해서 거인의 두 팔이 내리꽂혔다.
불기둥 둘이 떨어진 듯했고, 나무와 덤불이 재가 되어 사라지면서 불구름 거인이 치솟은 곳과 제란드 쪽으로 휘날리는 재와 불티로 통로가 열린 듯했다. 동시에 불길이 거세게 뿜어져 제란드를 비롯해 페란드, 시알라와 멜란드까지 휘감듯이 뻗어나갔다.
불길에 휩싸인 흙이 검게 그을리고, 허공에 불꽃이 너울거렸다.
그 불길 속에서 제란드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불구름으로 이뤄진 거인의 아래쪽을 바라보는데…… 이런 제란드의 눈가에 붉은빛의 핏줄가닥이 돋아나 불길 속으로 불티를 휘날리는 듯한 모양을 드러내고 있었다.
페란드는 등을 덮쳐오는 거센 불길에 느릿하게 되돌아섰고, 그 얼굴에서 면갑이 젖혀지면서 머리를 타고 넘어가며 목 뒤로 내려앉았다. 움직이는 면갑에서 시작된 키릭거리는 쇳소리는 곧 페란드의 온몸으로 번져가는 듯했고, 단단하게 조여 있는 듯했던 갑옷 곳곳에서 꽉 잠긴 나사가 풀려가는 쇳소리로 변해갔다. 얼굴을 드러낸 페란드의 눈가에는 제란드와 비슷한 붉은빛의 핏줄가닥이 보였고, 눈알 속에서도 불티가 휘날리는 듯한 형상이 슬그머니 드러난 채였다.
시알라가 망토를 당겨 얌전히 몸에 두르면서 소리친다.
“투란! 괜찮아?”
불구름의 거인 아래쪽에서 바로 대답이 나온다.
“미끄러졌어! 망할! 이 벌떼 녀석들은 대체 왜 벌집 주변에다가 구덩이까지 따로 파놓냐고! 아오, 익숙해지질 않는다고!”
투란의 목소리에 시알라는 입술을 살짝 뒤틀었고, 페란드와 제란드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얻어맞고 완전히 드러누운 꼴인 멜란드가 하던 변명이 바로 지금 투란이 하는 말 아니던가!
투덜거리면서 투란은 불구름의 거인이 뚫어놓은…… 재와 불티가 휘날리면서 여전히 불길이 내려앉은 숲의 구멍을 건너서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쿠워!
투란이 걸어 나오는 사이, 불구름의 거인은 고개를 이리저리 숙였고 입으로 보이는 무늬가 한껏 열렸다 닫혔다 하는 모습과 함께 주변을 덥석덥석 깨무는 듯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불구름의 무늬에 깨물린 숲의 귀퉁이는 순식간에 재와 불티가 되어 휘날리며, 이 광경이 장난기 어린 동작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불의 위력이 고스란히 발휘되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 광경 속에서 투란의 투덜거림이 한층 더 높이, 다른 방향을 찾았다는 듯이 뿜어져 나온다.
“그만 처먹어, 이 불돼지야! 주변 둘러보라고 했더니 왜 자꾸 나무를 물어뜯어! 그러지 말라니까! 이 못된 나무들은 불타면서 늘어난다고 했잖아! 씨 뿌리는 거 그만 도우라고!”
쿼어어!
조금 실망한 듯한 느낌이 맴도는 소리가 불구름의 거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투란은 ‘뭔 배고픈 흉내야! 배고픔이 뭔지도 모르는 게!’라고 투덜거렸고, 그러는 사이에 불구름은 빠르게 오그라들었다. 투란이 제란드와 몇 걸음 사이로 좁혀들면서 숲을 벗어났을 때, 불구름은 이제 높이 치솟은 그림자나 외투처럼 투란의 몸에 덧씌워진 꼴이 되어 있었다.
남매들을 덮치는 듯했던 불길 또한 오그라들면서 투란의 발아래로 뭉쳤고…… 사라져 갔다.
“어? 뭐야?”
투란은 쓰러진 멜란드, 그 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단정히 선 시알라, 갑옷과 투구를 느슨하게 한 페란드, 투란이 지나온 자리를 관찰하는 듯한 제란드를 쭈욱 둘러보다가 눈을 껌벅이면서 놀란 소리를 냈다.
그야말로 조금 전의 투덜거림을 싹 잊은 듯한 목소리로 투란이 말한다.
“숲이 아니네?”
제란드가 바로 대꾸한다.
“맞아, 숲이 끝났어. 어, 그런데 투란…… 벌떼가 완전히 재가 되지 않은 모양인데? 몰려나올 것 같잖아?”
“응? 벌통 무더기랑 구덩이 여러 개 다 파이로 녀석한테 불 지르게 했는데! 아, 이 불돼지 녀석! 한눈팔다가 빼놨나?”
투란이 돌아보며 다시 자신의 몸에 얹어진 불의 형상을 향해 투덜거렸다.
하지만 제란드가 눈을 가늘게 하며 투란의 어깨 너머를 보면서 말한다.
“아니, 꽤 깊은 땅속에서 바로 나오는 모양이야. 그리고 딴 데서 따온 벌통도 있는 것 같네.”
“따온 벌통?”
투란은 의아해서 제란드의 눈길을 좇았다.
“이건 좀 놀랄 일이네. 저 쟈칼릭 녀석들이 벌통 따서 무기로 휘두를 줄도 아네? 정말 끝까지 생각하지 못한 짓을 하는군.”
페란드가 혀를 차며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이 걸어 나온 통로를 울리듯, 개 짖는 소리와 닮았지만 조금 다르게 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우웡! 웡! 웡! 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