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5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55)
그림 뱃.
땅에 내려서면 구부정한 모습으로 무릎과 허리를 굽히지만, 그럼에도 거의 170 정도 되는 키를 드러낸다. 무릎과 허리를 완전히 펴면 210은 거뜬한 키가 되고, 두 팔은 박쥐처럼 피막(皮膜)으로 이뤄진 날개였다. 키와 체격을 보자면 그냥 키 큰 사람이 어깨가 넓고 허리가 가늘며 구부정한 꼴로 박쥐 머리를 목 위에 달고 있다고 해야겠지만…… 그 날개가 펼쳐지면 순식간에 좌우로 폭이 5, 6미터는 거뜬히 넘어선다. 쉽게 생각하자면 그야말로 사람 체격만 한 박쥐가 사람도 거침없이 잡아먹는 형태를 갖춘 몬스터였다. 그러니까 사람을 상대하는 무장을 갖췄다면 어떻게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림 뱃은 들리지 않는 괴성(怪聲)을 지르고, 그 괴성에 휩쓸린 사람은 바로 기절하든가 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 괴성에 대항할 방법을 갖추지 못한다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림 뱃 앞에서는 그냥 굴러다니는 고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게다가 그림 뱃은 반드시 무리 지어 다닌다!
‘설명은 제대로 한 것 같은데, 아니 얘들이 그림 뱃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저 녀석, 대체 누구지? 저 녀석을 믿고 시알라랑 애들이 이러는 건가?’
켈슨은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면서, 다시 투란을 흘깃거렸다.
돌벽이 튼튼하네 어쩌네 해놓고서 정작 망루 위로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돌기둥 틈에 자리를 잡지도 않았다.
사방이 탁 트인 널찍한 빈터에 나무와 덤불을 쌓아두고, 그 주변에 돌로 둘러친 다음에 큰 모닥불을 피워버렸다! 눈이 아무리 나쁜 놈이라 해도 이 정도 밝기면 그냥 뭐가 있겠거니 하고 바로 느낄 정도의 모닥불이었다.
화륵, 타다닥.
나무가 불에 꺾이고 불에 휘말리는 광경 속에서 불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쉽지 않았던 켈슨은 그 불빛에 밝혀지는 일행의 모습을 다시 둘러봤다.
‘장비는 분명히 엄청나게 좋아진 것 같기는 한데…… 멜란드야 몬스터 로드니까 좀 허술해도 괜찮다 치고…… 페란드, 저 녀석 어떻게 오토기어를 손에 넣었지? 연금술사랑 그리 친하지 않았을 텐데…….’
문득 켈슨의 귓가에 활줄이 튕기는 소리가 스며왔고, 멜란드와 페란드부터 가만히 지켜보던 켈슨은 눈길을 돌렸다. 제란드가 망루에서 가지고 내려온 활을 손보면서 마침내 새 활줄을 걸어 시험하고 있었다.
‘음…….’
켈슨은 볼을 긁적이면서 망가졌던 자기 활이 다시 생명을 되찾는 듯한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급한 김에 활시위를 험하게 다루다가 화살이 잔뜩 남은 채로 끊어먹었고, 역시 급한 김에 활대를 몽둥이처럼 쓰다가 금이 가서 못 쓰게 되었다. 꽤 좋은 활이었지만, 이제는 죽었기 때문에 망루 안에 대충 처박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제란드가 그걸 꺼내와서 수선해 쓰겠다는 말은 켈슨을 당황하게 했다.
다시 수선해서 쓸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망가진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 켈슨이 잠깐 딴생각하면서 한눈파는 사이에 적당히 고쳐진 모양이잖은가?
‘반지, 마법 반지였나?’
켈슨은 완전히 죽어버린 활대를 되살리려면 마법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란드가 감는 끈으로는 화살 두어 번 시험 삼아 날리기만 해도 활대가 굽으면서 활시위가 늘어져 못쓰게 된다. 하지만 지금 탱탱하게 당겨진 꼴을 보니, 아무래도 마법이었다.
그럭저럭 마법사인 시알라가 고쳐준 낌새는 없었고, 제란드의 왼손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반지…… 몬스터 헌터가 손마디를 보호하기 위해 끼는 거랑은 조금 다른 동그란 반지 모양이 저 반지 속에 도구를 수선하는 마법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니까.
‘비쌀 텐데…… 겨우 삼 년 동안 엄청나게들 변했…… 흣, 나도 변했잖아?’
씁쓸한 기분 속에서 켈슨은 퍼뜩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벌떡 일어섰다.
켈슨의 손이 바로 귓가에 닿았고, 손을 웅크린 채로 귀를 크게 하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호응하듯 제란드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린다.
“날갯짓 소리지요?”
“어. 정말 괜찮겠어?”
켈슨은 제란드를 흘깃하고, 시알라에게 물었다.
이 남매의 일을 결정하는 사람은 결국 맏이인 시알라니까.
하지만 켈슨의 물음에 시알라가 답하기 전에 페란드가 말하고 있었다.
“소리였지? 박쥐가 지형을 아는 방법, 그림 뱃은 기본적으로 박쥐의 성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하니까.”
“맞아, 내 세심하고 예민한 귀를 울리는 꼴을 보니 저것들 날면서 내는 소리로 우리 쪽을 살피고 있어. 누나, 한쪽을 막는 편이 좋겠어.”
제란드가 페란드의 말에 보태고 있었다.
켈슨은 두 형제가 모닥불 한편에 간격을 두고 서는 모습을 보며, 조금 전에 서로 확인하듯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들으며 알 수 있었다. 진짜로 그림 뱃과 전투를 준비한다는 것!
‘젠장, 적당히 쫓아낼 뭔가를 가지고 있어서 큰소리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싸우려고 그랬던 거야!’
켈슨으로서는 자신의 생각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나태했다고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삼 년여 만에 만난 남매의 확 달라진 차림새, 투란이라고 이름을 대면서 대놓고 정체를 모호하게 감추는 듯한 애송이처럼 보이는 녀석의 수상함…… 그래서 뭔가 그림 뱃을 상대할 강력한 수단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다.
몬스터 헌터가 경험이 많아지면 적절한 순간이 오기 전까지 자신의 장비나, 계획을 파티 이외의 사람에게 먼저 말하는 것을 꺼린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켈슨의 선택은 나름대로 당연하기도 했다.
팀을 잃어버린 켈슨의 말보다는 훨씬 기량이 향상된 자신들을 믿는 것이 시알라 남매에게 당연할 테고!
“저기, 아직 망루 안으로 피할 수…….”
켈슨은 몰려오는 그림 뱃 무리가 몇 마리인가를 생각하며 대피해서 은폐해 버티는 것을 권하려 했다. 잠시 자신이 착각한 부분이 있다 해도 지금은 일단 말려야 하지 않는가 싶으니까!
그러나…….
“멜란드, 조금 불 쪽으로 와. 그래, 그 정도. 거기서 대기하고 있어.”
시알라는 젖혀 있던 후드를 당겨 머리를 덮으면서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면서 ‘지시’하고 있었다. 멜란드는 바로 그 소리대로…… 여전히 여유롭게 땅에 털썩 붙이고 있던 엉덩이를 들썩이며 조금 더 모닥불에 가깝게 옮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켈슨은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어야 했다.
몬스터와의 전투를 앞에 두고, ‘지시’를 시작한 이에게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은 금기(禁忌)…… 이 남매를 만났을 무렵에 켈슨 자신이 해준 말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지켜야 할 말이고!
투둑, 콰드드드!
“어?”
땅에서 가볍게 일어나 거칠어지는 음향이 다물었던 켈슨의 입에서 의아함을 토해내게 했다.
시알라가 짚은 땅, 그 아래로 흙이 맴돌면서 공처럼 뭉치고 손 아래에 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 흙의 고리에서 티끌이 일어났고, 주변으로 휘날리듯이 뿜어져 나가는데 스쳐 간 자리의 흙이 새로운 껍질이라도 생긴 듯이 갈리면서 다시 맺히는 광경이 이어졌다.
“어?”
켈슨은 한결 더 놀라고 말았다.
시알라가 흙을 다루는 마법을 쓰다니…… 예전에는 어떻게 해서도 불화살을 날리거나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지금 쓰는 마법은 그 수준을 완전히 넘어선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 흙의 흐름은…….
우르릉, 쿠르륵.
돌이 마찰하는 듯한 기묘한 소리와 함께 멜란드와 투란 뒤편으로 티끌을 휘날리면서 삐죽거리는 흙의 막대…… 끝이 뾰족해서 창처럼 보이는 막대들이 기울어진 채로 치솟아 교차하며 벽을 만들고 있었다.
곧 휘날리던 티끌이 교차한 창대의 틈을 메우듯이 잠겨들 듯이 뭉치며 달라붙었고, 그 두께가 꽤 수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일행의 한쪽을 완전히 막아내는 반구형의 벽이 완성되었다.
“어, 어!”
켈슨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림 뱃 무리와 싸울 때 가장 좋은 지형은 절벽 아래에 파인 곳이었다.
뒤편에 절벽을 두고, 위로 살짝 지붕을 둔 파인 곳에서 한 방향으로 몰려오는 그림 뱃과 싸우는 것이 가장 유리한 전투방식!
이렇게 꾸밀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정말 망루 안에 숨어서 사방 창턱을 넘으려고 깩깩대는 그림 뱃과 툭탁댈 필요가 전혀 없다!
“좋아, 난 이제 쉴게.”
그리고 시알라의 당당한 선언…….
“엥?”
켈슨으로서는 흠칫할 소리였다.
마력을 소모한 마법사가 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벽 세우고, 달랑 갑옷 입은 페란드와 고친 활을 든 제란드만 앞을 막아서고 뒤로 물러서다니?
남은 마력이 적다고 해도 뒤편에서 만약을 대비하는 것이 좋을 텐데?
혹시나 쉰다고 하고서 전투태세를 갖추려는 것을 켈슨 자신이 오해했나 하고 보니, 시알라는 그냥 모닥불 한편으로 와서 완전히 전투에서 빠지는 자세로 앉고 있잖은가!
“켈슨 씨. 몇 마리씩 몰려들었죠?”
제란드의 묻는 말은 켈슨의 생각을 잠시 끊었고, 대답부터 하게 한다.
“내가 망루에서 센 것은 이십에서 삼십 마리? 그 정도가 한 무리씩 뭉쳐서 맴돌다가 덮쳐왔어. 꽤 빨랐다고.”
“적어도 두 배는 되겠는데요? 얼핏 세도 저거 사십 마리 선을 넘어요. 며칠 버틴 탓에 약이 올랐나 보네.”
제란드가 활처럼 망루에서 꺼내온 활통을 땅에 나란히 꽂으며 하는 말이었다.
켈슨의 표정이 살짝 붉어졌다.
원래 저 그림 뱃을 도발해서 이곳에 가능한 한 오래 묶어두려고 하기는 했다.
그 덕분에 지금 느닷없이 여기 나타난 시알라 일행이 덤터기를 쓰는 꼴이 되었으니, 이건 어쩐지 켈슨이 사과해야 할 일이 되고 있잖나.
“화살이 모자라?”
페란드가 불쑥 꺼낸 소리가 다시 켈슨의 복잡한 생각을 끊었다.
이어 나온 제란드의 대꾸는 켈슨의 말문을 막는데…….
“넘치지. 켈슨 씨를 여기 두고 떠난 녀석들, 자기네 화살통을 몽땅 남겨놓고 간 모양이야. 한 통에 육십 대 정도인데, 일곱 통이나 있었어. 음, 켈슨 씨가 써버린 게 한 통 반 정도니까…… 다섯 통 반이면…….”
“어림잡아 삼백칠, 팔십이겠군.”
페란드가 방패를 땅에 꽂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제란드는 비어 있는 활시위를 퉁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겠지.”
오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켈슨은 서둘러 자신이 두르고 있는 투척용 단도와 전투용 단검을 점검했다. 이 모습을 향해 멜란드가 꺼낸 소리가 그 움직임을 막을 때까지…….
“아저씨, 그냥 앉아요.”
“어, 뭐?”
“에, 팀워크? 맞아 팀워크이니까, 아저씨는 여기 투란 곁에 앉아서 지켜보라고요. 형들 사이에 끼기 좀 곤란할 테니까.”
“그, 그래? 그치만…….”
켈슨은 한 손에 단도를, 한 손에 단검을 잡은 채로 머뭇거렸다.
그 사이에 투란이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며 꺼낸 소리는…….
“우엑. 속이 메스꺼워. 얼른 자고 싶은데?”
곧바로 켈슨을 어처구니없게 했다.
이 상황에서 너무 여유롭지 않나?
그리고 이런 여유에 대해 따질 시간이 사라졌다.
팅, 피이잉!
날카로운 소리는 시위 줄이 화살을 날린 증거였고, 몬스터와 전투를 선언하고 있었다. 제란드가 선수를 쳐서, 아직 이쪽을 살피는 그림 뱃을 향해 공격을 가한 것이다.
곧 어둠 너머에서 뭔가 땅에 처박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고, 그림 뱃 무리 속에서 선명하고 노골적인 소리가 울려 나왔다. 느닷없이 공격당한 입장에서 지르는 분노가 가득한 소리였고, 동시에 날갯짓이 세차게 울리면서 가까워지고 있었다.
팅, 핑! 팅, 핑!
짧게 간결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제란드의 손놀림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빨랐다.
저편에서는 이에 응답하듯, 뭔가 계속 땅에 처박히는 소리가 울리면서 가까워지고 있는데…….
께에에, 끼이이아앙!
돌연 사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치솟았다.
“흠, 저게 전부가 아닌 모양이네?”
페란드의 목소리는 어딘가 한가했고, 꽤 느릿했다.
그러나 켈슨은 등골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고, 엉거주춤하니 사방을 둘러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들려온 것은 그림 뱃이 무리를 부르는 소리가 분명했다.
강적을 만나면 더욱 뭉치는 습성이 있는 그림 뱃이 위기를 느끼고 지르는 소리라니!
수십 마리의 무리가 위기를 느끼고 부른다면…….
“어, 얼마나 더…… 몇 마리나 더 있는 거지?”
여기 망루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은 켈슨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겪은 것보다 몇 배…… 수십 마리의 몇 배니 거의 백 이상의 그림 뱃이 주변에 맴돌고 있을 거란 상상은 해보질 않았으니까!
때문에 켈슨의 목소리는 당황해서 갈라진 채였고, 제란드가 곧바로 대답한다.
“화살 개수보다는 적겠죠. 걱정 마요.”
철컹, 키릭.
페란드가 방패를 들어 올리면서 갑주를 조이는 소리가 울렸다.
켈슨은 뭐라 할 말이 없어졌고, 이제는 입을 벙긋거리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