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6)
Chapter 8. 전변(轉變)하는 자
투란은 자신이 이상한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그 이상함이 대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향해 가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몸을 이용한 모든 감각보다 더 깊이 ‘천칭의 문장’ 몬스터 엠블럼에 집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오러’, 그 여린 힘의 파문까지 투란이 그만큼 집중해서 겨우 닿은 탓도 컸다.
뭔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고, 살갗이 찢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이 모든 일은 그저 이 여린 ‘오러’에 몰입해서 조금 이상하게 감각이 흔들리고 뒤틀어진 것이라고 생각한 탓이기도 했다.
그렇게 투란은 보다 더 강하게 염원하며 ‘오러’를 통해 ‘천칭의 문장’, 몬스터 엠블럼이 ‘본능’으로 허용하지 않는 부분에 닿고 있었다.
* * *
‘열린다! 그래, 삼켜! 닿아 있잖아!’
염원은 보다 강력해졌다.
‘오러’, 투란이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여린 힘은 그 생각과 의지에 반응하며 쉼 없이 움직였다. 단단히 닫혀 있던 톱니 마개를 비집고 뒤틀고, 그 ‘문’을 열기 위해 ‘오러’가 투란의 뜻에 따랐다.
그렇게 시간을 잊고, 천칭의 풍경 속에 푹 빠져 있던 투란은 마침내 기다린 것을 만날 수 있었다.
열린 ‘문’, 그 작은 틈으로 줄줄 녹은 것처럼 스며든 것, 촛농이 녹아 흐르는 듯 흐물거리는 붉은 점액, 고무쇠의 손톱이 그 속에서 튀어나왔다.
소리 없이, 그러나 곧 거센 충격을 일으키며 소리 따위는 아예 필요가 없는 격렬한 파동을 일으키며 손톱이 천칭을 후려쳤다.
투박하고, 조잡한 천칭이 받은 충격은 투란의 의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하지만 열리기 시작한 ‘문’은 이미 결정된 ‘오러’의 흐름을 따르는 듯, 닫히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녹아 흘러드는 붉은 점액이 좀 더 부풀었고, 투란이 일으킨 ‘오러’의 활동 따위와는 무관하게 간신히 열린 마개를 더 세게 비틀며 열어젖히는 듯도 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잠시 투란은 충격에 의해 흩어진 의지를 모으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의문은 저절로 피어났다.
‘왜? 어떻게?’
몬스터 엠블럼 안으로 흡수된 몬스터가 어떻게 저렇게 형성되고 문장의 풍경을 향해 날뛸 수 있는가?
고무쇠는 이미 머리와 팔, 몸의 절반을 형성하며 틈새 안으로 좀 더 비집고 들어오겠다고 날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투란은 이 풍경에 몰입된 자신이 모르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
* * *
촤르르르.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몸이 찢어지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핏방울을 잡기 위해서, 악마의 심장이 거칠게 넝쿨을 뻗으며 실그물을 자아냈다. 실그물은 핏방울을 잡고, 찢어지는 투란의 몸을 다시 감싸며 어떻게든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악마의 심장은 본능에 따라, 투란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의 몸은 가슴에서 시작된 붉은 균열, 부풀어 오른 살점이 깨지고 갈라지는 틈새에 따라 꾸준히 파괴되고 있었다.
소리도, 생각도 이 몸의 상태를 보며 더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가슴팍에 완전히 흡착된 것처럼 달라붙어, 붉게 달아오른 채로 오그라들고 있는 고무쇠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투란은 완전히 마른 고무쇠가 문장과 만난 풍경 속에서 온전한 형상인 것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살기 위해서, 존재하기 위해서, 고무쇠가 몬스터 엠블럼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더 따질 것도 없이 투란도 느낄 수 있었다.
이 풍경 속에서 고무쇠를 움켜잡아야 하고, 굴복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 풍경 속에서 투란은 몸이 없었다.
천칭과 넝쿨의 벽, 달걀 껍데기의 안쪽 같은 풍경…….
어떻게 해야 하는가?
투란에게는 뜻이 있었고, 껍데기를 형성하는 넝쿨이 호응했다.
가늘게, 혹은 굵게 껍데기에서 흐르고 서서히 움터 나오는 덩굴줄기가 고무쇠를 향했다. 천칭을 두드리고, 톱니 마개를 더 뒤틀어 열려던 고무쇠에 넝쿨의 가닥이 닿는 순간이었다.
손톱이 휘둘러졌고, 고무쇠의 단단한 몸통이 거세게 부풀었다.
넝쿨이 끊어지거나 휘둘러지는 고무쇠의 손에 휩쓸려 버렸다.
잡는다, 하고 아무리 열심히 집중해도 고무쇠의 괴력은 이 넝쿨의 가닥이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증명하는 광경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상상했다.
두껍고 강한 넝쿨의 벽이 고무쇠를 늪처럼 덮어서 물어 버리는 광경을.
그워어어어어어!
소리가 아닌, 기괴한 울림이 투란을 덮쳤다.
껍데기가 좀 더 굵고 촘촘한 그물이 되어 고무쇠의 형상을 휘감으려 하자, 고무쇠가 터뜨린 울림이었다. 비명이라기보다는 포효하는 듯한.
저 모습은 잘 보이는데, 소리는 왜 이럴까?
뜬금없는 의혹이었다. 그리고 그 의혹과 함께 기묘하게 싹튼 생각.
‘보이지만 보는 게 아니고, 들리지만 들리는 게 아닌가?’
퍼뜩 투란은 이 풍경이 오직 자신의 가슴속, 문장의 풍경이기 때문에 이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듣고자 하면 소리처럼 들릴 것이고, 지금처럼 보고자 한다면 마냥 보기만 할 것이다.
그르륵, 워어어어!
소리가 느껴졌다.
모습이 보다 분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더불어 투란은 고무쇠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촉감도 알아차렸다.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이 모조리 풍경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냄새도 나!’
따끔거리는 냄새, 쓰고 짜면서 뜨거운 맛도 있었다.
고무쇠의 모든 것이 아주 작은 부분부터 느껴졌고, 완전한 형상에 이르는 순간 모두 알 수 있는 듯했다.
‘아! 삼켰어!’
투란은 이제 고무쇠가 완전히 문장의 풍경 속에 들어온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고무쇠는 이제 손톱, 발톱을 다 휘두르며 포효하고 짧고 긴 다리와 팔을 마구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더 광폭하게 날뛰고 있었다. 마치 이 풍경을 자신이 지배하겠다는 듯이!
천칭이 뒤틀리고 깨지는 듯했고, 톱니 마개는 더욱 크게 열리는 듯했다.
‘이러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투란의 의지가 풍경 밖으로, 현실의 자신으로 살짝 옮겨졌다.
* * *
몸을 찢고 가르는 붉은 기포가 핏물을 줄줄 흘러내렸다.
고무쇠의 잔해는 붉게 달아오른 채로 으스러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붉은 잔해와 투란의 가슴팍은 여전히 달라붙은 채였고, 투란의 몸에서는 악마의 심장 줄기와 껍질이 새로 나타나는 검붉은 색의 가죽과 영역을 다투고 있었다. 누가 더 몸을 더 많이 차지하는가를 겨루는 듯했다.
바들거리는 발버둥 속에서 팔과 다리가 돌연 굵고 세차게 휘둘러지면서 얕은 물을 후려치기도 했고, 쭉 뻗어 가 저편의 돌멩이를 쪼개기도 했다. 그러다가 돌연 넝쿨의 껍질과 실 가닥이 돋아나며 오그라들고, 다시 사람의 팔다리처럼 얌전해지기도 했다.
그런 변화와 무관하게 투란의 몸은 꾸준히 갈라지고, 찢어지며 피를 흘렸고 살갗이 찢어진 채로 속살이 드러나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덤벼드는 중이기도 했다.
‘죽는다.’
투란은 이렇게 해서 도달할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아주 쉽게!
* * *
괴성과 폭음 속에서 고무쇠는 풍경을 향해 손톱, 발톱을 휘두르며 그 단단하고 탄력 있는 형상을 과시했다. 도저히 줄기줄기 솟는 넝쿨로는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해 보려 한다면 두께로 덮치는 것뿐인 듯했다.
‘눌러 버려!’
투란은 천칭 안을 향해, 커다란 사람 몸처럼 생긴 열쇠구멍같이 보이는 속에 있는 악마의 심장을 향해 외쳐 명령했다. 이 풍경 속에서, 투란의 편에 서서 저것과 싸울 것은 오로지 악마의 심장뿐이니까!
투란의 의지에 따라 껍질이 좁혀들었다.
큰 달걀 안쪽의 풍경이 오그라들며 고무쇠를 쥐려고 했다.
고무쇠가 입을 벌리며 더 크게 숨을 들이쉬는 모습을 보였다.
순간, 뒤틀려 열린 톱니 마개 틈새로 더 많은 붉은 점액이 흘러들었다.
고무쇠의 형상이 더욱 크게 변했다.
이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투란도 본능적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
‘에센스!’
몬스터 에센스, 고무쇠의 정수가 더 많이 문장으로 흘러들어 풍경 속의 고무쇠를 더욱 사납고 강하게 해 주고 있었다.
너무 적게 흡수한 에센스는 몬스터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몬스터를 형성하는 것도 어중간한 정도로 멈추게 한다. 하지만 몬스터 에센스가 과도하게 넘쳐 나면 부적이 많이 필요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광폭한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 그것이 지나치게 섭취한 몬스터 에센스의 효과였다.
지금 투란이 겪는 일이다.
‘닫아야 하는데!’
해야 할 일은 뻔했다.
넉넉히 에센스의 흡수, 몬스터 삼키기가 끝났다면 문장은 닫혀야 했다. 그런 것은 몬스터 엠블럼이 저절로 하는 짓이며, 몬스터 로드는 이를 본능적으로 해낸다.
지금 투란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왜냐고 따질 필요도 없었다.
문장을 억지로 뒤틀어 열었으니까.
몬스터 고무쇠가 이 풍경과 현실 사이에 자신을 있도록 해서, 그렇게 자신의 본질을 끌어당기며 문장과 싸우게 허용한 것은 투란 자신이었다.
그워어어어어어어워엉!
보다 강한 포효, 보다 힘찬 움직임이 고무쇠를 출렁이게 했다.
투란의 의지에 따라 고무쇠를 덮고 휘감으려던 넝쿨의 벽, 좁혀들던 껍질이 파여 나갔다. 그나마 두께를 신경 쓴 덕분인지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이는 투란에게 희망의 단서가 되었다.
‘좋아, 계속 간다!’
물러설 자리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투란에게 남은 길은 이제 한 가지, 천칭과 엉킨 악마의 심장이 밑도 끝도 없는 힘을 발휘해 고무쇠를 잡아 누르고 ‘오러’로 열어 놓은 저 뚜껑, 톱니 마개를 다시 조여 닫아 버리는 것!
투란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처법이었다.
이 의지와 생각이 집결하는 순간, 풍경 속에 격렬한 힘의 흐름이 피어올랐다.
악마의 심장이 보다 두껍게 벽을 자아내고, 조여들며 고무쇠를 압박하려는 듯이 꿈틀거렸다. 넝쿨로 된 줄기, 짜인 그물의 벽이 풍경을 가득 채우며 고무쇠를 향해 밀려든다!
그르르르르르!
고무쇠의 울림은 뭔가 격노한 듯도 하고, 뭔가 비웃는 듯도 했다.
투란에게는 바로 이것이 비웃는 쪽이라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손톱이 달린 뭉툭한 고무쇠의 팔뚝이 거침없이, 무슨 바람을 집어넣은 포대처럼 부풀고 있는 탓이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어찌 저리 부푸는지, 이 풍경 탓인가 아니면 과거 몬스터 로드가 보여 주지 않았던 고무쇠의 능력인가 의아해질 정도였다.
이윽고 손톱이 휘둘러졌고, 뭉툭한 팔은 흡사 거인의 것처럼 내질러지며 넝쿨의 벽을 관통해서 찢어 버렸다.
부으으으으!
벽이 진동하고, 찢긴 북이 내는 마지막 소리 같은 것이 투란에게 느껴졌다.
하지만 투란은 이를 곧 잊어야 했다.
고무쇠도 완전히 관통하고 찢어 낸 벽을 쥐고 멈추고 있었다.
부글부글…… 싸아아…….
고무쇠와 다른, 악마의 심장이 자기 안에 피를 끓이면서 초조함과 분노, 당혹을 느끼는 듯한 상황을 덧씌워 오는 듯했다.
그리고 투란은 심장의 혼란에 완전히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찢긴 벽, 그 너머에 펼쳐진 것.
잊으려고 애썼던 그것.
악마의 심장을 얻어서 겨우 떨쳐 냈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거기 있었다.
‘보이드……! 왜? 왜!’
투란은 문장의 풍경 속에서, 광활한 공허와 다시 만났다.
그워어어!
소리조차 지워 버리는 공허의 풍경 속에서 고무쇠의 광란이 끔찍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투란도 말리고 싶지 않았다. 함께 비명을 지르며 그 광란에 동참하고 싶었고, 악마의 심장은 격하게 꿈틀거리며 다시 벽을 쌓으려 했다.
모두가 어서 이 공허를 벗어나거나, 다 잊은 풍경을 다시 만들고 싶은 듯했다.
시커먼 허무의 나선이 천칭의 중심축을 따라 기어올랐다.
저 아래, 새카만 심연으로부터.
그렇게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에 숨어 잠든 심연과 만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