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6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56)
Chapter 72. 라비엔, 스킨 리퍼
터벅, 터벅.
켈슨은 햇살이 밝고 따가운 것을 느끼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어스름한 그림자를 잔뜩 흘리는 듯한 성채……라고 부르지만 네모난 거대한 암벽을 썩둑썩둑 잘라서 늘어놓은 듯한 풍경이 바로 보였다.
“라비엔.”
중얼거리면서 켈슨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그러나, 켈슨의 뇌리에는 지금 보고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맹렬히 춤을 추는 중이었다. 거의 하루 동안 그 광경은 뇌리에서 결코 떠나지를 않았고 라비엔을 바로 눈앞에 둔 지금도 춤추며 맴돈다!
“화살을 쳐내기 시작하는데?”
“아니, 그냥 날기를 포기하고 날개로 막는 거야.”
“이제는 머리랑 가슴을 맞추기도 벅차!”
“계속 견제해서 쏴. 오면 내가 처리한다.”
‘제란드…… 페란드…….’
그 광경을 보고 들으면서 켈슨은 자신이 무슨 동화 속의 용사(勇士)를 구경하는 것인가 싶었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궁수(弓手)와 기사(騎士)가 나란히 선 채로 몰려오는 고블린 무리를 척살한다는 동화…… 아주 섬뜩하고 끔찍한 이야기였지만, 그 궁수와 기사는 유쾌함을 잃지 않은 채로 용맹을 과시한다!
제란드와 페란드는 그림 뱃이 날기를 포기하고 뛰어오는 상황을 두고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만약 그림 뱃이 계속 날아서 다가오기 위해 날개를 펼친 채였다면, 페란드는 서서 구경하고 제란드가 전부 쏴 떨궜을 것이다. 그림 뱃의 머리와 가슴을 화살로 꿰뚫어서!
아무리 고쳤다고 하지만, 그 활이 켈슨 자신이 쓰던 활이었나 아주 의심스러운 광경이었다. 어떻게 그리 적중시킬 수 있었을까?
“아저씨! 같이 좀 가요! 너무 빠르잖아요!”
멜란드의 목소리가 켈슨의 발을 멈추게 했고, 뒤돌아보게 했다.
“어? 어…….”
어느새 켈슨은 시알라 일행으로부터 혼자 20여 미터를 앞선 꼴이었다.
뭔가 생각에 깊이 빠졌을 때의 버릇, 켈슨은 자신이 어느 틈엔가 헌터의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 채였고, 볼에 땀이 흐를 정도로 지나치게 속도를 올린 것이다.
“아저씨, 여전하네요. 그 걸음…….”
멜란드가 제일 먼저 다가와서 건넨 말이었다.
“어? 어…… 그냥…….”
켈슨은 어정쩡하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켈슨의 눈길은 저절로 멜란드가 지고 있는 짐과 멜란드의 팔다리를 훑어내리듯이 바쁘게 움직였다. 간밤에 봤던 멜란드의 모습은 지금 전혀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하얀 털이 돋은 손과 발, 맨살이 사라지고 두꺼운 발톱이 차지한 그 형상…… 지금처럼 사람의 손발을 상상할 수 없었던 멜란드의 모습!
‘그림 뱃 머리통이랑 가슴을 꿰뚫고 터뜨렸지? 그 날개도 그냥 할퀴는 것만으로 좍좍 찢어졌고…….’
날기를 포기하고 괴성을 지르며 뛰기 시작한 그림 뱃 무리, 한쪽에서만 와글거리지 않았고 어느 틈엔가 사방에서 몇 무리가 한꺼번에 덮쳐왔었다. 그 상황은 제란드와 페란드가 쓰러지지 않는다 해도 남은 일행 역시 휩쓸릴 수밖에 없었는데…… 투란이란 녀석과 시알라는 그냥 구경만 했고 멜란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짐도 보통이 아니었지?’
켈슨은 자신이 맨 처음 봤던 멜렌드의 일격을 선명하게 기억해냈다.
두툼한 천으로 잔뜩 감싼 길고 굵은 보따리, 이 보따리를 무슨 굵은 기둥처럼 휘둘러서 멜란드가 그림 뱃을 팼다. 맞은 그림 뱃의 머리통이 순식간에 터져 나갔고, 그때 저 천 위로 빛의 무늬가 몇 개의 뭉텅이로 나타났었다. 마법의 가호를 받는 담요 같은 것이라고, 그때야 켈슨은 알아차렸다.
굵고 튼튼한 몽둥이를 휘두르는 꼴이 되려나 했지만, 멜란드는 처음 일격만 저 짐덩이로 날렸고 그다음에는 팔다리를 변화시킨 채로 날뛰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에요, 히엔나거든요.”
‘보통 히엔나가 아니었잖아!’
켈슨은 문득 멜란드가 했던 말에 지금도 여전히 딴지 걸고 싶어 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몬스터 히엔나, 마수의 경계를 넘어서 버린 히엔나 중에서 두 발로 뛰거나 하는 놈이 있는 거야 알고 있었다. 가끔 웨어비스트로 착각하는 경우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놈들은 대부분 앞다리가 굵은 팔이 되거나, 뒷다리가 굵직해지거나 둘 중 한 가지만 한다고 했다. 그런 놈이 섞인 무리의 경우,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히엔나는 네 발로 달리는 짐승 같지만, 그 입에 한 번 물리면 순식간에 살이 썩는다고 했는데…….
멜란드의 변했던 팔다리는 팔뚝보다 손목이 굵었고, 발목도 거의 허벅지 수준으로 굵어진 채였다. 그 굵기는 켈슨이 아는 어떤 몬스터 히엔나랑 비교해도 거의 두 배는 될 듯했다. 히엔나라고는 하지만, 뭔가 히엔나 중에서도 특별히 큰 놈처럼!
그런 모습으로 멜란드는 그림 뱃의 무리 속에 뛰어들었고…… 쥐 떼 속에 뛰어들어 쥐를 잡아 죽이는 사냥개처럼 날뛰었다.
켈슨이 거의 반쯤 얼이 빠진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제란드와 페란드는 막내를 향해 투덜거렸다!
“머리만 부숴도 돼!”
“가슴만 뚫든, 머리를 자르든 한 가지만 해!”
“죽은 놈은 찢지 말고, 딴 놈 막으란 말야!”
“산산조각 내지 않아도 안 움직인다고!”
따갑기까지 한 햇살 아래에서 굉장히 한가하고 편안한 멜란드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제야 그 투덜거림의 의미가 켈슨의 뇌리에 전해져오는 듯했다.
‘확실하게 박살 내고 있었잖아!’
몬스터 중에는 끈질긴 놈들이 있었다.
사람이라든가 짐승이라면 확실히 죽었을 중상이어도 거침없이 움직이는 놈들!
멜란드는 그런 놈들을 상대하듯, 익숙하게 그림 뱃을 뭉개버렸다!
그리고 뒤늦게 그림 뱃이 머리나 몸통 한곳을 뚫기만 해도 죽는다는…… 혹은 머리통을 떼놓기만 해도 죽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처럼 ‘와하핫! 쉬운 놈들이었잖아!’라는 소리를 외치며 더 빠르게 움직였다.
도대체 그동안 어떤 난장판을 거쳐왔을까?
어떤 난장판이었기에 몬스터를 완전히 산산조각으로 뭉개는 습관이 생겼을까!
멜란드가 이렇게 강력한 몬스터 로드가 되다니…….
그런 멜란드를 놓고 투덜거리는 제란드와 페란드라니!
켈슨에게는 뭔가 세상이 뒤집어진 느낌이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얼굴색이 좋질 않네? 아, 배고픈 거예요? 그렇게 빨리 걸으면 체력이 장난 아니게 소모된다고 했잖아요? 음, 뭐 먹을 수 있겠어요? 여기 덤불 딸기랑 열매, 좀 드시죠? 목이 마르잖아요?”
멜란드가 내미는 작은 봇짐을 향해 켈슨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작은 봇짐을 풀면서 켈슨은 뒤늦게 자신의 상태를 깨달은 것처럼 말한다.
“어, 조금 지쳤나 봐. 목을 축이면 괜찮을 거야.”
경계망루 아래에 있던 작은 과수원, 거기서 따온 과실이었다.
라비엔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겠다고 켈슨이 먼저 따자고 했던 것인데…….
“미안. 내 걸 벌써 다 먹어버렸군.”
각자 먹을 정도를 따로 챙겼는데, 라비엔이 보이는 지금 켈슨의 보자기는 텅 빈 채로 그냥 허리춤에 걸려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빠른 걸음’을 쓰면서 반사적으로 먹어치워 버린 모양이었다. 딴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채로…….
“아주 오랜만에 돌아오신 거라 그렇겠죠.”
“어? 그야…… 아니, 난 그리 오랜만은 아니지. 한 보름 정도 된 것뿐이라고.”
멜란드의 말에 ‘아, 그렇구나.’ 하다가 켈슨은 고개를 저어야 했다.
정말 오랜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멜란드 앞에서…… 이 남매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닌 듯하니까. 그리고 문득 생각난 듯이 켈슨은 슬쩍 묻는 말을 꺼낸다.
“그 목에 걸린 거…… 부적인가?”
“음? 아, 뭐 비슷한 거요.”
멜란드는 켈슨이 자기 목 아래, 가슴 위편에서 대롱거리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쓴웃음과 함께 답했다.
켈슨이 의아한 듯이 중얼거린다.
“비슷한……?”
하지만 더 묻는 소리를 잇지는 못했다.
멜란드의 목을 반쯤 감고 있는 가죽 띠는 뒷목에서 옆까지 폭이 넓지만, 목 줄기 앞으로 오면서 가늘어졌고, 그 끝은 그물무늬의 끈으로 매듭지어지면서 잠금쇠처럼 생긴 조각을 매달고 있었다. 보통은 그냥 끈으로 매달아놓을 듯한 목걸이인 듯한 잠금쇠는 작은 뿔과 해골 윗부분, 그 아래에 세모꼴 가면을 쓴 듯한 모양이었고 은색으로 반짝이는 것이 어떻게 봐도 그냥 장신구로는 보이지 않는다.
몬스터 로드인 멜란드가 전에 없던 것을 목에 그리 걸고 있으니, 켈슨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강력한 부적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슬쩍 물을 수는 있어도 입 밖으로 내서 자세히 캐물을 수는 없잖은가. 어디서 힘들게 손에 넣은 것이라면, 그 방법조차도 비싸게 거래될 수 있는데…….
‘페란드의 연금술 갑주, 제란드의 마법 수선 도구, 멜란드의 이상한 부적…… 시알라! 예전에는 파이어 비트(Fire bit)밖에 못 써서 그걸로 이것저것 해보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켈슨은 딸기와 과일을 대충 입에 구겨넣고 우물거리면서, 느릿한 걸음으로 다 따라온 시알라 일행을 보며 지난 일을 떠올렸다.
“범용성이라고, 범용성! 파이어 비트는 불을 일으키는 기초지만, 응용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폭넓게 쓸 수 있는 마법이라고! 부싯돌 하나 없는 곳에서, 성냥도 안 켜지는 곳에서 캠핑할 때도 쓸모 있고!”
마법사라고 할 수가 없는, 단순한 마술사.
스펠 캐스터 중에서도 한 가지밖에 쓸 줄 모르는 경우라면 파티에 넣어주기에는 너무 모자랐다. 하물며 그 한 가지 마법을 제대로 쓰기 위해 이것저것 조건이 많이 필요하다면 더욱 파티에 참여시키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켈슨도 그때 자신의 마법이 쓸모 있다고 주장하는 시알라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 형제보다 더 많이 변해버린 마법사 시알라였다.
게다가 시알라는 엄청나게 센 세 형제를 이끄는 맏누나!
‘굳이 파티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잖아?’
켈슨은 꿀꺽 목젖을 울려 입안을 비우면서 깨달았다.
새삼스러운 깨우침이기는 했다.
동이 틀 무렵까지 싸운, 때문에 피투성이가 된 동생들을 보면서 ‘뭐 이렇게 지저분해졌어?’라면서 작은 이슬방울을 날려서 깨끗하게 씻어내는 누나 시알라…… 이 남매의 파티에 참여하기만 해도 목숨과 수입, 청결이 보장될 것이다.
굳이 이 남매가 옛날처럼 다른 파티에 끼려고 할 필요가 없다!
“우에! 저게 라비엔? 누가 절벽을 썰어서 잘라놓기라도 했나? 뭐 저렇게 생겼어? 벽돌로 쌓은 거 아니잖아?”
문득 들려온 헛구역질하는 듯한 말투에 켈슨은 조금 맹해져서 투란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대체 어떻게 이 남매의 파티에 끼었을까?
시알라가 그 곁에서 나온 소리에 답하는 모습도 어딘가 낯선데…….
“고대에 만들어진 요새 도시라고 했잖아. 손으로 돌을 깎고 옮겨 쌓아 만든 요새가 아니라고. 음, 전설이기는 히지만…… 고대에 있었던 대지(大地)를 다루는 대마도사가 하루 만에 암반(巖盤)을 들어올리는 식으로 만든 요새라고 했어.”
“저걸 하루 만에? 뭔 괴물이야!”
투란이 놀란 소리를 냈다.
시알라는 어깨를 으쓱했고, 이번에는 제란드가 말한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라고. 진짜로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몰라. 하지만 저 도시에 들락대는 로그 메이지들은 그 대마도사의 뭔가가 남겨진 채일 거라고, 저 정도 성채의 요새가 여태까지 유지되는 마법의 비전이 있을 거라고 뒤지고 다녀. 그 녀석들이랑 시비 붙으면 좀 피곤하니까…… 투란, 듣고 있어!”
투란은 아작아작 덤불 딸기를 꺼내 씹으면서 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트림처럼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참 잘 먹는 그 모습, 그러면서 곧잘 엉뚱한 곳을 보며 바보 같은 호기심을 드러내는 모습은 켈슨에게 어이없어 보였다. 하지만 네 남매는 저런 녀석에게 뭔가 익숙해져서 투덜거리면서도 놔두는 낌새가 역력했다.
‘왜?’
간밤에 그림 뱃과의 그 치열했던 전투에서도 투란은 앉아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그 전투를 보며 전율하던 켈슨은 어린놈이 대체 무슨 배짱인가 의아했지만…… 동이 트고 나서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피가 아닌 몬스터의 피로 범벅된 세 형제의 기량을 확인하고 나서는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이 녀석에게도 내가 모르는 뭔가 있나?’
켈슨이 가장 그럴듯하게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추측이었다.
“그런데…… 저거 입구는 대체 어디야?”
투란이 웅얼대는 소리였다.
켈슨은 ‘아!’ 하는 짧은 소리를 냈고, 곁에서 멜란드가 중얼거린다.
“그러고 보니 사다리 내려놓은 게 안 보이는데? 출입용 기중기가 접힌 꼴도 없어? 어라? 뭐야 그럼 저 절벽을 달라붙은 채로 기어서 다닐 리도 없잖아? 아저씨?”
“이제는 기중기를 쓰지 않아. 지금은 저 아래편에 굴을 파놨어. 그림 뱃이 나타나면서 날아다니는 것들이 늘어났거든. 어, 그 출입구는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켈슨의 대답은 멜란드의 소리가 끝난 다음에나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