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57)
암벽은 수백 미터를 내달리며 거침없이 펼쳐져 있었다.
높이조차도 수십 미터를 가볍게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작은 벽돌이 평원 한복판에 올록볼록하니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만, 평원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다가서게 되면 서서히 그 크기가 압도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암벽으로 성채를 만들어낸 자가 누구든 혹은 무엇이든, 괴물이거나 괴물에 버금간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찾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에 찾아오는 호기심, 대체 이 암벽을 어떻게 들락거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은 처음 이런 광경을 바라보는 투란에게는 자연스러웠다.
“기중기라고?”
불그스름하고 시커먼 눈두덩이를 문지르면서 투란이 묻는 말에 멜란드가 답한다.
“응. 대강 봐도 수십 미터 높이잖아. 기중기를 써서 사람이 타고 내릴 수 있는 바구니 같은 방…… 아니, 방처럼 큰 바구니를 이용했어.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승강기라는 건데…… 뭐, 다른 곳은 이렇게 높은 암벽을 자주 오르내릴 일이 없을 테니까 그렇겠지만…… 아무튼 고블린이나 쟈칼릭, 히엔나같이 들판을 헤매는 녀석들은 쉽게 넘보지 못하는 요새지.”
곁에서 듣고 있던 켈슨이 보태 말한다.
“그랬는데…… 요즘 들어 그림 뱃처럼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왕창 늘어나서…… 게다가 그렇게 나는 것들이 땅에서 뛰는 녀석들을 잡아먹거든. 그러다 보니까…… 뭐, 아예 승강기를 치우고 땅 아래로 다니는 길을 파게 된 거지.”
“에? 그림 뱃 말고 또 뭐가 날아다녀요?”
멜란드가 의아해서 물었다.
라비엔 가까이 왔지만, 경계망루 부근에서 본 그림 뱃 말고는 딱히 날아다니는 뭔가를 자주 보지는 않았다. 멀리서 봐도 몬스터가 아닌 그냥 새가 몇 마리 날고 있었을 뿐이지…… 뭔가를 잡아먹는 괴물은 거의 없었다.
“많이 다녀. 오늘은 고요하지만…… 다행이라고!”
켈슨은 멜란드가 두리번거리면서 찾는 꼴을 보며 울컥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아니, 무슨 구경을 하겠다고 저런 눈빛이란 말인가!
멜란드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대꾸한다.
“아니, 고요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 예전에는 온통 뛰고 기는 놈들만 있었잖아요. 그런데 라비엔을 향해 나는 것들이 몰려오는 시절이라니…… 정말 오랜만이라는 기분이에요.”
“뭐, 오랜만이기는 하지.”
켈슨은 조금 씁쓸하게 말하고는 바로 걸음을 재촉했다.
투란은 다시 헛구역질하듯이 혀를 날름거렸고,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는 멜란드처럼 뭐라 하는 대신에 묵묵히 감회가 깊은 표정으로 라비엔의 암벽 성채를 바라봤다.
일행은 암벽 아래에 있다는 입구에 도달했다.
“켈슨?”
“터커? 뭐야, 무슨 일이 있어?”
무장한 채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이가 켈슨의 이름을 불렀고, 투구를 깊이 눌러쓴 그 모습에도 켈슨은 바로 목소리를 알아차린 듯이 되묻고 있었다.
암벽의 아래에 뒤틀린 틈이 나 있었고, 한낮에도 어두워 보이는 폭이 좁고 날카로워 보이는 굴속에서 횃불이 찰랑이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자리를 잡고 버티고 있는 무장한 한패의 사람들…….
“살아 있었어?”
놀란 듯이 다시 묻는 말은 켈슨의 인상을 구겨지게 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게 뭔 일이야?”
“어, 음. 무슨 일은 입구를 지키는 거지.”
터커가 엎드려 몸을 감추던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켈슨이 그런 터커를 보고, 주변에 맴도는 무장한 이들의 눈빛을 살피면서 묻는다.
“여기서 이러고 지킬 일이 뭐가 있어? 사람 냄새 풍겨서 이상한 놈 꼬일 뿐이라고, 그래서 안쪽 깊은 곳에서 경계보기로 했을 텐데?”
“그야 그랬지. 그보다, 살아 있었네?”
“이봐! 누가 나 죽었다는 소리라도 했어? 내 시체라도 봤다고 떠벌린 놈이 있다는 거야?”
“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뭔데! 꾸물거리지 말고 말해봐!”
“자네랑 경계망루에 갔던 녀석들이 전부 죽었거든. 그렇지, 제이크?”
터커는 켈슨이 발끈하는 소리에 조금 난감한 듯이 옆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고, 제이크라 불린 이가 다가오며 대답한다.
“켈슨의 시체는 확인하지 못했어요. 머릿수 확인할 때도, 분명히 두엇 빠졌다고 했고…….”
제이크의 말에 터커가 움찔했다.
“에, 그랬나?”
“터커, 무슨 일이야? 제이크, 너네 헌팅 파티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나랑 같던 애들이 전부 죽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설마 너네……?”
짙은 의혹을 드러내면서 켈슨의 손이 저절로 칼자루로 옮겨갔고, 가까이 있던 터커가 펄쩍 한 걸음 물러서며 외친다.
“뭔 소리야! 우리가 왜 걔들을 죽여! 젠장, 그 죽인 놈을 찾느라고 이러고 있구만!”
터커를 흘깃하고는 제이크가 진지하게 켈슨을, 켈슨의 뒤에 물끄러미 서 있는 일행을 바라보며 말한다.
“켈슨, 라에즈 파티랑 같이 경계망루에 갔었죠? 라에즈 파티는 몰살된 채로 발견되었어요. 그래서…….”
“잠깐! 그런데 왜 너네 지금 나한테 화살을 겨누고 잔뜩 의심하는 건데? 조금 전에는 날 죽은 놈 취급하더니, 이번에는 또 뭐야? 무슨 일인지 제대로 말해봐!”
켈슨은 제이크와 터커, 그리고 주변의 몬스터 헌터 패거리가 움직이는 광경을 보면서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성난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칼자루를 확실히 잡은 채로 가만히 멀뚱거리면서 겨눈 화살에 맞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
터커가 끄응하는 소리를 냈고, 한 걸음 나서면서 말한다.
“진정하라고, 진정하고 들어. 간단히 말하면 스킨 리퍼(Skin Reaper)야.”
“뭐?”
켈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이크는 물끄러미 그런 켈슨을 바라봤고, 터커는 뭐라 더 설명을 할까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 이런 상황에 짜증이 난다는 듯이 한 명이 앞으로 나선다.
“아, 쫑알쫑알 참 말 많네! 간단히 하자고, 간단히!”
“뮤로젠, 거칠게 굴지 마.”
터커는 나서 이를 향해 생각을 방해하지 말란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선 뮤로젠은 그럴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서걱하는 선뜩한 소리를 내며 바로 손바닥에 딱 맞춘 듯한 길이의 꼬챙이처럼 보이는 작은 단도를 끄집어냈고…….
“스킨 리퍼! 사람 가죽을 벗겨내고 속을 다 파먹은 다음에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 흉내 내는 몬스터! 자세하고 길게 설명해줬으니, 이제 손 내라고!”
“뭐?”
켈슨은 터커를 보면서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터커가 잠시 목뒤가 뻐근하다는 듯이 고개를 젖히며 한숨을 쉬었고, 그 사이에 뮤로젠은 켈슨을 향해 단도를 들이대며 성큼성큼 달라붙는다! 바로 켈슨은 한 걸음 물러섰고, 칼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뮤로젠을 노려보며 묻는다.
“그런데 네가 내 배 속을 쑤시려는 까닭은 뭐야?”
“에? 배 속이 아니고, 손! 젠장, 진짜 뭘 모르는구만! 한물간 헌터라도 헌터잖아! 스킨 리퍼는 피가 뚝뚝 떨어지지 않고 걸쭉하고 끈적하게 늘어지면서 그물처럼 찰랑거린다고! 방울져서 끊어지질 않아!”
“그래서 지금 내 손을 그 칼로 네가 따겠다고?”
켈슨이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런 일이라면 가볍게 손끝에서 핏방울 내보라고 해도 될 텐데, 이 무슨 난폭한 태도인가!
터커가 켈슨의 생각을 알아차렸다는 듯, 하지만 빠르게 움직여 켈슨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으면서 말한다.
“피를 좀 많이 흘려야 해. 얼마 전에…… 손가락 따고 몇 방울 빼서 멀쩡한 척하던 놈이 스킨 리퍼였어. 두어 방울은 자기 피를 속일 수 있는 놈이라고. 지금 우리가 쫓는 괴물은…….”
“야, 터커! 잡지 말고, 그러니까 피를…… 윽?”
터커의 손이 켈슨을 잡는 사이, 뮤로젠은 켈슨의 다른 팔뚝을 잡아 옆구리에 끼면서 바로 그 손에 단도를 꽂아넣었다. 켈슨의 손이 칼날에 관통되었고, 핏방울이 바로 튀어 오르면서 핏물이 쏟아져 내린다.
뮤로젠의 칼은 출혈을 목적으로 해서 바로 구멍을 내고 빠진 채였다.
뮤로젠은 작은 단도를 휘둘러 핏방울을 뿌리면서 중얼댄다.
“어, 사람이네.”
이 소리에 터커는 재빨리 켈슨의 팔을 풀고 밀면서 뒤로 물러섰다.
뒤로 밀리다가 제란드의 손에 등이 닿으면서 멈춘 켈슨으로서는 황당하면서도 분노했고,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말한다.
“이 새끼가……! 뼈까지 긁어?”
부들거리며 떠는 켈슨의 손은 이 관통된 상처가 가벼울 리가 없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뮤로젠은 이런 켈슨의 성난 태도에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대꾸하는데…….
“어, 그러게 곱게 손 내밀지 왜 버티쇼? 아, 걱정할 거는 없수. 여기 포션. 죽여주게 낫게 해주는 거니까, 원망할 필요는 없수!”
단도처럼 작은 약병 하나가 켈슨의 가슴팍으로 던져졌다.
켈슨은 이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는 듯이 뮤로젠을 노려봤고, 제란드가 대신 날아드는 약병을 낚아챘다. 이 광경에 뮤로젠은 피식 웃었고, 그런 태도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제란드는 한 손으로 약병의 뚜껑을 밀면서 냄새를 맡았다.
곧 뮤로젠이 내는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울린다.
“어우, 고운 손길이 재빠르기도 하시지! 그래, 무슨 포션인가 냄새로 바로 아시겠수?”
켈슨은 분노한 기분이 가득했지만, 이 소리에 곧바로 의아하고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고운 손길?’
이 말은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 자주 쓰인다.
몬스터 구경도 못 해본 자를 일컫는 말이고, 거칠고 사나운 상황과 어긋난 차림새로 으스대는 얼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차림새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갖춘 장비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채로 몬스터 사냥에 나서는 바보 녀석들…… 그런 경우를 놓고 ‘손이 참 곱군!’이라면서 비꼬는 것이다.
그런데 뮤로젠이 지금 누구한테 저러나?
켈슨은 킁킁거리는 제란드를 흘깃했고, 퍼뜩 깨달았다.
‘아, 저 얼빠진 놈이!’
그림 뱃과의 하룻밤, 그 전투가 끝난 뒤에 세 형제가 어떤 모습인가를 켈슨은 분명히 봤다. 하지만 그 전투의 흔적은 시알라가 깔끔하게 씻겨냈다! 그리고 장비는 오는 도중에 제란드가 꼼지락거리면서 모두 수선해서 아예 새것처럼 보이고!
페란드의 경우에는 정말 연금술사의 상점에서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갑주를 지금 막 꺼내 입은 것처럼, 오래 걸은 흔적조차 발아래 쪽에 희미할 정도로 깨끗했다!
켈슨은 손이 뚫리고 심하게 아프긴 했지만, 스킨 리퍼를 사냥하려는 놈들이 어떤 사정인지 몰라도 눈 돌아간 상태란 것은 확실했다. 이대로 시알라 일행에 대해 착각하고 까불다가 다치게 놔둘 수는 없다. 그래서 켈슨이 막 뭐라 한마디 하려는데…….
“군단 보급품이잖아, 이 포션? 버서커 포션이라고도 하는…… 맞지?”
제란드의 목소리가 낮고 선명하게 켈슨의 귓가에 파고들잖는가!
“뭐?”
켈슨의 눈꼬리가 뒤틀렸고,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하지만 뮤로젠은 그런 켈슨의 모습에도, 제란드가 신중한 태도로 확인하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단도를 치켜올리면서 말한다.
“어이쿠, 아는 것도 많으시군요? 하긴…… 손이 그리 고우니 똑똑할 수밖에 없겠지. 아주 끝내주는 군납 포션까지 아실 수밖에 없어 보여! 자, 그러면 그 효능이 확실하다는 것도 알겠지? 나, 참 착한 사람 아니우? 상처를 깔끔하게 낫게 해주는 약도 주고 말이야. 그러니까, 거기 아가씨. 스킨 리퍼인가 아닌가, 살갗 좀 긁어봅시다. 아, 얼굴에 상처 나는 게 무서우면…… 옷을 벗어도 돼요. 젖가슴 아래 살짝 긁으면, 출렁출렁 살덩이가 내려앉아서 가려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군납 포션을 바르면 흉터도 거의 남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뮤로젠의 걸음은 제란드의 곁을 지나 시알라를 향해 거침없이 내딛어졌고, 말하는 것과 다르게 바로 시알라의 얼굴을 단도로 할퀴듯이 긁어내려 했다.
켈슨은 그 움직임이 제란드를 꼬드기는 것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뮤로젠은 제란드가 가로막거나 하면 바로 배를 쑤시거나 목을 그을 참이다!
“이!”
켈슨의 입이 막 소리를 내려는 순간, 그 소리를 삼키며 더 억세고 섬뜩한 소리가 울려 나온다.
쿵! 우득, 싸악!
“뮤로젠!”
저쪽에서 터커와 제이크가 놀란 소리를 냈다.
켈슨은 바로 곁에서 벌어진 일을 뒤늦게 깨달았다.
뮤로젠의 한쪽 다리가 채여서 뒤로 주욱 밀려나며 무릎으로 땅을 찍었고, 그 순간에 제란드의 손이 뮤로젠의 손목을 잡아…… 팔꿈치를 역방향으로 굽혀지게 했다. 당연히 그 팔꿈치는 부서지는 소리를 낸 것이고, 그다음에 제란드는 뮤로젠이 놓친 단도를 낚아채서는…… 정말 인정사정 보지 않고 뮤로젠의 두 눈 아래를, 콧등까지 포함해서 베어버렸다!
“핏방울이 잘 튀는군. 넌 스킨 리퍼가 아닌 모양이야?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지?”
제란드의 목소리가 이제는 너무 낮고 담담해서 섬뜩하게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