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6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59)
가만히 돌이켜보니, 제이크는 이 상황이 처음부터 자신들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켈슨의 손에 뮤로젠이 구멍을 내버린 것…… 그때부터 막을 수 있었던 일 아닌가?
한데 켈슨을 터커가 붙들고 뮤로젠이 칼질할 때까지 놔두고 구경만 했다!
그러더니 뮤로젠을 망가뜨리고 바로 터커 낯짝도 뭉개놨다?
애초에 저런 마법사가 있으면서 얌전히 구경만 할 이유가 없잖은가!
어떻게 생각해도 이건 완전히 켈슨을 미끼로 내걸고 자신들을 사냥하려는 짓일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상황을 어떻게든 얼버무려서 수습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제이크에게 아주 명확해지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라면…….
“이봐! 우리는 지금 몬스터를 사냥하는 중이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지만, 일부러 지나가는 사람과 싸울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두 손을 들어 올리면서, 제이크는 자신의 동료들과 활을 겨눈 제란드 쪽을 번갈아 둘러보면서 목청껏 외쳤다. 동시에 제이크의 손짓은 휘휘 내저으며 양쪽을 말리는 듯했지만…….
“뭘 신호하는 거야!”
켈슨이 외치고 있었다.
순간 제이크는 자신이 켈슨을 지나치게 가볍게 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신호하는 손짓은 이미 동료들에게 전달된 다음이었고, 바로 저편 너머에서 이쪽 시야에 잡히지 않는 동료가 부는 큰 호각 소리가 높이 울려 나오고 있는 참이었다.
슬쩍 손을 내리면서 제이크는 켈슨을 한 번 흘겨보다가 활을 좀 더 팽팽하게 당기는 제란드에게 급히 말해야 했다.
“어이, 조금 전에 그쪽에서 말했잖아? 우리 중에도 스킨 리퍼가 있을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래 맞아, 일리가 있다고! 그러니까 주변에 흩어진 우리 동료들을 불러모아 봐야 하잖겠어? 마침…… 스킨 리퍼의 침투 따위는 바로 찾아낼 수 있는 마법사도 있다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잖아?”
넉살 좋은 시늉을 하는 제이크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제란드는 가만히 활의 겨냥을 아래로 낮추면서 활줄을 느슨하게 했다. 제법 그럴듯하게 말하고 있으니 잠시 참는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저 활이 한순간에 다시 당겨졌다가 번개처럼 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전에 봤다. 긴장감이 저절로 제이크의 등골을 치달리면서 바싹 제란드에게, 그리고 무식하게 터커를 두들겨 팬 갑주의 페란드에게 경계심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는 방어적인 모습만 보였고, 그 곁에서 구경만 하는 듯한 둘은 아무래도 마법사의 호위를 전담하는 듯하니까 당장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듯하고…….
“그래서, 지금 우리 쪽에 몬스터 검색을 맡겨보겠다?”
활을 내린 채로 제란드가 묻고 있었다.
제이크는 어깨를 으쓱했고, 가능한 한 태연하게 대답한다.
“말했잖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웃음도 짓는 제이크를 보며 켈슨이 눈을 깜박이다가 흠칫했다.
조금 전의 수신호가 과연 지금 제이크의 말처럼 마냥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의미만 담고 있는가 의심하는 듯한데, 그런 켈슨을 보면서 제이크는 좀 더 짙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켈슨이 무슨 생각을 했든, 신호 뒤에 큰 호각이 불어진 이상 이제는 동료들이 올 때까지 제이크와 이곳 일행은 그냥 버티면 된다!
“이봐…….”
아무래도 불안한 듯이 켈슨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말문을 열려는데, 웅장한 호각 소리가 여기저기서 세차게 울려 퍼졌다.
암벽을 타고 하늘 높이 치솟을 듯한 호각 소리에 뒤이어 사방에서 인기척이 나타났고, 뒤이어 사람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한둘이 아니라 한꺼번에 수십 명이 다가오는 광경이었다.
마치 와르르 굴곡진 바위 울타리를 넘듯이 나타나는 듯했고, 결국은 가볍게 백 명을 넘을 듯이 보인다?
“너!”
켈슨은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듯이 놀란 소리를 냈다.
제란드는 그 곁에서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듯이 눈길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 제이크를 향해 짧은 소감을 토해낸다.
“제법이네?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되는대로 시비 거는 쪼잔한 패인 줄 알았는데, 제법 머릿수가 많아?”
제이크는 히죽 웃었고, 켈슨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너희 팀과의 일인데, 이렇게 연합을 불러내? 너, 대체 일을 어떻게 하…….”
“모두 왔나아! 알려줄 일이 있다!”
제이크는 켈슨이 따지는 소리를 덮어버리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조금 전에 얼렁뚱땅 얼버무리기 위해 내던 소리와 다르게 우렁찬 외침이었고, 암벽을 타고 메아리까지 울려 나올 정도였다.
따지려 하던 켈슨은 어이가 없는 듯이 말을 멈춰야 했고, 피가 쏟아지는 손을 꽉 쥐며 그 손목을 다른 손으로 꽉 누르면서 제이크를 노려봤다. 그런 켈슨을 향해 페란드가 나직하게 말한다.
“켈슨 씨, 물러서 있어요. 멜란드 곁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켈슨은 페란드를 흘깃했고, 제란드도 봤다.
제란드 역시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이는 모습에 켈슨은 자신의 무력함이 짜증났지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여기서 어설프게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다면, 오히려 방해라고…… 간밤에 페란드와 제란드가 어떻게 연계해서 싸우는가를 본 켈슨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머릿수를 믿고 힘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제이크 팀을 비롯한 저 연합은 오늘 아주 큰일을 당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켈슨이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들, 저 녀석들에게는 원망할 자격도 없다!
머리가 복잡해진 켈슨에게 멜란드가 살짝 웃고 손짓하며 짐을 툭툭 쳤다.
마치 짐 곁에 와 있다가 여차하면 짐을 맡으란 듯했고, 켈슨은 조용히 그 손짓에 따라 멜란드 곁에, 두툼하게 말려 세워진 짐을 사이에 둔 채로 섰다. 어느새 투란이 웩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이런 켈슨의 옆에 쪼그리고 앉은 듯한 풍경이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제이크가 내지르는 웅변이 더욱 쩌렁쩌렁 울려 퍼지며 다가온다.
“우리 연합에는! 마법사가 없다! 우린 몬스터 헌터니까! 우리 연합에는 몬스터 로드도 없지! 우린 몬스터 헌터니까!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분들이 찾아왔다! 덕분에 뮤로젠과 터커는 은퇴야! 미친 군단병 신세가 돼버렸거든! 그 은퇴를 도운 저분들이! 우리를 돕는다 하신다! 스킨 리퍼를 찾아주신다네! 사냥꾼이 사냥감이 된 것처럼, 우리 중에 스킨 리퍼가 이미 끼어 있다고 말씀도 하셨지! 자, 다들! 은퇴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저분들의 검사를 맡아야 한다니! 와보라고!”
말과 함께 빙빙 돌면서 모여든 이들에게 과장된 손짓과 몸짓, 크게 짓는 표정을 더하는 제이크였다.
누가 봐도 도발하는 낌새가 역력했다.
자신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벼드는 작고 강한 패거리를 어떻게 하겠냐고 따지는 듯도 했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듯, 다가온 이들 중에 몇몇이 앞으로 나섰다.
다른 이들이 자리를 잡고 활을 들어 올리며 이쪽을 공격할 태세를 하는 와중에 나선 몇몇은 제이크 곁으로 옮겨오면서 이런저런 소리를, 제이크처럼 우렁차게 외쳐댄다.
“터커가 은퇴야? 어허, 그래도 파티 리더 아니었나?”
“이런, 이런…… 저렇게 망가지면 몸이 멀쩡해도 어쩔 수 없지.”
“그런데 검사라면, 우리도 저렇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소리잖아?”
“허어, 이것 참…… 작은 팀이라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작은 팀들이 뭉치면 어떤가 한번 보고 싶은가 보지!”
“뮤로젠, 미친 꼴이 제법 그럴듯한데? 크크큿.”
그럴듯하게 험악한 표정, 사나운 태도가 가득했다.
역시나 팀들이 뭉친 연합은 저 머릿수로 우격다짐을 해볼 참인 듯싶다!
켈슨은 그런 꼴을 보면서 뚫린 채로 꽉 쥔 탓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휘두르고 싶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켈슨의 표정은 곁에서 나지막하게 헛구역질 소리랑 섞여 나온 속삭임에 곧바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도 몬스터 로드도 없다더니…… 저기 끼어 있는 이상한 놈, 뭐래?”
켈슨은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듯한 눈길로 곁을 봤고, 투란이 웅얼대며 입을 놀리는 꼴을 확인했다.
‘뭐, 뭐라는 거야?’
말하는 당사자를 봐도, 무슨 소리인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란드가 이 소리에 바로 반응하는 꼴을 보니, 이 남매는 투란이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핏!
짤막하니 활이 화살을 뱉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아주 빠른 겨냥이었고, 사격은 순식간에 이뤄졌으며 화살은 바람이 돕는 것처럼 빠르게 날았다.
이 광경을 포착한 이는 몇 명 되지 않았다.
그 몇 명 중에는 화살이 목표로 삼은 자도 있었다.
하지만 피하지는 못했다.
퍼억!
“윽! 무, 무슨 짓이야!”
제란드는 비명처럼 외치면서 화살이 꿰뚫은 다리를 손으로 누르는 자를 보면서 두어 번 눈을 깜박이다가, 제이크처럼 큰 소리로 외친다.
“와! 신기한데? 피가 끈적끈적한 끈처럼 뭉치잖아? 어이, 저게 조금 전에 찾던 스킨 리퍼의 증거인가? 어라? 그런데 지금 말도 하지 않았어? 스킨 리퍼…… 사람 말도 하는 거였나? 신기한데!”
난장판이 벌어진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사람이 내는 괴성, 어처구니없어하는 경악, 극단적인 욕설이 뒤엉킨 채로 터져 나왔고 그다음에는 마구잡이의 칼부림, 회피하기 위한 몸놀림이 군무(群舞)처럼 펼쳐졌다.
그중에서 제이크의 외침은 돋보인다 할 정도로 크고 우렁찼다.
“야, 이 씨! 포위해! 가까이 가지 마! 피 묻히지 마! 정신 차려! 칼질하지 마! 피 튀기게 하지 말라고! 가죽! 가죽 장막! 뭐 해! 준비한 거! 얼른! 정신들 차렷! 놓치면 안 된다고! 야! 이 새끼야, 칼질하지 말라니까! 몽둥이로 쳐! 짓이기라고! 그 새끼 피 묻으면 옮는단 말야!”
어느 틈엔가, 제이크를 중심으로 모여든 팀들, 연합의 인원들은 왜 자신들이 여기 모였는가에 대한 까닭을 근본적으로 잊은 듯했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왜 자신들이 이 근처를 배회하며 감시하고 있었는가 하는, 아주 중요한 그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다른 일 따위는 전혀 신경 쓸 수가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제란드는 슬쩍 활을 내렸다. 여전히 언제라도 들어 올려 쏠 준비는 되어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다. 제란드가 곁을 흘깃하니, 페란드도 어느새 면갑을 다시 젖혀 넘긴 채로 얼굴을 드러낸 채였다.
저쪽은 몬스터가 확인된 순간, 이미 이쪽의 일을 완전히 잊어준 셈이었고…… 덕분에 뭔가 민망하게 구경하는 꼴이 된 듯했다.
그러면 다음에는 어찌해야 하는가?
“알아서들 잘할 것 같으니까, 끼어들 일도 아니잖아?”
나직한 투란의 목소리에 페란드와 제란드가 슬쩍 시알라를 바라봤다.
시알라는 눈살을 조금 찌푸린 채로,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로 날뛰는 몬스터 스킨 리퍼 쪽을 바라보다가 투란에게 묻는다.
“투란, 저거…….”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그냥 가자.”
투란은 미묘하게 시알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 있었다.
이 낮은 대화는 저쪽 제이크 패거리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었지만, 멜란드와 투란의 사이에 서 있는 켈슨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그, 그냥 가?”
엉겁결에,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에 켈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얼거림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헌터라면, 어떤 일이 있든 간에 이렇게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서로 연계를 하기 마련이었다.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그런데 저쪽에서 지금 몬스터를 확인하고 저 난리를 치고 있는데…… 저 꼴을 유도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쪽에서 저지른 짓인데, 그냥 가다니!
물론 가끔……이라기보다는 자주, 몬스터의 잔유물을 독차지하고 싶어서 힘에 부치는 패거리가 알아서 뒤로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심술궂고 고약한 놈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켈슨이 아는 한, 시알라는 그렇게는…….
“가자.”
“에? 시, 시알라?”
“켈슨 씨, 우리가 낄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끼는 걸 원치도 않는 모습이라고요. 자기네끼리 알아서 사냥할 진형을 짰잖아요.”
“어?”
켈슨은 다시 제이크 쪽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다른 이의 간섭을 배제하며 연합의 인원들만으로 스킨 리퍼를 잡기 위한 포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한쪽에서 지켜볼 수는 있을 텐데?
“얼른 가자!”
투란이 다시 재촉했다.
시알라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일어난 투란도 슬슬 그 뒤를 따랐다.
멜란드가 다시 짐을 메며 켈슨에게 눈짓하는데, 켈슨은 차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몬스터 헌터로서 날뛰는 몬스터의 결말은 봐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분 탓이었다. 하지만 그런 켈슨의 두 팔을 한쪽씩 잡아 올리면서 페란드와 제란드가 거의 질질 끄는 꼴로 데려간다!
“어? 야! 이봐!”
하지만 일행은 곧 터커가 뒹굴다가 묶인 자리 앞에서 멈춰야 했다.
암벽의 입구에는 가죽 장막이 둘러쳐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