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6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60)
철그렁, 털썩.
쇠사슬에 묶인 뮤로젠이 터커 옆으로 굴렀다.
켈슨은 흠칫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뮤로젠의 비명은 터커처럼 더 이상 들리지 않지만, 데굴거리며 뒹굴면서 저쪽의 움직임에 이모저모로 방해가 되던 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팔딱거리면서 날뛰도록 둘 수도 없었을 테니, 아예 뮤로젠을 사슬로 감아 이쪽으로 내던진 것이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터커와 뮤로젠을 한 보따리처럼 밧줄에 감아 작은 바위에 덧대듯이 말아버렸다.
“이봐! 뭘 구경하고 있어! 가서 도와야…….”
“어, 사람도 많은데 우린 그냥 좀 지나가면 안 될까?”
벽처럼 세워진 가죽 장막 너머를 가리키면서 투란이 우웩거리는 말투로, 속이 몹시 불편해서 얼른 어디 가서 쉬고 싶다는 듯이 꺼낸 소리였다. 이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켈슨이 납득할 수 없는 말이다!
페란드와 제란드에게 붙들린 채가 아니라면, 켈슨도 일단은 대충 비상용 붕대를 꺼내 손을 감고 저쪽에 협력할 참이었다. 그런데 이 투란이란 녀석은…….
“못 지나가! 이미 입구는 닫혔어! 저 새끼를 정리할 때까지 여긴 봉쇄야! 어림도 없어! 저놈을 바닥에 완전히 갈아서 짓이길 때까지 여기 입구는 못 써! 그러니까 닥치고 가서 도와!”
“다시 열면 될 텐데?”
성질이 가시처럼 도와 열이 뻗친 대답이 나왔지만, 거기에 대해 투란은 한층 더 삐딱하게 되묻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대답했던 터커의 동료가 한층 더 성난 목소리로 대꾸를 한다!
“웃기지 마! 못 열어! 저 새끼 박살 낼 때까지, 라비엔 안쪽에서 마법으로 봉쇄된 거니까! 억지로 열면 이쪽 통로가 저절로 붕괴되지! 절대로 다시 못 열어!”
“그러니까…… 연락해서 다시 열면 되잖아?”
“이 썩…….”
머리 뚜껑이 불같이 타오르는 울화로 튕겨 올라갈 듯한 표정과 함께 그 손은 옆구리의 칼자루를 더듬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입으로 하는 대화보다는 그냥 칼부림으로 대화해서 이 삐딱한 녀석의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몬스터 놔두고 사람과 싸우고 싶어?”
화륵!
한 뼘가량 가볍게 치솟는 불길이 시알라가 내민 손바닥 위에서 춤을 췄다.
칼자루를 더듬던 터커 동료의 손이 빈 채로 위로 들어 올려졌다.
“젠장! 누가 싸운대! 지금 열고 싶어도 열 수 없다고! 저 새끼가 이 사람 저 사람…… 사람 가죽을 바꿔가면서 하도 죽여대서, 여는 건 순전히 안쪽에 맡겨놨다고! 이 상황을 정리 못 하면, 놓치거나 하면 우리도 못 들어가! 우리 가죽을 저게 벗겨 쓰고 있을 수도…… 빌어먹을! 켈슨, 뭐라고 좀 해봐! 이럴 때가 아니잖아!”
떠들던 자의 입에서 욕설과 함께 짜증이 터졌다.
어느 틈엔가 다들 싸우러 갔고, 자기만 남아서 멀뚱거리는 켈슨 패거리를 상대하는 꼴이 된 것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켈슨은 당황했다.
시알라를 봐도, 페란드나 제란드를 흘깃해도 전혀 저쪽에 가서 도울 낌새가 없다! 멜란드는 아예 가죽 장막 너머가 어떻게 생겼나 기웃대는 중이었고, 웩웩거리는 투란이란 녀석은 몹시 귀찮은 표정만 가득하잖나!
‘왜…… 이러지?’
켈슨은 짧은 동안이라도 깊이, 넓게 생각해야 했다.
홀로 남았던 켈슨을 돕기 위해서 기꺼이 나서줬던 남매였다.
그에 대해 지금 뭔가 이상할 정도로 귀찮아하고 속이 안 좋다고 과시하는 듯한 투란도 전혀 반대하는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즉, 지금 시알라 일행은 누군가를 도와 몬스터와 싸우는 것을 굳이 회피할 까닭이 없다! 물론 켈슨과는 과거의 조금 좋은 관계가 있고, 저 제이크 팀이 속한 연합은 뮤로젠과 제이크, 터커가 보인 꼴 때문에 매우 나쁜 관계로 서로를 알기 시작한 점도 있기는 하지만…… 몬스터가 날뛰는 지금 상황에서 그걸 따질 정도로 시알라가 악랄한 성격일 리가 없었다! 세 형제는 당연히 그런 누나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이유지?’
켈슨으로서는 뭔가 자신이 모르는 상황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뭐든지 간에 지금은 일단 도와야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저 암벽의 통로를 다시 열어 지나가려 한다면…….
“음, 어, 이봐! 나룬타였나?”
켈슨이 입을 열자, 홀로 남겨진 채로 이 일행을 상대하는데 짜증을 내던 터커의 동료가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켈슨은 서둘러 입을 움직여 소리를 토해낸다. 이놈 이름 따위는 지금 아무래도 좋으니까 일단 때려누이고 지나갈 수 있나 없나 생각해볼 낌새가 주변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느낌이었으므로!
“마법으로 닫았다고 했지? 용병을 썼나? 싸우지 않고 통로만 맡아주기로…… 마법사가 낀 용병을 썼어?”
“그래!”
나룬타도 저편의 치열함과 다르게 이쪽에서 미묘하게 과격해지는 낌새를 느낀 듯, 냉큼 켈슨에게 대꾸했다. 짧고 굵은 듯한 그 대답에 켈슨은 입술을 축이면서 얼른 말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그 용병 쪽 마법사가 이쪽을 계속 관찰하고 있다는 말이지? 여기 상황을 굳이 이쪽에서 알리지 않아도, 용병 쪽에서 점검하고 판단하는 거잖아?”
“맞아! 그러니까…….”
“여기가 정리되지 않으면 용병 쪽에서는 연합이 몰살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암벽 통로를 봉쇄해둘 테고?”
“맞아! 저 몬스터 새끼는 우리가 잡을 거니까! 우리 동료의 원한이라고, 용병 손에 맡길 수는 없잖아!”
나룬타는 켈슨의 물음에 답하면서, 으득 이를 갈기도 했다.
켈슨은 여기까지 대화를 하고 시알라를 바라봤다. 더 이상의 설명은 마법사인 시알라에게 굳이 필요 없지 않냐는 듯…….
시알라가 그 눈길과 오간 대화를 침착하게 듣고서는 불쑥 말한다.
“제란드, 어때?”
켈슨의 눈이 끔벅거렸다.
나룬타 역시 ‘음?’ 하면서 시알라를 흘깃했다.
나룬타가 한 말을 확인하려면 여기가 마법에 의해 관찰되는가를 체크해 보면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은 원래 마법사가 하는 짓 아닌가? 켈슨이나 나룬타로서는 곱고 얇은 가죽으로 감싸 손가락을 다 드러낸 시알라가 체크할 것을 예상했는데, 옆에다가 묻는다?
한데 제란드가 머뭇거림 없이 대답하고 있었다.
“이제 말이 되네. ‘전장(戰場)의 눈’과 비슷한 감시 주문일 거야. 주변에 주욱 깔려 있으면서도 저 연합이란 녀석과 따로 노는가 싶었는데…… 그런 식으로 계약한 거라면, 일리가 있어. 여기 다 죽든가, 아니면 저걸 완전히 짓이겨 놓기 전에는 정말로 통로를 막아둘 참인가 본데…… 아무래도 틀렸다 싶으면 그냥 통로를 무너뜨릴 수도 있겠어. 고블린이나 쟈칼릭이 떼로 기어들어올 경우도 가정해서 뚫어놓은 통로일 테니까.”
이에 시알라는 후우 하고 낮은 숨을 토해냈고, 투란을 흘깃했다.
투란은 거뭇하고 불그스름한 눈가를 한 손으로 비비면서 투덜거린다.
“그러니까…… 저게 어떻게든 정리돼야 통로를 열어준다고? 스킨 리퍼가 이기면…… 열어줄 리가 없고? 아, 뭐 이렇게 귀찮아……. 웨엑, 속도 안 좋은데…….”
나룬타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투란을 다시 바라봤다.
켈슨도 당황해서 투란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투란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뭔가 이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어긋나고 있잖은가.
이때 멜란드의 목소리가 휘파람처럼 가볍게 울려 나온다.
“와아, 저거 아주 든든하게 막아놨는데? 바깥쪽에서 어떻게 하려고 들면 안쪽에서 그냥 무너지게 해놨나 봐. 기우뚱하니 기울어진 바위문이라니…… 균형이 흐트러지면 그냥 쿠쾅하고 막히겠어!”
이에 시알라가 투란에게 말한다.
“저 숫자로 밀어붙이면 어쨌든 찍어누르기는 할 것 같은데…… 기다릴래?”
“반나절이나? 지루하잖아. 하아!”
투란의 대꾸는 켈슨에게 어이없게 들렸다.
하지만 나룬타는 화들짝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어? 너, 어떻게 우리 계획을…….”
연합이 스킨 리퍼를 때려잡기 위해 세운 계획은 분명한 지구전(持久戰)이었다.
도망칠 수 없게, 스킨 리퍼가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넓은 방패로 막으면서 계속해서 두들겨 패서 짓이기는 것!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하루를 돌아가면서 두들겨 팬다는 작정을 했다. 계획대로라면 반나절 정도 두들겨 패면 스킨 리퍼도 진흙탕죽이 되어 땅바닥에 퍼질 테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그 두 배의 시간을 전투시간으로 잡고 준비한 것이다.
거의 이백여 명이 되는 숫자가 동원되었으니, 주변에 다른 방해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 계획이었다. 다른 이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모르지만…… 옆에서 이렇게 잠깐 본다고 그냥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데 어떻게 이 이상한 녀석은…….
“그게 뭔 계획이야! 대책 없을 때 하는 짓이면서!”
투란이 투덜거렸다.
나룬타는 발끈한 표정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대꾸는 못 했다.
사실 대책이 없어서 택한 것이 맞았고, 분명히 계획이라기보다는 전술(戰術)이었다.
마법사의 지원이 미약하고, 적당한 장비를 구하기도 어려웠던 연합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던 셈이다.
“얼간이 성기사도 아니면서 뭔 짓이냐고…… 에이, 모르겠다. 기다리는 게 더 귀찮아! 그냥 공평하게 처리하면 되겠지!”
“응? 투란?”
투덜거림의 끝말이 이상한 것을 느낀 시알라가 흠칫하며 부르는 순간, 투란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여린 안개와 같은 잔영(殘影), 가볍고 은은하게 땅이 울리는 소리뿐이었다.
두둥!
터텅, 찌익!
가죽방패가 두들겨지면서 찢기는 거친 소리가 울렸다.
“젠장! 찢어졌다!”
방패를 든 자가 외치면서 허둥지둥 뒤로 물러섰다.
그 자리를 채우듯이 쇠망치와 쇠몽둥이가 날아들었다.
잘못하면 피투성이 주먹을 내미는 몬스터뿐 아니라 찢긴 방패를 든 이도 같이 찍어버릴 듯한 험악한 워해머와 배틀메이스였다.
하지만 찢어진 가죽 방패를 내버리면서 뒤로 눕듯이 몸을 날린 탓에 사람은 날아든 쇳덩이의 궤도에서 피했고, 몬스터만이 쇠뭉치에 맞았다.
퍽, 퍽!
“피 튕긴다! 닿지 마!”
걸쭉하게 공중에 퍼지면서 얇고 가는 그물막처럼 워해머와 배틀메이스에 끈적하게 들러붙은 핏덩이는 땅에 떨어지거나 흐르는 낌새가 전혀 없었다. 서둘러 워해머와 배틀메이스가 빼돌려질 때도, 핏덩이는 끝까지 묻어나오지 않았다. 끈적하게 늘어지다가 툭툭 떨어져 가면서 다시 몬스터의 몸에 달라붙듯이 수축할 뿐이다.
“방심하지 마!”
누군가 외쳤고, 다시 새로운 가죽방패를 내세운 이들이 나섰다.
원래 사람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 차림새를 했던 스킨 리퍼는 쇠뭉치에 연이어 두들겨 맞은 탓에 사람이 쇳덩이에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낸 듯한 모습을 한 채였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가죽갑옷이 찢기고, 살갗이 뼈까지 짓이겨질 정도의 상처를 입은 채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스킨 리퍼는 험악하게 피범벅이 된 주먹을 휘둘렀고…… 괜히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이 아니란 듯이 칼도 휘둘렀다. 누군가 놓친 것이 피칠을 한 스킨 리퍼의 손에 닿으면 다시 무기가 되는 광경도 종종 벌어졌다.
“젠장, 팔이 무겁다! 교대해줘!”
“내가 들어간다! 하나, 둘…… 빠져!”
앞장서서 방패로 타격을 막아내던 이가 뒤로 주춤하다가 옆으로 굴렀고, 그 자리로 껑충 다른 이가 뛰어들면서 가죽방패를 들이댔다.
터텅!
쇠나 나무를 덧대는 대신에 가죽이라서 가벼웠지만, 주먹질에 세차게 밀려나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가죽방패의 아쉬움을 대신하듯 다시 쇠뭉치들이 날아들었고…….
“죽일 테다! 다 죽일 테다!”
스킨 리퍼의 입에서 선명한 분노와 증오의 외침이 터졌다.
“저런 씨!”
“스킨 리퍼라고!”
“동요하지 마!”
“몬스터에 현혹되지 마!”
사람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 행세를 하는 몬스터에 대한 증오, 그에 대한 설명, 그 때문에 흐트러질 듯한 진형과 이에 대한 염려……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채로 전투는 격렬했다.
그 격렬함에서 땀을 흘리고, 피와 살이 뒤틀리는 충격을 견뎌내면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다음에 찾아올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몬스터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결말이었으니!
휘이이!
새하얀 안개가 허공에서 짙은 물거품처럼 맺혔고, 그게 뭔가 그저 움찔하며 고개를 들고 확인하려는 찰나…… 그것이 떨어졌다.
껑충거리면서 사방으로 칼질과 주먹질을 하던 스킨 리퍼가 사라졌다.
콰앙!
조금 늦은 폭음과 자욱한 안개가 질풍처럼 번져 나갔다.
방패와 쇠뭉치를 든 채로 연합의 몬스터 헌터들이 뒤로 누워야 했다.
스킨 리퍼가 있던 자리에 얕게, 넓게 파인 구덩이가 생겨났고 그 구덩이 한복판에 하얀 안개를 몸에 두른…… 마치 달아오른 그 오른쪽 괴물손의 붉은 열기를 식히려는 탓에 피어난 안개를 두른 자가 몸을 일으키는 광경이 뒤늦게 모두의 눈에 비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