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6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65)
“경계도시 밖이면…… 조그마한 마을이라든가, 그냥 좀 큰 야영지 정도가 아니었어? 이렇게 큰 도시가 왕국 경계 밖이라니! 기가둠에 이런 도시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
투란의 중얼거림, 갸웃거림은 앞서 걷던 켈슨을 딱 멈추게 했다.
켈슨만 멈추지도 않았고, 시알라와 멜란드도 멈췄다.
곁에서는 제란드가 멈춰 투란에게 묻는다.
“투란, 기가둠이라니?”
문득 투란은 다들 자신이 중얼거린 소리 중에 왕국 기가둠에 대해서 짙은 의아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째서 그러는지 확인해 묻지 않을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여기 기가둠 왕국 북부 아니야?”
“거긴 여기서 한참 남쪽으로, 긴 해변지역을 따라 내려간 다음에 나올걸?”
멜란드가 너무 황당하다는 듯이 먼저 대꾸했다.
이 대꾸는 바로 투란을 당황하게 했다.
“기가둠 북부가 여기서 한참 남쪽? 그럼, 여기 기가둠 왕국이 아니란 소리잖아!”
“그야 당연하지! 여긴…….”
멜란드는 대꾸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시알라의 손이 가볍게 멜란드의 얼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때문이었다. 그렇게 막내의 말을 일단 막은 다음, 시알라가 진지하게 묻는다.
“투란, 거기…… 에 진입할 때, 기가둠 왕국이었어?”
“어? 아, 그게 아마 로그람과 기가둠 왕국의 틈새? 그쯤 되었을 텐데…….”
투란이 멍하니 대꾸하다가 말을 흐리며 멈췄다.
트림하는 듯한 소리를 한 번 더 내고 눈을 깜박거리는 투란을 보면서, 시알라와 멜란드부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제란드는 낮은 신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그러는 사이 간격을 두고 맨 뒤에 있던 페란드가 다가와 말한다.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길드부터 가야지.”
켈슨이 이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는 듯…….
“도대체 어디까지 다녀온 거냐, 너희들?”
중얼거림을 토해냈지만 남매는 물론이고 투란도 새는 웃음 같은 표정을 살짝 지어 보일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켈슨은 멋대로 추측을 하면서 다시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기가둠? 로그람? 거기서 온 녀석이랑 대체 어디서 만난 거야? 아니, 그리고 왜 몰라? 어디를 다녀온 거야 대체…….’
조금 복잡한 생각이 맴도는 사이에 길은 굽고 뻗고, 엮이면서 점차 낮은 곳을 향하는 비탈이 되어 갔다. 비탈은 얼마 내려가지 않아 금방 끝났고, 넓고 큰 광장을 중심으로 암벽을 깎고 파내서 건물인 양 꾸며놓은 곳에 이르렀다.
“여기는……?”
멜란드가 의아한 소리를 냈다.
켈슨이 바로 대답한다.
“맞아. 예전에 암시장 흉내를 내던 곳이지.”
이 대답에 제란드가 기억을 더듬다가 멜란드보다 더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다.
“여기 점령하고 있던 패거리가 있지 않았어요? 자기네 구역이라고, 암시장처럼 꾸며놓고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입장료를 받았던 곳 같은데?”
“그랬지.”
켈슨의 대답은 이번에도 바로 나왔다.
시알라가 주욱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한다.
“그 패거리랑 닮은 사람은 전혀 없는데요?”
이 낮은 광장 구역을 점령하고 있던 녀석들은 꽤 지독했다.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렸고, 유지하기 위해서도 피를 흘렸다.
그런데 불과 이, 삼 년 사이에 한 명도 없다?
켈슨이 씁쓸하게, 머뭇거림 없이 말한다.
“없지. 전부 죽었거든. 혹시나 살아 있다 해도, 다시는 라비엔에서 볼 수 없는 꼴이 되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멜란드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켈슨은 문득 시알라도, 제란드와 페란드, 투란까지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까 잠깐 얘기했었잖아. 길드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사건…… 그때, 바위날개의 그림 뱃이 몰고 온 와이번 무리는 라비엔을 온통 휘저었어. 높디높은 길드 거처는 격전의 장소였을 뿐이고, 라비엔이 전부 휘말린 일이었거든. 갑작스러웠으니까, 다들 일단 대피할 곳을 찾았고, 하늘에서 날아든 놈에게서 피하려 하다 보니 낮은 곳으로 우르르 몰려갈 수밖에 없었지. 여기에도 당연히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몰려왔어. 그런데 그런 상황인데도 입장료를 내라는 둥, 여기가 자기 구역이라는 둥 하면서…… 무기를 들고 막으려 한 거야. 당연히 충돌이 일어났고, 그런 상황에서 이 구역이 자기네 거니 뭐니 하는 놈들을 살려둘 수 없다고, 하늘의 몬스터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쓸어내 버린 거야.”
“끝까지 막고 싸웠다는 건가요?”
시알라가 낯을 찌푸린 채로 물었다.
몬스터와의 싸움이 벌어진 상황에서 피해온 이들을 막아서는 것부터가 이미 잔뜩 미움받을 일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무기를 들이대고 피를 뿌리기 시작했다면…… 다른 곳도 아닌 라비엔에서 그런 식으로 자기 목숨을 위협하는 상대에게 적당히 넘어가 줄 작자는 없다!
하지만 그건 너무 멍청하지 않은가?
평소라면 필요 없는 충돌을 피하려고 다들 그러려나 할 수도 있을 테지만, 라비엔 전체가 휩쓸린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그런 짓이라니…… 그건 라비엔 전체를 적으로 돌린 짓이나 똑같다. 근본적으로 여기까지 흘러왔다 해도 아직 인간이고 싶어 하며 몬스터와 싸우는 모두를 외면한 짓이니까.
켈슨이 아직 그 기억이 선명하다는 듯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몰아내면서 대답한다.
“길드 헌터까지 나서서 급히 중재해보려 했지만, 한마디도 듣지 않았어. 그리고 대화를 할 시간 따위는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런 녀석들이 있다는 것조차 다들 말하기 싫어할 정도야.”
“에? 그건……?”
멜란드가 납득하기 힘들다는 듯이 갸웃했다.
켈슨은 한쪽을 향해 걸어 나가면서 말을 잇는다.
“녀석들은 그 싸움에 전혀 나서려 하지도 않았는데, 갖고 있는 물품 중에서 그 싸움에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것이 많았거든. 포션부터 시작해서 크로스보우는 물론이고, 간이 투석기에다가 쇠가시 공 같은 것까지…… 그걸 다 움켜쥐고서도 싸움에 나설 시늉도 하지 않으면서 구역 권리만 내세웠지. 길드 헌터의 중재를 거부한 순간, 사형선고가 떨어진 셈이었어. 왜 그랬는지는 몰라. 이제는 알려고들 하지도 않지. 뭔 미친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는 거지. 그래서 말하지 않아.”
시알라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묻듯이 말한다.
“그럼, 길드가 이리로 거처를 옮긴 까닭이……?”
켈슨이 느리게 계속 걸으며, 따라오는 남매와 투란에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잇는다.
“그때 중재를 시도했던 헌터가 무지하게 화가 났었거든. 그래서 그 싸움 이후로, 와이번 무리와 바위날개 그림 뱃의 습격까지 끝장낸 다음에 말했지. 앞으로 라비엔에서 구역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이딴 짓 하는 경우에는 헌터 길드가 직접 나서서 그 구역을 정리해버리겠다고 말이야.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몬스터니까, 헌터 길드가 사정 봐줄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마법사가 새 거처를 찾기도 했고 이러쿵저러쿵하다 보니…… 이리로 옮기게 된 거지. 저기야, 새로운…… 벌써 일, 이 년 정도 된 거니까 새롭지는 않지만, 시알라에게는 새롭겠지?”
“그러네요.”
시알라는 입구에서 낮게 아래로 비탈져 내려가는 암벽의 굴 같은 통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하늘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듯한 계단이 길드의 입구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방향이 반대인 듯한 모양이었다.
그 입구를 보면서 투란이 불쑥 중얼거린다.
“마법사는 있는 거겠지?”
켈슨은 우엑하는 투란을 흘깃하고 답한다.
“있어. 상아탑에서 길드로 파견된 마법사…… 거의 다른 데 가지 않고, 길드 안에 머무니까.”
안쪽은 자연스럽게 이뤄진 석굴의 형태를 사람에게 맞게 여러 번 깎아내고, 방을 만들고 벽처럼 꾸며놓은 모습이었다. 입구의 맞은편 한쪽에 일부러 가져다 놓은 목재(木材)의 긴 테이블은 펍의 바처럼 보였다. 거기에 닿기 전에 곳곳에 늘어진 테이블은 딱 퍼브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고, 여러 사람이 소곤거리거나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채로 자리를 잡은 채였다.
켈슨이 앞장서서 들어서자, 그들 중 몇 명이 흘깃했지만 곧 눈길을 돌렸다.
켈슨과 누가 함께 왔든 간에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란 듯, 남의 일에 그렇게 나설 필요가 없다는 듯한 무관심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바에 다가서면서, 그 근처의 몇 명은 켈슨과 일행에 슬슬 눈길을 주면서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바에 도달한 켈슨이 그 위에 놓인 작은 종을 들고 흔들자, 종소리에 맞추듯이 눈길을 주던 한 명이 일어나서 바 뒤로 가서 서며 말한다.
“길드에 무슨 볼일이라도?”
여태 놀고 있었지만, 이제 접수담당의 할 일이 되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켈슨은 그를 보면서 갸웃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마법사를 보러 왔는데?”
“이런, 이런!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다니! 내가 바로 마법사잖아!”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대답이었고, 켈슨의 얼굴은 구겨졌다.
“이봐, 상아탑에서 길드로 파견 나온 마법사를 봐야 한다고! 길드를 찾아온 거라고! 장난치고 농담할 때가…….”
화르륵!
“누가 장난? 누가 농담?”
손아귀를 오므리며 허공에서 피어난 불꽃을 잡아 바 위에 내리찍으며 나온 대답이었다. 불꽃은 바위에 둥근 윤곽을 지닌 꽃무늬를 검게 새겨 넣었다. 그 꽃무늬를 내려다보면서, 스스로를 마법사라 증명한 사내가 말한다.
“봤지? 이게 바로 상아탑의 마크라고! 에헴!”
이 으스대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이 흘렀다.
아무래도 이 사내, 마법사의 행동이 그들에게는 익숙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켈슨은 웃지 않았다. 웃을 수가 없었다.
아무 마법사나 찾아온 것이 아니었고, 시알라네는 분명히 상아탑의 파견 마법사를 찾아온 것인데…… 이 녀석은 대체 누구길래 여기서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가?
하지만 켈슨이 더 따져 묻기 전에 나직한 투란의 목소리가 울린다.
“아, 다 왔다고 생각해서 방심했나…… 참기 힘든데? 시알라, 큰 거 한 방 날려줘. 그러면 보초 세운 멍청이에게 일 터졌다고 생각하고 진짜가 나오겠지.”
“큰 거 한 방?”
켈슨은 이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투란이 꺼낸 소리는 나른하고 웩웩거리는 낌새가 섞여 있어서 무슨 장난처럼 들리고 있었다. 그러니 주변에서 시알라 남매를 빼고 누구도 이 말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꼴이 역력했다!
하지만 켈슨은 이미 한 번 보지 않았던가!
투란이 저렇게 옹알대는 듯한 말 한마디와 함께 저질렀던 짓!
만약 시알라가 이 소리에 뭔지 모르지만, 진짜 ‘큰 거 한 방’을…….
화아앗!
“시, 시알라!”
시알라의 손에서 붉게 피어나는 광채, 거의 사람 머리통만 하게 시작해서 사람 몸통 크기로 커진 빛에서 열기가 화악 뿜어져 나왔다.
이는 바 너머에 자리 잡고 낄낄대며 바 위에 낙인(烙印)을 새기던 사내부터 하얗게 질리게 만들었다.
“으어? 우아아앗! 자, 잠깐! 멈추어어엇!”
날아드는 시뻘건 광채 앞에서 더 이상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내는 옆으로 쏜살같이 몸을 날리며 피했다.
바가 사라졌다.
나뭇조각이 산산이 흩어지며 휘날렸다.
소리는 뒤늦게 지하에 자리 잡은 퍼브의 풍경을 흔들며 퍼진다.
쿠우웅!
켈슨은 몸이 떨리는 것부터 느꼈다.
어느새 자신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누군가에게 등을 부딪치며 멈춘 것도 켈슨은 조금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제란드이며, 뭐라 속삭인다는 것도 풍경을 흔드는 소리 속에서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응, 반응이 있네. 온다.”
‘와? 반응? 뭐니, 그게?’
입술을 달싹였지만, 켈슨의 입에서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다시 목청 가다듬고 묻기도 이상하잖나?
그래서 켈슨은 묻기보다는 바쁘게 주변을 둘러보는 데 집중해야 했다.
이제부터 벌어진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봐야 한다는,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기묘한 의무감 같은 호기심이 켈슨을 사로잡은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켈슨에게 호응하듯, 박살 나서 흩어진 바 너머의 벽이 격한 돌소리를 내면서 갈라지며 열렸다. 마치 이제까지 벽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사실은 문이었다고 주장하듯!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이 쿠릉거리는 돌의 마찰음을 째듯이 터져 나온다.
“로이! 이 망할 놈의 새끼! 말썽 피우지 말고 있으라 했지! 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용돈 부족한데 네 현상금을 보태주고 싶냐? 한 번 더 까불면 그냥 묶어서 현상금 타 먹고 만다고 경고했지? 아니, 그냥 뒈질래?”
이 외침이 바에 낙인을 찍던 사내, 로이의 다급한 대꾸를 불러냈다.
“아니라고요! 내가 아냐! 난 이런 짓 못 해! 보면 알잖아! 당신 손님이라고, 당신 찾아온 손님이 이랬어! 내가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