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7)
“도저히 어떻게 안 될 것 같은 몬스터를 삼켰다면…… 뭐, 없애야지.”
몬스터 로드는 간단히 말했다.
부적의 힘으로 누를 수 없는, 다룰 수 없는 몬스터를 삼킨 자들에 대해, 그들이 겪게 되는 참혹한 상태에 대해 말하면서 몬스터 로드를 꿈꾸던 애들을 겁주면서 한 소리였다.
모르고 삼킨 몬스터가 그렇게 다룰 수 없는 놈이라면 어쩔 거냐고 묻는 말에 그렇게 답했다.
몬스터 엠블럼이 없는 자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물론 문장을 갖춘 자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저게 그거로구나!’
어떤 자들은 구멍이라고 부르고, 어떤 자들은 밑바닥이라고 부르는 몬스터 엠블럼의 효과.
삼킨 몬스터를 지워 없앤다는 그것.
그것이 투란에게는 ‘심연’이라고 뇌리를 흔들며 깨달으라 강요하듯이 나타났다!
소용돌이처럼, 나선으로 저 아래로부터 새카만 자취를 남기며 심연의 금이 그어져 올라오며 천칭을 휘감았고, 천칭의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고무쇠를 어루만지려는 듯이 치솟았다.
고무쇠는 새카만 심연의 금마저 악마의 심장이 뿜어낸 넝쿨 가닥이라는 듯이 반항하며 부푼 손톱과 발톱을 휘둘렀다.
손톱과 발톱이 새카만 금과 닿으면서 지워졌고, 끊어지며 공허 속에 사라졌다.
몬스터라 할지라도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질러야 할 듯한 상황이 분명했다.
그러나 고무쇠가 다시 포효하며 그르렁거리는 순간, 잘려 나가 사라진 손톱 발톱이 다시 생겨났다. 몸속에서 끊임없이 분출시켜 내는 조각처럼.
투란은 그 광경을 알아차리고 어이없어했다.
저건 고무쇠에게 갖춰진 능력이 아니었다.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이 이 풍경 속에서 고무쇠의 사라진 조각을 복원하고 다시 형성해 준 것에 불과했다.
‘아니, 왜 내 생각은 묻지도 않고!’
뭔가 뜬금없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투란의 마음을 두들기며 찾아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상황을, 이 풍경을 다스리지 못하는 탓이라는 자각도 생겨나고 있었다.
몬스터 로드는 투란, 이 상황을 다스려야 하는 자는 투란 자신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풍경 속에서 투란은 몸이 없었다.
있는 것은…….
천칭의 형상이 거센 고무쇠의 손톱 발톱에 깨지고, 사람의 모양의 구멍 속에 담긴 악마의 심장마저 노출되었다. 고무쇠는 그 두근거리는 구근의 심장에 가차 없이 손톱을 박았다.
‘나, 지금 대체 어떤 몰골인 거지?’
더욱 깊고 짙게 뿜어져 나오는 새카만 심연의 허무를 보면서 투란은 공허를 외면하기 위한 생각에 집중했다.
* * *
붉은 돌기에서 검은 빛이 여리게 배어 나왔고, 곧 새카맣게 번졌다.
새카만 잉크처럼 투란의 찢긴 상처 위로 검은 광채가 번져 가고, 투란의 몸을 떠나 주변으로 흐느적거리며 뿜어져 나갔다. 허공을 물들이는 검은 잉크처럼.
이 광경을 열린 눈동자로 바라보며 투란은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과 땅을 관통하던 그 새카만 허무의 기둥.
투란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새카만 빛, 이 어둠은 그것과 똑같았다.
그리고 검은 파동이 투란에게서 뿜어져 나와 번지니, 투란을 중심으로 세상이 기울어졌다가 튕겨 나가는 듯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물결이 사라지고, 바닥이 파이고, 허공이 떨며 밀려 나가는 듯했다.
절벽의 형태가 기울어지고, 지형조차 변해 갔다.
* * *
‘안 돼!’
투란은 마음으로 외치고, 문장 속 풍경으로 집중했다.
천칭의 중심축, 저 아래편에 열린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온 새카만 금은 확실하게 천칭을 타고 올라와 톱니 마개에 닿고 있었다.
그렇게 분명하게 새 나가고 있었다.
세상으로!
그워어어어!
고무쇠가 부르짖었다.
천칭을 찢던 놈이 톱니 마개를 긁어 대는 모습을 보였다.
그 의미를 아주 선명하게 투란에게 알 수 있는 짓이었다.
‘저것도 기어 나가겠다고?’
새카만 심연의 허무에게 찢기면서, 끊임없이 자신이 다시 형성되는 이점까지 이용하며 저 몬스터 고무쇠는 투란을 벗어나 다시 세상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저 심연의 가닥이 이 안에서 벗어나 저 밖으로 기어 나가듯이.
분명한 분노가 투란의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왜 이런 꼴이 되었는가!
‘내 탓?’
자각은 금세 투란을 찾아왔다.
몬스터 로드의 금기를 범한 것은 투란이었다.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짓을 저지른 것도 투란이었다.
그리고 지금 투란에게 그 책임을 지려는 듯한 공허가 거대하게 나타나 있었다!
‘왜! 내게는 몬스터가 있다고! 둘이나 있잖아!’
날뛰며 빠져나가려는 고무쇠가 아니더라도, 아직 투란은 천칭을 휘감으며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쓰는 악마의 심장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공허 속에서, 심연의 허무가 나선으로 피어나는 꼴을 지켜보는 꼴인가!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투란은 다시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둘러봐야 했다.
* * *
손발이 고무쇠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가슴 언저리에서 붉게 물든 채로 흩어져 있던 고무쇠의 잔해가 온전한 형태를 찾으려는 듯이 부풀고 있었다. 마치 투란의 몸에 겹쳐진 고무쇠가 밖으로 나가려는 듯, 꿈틀거리며 부풀어 닿는 것을 마구 긁고 할퀴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몸의 갈라진 상처, 찢어진 곳을 물들인 새카만 허무는 주변에 존재하는 것을 모조리 지워 버리는 듯이 번지는 중이었다.
세계를 모조리 지우겠다는 듯한 허무!
되살아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날뛰는 몬스터!
문장 속의 풍경과 다르지 않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모두 아련한 저편처럼 느끼게 해 주는 공허.
투란은 그 공허가 서서히 자신을 채우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이 광경과 문장 속의 풍경에 몰입하려 해도.
* * *
‘오러! 어디 있어!’
투란은 마음으로 외쳤다.
처음부터, 몬스터를 단 하나도 갖추지 못한 문장 속에서 투란의 힘으로 나타났던 여리디여린 힘이었다. 그 힘이 투란에게 기회를 줘서 악마의 심장을 삼킬 수 있었다. 그 힘을 통해 투란은 문장을 억지로 열어 고무쇠의 정수를 삼키려 했다.
그러니 이 순간 투란이 믿고 기댈 것은 그 여리디여린 힘뿐이었다.
스산하게 스며드는 듯한 공허를 느끼며 투란은 더욱 간절하게 그 여린 힘, ‘오러’를 소망했다.
고무쇠가 더욱 발광하며, 문장 속의 천칭을 깨고 축을 부술 듯이 날뛰었다.
악마의 심장은 부서져 내리려는 천칭의 중심을 휘감으며 저 심연으로 이어진 축을 버텨 내려 했다.
이런 광경이 뿜어내는 억센 감각이 투란을 자극했고, 도저히 그 여린 힘에는 도달하지 못할 듯한 충격을 뿜어냈다.
새삼 분노가 투란의 마음을 채웠다.
이제는 저걸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났다.
저 고무쇠를 없애고 다시 이 풍경을 고요하게 만들고 싶었다.
악마의 심장으로 껍질을 만들고 평온하게…….
‘어?’
돌연 찾아온 오싹함이 투란의 마음을 떨게 했다.
공허가 투란을 채울 듯이 스며들었다.
고무쇠도 이를 느낀 듯 더욱 발악했고, 악마의 심장은 허겁지겁 망가져 가는 천칭을 챙기며 껍질을 세우고 둥지를 만들려 했다.
하나는 부수고 빠져나가려 하고, 하나는 챙겨서 버티려 한다.
그런 두 괴물을 버티며 간신히 서 있는 천칭의 중심축은 마치 저 아래 자리 잡은 심연을 관통하는 기둥처럼 보였다.
투란은 이 모든 것을 까마득한 거리에서 지켜보면서 아주 선명하게 ‘지각’하는 자신을 알아차려야 했다.
여리고, 희미한 힘도 그 ‘지각’ 속에 담겨 있었다.
‘공허……?’
투란은 자신이 ‘오러’라 부르는 힘이 이 공허와 함께 하는 것을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울고 싶지만 눈물을 흘릴 수가 없는 몸이고, 화내고 싶지만 마음은 이 공허 속에서 공포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희미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분명하게 다가왔다.
* * *
새카만 잉크가 허공을 물들였다.
투란의 몸에서 붉게 달아오른 채로 빠져나오려는 고무쇠가 휘두르는 손발이 길게 늘어지다가 새카만 허무에 닿으며 잘리고 으스러지며 사라졌다.
그래도 고무쇠는 다시 뿜어내듯이 생성한 손톱 발톱을 휘두르지만, 어느새 주변의 모든 것이 다 같이 시커먼 허무 속으로 휘말려들고 있었다.
‘존재’를 향해 허무가 파문을 흘렸고, 이에 대항하려는 듯한 흐름이 주변을 채웠다.
땅이 이지러지고, 허공에서 불길이 솟아나고, 번개가 휘몰아치고…….
투란은 그 모든 것이 작다고 느꼈다.
분명히 작았다.
그가 휩쓸려 갔던 그 거대한, 새카만 기둥과 비교하면.
—오겠는가?
투란은 기억해 냈다.
그 허무 속에서 희미하게 묻는 듯했던 것.
‘아니, 나는 할 일이 있다! 세상에 남아야 해!’
그때 자신이 했던 대답이 되돌아와 투란의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러면 떠나라.
그 허무는 투란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 * *
공허를 품으며 공허에 안긴 채로, 투란은 보다 섬세하게 통찰해야 했다.
저 아래 열린 심연, 거기 박힌 천칭의 축과 악마의 심장이 담긴 천칭의 본체, 그 위의 톱니 마개에 매달린 고무쇠…….
고무쇠를 더 이상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생각할 여유도 모자랐다.
적어도 고무쇠가 더 날뛰는 것만은 어떻게든 멈춰 놔야 했다.
‘저걸 이 공허 속에 팽개쳐 놓으면 좀 괜찮으려나?’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고무쇠가 긁고 매달릴 것이 없다면, 이 공허 안에서 뱅뱅 혼자 돌고 있게 한다면 정말 생각할 여유가 생길 듯하잖나?
아주 그럴듯하다고 투란이 여긴 순간, 고무쇠가 당겨졌다.
공허에 붙들린 듯, 고무쇠는 천칭을 밟고 톱니 마개를 긁어대던 곳에서 확 당겨졌다! 그러나 팽개쳐지는 것은 피했다. 길게 늘어난 고무쇠의 팔다리가 손톱과 발톱을 톱니 마개와 천칭에 꽉 박으면서 버틴 듯한 모습이었다.
‘어라?’
투란은 의아해하면서도 분명하게 이를 통찰했다.
고무쇠의 손톱, 발톱은 붉게 녹아내린 형상으로 천칭과 톱니 마개 쪽에 얽혀 있었고 거기서부터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몰골로 버티고 있었다. 온전한 고무쇠였다면 지금 이 순간 공허에 기댈 곳 없이 내던져진 채로 허우적댈 듯했다.
‘마력!’
투란의 통찰이 천칭을 더듬었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형성하는데 사용하는 힘, 고유 마력이라 일컬어지는 그 힘은 이 공허에서 희미하게 흐르는 여린 힘과 다르다. 그 힘이 천칭을 이루고 있었고, 저 아래 심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투란은 보다 더 깊이 천칭의 형상으로 통찰력을 집중했다.
왜 문장 속의 풍경에 저 천칭이 머물고 있는가?
어째서 악마의 심장이 그 중심부에 담겨 있는가?
고무쇠는 어떻게 저기 매달려 버틸 수 있는가?
몬스터 로드로서 투란은 통찰하고 생각해야 했다.
공허가 더 깊이 투란을 채우고, 완전히 없애기 전에!
* * *
새카만 잉크가 투란의 형상 위로 그림자처럼 덧씌워졌다.
허무의 파문이 요동치며 그림자와 겹쳐진 투란에게서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휩쓸었다.
투란의 몸에서 생성되며 부풀어 나오려던 고무쇠가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허무의 검은 바탕에 으스러지며 사그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곧 투란의 팔이 치켜 올려지고, 고무쇠의 손이 길게 뻗어 나오며 다시 저편을 긁으려 하기도 했다.
몬스터는 포기하는 법을 모르는 걸까?
투란의 눈동자가 그 광경을 봤고, 입술이 달싹이며 소리 없는 한마디를 흘려 낸다.
‘까불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