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66)
Chapter 74. 라비엔, 메이지
마법사의 눈길이 번뜩거리는 광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사방을 휩쓸었다. 누가 뭐라 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어떤 상황인가를 나름대로 먼저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눈빛을 받는 이들은 금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로이는 마법사가 뭐라 하기 전에, 보다 빠르게 변명을 시작해야 했다.
“생각해 보라고요! 내가 이럴 리가 없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짓이냐고! 난 그저 종을 치길래 장난삼아 바에 섰던 것뿐이라고! 다들 봤어! 봤다니까!”
마법사는 로이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변명에 귀를 기울이는 시늉도 하지 않은 채, 마법사의 눈길이 옮겨졌고…… 그 눈길을 받은 켈슨이 움찔했다.
저렇게 노려보면 무슨 소리든 일단 질러야 할 듯하잖은가!
“어, 어…… 오, 오랜만이네요?”
“켈슨…… 켈슨! 일 년 넘게 안보이더니만? 길드에는 발을 끊은 줄 알았는데?”
“에? 자, 잠깐! 그게 뭔 소리…… 입니까? 자주는 아니지만 길드가 이쪽으로 옮기고 나서도 몇 달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들렀다고요!”
켈슨은 자신도 모르게 마법사에게 변명을 하고 말았다.
마법사의 눈이 조금 더 가늘어졌다.
“몇 달에 한 번을 꼬박꼬박이라고 하는 거는…… 좀 그렇잖아, 켈슨?”
“조,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튼 일 년 넘게 길드에 들른 적 없는 거는 아니라고요! 일 년 넘게 얼굴 안 보인거는 내가 아니고 루케인, 길드 상담 마법사인 당신이잖아……요! 상담역이면서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흠? 흠…… 그래서 그거 따지려고 누굴 데려와서 종 대신에 바를 때려부수고 난리를 피운 거야?”
“에? 엥? 아니, 그게 아니지! 왜 얘기가 그렇게 굴러가! 종은 얌전히 흔들었고, 저기 저 녀석…… 어디 갔어?”
켈슨은 종 치는 자기 앞에 섰다가 옆으로 굴렀다가 변명하다가 했던 로이를 가리키려 했다. 하지만 로이는 없었다.
마법사, 루케인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켈슨이 쫓는 로이의 행방에 대해 말한다.
“튀었지. 우리가 두어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패스트…… 다리에 힘주는 주문이었던가, 아무튼 몸놀림을 빠르게 해주는 마법을 써서 도망갔다고.”
“그거 보고도 왜 가만있었는데요? 아, 젠장! 이게 아니고! 오랜만에 길드를…… 아니, 라비엔에 오랜만에 와서 길드 거처가 옮긴 것도 모른다기에 길잡이 해주느라 왔다고요.”
켈슨은 이런저런 소리를 하다가는 계속 마법사의 눈치를 보며 엉뚱한 상황이 될 것을 깨닫고 재빨리 옆을 가리키면서 용건부터 토해내고 있었다. 지금 여기 볼 일이 있는 당사자를 들이대서 방패막이하듯이!
마법사 루케인의 눈길이 켈슨의 인도를 따르듯이 옮겨졌고, 갸웃하는 고갯짓과 함께 시알라에게 고정되었다. 그리고 이 파괴의 범인을 확인했다는 듯한 느릿한 물음이 조금 있다가 나온다.
“이렇게 부숴놨으니…… 혹시 고칠 수도 있잖나?”
가볍게 두건을 이마 위로 젖히면서 시알라가 대꾸한다.
“부수는 게 전문이라, 고치는 건 무리에요. 잊었나요, 루케인?”
“시알라? 맞군! 시알라! 아하, 정말 오랜만이야! 대단한데? 불과 몇 년 사이에…… 한 일, 이 년 지났나? 아, 그런데 정말 고쳐줄 수는 없어? 하아, 내 종이 어디 갔지?”
루케인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이마를 문지르다가 두리번거리면서 파편이 되어 흩어진 바의 잔해에서 둘러보면서 종을 찾으려 했다.
켈슨이 냉큼 발끝으로 한쪽을 밀어 가리키면서 말해준다.
“여기, 이 근처에 굴렀는데…….”
부서진 나무의 작은 더미를 향해 루케인이 손을 내밀었다.
나무 파편 아래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바로 울렸고, 종이 파편을 밀어내며 치솟아 루케인의 손아귀로 날아들었다.
딸랑.
조금 큰 종소리가 울렸다.
사아아, 뭔가 티끌처럼 작은 것이 흐르는 소리가 울렸다.
토톡, 톡.
부서져 흩어지고 무너져 쏟아져 내리듯이 했던 나무 조각들이 튀어 오르면서 굴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딸랑.
종소리가 가볍게 한 번 더 울리고, 루케인이 조그맣게 투덜대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좀 살살 부숴놓지…….”
나무의 흩어진 잔해, 티끌과 조그만 조각, 큰 조각들이 뭉쳐들면서 다시 바의 형태를 쌓아 올렸다. 바는 곧 원래의 크기대로 갖춰졌고, 조각난 흔적을 증명하는 듯한 그간 자국이 그물 같은 무늬처럼 남겨진 꼴이 되었다.
딸랑.
종이 한 번 더 울렸고, 바는 언제 부서진 적이 있냐는 듯이 깔끔하고 깨끗한 나뭇결만 지닌…… 새로 뽑아내 광을 내놓은 것처럼 곱게, 깨끗해졌다.
팅.
루케인의 손이 종을 다시 바에 내려놓았고…….
“좋아, 그래서…… 오랜만에 얼굴 보자고 온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이지?”
힘들다는 듯한 한숨처럼 묻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에 시알라가 답하기 전, 투란이 바에 기대면서 놀랐다는 듯한 소리를 낸다.
“우와! 과연 상아탑의 마도사! 이렇게 깨끗하게 복구시키다니, 대단해요!”
“자네는? 설마 자네가 세란드?”
루케인은 두어 번 눈을 깜박였고, 옛날 시알라 남매의 사연을 떠올린 것처럼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투란이 빙긋 웃었고…….
“아니, 세란드랑은 아는 사이고…… 음, 우리 일행이 볼일이 좀 있거든요. 로열 가든에…….”
말끝은 아주 흐릿했고, 루케인의 귓가에만 속삭여지는 듯했다.
루케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돌처럼 굳어졌지만, 곧 깊은 숨결과 함께 언짢은 말투로 대답이 나온다.
“금전 열다섯 닢. 호기심 때문에 쓰기에는 너무 세지? 어디서 들었나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금전은…… 없는 듯한데, 잊어버려.”
마법사의 눈빛이 반짝거렸고, 순식간에 시알라 남매와 투란, 켈슨까지 쓸고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면서 금붙이 따위는 없다고 확신한 듯한 말투가 또렷했는데…….
“멜란드, 이제 풀어놔도 되겠어.”
“응?”
루케인은 멜란드가 성큼 나서면서 바 위에 메고 있든 길고 두꺼운 짐을 떡 하니 내려놓는 광경에 의아한 표정부터 지었다.
투란의 말이 바로 이어진다.
“보상금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는데 말이에요…… 없으면 처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요. 헌터 길드니까…….”
“어?”
루케인이 다시 눈을 깜박이며 대체 이 짐이 뭔가 내려다볼 때, 멜란드가 짐 한쪽을 당기며 작은 매듭을 풀었다. 곧바로 루케인의 표정이 돌로 된 것처럼, 투란에게 ‘로열 가든’이라는 한마디를 들었을 때처럼 굳어졌다.
“어?”
다시 놀란 소리가 루케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잠시 뒤였다.
둘둘 말아놨던 보자기가 풀렸고, 그 안에 담긴 장비들…….
그 맨 위에 얌전히 놓인 여러 개의 태그…….
고개를 든 마법사의 눈길이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기웃거리던 주변의 눈길이 마법사의 눈을 피하듯이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서 이쪽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척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루케인을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를 내고, 다시 종을 잡아 바를 긁듯이 흔들었다.
티팅, 탱.
조금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나무로 된 바가 진동하면서 그 아래 바닥이 가볍게 떨렸다. 떨리는 돌바닥 위로 미세한 나뭇결이 새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고, 바를 중심으로 삼듯이 새로운 나무 바닥의 색채가 금세 또렷했다. 그다음, 바를 중심으로 벽이 치솟았다. 나무의 색과 결을 지닌 벽은 순식간에 바를 감싼 닫힌 방을 만들어냈다. 닫힌 문까지 제대로 갖춰진 방이었다.
“흐엑? 이, 이게 뭐야!”
켈슨이 놀란 소리를 냈다.
그리고 켈슨은 곧바로 자기 혼자 놀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했다.
시알라 남매는 물론, 바에 기댄 채인 투란 역시도 갑자기 방을 만들어낸 이 마법에 전혀 놀란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 가득하게 어떻게 하나 구경하는 듯한 낌새만 역력할 뿐이었다.
게다가 루케인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은…….
“미안. 조금 부주의했군. 눈치 빠른 녀석들이 있어서 나중에 좀 귀찮아질 수도 있겠어. 언짢다면 당분간 길드 거처 안에 따로 머물 곳을 준비해주지. 그러니까, 이거……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아? 분명히 룬디아크 공방제 물품인데…….”
켈슨에게 전혀 뭔 소리인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루케인은 켈슨의 이런 표정과 태도도 바로 간파한 듯이 말을 잇는다.
“켈슨, 정말로 라비엔에서 길잡이만 한 거야? 함께 어딜 다녀오지는 않았고?”
“에? 어, 경계망루에서 만나서 함께 온 것뿐인데 말이죠…….”
더듬대는 말투로 켈슨이 당황스러운 기분을 고스란히 뿜어내며 답했다.
투란이 그런 켈슨을 흘깃하고 시알라를 바라봤다.
시알라가 곧바로 켈슨의 곁으로 다가가 손목을 잡아 올린 다음, 켈슨의 손바닥 위에 은전 서넛을 떨구면서 말한다.
“켈슨, 루비의 여관은 여전하지요? 먼저 가서 방 좀 잡아줘요. 목욕하고 식사할 준비까지 해달라고 해줘요. 모자라면 우리가 가서 더 줄 테니까, 적당히 예약을 해주면 돼요. 여기 일 마치고 갈 테니까…… 하루 푹 쉰다고 생각하고, 먼저 식사하고…… 깨끗하게 씻고 기다려줘요.”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켈슨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가 있을게.”
곧 곁을 스쳐 가는 켈슨의 팔을 툭 치면서 제란드가 말한다.
“켈슨 씨,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게요.”
“응? 어, 괜찮아. 음…… 아, 그래 나중에 얘기하자고.”
살짝 위로하는 듯한 제란드의 모습을 알아차린 듯, 켈슨은 곧 쓴웃음을 흘리고 표정을 다시 밝게 하면서 대답했다. 시알라 남매가 어디에 가서 어떤 일을 겪고 돌아온 것인지, 무엇을 가져왔기에 길드의 상담 마법사인 루케인이 주변을 둘러봤는지, 그 모든 일에 대해 켈슨은 궁금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이 자리에서 켈슨이 함께 하며 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모험담은 여관에서 휴식하며…… 그 모험의 뒷정리가 끝난 다음에 한 끼의 따듯한 식사와 함께 들어야 할 것이었다.
듣지 못한다고 서운해할 일이 결코 아니었다.
조금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켈슨이 벽과 함께 생겨나 닫힌 채였던 문을 열고 떠났다. 문은 곧 켈슨의 뒷모습을 감춰주듯이 닫혔고, 루케인의 빠른 목소리가 울린다.
“은전에 추적 주문을 걸었나? 요새는 보기 힘든 주문인 것 같은데?”
시알라가 켈슨을 은전 몇 닢 줘서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은전에 마법을 걸어 켈슨의 신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해놓았다는 것을 빠르게 포착한 마법사의 물음이었다.
“상아탑의 최신 주문을 배울 기회가 없어서 말이죠. 그보다, 이거 보상금이 있는 건가요?”
시알라는 루케인의 왕성한 호기심을 끊듯이 답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루케인이 답한다.
“아, 미안. 너무 오랜만에 제대로 마법을 쓰는 사람을 봤더니…… 보상금이 있냐고 묻는 걸 보니, 달루스 팀의 상황은 잘 모르는 거로군. 음…… 간단히 말해서, 보상금이 있어.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고 금전 백 닢이야.”
“백 닢? 달루스 팀이 그럴 형편이 돼요?”
멜란드가 눈을 깜박거리면서 살짝 놀란 소리를 냈다.
루케인이 그런 멜란드를 흘깃하며, 정말 여러 가지로 상황을 검토했다는 모습이 대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답한다.
“형편이 어렵기는 하지. 하지만 이 물품에 대한 보상금은 이미 길드에 예탁해놨어. 뭐, 이 장비의 가격을 놓고 보자면…… 백 닢을 써서 이 장비를 되찾는 편이 훨씬 싸다고 해야겠지. 달루스 팀의 정예라 할 수 있는 멤버들이 짠 파티의 장비잖아. 이거 장만하는 데 들어간 돈은…… 금전으로 거의 삼, 사백 닢은 될 테니까.”
“그거, 꼭 찾겠다는 뜻으로 걸어둔 예탁금이 아니군요?”
시알라가 묻는 말이었다.
루케인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형 달루스의 장비를 아우인 달루스가 꼭 찾으려고 건 보상금은 아니지. 추억의 물품도 아니고, 현역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굉장한 장비잖아. 누군가 얻었다면, 굳이 달루스 팀에게 넘길 필요 없이 룬디아크 공방에 가져다가 반값에 팔아도 보상금 이상은 나와. 거의 두 배는 쳐줄걸? 하지만 형의 도전이 실패하면서 달루스 팀이 약해졌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기에는 넉넉한 돈이야. 라비엔에서 그런 식으로 소문이 돌면, 금전 백 닢보다 더한 손해를 볼 수 있으니까. 새로 팀 리더가 된 달루스, 형이랑 다르게 역병의 숲에 도전하거나 하지는 않아도 그런 부분은 확실히 수완이 좋다고 해야겠지. 말로만 금전 백 닢도 아니고, 아예 길드에 금전을 예탁하고 공시(公示)까지 걸게 했으니까. 금전 백 닢을 그리 걸 수 있는 팀이 라비엔에 몇이나 되겠어? 자, 이제 달루스네 상황은 그럭저럭 알겠지? 그럼 그쪽 얘기는 정리가 되었다 치고…… 도대체 이걸 어디서 가져온 거야?”
길고 빠르게, 시알라가 납득한 표정을 지을 때까지 설명을 하고 나서 루케인은 진짜 의문을 들이대고 있었다.
시알라는 흘깃 투란을 바라봤고, 투란은 눈가에 축 처진 검은 그늘이 가렵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긁적거리면서 툭하니 답한다.
“주웠는데?”
“어디서?”
살짝 마법사의 눈꼬리가 발끈하는 듯했지만, 마법사의 입에서는 보다 침착한 물음이 나올 뿐이었다. 이를 보며 투란이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