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7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71)
Chapter 75. 라비엔, 여관
와글와글, 시끌시끌.
투란이 바라보는 거리는 사람이 잔뜩 오가는 중이었다.
라비엔에서 들어올 때 봤던, 대장장이 핸슨이 싸움질을 하던 곳보다 더 많았다.
길드 거처까지 가면서 봤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길도 폭이 훨씬 넓었고, 그 넓은 길에 어울리는 큰 수레가 보이기도 했다. 수레 위에 포장을 얹고, 말 대신에 소가 매 있는 광경도 보였다. 수레가 선 쪽에는 크게 바위를 깎아 열어놓은 모양을 한 네모지고 둥근 구멍을 방처럼 꾸며놓은 모습이었다. 건물을 따로 올리는 대신에 암벽을 깎아 거처를 삼은 풍경이었다.
뭔가를 팔러 온 이들과 사러 온 이들이 뒤죽박죽되어서 누가 사려 하고, 누가 팔려 하는지도 그냥 봐서는 알 수 없어 보였다. 사고파는 물품 중에는 두툼한 가죽, 뿔, 발톱이라든가 험악하게 생긴 모양이 보통 짐승처럼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많네…….”
오가는 사람, 잔뜩 깔려 있는 상점의 광경을 향해 투란이 낮게 중얼거렸다.
멜란드가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대한 감상을 담은 듯이 말한다.
“여전하네.”
“어? 원래 이랬어?”
투란이 흠칫하면서 얼른 멜란드에게 캐묻는 얼굴을 들이댔다.
멜란드가 ‘엥?’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원래 좀 이랬는데…….”
“습격을 받고 나서 와르르 몰려든 게 아니라고? 우와, 입고 챙긴 것들이 보통이 아닌데?”
투란이 중얼거리면서 이어 한 말은 멜란드를 쓴웃음 짓게 했다.
“라비엔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되면, 믿을 거라고는 자기가 가진 것뿐이라서…… 장비에 목숨 거는 경우가 많지.”
제란드가 투란의 곁으로 움직이면서 말한다.
“그래서 도둑질하다 걸린 녀석은 바로 그 자리에서 칼을 맞아. 누굴 죽일 작정인 놈은 상대를 도둑으로 몰기도 하고.”
투란은 제란드가 눈길을 주는 쪽을 바라봤다.
와글거리는 와중에 몇몇이 무리를 지어서 상대를 바라보며 대치하는 광경이었다. 그 주변으로는 바쁜 사람들이 조금 거리를 둔 채로 멀찍이 떨어진 채로 오가면서 무슨 일이든지 자신에게 직접 관계없으면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가 역력했다.
그 꼴을 보면서 투란이 나직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도둑이라고 외치고 바로 때려죽인 다음에 시체를 뒤져서 이게 내 물건이라고 아무거나 들고 떠들면 그만이란 얘기구나. 으흠, 그건 경계도시랑 같나 보네. 거기서 그런 못된 짓 하는 녀석들이 좀 있다던데…….”
“흉악한 짓이기는 하지만, 그러는 놈들이 있긴 있지.”
살짝 질린 듯한 시늉을 하면서도 제란드는 인정했다.
정말로 이 라비엔에는 그런 놈들이 있었으니까.
페란드가 조용히 투란의 뒤편으로 붙으며 속삭인다.
“그렇다고 눈에 거슬린다고 바로 때려죽이거나 하면 안 돼, 투란. 험악한 만큼 자기 안전을 위해서 팀을 꾸리는 놈들도 꽤 많아. 팀 멤버에 무슨 일이 생겼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팀 멤버 편을 들어주려 하는 놈들이거든. 괜히 건드리면…… 벌통처럼 귀찮고 시끄러울 거야.”
“에이, 그래도 사람인데 막 때려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투란은 페란드를 돌아보면서 조금 시무룩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페란드는 투란이 주변을 둘러보는 태도가 여차하면 아무나 하나 때려잡고 볼 듯하다고 착각하는 듯하잖나!
시알라가 혀를 차면서 말한다.
“귀찮다고 일단 하나 뭉개 놓고 살았으니까 괜찮아, 같은 짓도 하지 말라고. 들어오기 전에 깜짝 놀랐잖아.”
“어? 아…… 그건…… 정말 괜찮을 거야. 흐흠, 정말로 괜찮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시알라의 말에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대는 태도로 둘러대야 했다.
그러나 네 남매는 그런 투란을 조금 가는 눈길로 바라봤으니…….
“그 녀석들은 양쪽 다 정상이 아니었잖아!”
투란은 나지막하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시알라가 잠깐 두건을 당겨 주변을 다시 보면서 말한다.
“그렇긴 그래. 하지만 루비의 여관에서는 조금 더 주의해야 하니까 하는 말이야. 거기 주인인 루비가 좀 까탈스러워서, 시끄러운 걸 꽤 싫어하거든. 이상한 녀석들 달고 오지 말라고 엄청나게 투덜거리니까…… 웬만한 일에는 끼어들지 마, 투란.”
“그럴 거야!”
조금 더 삐죽거리는 입술로 투란은 대꾸했다.
이에 시알라나 페란드는 서로를 보면서 조금 심하게 주의를 줬나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투란의 눈길은 이미 저쪽을 향해 있었으니…….
“우왓, 저거 기계식 쇠뇌인가 하는 거 아냐? 태엽상자를 이용해서 쏜다는!”
멜란드가 바로 이 소리를 받아 대꾸한다.
“루비의 여관 근처에 무기 가게가 있어. 거기서 저런 거 잔뜩 팔아! 아, 싸게 팔지는 않아. 은전 몇 닢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곳이지. 흠…….”
“오? 저런 걸 잔뜩? 가자! 빨리!”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투란을 보면서 시알라와 페란드는 작은 한숨을, 제란드는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어째서 이럴 때는 멜란드와 투란이 똑같아 보이는지…….
어쨌든 걸음은 서둘러졌다.
암벽을 파내 열린 거리를 넘어서…….
꽤 높은 절벽을 후벼내서 숭숭 구멍을 낸 듯했다.
네모난 구멍이었고, 나름대로 나란히 줄을 맞춰 뚫려 있었다.
그 맨 아래 네모난 구멍은 명확하게 문이 달려 있었고, 문 위에는 간판도 제대로 붙어 있었다. 무지개를 흉내 낸 듯한 호를 그린 간판을 올려다보며 투란이 중얼거린다.
“루비의 신나고 편안한……?”
“덤으로 깨끗하고 맛있는 여관. 이 간판, 새로 달았네?”
멜란드가 함께 올려다보는 자세로 말했다.
시알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간판 뒤에 긁힌 흔적이 있어. 아무래도…… 뭔가 부딪히거나 달려들어서 간판을 떨구고 부순 모양이네.”
페란드가 주변을 위아래로 둘러보면서 보태듯이 말한다.
“그림 뱃의 발톱이나 날개에 패인 흔적이 좀 있어. 더 크고 굵은 자국도 있는 걸고 봐서는…….”
“여기서도 싸웠나 보네.”
제란드의 말은 결론을 확실히 했다.
길드 거처를 옮겼던 사건에서 이 여관 또한 휘말렸다.
기억 속의 간판은 이제 없다.
“어, 왔구나! 봐, 온다고 했잖아!”
여관 문 너머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켈슨이 씩씩거리는 모습도 금세 보였다.
문턱 너머 그늘에서 스윽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켈슨은 뭔가 억울해하는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듯한 목소리가 금세 울려 나온다. 켈슨의 외침을 쫓듯이…….
“정말로 시알라야? 어머나! 시알라, 살아 돌아왔구나!”
대견하는 말투였다.
반가워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투란은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면서, 멜란드의 뒤로 숨는 듯한 자세로 속삭임을 흘려야 했다.
“사람이지?”
멜란드가 쓴웃음을 지었고, 가벼운 헛기침을 하면서 반갑게 여관 안에서 나오는 사람을 향해 외친다.
“루비 아줌…… 크억?”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지? 아니면 레이디 루비라든가!”
한 손으로 멜란드를 가볍게 들어 올리면서 나온 소리였다.
투란은 눈앞에서 멜란드가 목이 낚이듯이 잡혀 올라가는 꼴을 보면서 재빠르게 제란드 곁으로 옮겨갔다. 조금 전처럼 살짝 제란드 뒤로 숨는 시늉이었다. 그리고 다시 투란의 입에서 낮은 속삭임이 나온다.
“사람이지?”
제란드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대답해야 했다.
“루비, 오랜만이에요. 여전하…… 으익?”
“뭐! 여전히 뭐! 여전히 크고 거대한 루비라고 하고 싶냐!”
제란드가 뒷덜미를 잡혀 올려졌다.
투란은 다시 슬슬 움직여서, 페란드 쪽으로 움직이려 하는데…… 페란드가 자리를 옮겼다! 마치 다음 차례가 되기 싫다는 표정으로 페란드는 시알라의 어깨 너머에서 형제 둘을 잡아 올린 사람을 피하는 모습이잖은가!
이게 뭔가 하고 투란이 어이없어 시알라를 바라보니, 시알라는 그냥 웃음과 한숨을 묘하게 섞어 흘리고 있었다.
곧 제란드가 억울해하는 목소리가 울린다.
“오랜만이라고만 했는데, 왜!”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표정이! 사람은 입으로만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 표정도 공손하고 반갑게 했어야지! 표정이 그게 뭐야! 내가 곰이냐?”
투란은 눈을 깜박였다.
곰이 으르렁댄다 해도 지금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간다.
“젠장! 그만 좀 하라고! 오늘 대체 왜 이래! 내 말은 못 믿겠다 하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덥석덥석 잡아 올리고! 그러니까 다들 키클롭…… 우게엑?”
“으아악!”
켈슨이 목소리 높여 투덜거리다가 비명을 지르는 멜란드랑 겹쳐지면서 뒤로 넘어져 굴렀다.
그리고 다시 우렁찬 목소리가 울린다.
“내가 어딜 봐서 키클롭스야! 고작해야 2미터 20센티라고! 이 정도 가지고 크니 뭐니 하지 말란 말이야! 섬세한 레이디 루비의 마음에 왜 자꾸 상처를 주냐고!”
허리에 한 손을 올린 채로, 다른 한 손으로 제란드의 뒷덜미를 잡아 치켜올린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이에 귀를 쫑긋하면서도 투란은 재빨리 페란드 곁으로 옮겨가 소곤대는 목소리로 묻는다.
“사십은 되지 않을까?”
페란드의 표정이 조금 묘하게 뒤틀렸다.
루비의 여관, 주인인 루비의 이름을 그대로 딴 곳이다.
그 주인인 루비의 손은 멜란드의 목을 한 손으로 쥐어 올릴 정도로 컸고, 제란드의 뒷덜미를 잡아 고양이 올리듯이 들어 올릴 정도로 팔 힘이 좋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당연해 보일 정도로 루비는…… 남녀를 따질 필요가 없이 인간이라는 종(種)의 평균을 가볍게 압도하는 체격을 지녔다!
저 몸의 어디를 재더라도 압도적으로 굵고 넓어서, 오히려 키가 모자란 느낌이 강했다. 덕분에 멀리서 보면 조금 작고 땅딸막한 사람이 움직인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와 보면…….
“40센티는 넘겠지. 그랑츄랑 맞주먹질 했다고 하던걸.”
페란드는 입술을 꼬는 모습으로 슬그머니 시알라의 머리에 얼굴을 감추면서 투란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페란드 역시 루비의 키에 대해 예전에 투란과 똑같이 궁금해한 적이 있으므로, 도저히 이 수수께끼에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페란드, 누나 뒤에 숨는 버릇은 여전하네? 그런데, 그렇게 숨어서 남의 험담을 하는 짓을 하지 말라고 내가 경고했잖아! 이리 와!”
“루비 언니, 제란드는 일단 놔줘요. 얘는 인사만 하려고 했잖아요.”
시알라가 상쾌하게 말하고 있었다.
페란드는 순간적으로 낯을 구겼다.
누나인 시알라의 말은 마치 페란드 일은 알 바 아니란 듯하잖나!
“흥, 상냥한 누나 덕을 보는구나 제란드!”
“왜!”
멜란드 곁으로 내던져지면서 제란드가 억울함을 토했다.
그런 제란드, 엉켜진 켈슨과 멜란드 쪽을 다시 돌아볼 낌새 없이 루비는 스윽 시알라 너머를 바라봤고, 시알라는 그 눈길을 열어준다는 듯이 옆으로 살짝 비켜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페란드가 어이없다는 듯, 신음하듯 소리 낸다.
“누나!”
하지만 다음 순간에 잡힌 것은 페란드가 아닌 시알라였다.
시알라가 뭔 소리를 내기 전에 루비는 두 손으로 시알라의 허리를 덥석 잡아 올리면서 아기 흔들 듯이 휘저으며 외친다.
“오랜만이야! 시알라, 이뻐졌구나! 얼굴도 훤해졌고…… 몸매는…… 굶었니? 왜 이렇게 허리가 가늘어? 아니, 설마 저 녀석들이 누나 먹을 것까지 전부 먹어치웠어? 그 꼴을 그냥 놔뒀어?”
“루비!”
시알라가 어처구니없어할 때, 루비의 손은 휭하니 휘둘러지듯이 움직였다.
그 결과 시알라는 느닷없이 루비의 어깨에 포대처럼 얹힌 꼴이 되고 말았다.
“하핫, 귀여워!”
말과 함께 루비는 시알라를 어깨 쪽의 손을 움직여 시알라의 엉덩이를 토닥거린다! 더불어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루비는 페란드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페란드가 뭘 어찌 해보기 전에 루비가 스윽 얼굴을 들이대면서 한마디 한다.
“누구야?”
“에, 예?”
“누가 내가 그랑츄랑 주먹질했다고 너한테 고자질했냐고!”
“그, 그건?”
페란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의 목격자는 한둘이 아니었고, 그 목격자 중에 입 다물고 소문내는 데 동참하지 않은 작자는 없을 텐데? 그걸 모를 루비가 아닌데 어쩌란 것인가!
하지만 루비는 페란드가 뭐라 대꾸하기 전에 다시 묻고 있었다.
“누구야?”
“아니, 그건…….”
“얘, 누구냐고. 멜란드보다 훨씬 어려 보이니, 너네 맏형은 아닌 것 같은데?”
루비가 투란에 대해 묻고 있었다.
어색하게, 어디로 튈까 궁리하는 모습이 역력한 투란이 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