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7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72)
―거인증(巨人症)이로군. 기간틱 신드롬(Gigantic Syndrome)이라고도 하는 증상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쨌든 운이 좋은 경우야. 덩치에 맞게 힘도 세 보이고…… 체격이 크다는 점 말고는 다른 이상한 증상은 없어 보인다. 음, 그리고…….
‘날 노려보잖아!’
―마력을 지녔다. 투란, 이 인간은 마법사다.
‘거인 마법사?’
―거인이 이렇게 작을 리가 있냐?
‘그, 그럼 키클롭스?’
―그냥 체격이 좀 큰 인간이라고!
‘날 노려본다고!’
* * *
투란은 방긋 웃어 보이려 했지만, 얼굴이 굳어서 더 웃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그리고 뭐라 하려 하는데…….
“루비! 그만하고 나부터 내려놔요!”
시알라가 허공에서 발을 구르는 모습으로 외치고 있었다.
루비는 이 소리에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그래 맞아! 시알라부터 내려놓자!”
쿵쾅거리면서 여관의 문턱을 넘어 들어가 버리잖는가!
투란이 살짝 얼이 빠진 표정으로 페란드를 쳐다봤다.
깊은 한숨과 묘하게 안도감을 품은 얼굴로 페란드가 투란의 소리 없는 물음에 답하듯이 말한다.
“괴물…… 몬스터 아냐, 투란. 일단…… 사람 맞아. 몬스터 로드도 아니고…… 하아, 일단 들어가자. 켈슨, 함께 좀 있어줘요.”
멜란드와 함께 일어서면서 끙끙대던 켈슨은 시알라를 납치해서 사라지는 듯한 루비를 보면서 슬금슬금 여관의 반대편으로 막 두어 걸음 떼려던 참이었다. 거기에 대고 페란드가 투란 다음으로 이어 말을 거니, 켈슨의 표정은 꽤 어색해졌다.
아무래도 그냥 루비에게서 내빼려 한 듯한데…….
“켈슨. 같이 가요.”
멜란드가 바로 곁에서 팔짱을 끼듯 켈슨을 부여잡고 질질 끌고 여관 문턱을 향해, 비장한 각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켈슨은 두어 걸음을 질질 끌려간 다음에야 마지못해 입을 연다.
“알았어! 알았다고! 젠장, 내 발로 간다, 가!”
말과 함께 켈슨은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뚜벅뚜벅 걷는 시늉을 했지만, 멜란드는 축축 늘어지는 그 발걸음을 분명히 알아차렸고 가차 없이 당겨서 여관 안으로 살짝 발을 끄는 꼴을 만들어 끌고 들어갔다!
이 광경에 투란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슬쩍 페란드를 보니…….
“괜찮아.”
멋쩍은 표정으로, 어딘가 아련한 곳을 보는 눈길로 대답하며 페란드가 투란을 외면하고 있잖은가!
그리고 옆구리와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먼지를 털어내는 건지 멍든 곳을 만지는 건지 애매한 태도로 다가온 제란드가 한마디 하는데…….
“아마! 괜찮을 거야.”
“아마?”
투란이 대놓고 놀라는 소리를, 아주 낮게 질러봤다.
페란드는 한숨을 쉬면서 먼저 루비의 여관으로 들어가 버렸고, 제란드는 투란 곁에서 멀뚱거리며 서 있다. 투란은 제란드를 봤고, 제란드가 절대로 누군가를 뒤에 남겨둔 채로 루비의 여관에 들어서지 않을 작정인 것을 알아차렸다. 말하자면 마지못해 끌려가더라도 마지막이고 싶어 하는 태도!
“대체 왜 이리로 오자고 한 거야?”
투란으로서는 결국 이렇게 낮은 소리로 묻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이는 제란드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 나오게 했다.
“깜박 잊었지. 우리 떠난 지 한 이, 삼 년 지났지만…… 저렇게 과격하게 나오기에는 낯이 익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원래 과격했어!”
“아, 뭐…… 낯선 경우에는 좀 그래.”
“난!”
투란은 오늘 처음 보는 루비의 소굴로 과연 따라 들어갈 것인가를 보다 심각하게 고민하려는 태도를 갖추려 했다.
“뭐 해? 다리에 쥐 났어? 내가 가서 들고 들어와 줄까? 제란드, 신참! 얼른 들어와!”
루비의 걸걸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문턱을 넘어왔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올가미에 목이 걸린 짐승처럼 제란드가 앞으로 휘청대며 걸어 나가는 척하다가…….
덥석.
“억? 제, 제란드!”
“같이 들어가자고.”
손목을 낚아채듯이 잡아당기면서 제란드는 ‘같이’란 말과 함께 투란부터 앞으로 들이밀고 있잖은가!
“아니, 이건!”
뿌리치지 못하고 투란은 떠밀려 먼저 루비의 여관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수수께끼를 품은 채로…….
“아하핫! 다시 말하지만, 정말 기분 좋아! 너희 남매가 모두 살아 돌아오다니! 아하핫! 게다가 조금 더 이뻐지고, 귀여워졌잖아! 아하하핫!”
호쾌한 루비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시알라는 그 웃음에 귀가 아픈 것을 느끼면서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봤다. 여관 입구이자 퍼브 역할을 하는 공간에는 사람이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주인인 루비, 켈슨과 시알라 자신의 일행뿐이었다.
때문에 루비의 말에 질린 표정으로 대꾸하는 것도…….
“귀, 귀여워지다니! 루비, 대체 뭘 보는 거예요!”
멜란드 정도가 고작이었다.
페란드와 제란드는 아예 포기했다는 듯이 단단한 돌로 이뤄진 천장과 벽을 둘러보면서 오랜만에 찾아온 여관이 얼마나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듯했다. 그래서 시알라가 멜란드의 편을 들기 위해 막 입을 열려는데…….
“오호호홋! 막내가 제법 팔뚝이 굵어졌다고 어른 흉내를 내네? 오호홋! 시알라, 언니는 기쁘구나! 누나를 향해 다 컸다고 나대는 막내라니! 참 좋겠어!”
루비의 살짝 질투하는 시늉과 함께 터져 나온 장대한 웃음과 말은 시알라의 눈매를 치켜뜨게 했다.
“너무 나대서 탈이죠.”
“어이, 누나! 누님?”
멜란드가 지금 대체 누구 편을 드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도전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시알라를 바라봤다. 이는 시알라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잇게 했다.
“루비, 멜란드도 더 이상 애가 아니라고요. 좀 성급한 성격은 여전하지만…… 클 만큼 컸어요. 그러니까…….”
“오호홋! 아하핫! 그거야 보면 알지! 하지만 어쩌라고?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엄마 눈에 아들은 애로 보이는 거 아니겠어? 누나 눈에 막내는 늘 막내고 말이야! 그러니까 이 루비 언니의 눈에는…… 이 누나의 눈에 보이는 멜란드는 늘 철없는 막내지 뭘! 오호홋! 멜란드, 고블린 팔뚝에서는 벗어난 모양인데 그 정도로 이 루비 누나에게 눈알 부리라면 안 된다? 확 배꼽 아래 알을 뽑아버리는 수가 있어!”
“아오옷! 진짜!”
멜란드는 답답하다는 듯이 자기 가슴을 두어 번 치다가 분하다는 듯이 탁자에 머리를 들이대며 통통거리며 작은 박치기까지 했다. 켈슨이 그 곁에서 나직하게 주변에 흘리는 듯한 소리를 낸다.
“요새 다른 여관도 많이 생겼지. 좋은 곳 하나 소개시켜 줄까?”
화아아!
흐릿하지만 붉은 색채의 바람결이 탁자 위로 흘렀다.
마치 루비가 입으로 옅은 불을 뿜어낸 듯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 위로 루비의 열기 가득한 목소리가 울린다.
“켈슨, 어디서 감히 이 루비의 손님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겠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이, 루비의 앞에서, 루비의 여관에서! 간이 부었어? 그냥 죽고 싶어?”
“손님? 손님을 이렇게 막 대하나! 여기가 아무리 라비엔이라도, 은전 내미는 손님을 이렇게 대하는 곳이 또 어디 있어! 미리 와서 식사 준비를 부탁했더니, 살아 있는 모습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전혀 준비하지 않았잖아! 은전까지 미리 보여줬구만! 그래 놓고 무슨 손님을 받는다고!”
“돈이 문제가 아니지, 켈슨.”
고개 대신에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루비는 진지하고 무겁게 대답을 꺼내고 있었다. 너무 무거운 그 말투에 켈슨이 몇 마디 더 하려다가 잠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은전을 내민다고 누가 먹을지 먹지 않을지 모를 식사를 만들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잖아. 지금 라비엔으로의 식량 공급이 끊어진 상태라고! 그러니, 먹을 사람을 확인한 다음에 요리를 한다고 했는데,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야?”
“그게 뭔 소리냐고! 보름 전에도 멀쩡했던…… 넘쳐난다던 라비엔의 식량이 왜 갑자기 공급이 끊겨서 요리 준비도 못 하겠다고 배 째는 소리가 나오냐고! 아니, 그것보다 아까는 시알라의 실물을 보기 전에는 요리 못 한다며? 말을 바꾸는 거야, 루비? 아, 줌, 마! 그러면 곤란하지!”
켈슨이 눈을 부릅뜨면서 으르렁거렸다.
체격에서는 밀려도, 이런 말다툼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듯한 켈슨의 태도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루비 역시 눈을 부릅뜬 채로, 살짝 몸을 굽히면서 켈슨을 멀리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며…… 역시 이런 경우에는 체격이 아닌 말로서 이기겠다는 듯이 대꾸한다.
“레이디 루비께서, 중요한 말이니까 잘 들어! 레이디 루비께서, 죽지 못해 까불어대는 켈슨에게, 그리고 여기 살아 돌아온 이쁜 시알라와 귀여운 동생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들어! 에헴!”
텅!
말을 하면서 조용히 하란 듯이 루비의 두 손이 탁자를 누르는데, 탁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삐걱거렸다.
투란은 다시금 루비를 흘깃거리면서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했다.
‘진짜 몬스터 아냐? 적어도 몬스터 로드일 것 같잖아, 이게 사람의 체격이냐고!’
―인간 맞다고!
뇌리 깊은 곳을 울리는 소리, 그리고 곁에서 제란드가 입술 사이로 새는 소리로 하는 말이 있었으니…….
“괜찮아, 분명히 괜찮아…… 그래, 아마 괜찮을 거야.”
투란은 이게 대체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인가 의아했다.
제란드의 눈길은 천장을 향해 있잖나!
페란드가 한숨을 쉬고, 멜란드는 눈을 껌벅거리는 사이…… 시알라가 조용히 루비를 바라보고 켈슨이 씩씩대는 와중에 다시 루비의 힘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얼마 전에, 북쪽 평원에서 전투가 있었어. 왕국 군대랑 고블린 호드가 대판 붙은 싸움이었고, 거의 전쟁 수준이었다고. 그래, 호드(Horde)! 1만 이상의 수가 한 무리를 이룬 몬스터 떼! 상아탑의 표준 단위로 지정된 그 호드! 갑작스럽게 북부 평원 쪽에 그런 고블린 호드가 나타나서 쥬레인, 세트반의 두 왕국 군대가 각자 영토 안에서 급하게 막아서야 하는 상황이었지. 쥬레인은 아직 남쪽 국경이었고, 세트반 입장에서는 갑자기 경계선 안쪽에 몬스터 호드가 나타난 셈이니까, 아주 빨리 군대를 몰고 나와 막고 몰아내야 했던 거야. 그런 상황이라 세트반에서는 왕자가 직접 나서고, 궁정마법사까지 닥치는 대로 동원해야 했지. 나름대로 빠른 대처였고, 결국 거의 닷새에 걸쳐서 고블린 호드를 해체시키는 데는 성공했어. 하지만…… 모든 상황이 다 그렇게 잘 굴러가지는 못했어. 세트반의 왕자가 중상을 입었고, 궁정마법사 중 여럿이 다쳤어. 고블린 호드가 흩어지는 와중에 팩 하나가 도전적으로 왕국의 수뇌부를 강타해버린 거야.”
“팩 하나?”
루비를 알기에 귀를 잔뜩 기울이면서 입을 다문 네 남매나 켈슨을 대신하듯, 투란이 낮게 중얼거렸다.
루비는 그런 투란을 흘깃했고, 어색하게 웃음 지으려 하는 투란의 표정을 보고서는 다시 이야기를 잇는다.
“대강 삼백 정도 되는 숫자로 한 무리가 된 고블린 팩이라고 했어. 뭐, 팩은 유동적인 단위니까, 어떤 몬스터냐에 따라서 숫자가 많이 다르긴 하지. 어쨌든 이번에는 삼백 정도 되는 숫자의 한 팩이란 거야. 이게 단순히 고블린 삼백 마리가 아니었던 모양인 게, 세트반 왕국의 왕가 근위대랑 전투 지휘를 맡은 기사단의 틈새를 돌파해서 왕자와 마법사들한테 야료(惹鬧)를 부린 셈이었거든. 그리고 살아서 도망쳤어.”
“에?”
“허?”
이번에는 투란이 입을 다문 채였고, 멜란드와 켈슨이 놀란 소리를 냈다.
시알라나 페란드, 제란드는 흥미롭다는 듯이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둘러보면서 각자의 태도를 이해한다는 듯이 루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보통 고블린 팩이었다면, 전멸하면서 남긴 발악이라고 여겼을 테고 어쨌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으니까…… 마무리가 좀 어이없고 답답하다는 정도로 넘어갔을 일이기는 해. 왕자가 중상이더라도 살기는 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고블린 팩은 왕자와 마법사, 왕국의 수뇌부에 타격을 입히고 유유히 달아났어. 경계를 넘을 때까지 왕국의 군대가 추격했지만 놓쳤고…… 라비엔으로 오는 대상(隊商)이 만나서 전멸당했지. 이번에 식량공급을 맡았던 대상이 확실하게 털린 거야. 그 상황이 밝혀진 것이 오늘 아침이었고…… 길드 헌터들이 모여서 회의를 시작한 게…… 조금 전일 거야.”
“잠깐, 그렇다면……?”
켈슨이 이제야 조금 납득한다는 태도로, 하지만 여전히 좀 의아하다는 말투로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루비는 그 소리를 기다리지 않고 매듭짓듯이 말한다.
“이곳에서 나름대로 신뢰받는 마법사끼리는 이미 연락이 되었어. 이제 길드의 헌터들이 상황을 듣고 판단을 내릴 거야. 그리고…… 눈치 빠른 것들은 식량 감추기를 시작했지! 이번 기회에 한몫 보겠다고 말야! 그러니까, 먹지 않을 요리는 만들 수가 없다고! 어이, 켈슨! 왜 이 루비가 마법사끼리의 연락에 대해 아느냐고 의심하는 눈치야? 한 대 맞아볼래? 이 파이어볼에 구워져 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