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
“까불지 마!”
투란은 공허 속에서 다시 크게 외쳤다.
소리와 다른, 격렬한 파문이 공허를 흔들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당혹스러웠고 어이가 없었다.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꼼짝도 않던 놈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마치 투란이 세상에 몬스터를 낳게 될 꼬락서니가 아닌가!
이런 것을 바란 적은 없는데…….
스산한 허기가 찾아왔다.
공허가 자신을 보라는 듯이 투란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보이드 엠블럼을 겪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마치 그 순간을 다시 겪는 듯했다.
‘정신 차려!’
자신을 향해 투란은 외쳤다.
외침은 공허를 향해 퍼졌고, 흩어졌다.
변화는 없었다.
고무쇠는 여전히 날뛰고, 악마의 심장은 발버둥 쳤다.
투란의 투박한 천칭은 그 틈새에 끼어서 부서져 내리고, 천칭의 축은 저 아래 ‘심연’의 나선에 휘감긴 채로 그 형상과 구조를 이루는 톱니조각들을 삐걱댄다. 천칭의 꼭대기에서 어떻게든 버티려는 톱니 마개는 어중간하게 뒤틀려 열린 채로 금이 가서 부서질 듯한 위태로운 상태였다.
공허를 맴도는 여린 힘을 느끼며 투란은 잠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고, 어떻게든 이런 풍경과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어졌다. 또한 이 풍경 밖, 현실 속에서 몸이 겪는 파괴적인 변화를 구경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 지금 투란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그렇게 간격을 둔 채로 좀 더 알고, 생각하고…….
‘어? 아!’
투란은 공허의 광대함 속에서 아주 작은 고무쇠와 천칭, 뚜껑과 구멍을 느꼈다.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선명한 감각, 거의 완벽한 지각의 영역이었지만, 투란은 이 모든 소란과 난동에서 확실하게 멀리 있었다.
작은 소망, 절망 직전의 소원이 이뤄진 꼴이다!
어떻게 된 것인가?
‘문장……!’
다시 투란은 기억해 냈다.
“……문장을 믿어라.”
그렇게 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러 버렸다.
이제는 그 저질러 버린 일의 뒤처리를 해야 하는 것뿐이다.
섬세하고 분명한 통찰이 투란에게 찾아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 끝장낼 수 있는가, 분명해졌다.
‘하지만 그러면…….’
몬스터 로드답게, 저 심연이 흘려 내는 새카만 나선으로 고무쇠를 토막 내서 처넣으면 된다. 그러면 천칭은 고무쇠가 다시 생성되고 있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복구될 것이고, 문장의 마개-뚜껑은 닫힐 것이며 악마의 심장은 다시 천칭의 그릇 속에서 온전하게 투란의 몬스터로 홀로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투란은 망설이며 주저했다.
몬스터를 형성한 채로, 몬스터 에센스를 받아들이려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도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결과 또한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으니, 이제 모든 것을 없던 일로 되돌리면…… 그러면 그냥 다 정리되고 끝날 일인가?
투란은 깨닫고 있었다.
‘똑같아. 그냥 변화 없이, 똑같은 꼴이라고.’
악마의 심장만을 품은 채로, 이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을 헤맬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사람으로서 숨을 쉴 수 있는 곳에 닿기를 기대하며, 언젠가는 새로운 몬스터의 정수를 얻게 될 순간에 도달할 것이라 기대하며, 이리저리 떠밀리고 부딪치면서 단숨에 자신을 끝장낼 끔찍한 괴물만큼은 피하기를 빌며 헤매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이런 시체 줍기를 할 순간이 찾아오면, 그때는 이번처럼 되지 않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로 이 짓을 되풀이할지도 몰랐다.
‘지금 어떻게 못한다면…….’
다시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다.
한번 정도의 실패는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고 물러선다면,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다.
그렇게 도박판의 내기꾼처럼 될 것인가?
딱 한 판만 더 하자고, 그러면서 도박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로 왕끗발 한 번만 붙으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 외치면서 항상 빈털터리가 되는 자처럼?
투란은 공허의 먼 풍경 속에서 작은 고무쇠를 바라봤다.
쇠처럼 단단해서 칼날 따위는 그대로 튕겨 내고, 거대한 충격에 찌그러져도 반드시 다시 본래대로 튕겨 나오는 모습, 잡아당기면 늘어나고 놓으면 다시 본래대로 돌아오는 저 기이하고 희한한 성질.
‘갖고 싶었는데…….’
첫 번째 악마의 심장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처럼 두 번째를 생성할 수 없을 것이다.
심연이 삼킨 괴물은 그 정수가 지워져, 다시 형성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고무쇠를 만나 그 정수를 얻기 전에는,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가 될 수 없다.
‘작별해야겠다, 너랑은.’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지금은 살기 위해서 투란이 꿈꾸던 괴물을 버려야 할 때였다.
* * *
난무하며 뻗어 가던 새카만 허무의 흔적이 웅크렸다.
투란의 등에서 너울거리며 흘러나온 검은 가닥, 날개인 듯 그저 공중에 드리운 가지인 듯한 것이 두꺼워지며 벽을 이루면서부터, 가슴에서 뻗어 나오는 새카만 허무가 작은 막대처럼 뭉쳐 들었다.
투란은 뒤로 기울어진 듯이 몸을 젖힌 꼴이었고, 등에서 좌우로 뻗어 나온 새카만 두 가닥의 허무는 새카만 빛의 안개가 되어 투란을 품었다. 가슴 한복판에 꽂힌 막대가 빙글거리고 맴돌며 나선의 자취를 흘렸고, 새로운 파동은 투란을 껍질처럼 감싸 버린 허무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투란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허무가 웅크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투란의 몸은 고무쇠에서 넝쿨의 가닥까지 제멋대로 변화하고 있었다. 몸이 갖은 꼴로 부풀고 잦아들고 멋대로 주변을 긁지만, 이제는 허무가 웅크린 벽을 넘지 못했다.
* * *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엉망진창이네.’
고무쇠는 공허에 붙들리면 늘어나고, 톱니 마개에 매달리면서 천칭을 밟고 긁고 할퀴며 걷어차는 짓을 쉬지 않았다. 심연에서 흘러온 새카만 나선과 만나면 끊어지고 지워지더라도 다시 쑥쑥 몸을 부풀리고 키워 내며 버텼다.
어떻게 보면 아주 대단했고, 과연 갖고 싶던 놈이라고 저절로 감탄할 지경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잡아 눌러, 저 심연에 처넣어야 했다.
천칭의 모든 것이 으깨지기 전에, 악마의 심장이 버틸 수 없는 꼴이 되기 전에!
‘지키고! 처넣고!’
투란의 마음이 보다 강하게 뜻을 품었다.
여린 힘이 공허에서 흐르며 이 뜻에 호응했다.
악마의 심장이 이 풍경 속에서 바르르 떨었고, 여린 힘에 휩싸여 오그라들고 움츠리는 꼴이었다. 새카만 나선은 그 여린 힘이 서린 틈새를 넘지 못했다.
지켜지지 않는 고무쇠는 나선에 갈라지고 끊어질 때마다 새롭게 몸을 부풀려 키워내며 버티고, 지켜 내는 악마의 심장은 투란의 뜻에 따라 여린 힘으로 보호받는다. 투란은 이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확인했다.
그다음에 투란의 의지가 심연을 두들겼다.
톱니바퀴로 엮여 이뤄진 문장의 마개-뚜껑도 함께 두들겨졌다.
여린 힘이 그 의지를 싣고 움직였다.
심연의 나선이 넓어지며 공허 속에 작고 새카만 웅덩이가 깊은 구멍처럼 열렸다.
천칭의 축이 그 속으로 밀려들었다.
천장이 되던 톱니 마개와 밑바닥인 심연의 간격이 줄어들었다.
공허에 열린 구멍이었던 심연을, 이 공허의 바깥과 경계를 만드는 뚜껑이 덮으며 막아 버렸다. 그 사이에 놓여 있던 천칭과 고무쇠가 모두 엉키며 심연으로 담가진 꼴이 되었다.
그리고 투란은 아주 작은 ‘공허’ 속에 검은 테처럼 꿈틀거리는 ‘심연의 나선’과 ‘문장’의 톱니바퀴만 남은 듯한 풍경을 깨달았다.
‘잔가지가 없어졌네.’
가장 먼저 투란의 느낀 감상이었다.
심연에서 흘러나온 나선, 천칭의 축을 따라 올라오며 자잘한 가지를 제멋대로 뿌리던 것이 굵고 단정한 한 가닥만을 남긴 채로 톱니바퀴 마개-뚜껑의 테를 그리듯이 돌고 있었다.
그 톱니바퀴, 투란이 연금술사의 천칭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부속품은 단단하고 두꺼운 원형 방패처럼 심연을 덮은 채였다.
날뛰던 고무쇠는 이제 심연 깊이 잠겨 사라졌다.
하지만 톱니바퀴의 중심에서 느껴지는 작은 ‘공허’가 품은 악마의 심장은 가녀리게 떨며 남아 있었다. 심장은 몬스터의 본능에 따라 투란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어서 이 공허의 결박을 풀어 달라고 다시 한 번 천칭의 축, 그 그릇 안에서 뛰게 해 달라고.
‘지금 내 몸은 어떻지?’
투란은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풍경 밖의 상황, 현실에 놓인 투란 자신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천칭이 심연에 잠겨 버린 지금, 투란이 통찰하고 의식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풍경인 듯하다.
‘조금만 더.’
다시 한 번 호소해 오는 몬스터의 본능을 향해 투란은 속삭였다.
이 풍경 밖의 현실을 알 수는 없었지만, 아직 문장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것은 알 수 있었다. 심연의 나선이 톱니바퀴의 원형 틈새를 헤집으며, 여전히 투란의 현실 속에 그 힘을 흘려 내고 있었다.
이를 멈추려면 다시 심연에서 천칭을 끄집어내고, 이 풍경을 정리해야 했다.
고무쇠가 없는, 본래대로 얌전한 풍경을 생성하도록 해야 했다.
‘왜 몬스터를 삼킬 때는 사람이어야 하지?’
투란이 던진 물음이 공허를 울렸고, 심연과 톱니바퀴를 두드렸다.
언어의 형태가 아닌, 형상이 투란에게 고요하게 밀려왔다.
풍경 속의 형상이 보다 선명하게 투란의 지각으로 스며들었다.
‘한 가닥? 한 줄기!’
문장의 형상, ‘천칭’은 투란이 아는 것 속에서 그 형상을 빌려 왔다.
때문에 어린 투란이 흙장난으로 만들었던 천칭 모양대로였다.
정교하고, 섬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작고 큰 톱니바퀴의 끊임없는 맞물림으로 작용하는 연금술사의 천칭은 어린 투란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언젠가 그런 천칭을 손에 넣든가, 아니면 직접 만들기를 투란은 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화려하고 멋진 천칭을 대신한 이 작고 투박한 천칭은 심연의 나선, 그 한 가닥 줄기에 의지해서 맞물린 톱니를 돌리고 있었다. 그 톱니가 어떻게 도는가에 따라서 뚜껑 마개가 열리고 닫힌다. 이 나선의 가닥을 통해 몬스터를 형성하고, 삼키는 모든 천칭의 작용이 성립한다!
‘그렇구나. 그러면…….’
두 가닥이면 안 될까?
투란은 어린 시절 던진 것처럼 단순하게 물음을 떠올렸다.
한 가닥은 몬스터를 삼키기 위해 문장을 열고 닫는 것에, 한 가닥은 몬스터의 정수를 유지하며 형성하는 것에 몰입하면 안 되는가?
‘사이가 좋은 머리 둘 달린 뱀처럼…… 안 되나?’
기억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기형의 뱀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생각했다.
“머리가 둘 달린 놈은 생각이 두 가지라서, 하나뿐인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그러니까 머리가 둘인 뱀은 자라지 못하고 죽어. 머리가 둘인데 생각이 한 가지이고, 몸을 제대로 움직이는 놈은…… 괴물이다.”
샤오덴 할배가 죽은 뱀을 놓고 한 말이었다.
머리가 둘인, 아이의 손바닥에도 올려놓을 정도로 작은 뱀이 죽은 것을 주워 보여 줬을 때, 이것도 몬스터냐고 묻는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다.
자라지 못하고 죽은, 그저 병신으로 태어난 뱀일 뿐이라면서.
이상하게 생겼다고 괴물은 아니라면서 그리 말했다.
‘몬스터 엠블럼이니까…… 괴물이어도 되잖아?’
투란은 자신을 향해 속삭였다.
공허에 속삭임이 퍼져 갔다.
심연의 새카만 나선은 톱니바퀴의 원형 뚜껑 사이로 스며들면서 점점 더 강하게 틈새를 열려고 했다. 이 허무를 세상에 내보내서 기둥을 세우고 싶은 듯, 그렇게 해서 세상의 존재를 삼키고 싶은 듯이!
공허가 나선을 움켜쥐며, 감싸 안았다.
심연의 나선 속에 깃든 허무가 여린 힘이 맴도는 공허와 닿아, 공허의 편린이 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풍경 밖으로 흘러가던 나선의 흐름이 멈췄다. 이제는 오직 이 풍경 안에서 한 줄기 굵은 흐름만 머무는 꼴이 되었다.
투란이 좀 더 강하게, 좀 더 간절하게 염원했다.
‘아주 사이가 좋은, 언제라도 한결같은 한마음인 두 머리 뱀처럼…… 갈라져서 반 토막이 나지 않는, 언제라도 하나처럼 맞물려 돌 수도 있는…… 그런 것이 되어 줘!’
톱니바퀴의 테를 이룬 심연의 새카만 나선, 그 속으로 공허가 파고들었다.
곧이어 나선의 뿌리까지 더듬듯이 공허는 덮여진 심연의 틈새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아주 멋진, 최고의 천칭이 되어 달라고!’
투란은 어린아이의 꿈을 부르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