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8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78)
휘이잇, 휘잉!
거센 바람이 좁고 높은 암벽의 틈새를 헤집고 지나갔다.
“우와? 여기 이런 곳이?”
투란이 틈새에 올라서면서 솔직하게 놀란 소리를 냈다.
이 암벽의 틈새는 아래에서 보면 그저 높은 암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올라오기 위해서는 계단 없는 암벽을 열심히 타고 올라와야 하는 곳이기도 해서, 아래에서 보고 굳이 올라와 확인하려 한다면 정신이 좀 이상한 경우라고 여길 만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곳으로 투란을 이끌고 온 쟌의 생각은 꽤 다른 모양이었다.
“음, 엉터리는 아니군!”
갑작스런 쟌의 목소리가 거센 바람결을 타고 밀려오는 듯했고, 투란은 어리둥절해서 되물어야 했다.
“응? 엉터리?”
쟌은 서너 걸음 앞선 곳에서, 바람결에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게 하려는 듯이 손을 입가에 대고 다시 말한다.
“그래! 여기 올라오지도 못하는 녀석들이 거들먹거리면서 몬스터 사냥을 하네 마네 하고 까부는 경우가 많거든! 여기도 못 올라오는 녀석들은 데려가도 민폐라고! 하지만 넌…… 투란은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어!”
“시험이었어?”
투란이 어이없어 하며 웅얼대듯이 대꾸했다.
쟌은 도도하게 한쪽 다리를 건들거리는 자세로, 하지만 두 손은 입가에 모아 소리를 모으는 모양을 그대로 한 채라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자세로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외친다.
“좋아하지 마! 겨우 기초체력을 확인한 것뿐이거든? 이제 본격적으로 시험할 거야.”
“뭘?”
투란도 목소리를 높여 되물었다.
휘이이, 시이잉!
바람이 거세게 스쳐 갔고, 잠깐의 고요함이 암벽의 틈새에 맴돌았다.
“자, 시작한다!”
쟌은 바람소리를 뚫기 위해 고함을 쳤고, 덕분에 암벽 틈새를 울리는 메아리가 시원하게 투란을 덮쳐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 메아리에 투란이 귀를 후비거나 하는 모습을 보일 여유가 없었다.
쟌이 불쑥 내민 두 손, 묘한 손짓인가 싶은 순간에 뭔가 날아왔다.
빠르게, 화살처럼……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우어?”
놀란 소리를 내면서도 투란의 오른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손목에서 팔을 감고 있는 소매 모양을 했던 가죽띠가 느슨해졌고, 손과 팔뚝이 굵게 부풀어오르며 날아드는 것의 궤도를 가로막았다.
팍.
둔탁한 소리가 투란의 손등, 손바닥 언저리에서 울려 퍼졌다.
―허?
돌연 터져 나온 드라고니아의 놀란 외침에 투란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아직 새로운 바람이 몰려오기 전이라 고요한 암벽의 틈새에 쟌의 새로운 목소리가 메아리를 일으키고 있었으니…….
“우어어엇! 너, 몬스터 로드였어?”
투란도 대꾸하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너, 마법사냐? 아무것도 없는 빈손인데, 대체 뭐였어?”
―볼트.
기묘하고 희한해하는 낌새가 역력한 드라고니아의 한마디 대답이었지만, 투란은 그쪽보다 쟌을 향해서 가득 수상하고 이상한 눈길을 꾸며보내는 데 집중했다.
쟌은 투란의 말에 눈을 깜박거리다가 혀를 차는 시늉을 하며 대답한다.
“마탄의 잭…… 쟌이라고 했잖아! 당연히 마탄이라고, 이거! 뭔 줄 알았어?”
“최소한 장갑이라도 낄 줄 알았지. 설마 맨손에 새겨진 마법이 그대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고. 그런 건 마법사나 하는 짓 아니었나? 쟌, 마법사 아냐?”
투란은 적당히 둘러대면서 어설프게 웃어보였다.
덕분에 쟌의 눈길은 뭔가 얼간이를 구경하는 듯한 낌새가 되었다!
약간 못마땅한 듯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쟌은 찬찬히 투란을 훑어내리면서 중얼거리기 시작하는데…….
“가벼웠다고 하지만 내 예고없는 마탄을 거뜬히 막아냈단 말이지…… 그 정도면 고블린이 던지는 다트나 대롱살에 바로 당하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이봐, 투란. 정말 고블린 몇이나 상대할 수 있어? 고블린 떼가 도망치지 않고 계속 덤벼든다면 몇 마리나 때려잡을 수 있지?”
돌연 정색을 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묻는 말로 매듭을 짓고 있었다.
투란은 쟌을 향해 똑같이 정색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되묻는 듯이 말한다.
“너, 조금 전의 마탄…… 그 정도면 곤란하잖아. 고블린 살갗을 긁는 정도로는 성질만 돋운다고. 설마 한 마리 잡으려고 수십 번 때려야 하는 그런 거면…….”
파팟, 파파팍!
암벽 틈새의 바닥, 역시 단단한 바위에 구멍이 뚫렸다.
쟌이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것처럼, 구멍이 낮지 않게 뚫린 광경이 투란의 말을 멈추게 했다. 쟌의 목소리가 다시 불어오는 바람결 사이로 또렷하게 투란의 귓가에 파고든다.
“가벼웠다고 했지? 내 마탄은 최대 사백 번 이상 쏠 수 있고, 이렇게 바위도 뚫어. 그리고 절대로 빗나가는 일 없어! 고블린 한 마리에 한 방! 그게 바로 내가 아빠에게 물려받은 마탄이야! 자, 이제 내 얘기 들었으니 너도 말해봐. 겨우 팔뚝 하나만 몬스터이면서 고블린 수백 마리가 있…….”
우드득, 촤악!
투란이 팔뚝에서 가죽띠가 넓은 나선 모양을 그리며 풀려나갔다.
두 개의 엄지가 굵고 긴 세 손가락을 사이에 둔 듯한 우람한 주먹, 굵고 큰 팔이 어깨까지 순식간에 피어나는 듯이 보였다.
거세지는 바람결을 뚫고 쟌의 귓가에 투란의 목소리가 닿았다.
“말했지. 고블린이 도망치지 않으면, 전부 잡아 죽일 수 있다고. 이 몸은 그랑츄, 강한 그랑츄 한 마리를 완전히 갖췄거든.”
쟌이 그 다음에 본 광경은 투란의 턱, 다른 한쪽 손의 새끼손가락과 두 발의 끝이 굵어지고, 살짝 허리와 몸통이 불끈거리며 부풀려다가 멈추는 모습이었다. 그 의미를 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너, 투란…… 너! 진짜배기 몬스터 로드구나!”
쟌의 얼굴에 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눈가에 번뜩대는 광채는 기괴하게 탐욕스럽다?
투란은 몬스터의 형상을 사람의 모습으로 얼른 되돌리면서 두 손을 입에 모아, 아까 쟌이 했던 것처럼 외쳤다.
“시알라에게 말하지 마! 내가 따로 용돈벌이 하려고 이런 거 보여주고 다니면 싫어하거든!”
“어?”
쟌은 잠깐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곧 히히거리면서 투란 가까이 다가서며 쟌도 외친다.
“나도, 내 얘기도 시알라에게 하지 마! 아, 벨라딘한테도! 이건 우리끼리 비밀인 거야!”
바람을 한 손으로 막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이 조금 침착하고 신중한 표정을 꾸미면서 이 말을 받는다.
“좋아. 그러면…… 이제 제대로 얘기를 시작해야지. 고블린 보상금, 어떻게 나와? 미리 말해둔 다음에 고블린의 손가락이나 귀를 잘라 오는 거야?”
“우엑? 뭐야, 그런 무식한 짓거리를 왜 해? 사냥하고 나서 길드 헌터에게 알려주면 된다고! 기록의 구슬, 몰라? 아, 시끄럽네. 이쪽으로 와봐.”
점차 커지고 요란스러운 바람소리에 투덜거림을 더하면서 쟌은 투란을 암벽이 오목하게 팬 듯한 자리로 끌어당겼다. 암벽의 한쪽에 달라붙은 꼴이 되었지만, 확실히 코앞을 스쳐 가는 듯한 바람소리가 귀를 멍하게 하는 느낌 없이 이어지는 쟌의 말이 투란에게 잘 들리는 자리였다.
“이거 말이야, 이거. 길드에 등록하면 주는 요술 구슬. 사냥할 때, 덫을 놓거나 본격적으로 몬스터랑 만나 싸우기 전에 꺼내 두면 무슨 일이 있었나 기록해주는 구슬. 길드 소속이 아닌 등록 헌터라면…….”
“소속 아닌 등록?”
투란은 쟌이 꺼낸 구슬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다가 갸웃하며 물었다.
어딘가 투란에게는 낯선 말이었다.
쟌은 ‘응?’ 하다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한다.
“길드에 소속되면 이것저것 뜯어가고 강제로 정기적인 임무도 수행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사냥 할 때마다 따로 이런 요술 구슬을 받아서 기록하고 등록만 한 채로 사냥하는 거잖아. 물론 보상금에서 수수료를 따로 떼이기는 하지만…… 목숨 아끼려면 완전히 길드 소속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아, 이건 라비엔에서만이 이야기려나? 아니, 경계도시 쪽에서도 비슷하다고 하던데?”
“길드 쪽으로는 가 본 적이 없어서.”
“어? 아, 몬스터 로드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으음…… 암튼! 등록을 하고 제대로 실적을 보이면 길드 카운트를 이용하게 해줘. 그래서 원하는 사냥, 할 수 있는 사냥만 하는 게 등록 헌터라고. 소속 헌터처럼 강요된 임무 같은 거는 없어. 대신 그 망할 수수료가 좀 세지!”
쟌은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다는 듯, 수수료에 대해 이를 갈면서 구슬을 다시 챙겨넣었다. 투란은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살폈다.
쟌의 허리춤에 가득 매달린 가죽 주머니, 정교하게 박음질된 모양이 흡사 못을 박아놓은 듯이 보이는 실 가닥들…… 웬만해서는 뜯겨나갈 리가 없어 보이는 헌터의 장비 차림새였다. 꽤 말라서 앙상하다고 할 정도인 쟌의 몸매에는 거의 울퉁불퉁한 모든 것을 차지하는 차림새이기도 했다.
“좋아, 그럼 이제 우리 배당을 따져볼까?”
잠깐 투란이 한눈파는 낌새를 노린다는 듯이 쟌이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새로 꺼낸 말이었다. 이는 투란을 바로 갸웃하게 했다.
“응? 배당? 보상금 배당? 절반씩 갖…….”
“떽! 서로 맡은 역할이 다른데 똑같이 반반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에? 말이 안 돼?”
“쯧! 길드 등록도 모르더니만…… 투란, 카운트도 없지?”
“없는데.”
“아핫, 그럴 줄 알았어! 잘 들어봐!”
쟌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짝다리 짚고 선 채로 한쪽 팔은 가슴에 두른 듯한 자세로…… 뭔가 하나 가르쳐준다는 듯한 태도로 말을 하는 쟌의 모습은 투란을 마주 보며 서느라 오목한 벽에서 새 나간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흔들거렸고, 진짜 꼬리처럼 보이는 채였다.
“아까 저 아래에서 그랬잖아, 투란이 혼자 사냥 나가면 열 마리? 그보다 좀 많게 잡는 게 고작이라고! 방금 보니, 그 말이 일리가 있어! 그래, 그 정도 몬스터를 품은 몬스터 로드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그치만 나랑 같이 가면, 고블린 팩을 전부 사냥하는 거야! 투란은 한 마리씩 쫓아가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이, 내 옆에 선 채로 가까이 오는 녀석들 겁만 주고 서 있으면 되는 거라고! 자, 그러면 이제 계산을 해보자고! 투란은 가까이 와서 겁 없이 덤비는 쪼그만 몇 마리만 직접 때려주면 되고, 나는 도망칠 틈을 주지 않고 고블린 수백 마리를 모조리 마탄으로 뚫어버린다고! 죽인 숫자가 수백 배 차이 나잖아? 아, 물론 그러기 위해서 난 내 목숨을 투란에게 맡기는 거고! 그러니까 이 사냥에서 투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 내 보디가드라, 이거야! 보, 디, 가, 드! 알지, 보디가드가 뭔지? 그렇다면 보디가드로 채용된 투란이 보상금의 절반을 가져가는 거는, 당연히 불공평하잖아? 하지만 내 목숨을 지켜주는 소중한 역할인 것도 틀림없어! 그러니까, 칠 대 삼! 나, 칠! 투란은 삼! 생각해봐, 그냥 내 곁에서 날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거의 백 마리 가까운 고블린 보상금을 챙기는 거라고! 완전 이득이잖아? 아주 쉬운 일이잖아? 물론 그 쉬운 일에 나는 목숨을 거는 거고 말이야! 그러니까, 투란의 말에 목숨을 거는 내게 위험수당이 쪼금, 쪼오끔! 더 붙어서 내가 칠이고, 투란이 삼! 혼자서는 절대로 잡을 수 없는 백 마리 가까운…….”
“알았어! 알았다고!”
투란은 어질거린다는 듯이 등을 벽에 기대면서 휘휘 고개를 저었다.
쟌이 이 말을 쏟아내는데, 그야말로 숨을 두어 번 쉴 듯 말 듯한 광경을 보고 나니 듣는 투란이 먼저 숨이 막힐 듯해서 말릴 수밖에 없는 기분이 된 탓이었다.
―시, 신기한 재주로군! 저 짧은 호흡으로 저렇게 지껄일 수 있다니! 인간의 신체는 생각보다 기괴한 기능을 갖췄어!
드라고니아조차 이러고 감동하고 있었으니, 어쩌겠는가!
쟌은 투란이 ‘니 맘대로 하세요!’ 란 표정이 된 것을 보며 승자의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바로 투란의 팔을 잡아끌면서 외친다.
이번에는 아주 짧게!
“그럼, 가자!”
“어? 자, 잠깐! 이대로 출발하자고?”
쟌이 내달리는 방향은 투란과 함께 이 암벽 틈새로 올라선 쪽이 아니었다.
라비엔의 외부 쪽을 향해 투란을 끌고 있었다.
“꾸물거릴 필요가 없어! 위치 확실히 파악했거든! 사냥의 기본이잖아!”
이리 신나서 외치는 쟌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투란은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쟌, 나야 몬스터 로드니까 그냥 들판을 헤매도 괜찮지만…….”
“나는 준비된 헌터라고! 걱정하지 마! 기본 장비, 준비는 늘 갖춰져 있거든! 가자!”
한층 더 신나하는 쟌의 휘날리는 꼬리 같은 머리 묶은 꼴을 보며…… 그 꼬리가 살짝살짝 자신을 때리는 듯한 광경 속에서 투란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옛날 강대한 마법사가 하루 만에 끌어올려 이뤄냈다는 라비엔 요새의 암벽, 틈새 한쪽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한쪽으로는 황야의 풍경이 놓여져 있었고 쟌과 투란은 황야쪽을 향해 나아갔다.
암벽을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에 따라서는 목숨이 오락가락할 수 있는 위험한 길을 더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