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8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79)
“너무 빨리 달리지 마!”
투란이 외쳤다.
통통 튀는 듯한 모습으로 달려나가던 쟌의 걸음이 늦춰졌다.
하지만 돌아보는 눈길은 ‘왜? 급한데!’라며 따지는 듯하잖나.
투란은 다시 외쳐야 했다.
“오래 달릴 수는 있는데, 빨리 달리는 거는 서툴다고! 내가 말이야!”
“아…… 걱정 마! 내가 알아서 조절할 테니까!”
쟌은 기운차게 대꾸하더니, 다시 통통 튀어 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투란은 조금 어이없어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뭔 체력이 저리 좋지? 팔다리는 앙상한데…… 왜 저리 힘이 좋아?’
황야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라비엔의 암벽을 오르내릴 때 품었던 의문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쟌은 길고 굵게 묶여진 분홍색 머리카락이 긴 꼬리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치켜 올라간 모습인 채로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암벽을 오르내린지 얼마되지 않아 보일만한 지친 기색 따위는 흔적이 없다!
―나름대로 오러 윌더니까.
쓴웃음 짓듯, 투덜거리는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응? 뭐? 오러?’
―저 아이의 마법 각인…… 오러 마크라고 할 수 있다.
‘마법을 쓰는 오러 마크?’
투란은 문득 어렴풋이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이를 다시 확인해주듯이 말한다.
―오러 메자이(Aura Magi), 혹은 오러 메이지(Aura Mage)라고 하는 특별한 계통의 오러 윌더가 있다고 했잖아. 저 애도 따지고 보면 그런 계통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엉망진창이야!
‘뭐?’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말투에 투란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쟌은 앞쪽에서 가볍고 빠르게 계속 달리며, 가끔 뒤돌아보고 투란과의 거리를 조절하고 있었다. 투란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고 몇 번씩 강조했던 이야기를 제대로 받아들인 듯한 모습이었다. 차분하게 쟌의 뒤를 따르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기묘한 울분에 대해 물어야 했다.
‘왜 화를 내는 거야?’
―도대체 저 애가 아직 멀쩡한 까닭을 모르겠다!
‘어, 뭐?’
―조금 더 관찰해야겠어. 대체 저런 식으로 구성된 마법이 어떻게 효과를 내고 있는 건지, 쟤는 왜 탈진해서 쓰러지지 않고 있는 건지…… 솔직히 말해서 저렇게 엉망진창이면 이미 예전에 지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거든!
‘야, 무서운 소리 하지 마! 뭔가 대단한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뭘 그렇게 험악한 소릴…….’
―대단했으면 차라리 낫지! 저렇게 조잡하고…….
투덜거림은 길고 세게 투란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투란은 이를 한귀로 흘려내는 자세로 마음 한편으로 밀어내면서 쟌을 조금 더 세심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주의해서 봐도 쟌의 마른 몸매는 여전히 앙상하게 보이지만, 힘이 넘치듯이 활발했다. 암벽을 탈 때도, 저렇게 달릴 때도 쟌은 비척거리거나 허약해서 허우적대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뒤돌아서 외칠 때도…….
“힘내! 오래 걸리지 않아!”
쟌의 목소리는 가벼우면서도 힘이 넘쳐났다.
투란은 소리치는 대신에 손을 흔들면서 제대로 들었다고 신호해줬다.
너무 느리지 않지만 빠르지도 않게 투란의 걸음은 꾸준히 쟌을 쫓았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말과 달리 쟌이 투란을 끌고 달린 시간은 금세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덕분에 투란은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헌터는 헌터네. 저렇게 달리고도 팔팔하다니…….’
―정말 기괴하군!
드라고니아의 감상은 전혀 다른 쪽에서 놀라는 듯했다.
‘음? 속도를 늦추네? 다 온 건가? 주변에 고블린이 있어?’
―가까운 곳에는 없다만…….
쟌의 움직임이 변하는 것을 보며 투란은 주변을 훑어봤다.
드라고니아는 아직 가까운 곳에는 고블린의 기척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줬다.
하지만 쟌은 어느새 다가오며 말하고 있었다.
“조용히 해!”
갸웃하는 고갯짓을 하며 투란이 보다 노골적으로 주변을 빙빙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멀기는 하지만 아직 라비엔의 암벽이 잘 보이고 있었고, 주변에는 풀보다는 돌과 바위가 듬성거리며 더 많아 보였다. 몬스터가 아닌 짐승도 이 근처에서 먹고 마실 것을 구하기 어려워 없을 듯이 보였다. 차라리 ‘역병의 수해’ 쪽이 더 윤택해서 살만한 곳으로 여겨지게 하는 풍경이었다.
쟌이 몸을 낮추면서 투란에게 손짓했다.
투란이 그 손짓에 따라 쟌의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들려. 하지만 그건 우리 기준이고…… 그 고블린 악당들 중에 위키드(Wicked)가 분명히 있다고 했거든. 그것도 불꽃이나 얼음, 번개를 불러내는 품종이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을 감지하는 녀석이라고 했어. 그래서 라비엔으로 오는 상인 대열(隊列)이 당한 흔적에도 제대로 약점을 찔린 게 보인다고도 했고…… 그 흔적이 있는 곳이 여기서 멀지 않아. 이번에 길드에서 고블린에게 주의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녀석들이 라비엔을 먹을 것이 풍요로운 사냥터로 여길 가능성이 꽤 높기 때문이야. 맞아, 상인들 중에는 산 채로 뜯어먹힌 흔적도 있었어. 길드 헌터들은 이 근처를 빠르게 수색하고 물러섰고,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고블린이 근처에 어떤 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몰라.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조심해야 해.”
“어.”
요점만 짚는 듯했지만, 쟌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또박또박 빠르게 투란의 귓가에 꽂혀들었다. 역시 그 사이에 숨은 한두 번 쉬는 듯 마는 듯했고!
쟌은 투란이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다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빠르게 말한다. 이번에는 단숨에 몽땅 말해야 한다는 듯!
“확실히 해두자고. 우선 내 등 뒤를 지켜. 가까이 오는 고블린이 보여도 잡으러 가지 마. 철저하게 내 곁에서, 나를 지켜. 고블린이 어떻게 자리를 잡고, 어떻게 무리지어 덤비든 간에 투란은 내 곁에서, 나만 지키면 되는 거야. 고블린의 대롱살이나 다트, 어쩌면 칼이나 창도 있을 수 있지만…… 내 마탄을 막아냈으니 그 정도는 문제없겠지? 그러니까, 고블린이 보였다 싶으면 내 옆에 딱 붙어서 녀석들이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 되는 거야! 나머지는 내가 잘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지?”
“어.”
강조하고 강조하는 내용은 딱 한 가지였다.
쟌은 투란에게 철저하게 방패, 철벽같은 방패 노릇만 잘해달라 하는 것이다.
공격에 관한 부분은 몽땅 쟌, 자신이 떠맡는다면서!
―기대되는군. 저 조잡한 마법으로 진짜 300이 넘는 고블린을 꿰뚫어 죽일 마탄을 쏟아낼 수 있는지! 그 꼴을 보면 대체 저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나도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겠는 걸! 정말로 구경만 하면서 담장 노릇만 해주라고!
‘야, 넌 왜 갑자기 삐뚤어지는 건데!’
뇌리 한구석을 간지럽히듯이 씨근대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투에 투란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쟌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잖은가? 이미 살짝 쟌이 수상하게 보는 듯하니 투란으로서는 무슨 말이든 해서 일단 이 간지러운 기분을 변명해야 했다.
“내 몬스터를 보고 가까이 오는 고블린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걱정하지 마. 가능한 한 많이 잡아줘. 보상금은 한 마리당 따로 계산되는 거였지?”
“그래! 자, 이제는 내 뒤에 바싹 붙어.”
쟌은 기운차게 대답하면서 몸을 돌렸다.
휭하니 날아드는 꼬리 같은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막아내면서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사뿐거리며 서두르는 쟌에게 말해야 했다.
“간격.”
“어? 아, 걱정 마! 이젠 서너 걸음 이상 절대로 안 떨어질 테니까!”
쟌은 살짝 어깨 너머로 투란을 보고는 엄지를 세우면서 자신만만한 표정을 자랑하듯이 보였다. 하지만 투란은 쟌의 숨결이 살짝 거칠어지면서 전투의 흥분, 혹은 긴장에 몸을 떨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재우는 주문, 통하겠지?’
―물론! 여차하면 뒤통수 갈겨서 때려눕혀.
‘그만 삐뚤어져!’
―흥.
쟌이 자신이 외친 역할을 못할 경우를 고려하면서, 투란은 쟌의 두어 걸음 뒤를 바싹 쫓아야 했다.
고블린 무리는 소란스러웠다.
사람이 잔치를 하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고블린 무리에게서 그대로 흘러나오는 듯했다. 불을 피우고 모여 있었다면 조금 더 인간의 야영지처럼 느껴졌겠지만, 고블린이 자리 잡은 곳에는 불빛이 전혀 없었다.
어둑하게 내려앉은 어스름한 광채 속에서 고블린은 그림자처럼 와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고, 그 움직임에 따라 멀리 피냄새가 짙게 번져 나오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사냥해서 한창 뜯어먹는 상황이 분명했다.
꽤액거리는 듯한, 사람이라면 뭔가 큰일 났다고 터뜨리는 비명을 닮은 소리가 소란스러운 고블린 틈새에서 퍼져 나왔고…… 사람일 리가 없는 짐승의 비명이 그 속에 어우러져 울려 퍼졌다.
이런 고블린의 주둔(駐屯)을 바라보면서 쟌은 숨을 멈췄다.
투란이 바로 그 등 뒤에 바싹 붙으며 쟌의 귓가에 곧바로 속삭인다.
“히엔나야. 들개랑, 사슴도 있어. 저쪽 숲의 기슭에서 사냥을 한 모양이야. 사람 냄새는…… 없어. 전부 짐승이야.”
“코가 좋네?”
쟌은 살짝 목을 움츠리면서 대꾸했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피비린내를 피하기 위해 숨을 멈추는 짓은 그만두는 쟌이었다.
투란은 그런 쟌에게 다시 속삭인다.
“몬스터 로드의 감각이잖아. 이모저모로 예민하지. 자, 그럼 이제 어떻……?”
“일단 구슬은 설치했고…… 세게 시작해야지. 나 좀 받쳐줘.”
쟌이 몸을 기대왔고, 투란은 그 어깨 아래쪽 등을 두 손으로 받쳐 줬다.
무엇을 하려는가, 투란이 호기심을 품고 바라보니 쟌은 두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엄지와 검지, 새끼손가락은 마주하고 꼿꼿하게 펴고 남은 손가락은 모두 깍지 끼듯이 꽉 맞물린 채였다.
“간다, 쟌!”
투란이 아닌 자신에게 쟌이 속삭임을 토하는 순간, 투란은 흠칫했다.
쟌의 손목, 팔뚝에서 선명한 무늬가 떠올랐다.
마치 쟌의 몸이 텅 빈 투명한 그릇인 것처럼 무늬는 쟌의 손, 팔, 어깨를 타고 머리와 눈언저리까지 찰랑거리며 움직이는 광경이 투란에게 훤히 보였다! 이제까지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조각들이 풀렸다가 다시 형태를 갖추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거……?’
보통의 시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감지능력이 시각화하면서 보이는 현상이었다.
한데 드라고니아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와 함께 들었던 어떤 마법의 지식에도 없는 현상이잖은가. 세란드에게서 얻은 주문과도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그렇게 쟌의 몸에 새겨진 마법 각인이 활동을 시작했다.
씨이앗! 씨잉!
꿔어? 꾸끗?
갑작스럽게 바람을 찢고 가르는 소리는 고블린 떼의 관심을 끌었다.
그 소리 끝에서 몇 마리 고블린의 머리통이 터져 나가고,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로 나뒹구는 순간에는 고블린 떼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꾸으끄끄으, 크워엉!
뜯어먹던 들개, 히엔나와 사슴의 고기가 핏기 가득한 채로 내동댕이쳐졌다.
땅바닥을 뒹굴거리면서 배불러 늘어져 있던 고블린 무리가 한꺼번에 일어섰다.
평균을 잡으면 약 1미터 30센티 키의 고블린 무리 속에서 평균이 1미터 50센티로 월등히 큰 녀석들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씨이앙!
그 큰 녀석들을 향해 다시 바람을 가르고 찢는 소리가 다가갔다.
꾸으, 크웟!
조금 전에 소리가 어떤 결과를 냈는가를 잘 안다는 듯, 1미터 50센티로 다른 고블린에 비해 커다란 녀석들이 팔뚝으로 머리와 가슴을 막는 시늉을 했다.
퍼퍽, 퍼억! 우드득!
그래도 몇 마리는 머리의 절반가량이 찢어졌고, 가슴의 한쪽이 꿰뚫렸다.
하지만 몇 마리는 팔이 일그러지거나 부러지는 정도에서 머리와 가슴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워이이, 히아아앙!
1미터 50센티짜리 고블린들이 모인 자리, 그 중앙에서 이상한 노래처럼 길고 큰 소리가 퍼져 나왔다. 그 소리는 짙은 황갈색의 바람을 불렀고, 허공에서 뭉치게 했다.
끄으읏, 쿠워어어!
허공에 뭉친 황갈색의 바람결은 고블린의 커다란 머리통을 공중에 그려내고 조각해냈다. 고블린 떼의 기묘한 합창에 호응하듯!
머리만 둥실거리며 떠 있는 황갈색의 고블린 머리통이 입을 열었고, 한쪽을 향해 포효하듯이 질풍(疾風)을 뿜어냈다.
그 질풍은 허공을 가르며, 다시 요란하게 날아드는 소리에 마주치듯이 불어갔고…….
“이런!”
투란은 즉각 쟌을 감싸 안으면서 변신해야 했다.
파파팍! 따닥! 터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