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8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0)
파팟! 콰르륵!
주변의 돌이 휘날렸고, 단단한 땅바닥이 거칠게 파여 나갔다.
쟌은 투란의 품 안에…… 더 이상 사람일 리가 없는 2미터하고도 거의 50이나 60센티는 될 듯한 우람하고 단단하면서 회색과 적색이 기묘하게 뒤엉킨 가슴에 자신이 기댄 꼴이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쟌의 발 아래에서는 질풍에 깎여 나가는 땅이 뭔가에 베이는 듯한 꼴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중이었다. 쟌은 허리가 투란의 크고 두툼한 손갈고리에 낚인 것처럼 둥실거리면서 뜬 채로 그 가슴 쪽으로 당겨져 있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투란의 두텁고 무거운 목소리가 쟌의 귓가로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불꽃도 얼음도, 번개도 아니군. 저 고블린은 날카롭고 센 바람을 쓰는 걸. 과연, 바람을 이용할 줄 안다면 감지 범위도 크게 넓힐 수 있기도 하겠어. 쟌, 괜찮아? 계획대로 할 거야? 아니면 일단 후퇴…….”
“날 내려줘! 꿰뚫어버리겠어!”
쟌의 외침에 투란은 일단 손으로 바닥을 찧었다.
질풍은 지나갔고, 다시 불어올 낌새는 아직 없었다.
발을 딛게 해주자, 곧바로 쟌은 투란의 몸을 담장 삼는 것처럼 한 걸음 내디뎌 고블린 쪽을 보면서 두 팔을 쭉 폈다.
피이싯, 시싯!
아까와는 다른 가볍고 빠른 음향이 허공을 가르며 고블린 무리를 향해 퍼져 나갔다.
곧이어 저편에서 고블린의 비명이 굵고 짧게, 높고 가늘게 여러 번 울렸다.
그리고 다시 질풍이 땅을 갈아엎듯이 불어왔다.
쟌은 재빨리 투란의 가슴 속으로 뛰어들 듯이 움직였고, 투란은 등을 굽히면서 질풍을 막았다.
땅이 갈렸지만, 쟌도 투란도 멀쩡했다.
“하하……하핫! 대단해, 투란!”
쟌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투란의 변신한 모습을 훑어보면서 감탄하고…… 아주 깊이 감동한 것처럼 볼까지 발그스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변신과 함께 투란의 옷가지가 저절로 풀리고 엉키면서 반바지 모양을 한 것도 놀라워했고, 고블린 위키드의 질풍 공격에 끄떡없는 강인한 몬스터의 형상에 미친 듯이 좋아라 하는 표정이었다.
투란 또한 놀라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의 100미터 저편을 향해 쏘아낸 마탄이 고블린 무리를 흔들어 댔고, 실제로 살상(殺傷)하고 있었다.
쟌의 마탄 위력은 진짜였다.
이 정도면 큰소리친 것이 전혀 과장이라고 할 수가 없다!
정말로 저 고블린 무리를 전부 쏴죽일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고블린도 반격을 시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워이이……이히앗!
질풍을 불러일으켰던 큰 외침이 아까와는 다른 반향을 일으키며 퍼졌다.
바람결이 이뤄낸 황갈색의 고블린 머리통이 둘로 쪼개졌다.
크기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둘이 된 머리통이 다시 또 둘로 나뉘고…… 결국 여덟 개의 머리통이 둥실거리면서 고블린 무리의 곳곳에 떠 있는 모양이 되었다.
쟌의 마탄은 그런 고블린 무리를 향해 거침없이 쏘아졌다.
여덟 개의 머리통이 입을 열고 질풍으로 닥쳐드는 마탄의 위협에 맞섰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고블린의 질풍이 방어적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처럼 쟌과 투란을 직접 갈아버릴 듯한 형세로 불어오는 대신, 고블린 앞에 닥쳐오는 마탄의 잔향(殘響)을 막아서듯이 두터운 바람의 장벽이 되고 있었다.
워이…… 카히잇!
질풍을 일으키는 고블린의 새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투란은 그 고블린의 형상을 바라봤다.
100미터보다 저편…… 고블린 무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자리에 1미터 50센티의 키에 평균 이상의 체격을 지닌 고블린들에게 호위를 받는 고블린 위키드…… 그 키는 오히려 작아서 110이거나 120 정도로 가늠되었다. 그러나 그 팔뚝이나 체구의 두께는 150짜리 고블린보다 더 굵어 보였다.
질풍을 일으키고, 바람결로 공중에 머리통을 만들어내는 재간이 아니더라도 저 작고 통통한 근육질 고블린은 주먹질만으로 큰 놈들을 제압할 수 있어 보인다!
그 작고 통통한 근육질의 고블린 위키드 위편에 새로운 머리통이 생겨났다.
그 새로운 황갈색 머리통이 포효하듯이 입을 벌렸고…… 갈라져 있던 다른 여덟 개의 머리통도 일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투란은 거기서 어떤 바람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외침이 반복될 뿐이었다.
땅을 깎고 베는 질풍이 없는 대신, 고블린 무리가 나눠진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무리의 선두에는 둥실대는 황갈색 바람결의 고블린 머리통이 있었다.
‘호오?’
투란은 고블린 위키드가 자신의 능력으로 제대로 지휘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 머리통은 지금 깃발 대신이었다. 고블린 무리는 높이 뜬 머리통을 따라 무리를 나눴고, 그 머리통이 가는 방향으로 돌격하고 있었다.
고블린 위키드는 알 수 없는 마탄에 대항해서 질풍으로 요격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휘하의 고블린을 밀어붙여 근접 전투로 상황을 바꾸려 하는 것이다.
100여 미터의 거리를 저렇게 나눠진 고블린 무리가 저 속도로 미친 듯이 뛰어온다면…… 길어봐야 20초 안에 그 이빨과 손톱이 어떻게 생겼는지 코앞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쟌, 물러서면서 쏠 거야? 아니면…….”
“가까울수록 좋아! 아하핫! 와라, 와!”
쟌은 한 걸음씩 춤을 추듯 움직이며 손짓하고 있었다.
손의 모양이 바뀌면서 마탄이 일으키는 음향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고블린 무리에서 거의 똑같이 나타났다.
막거나, 뚫리거나!
깨지거나 부러지거나!
지휘에 따라 패를 나눠 달려오는 고블린 선두가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거나 피해 달리는 짓 따위는 없었다. 그대로 밟거나, 속도를 위해 뛰어넘으면서 고블린 떼는 투란과 쟌을 향해 돌격해올 뿐이었다.
투란은 슬쩍 쟌의 곁에 발을 디디면서 방벽의 노릇에 보다 충실한 자세를 보였다. 쟌은 너무 신이 나서 미쳐 날뛰는 듯한 꼴로 바쁘게 손짓했고, 그때마다 다른 잔향을 남기는 마탄이 쏘아졌다.
비명과 발소리, 섬뜩한 바람 소리가 잠시 이어졌다.
마탄에 맞아 쓰러지는 고블린이 꽤 많았지만, 모두 쓰러질 리는 없었다.
하지만 거의 삼분의 일이 투란과 쟌에게 닿기 전에, 20여 미터 거리에 도달하기 전에 쓰러지기는 했다.
“아하핫! 와라, 와!”
쟌의 음성이 메아리쳐졌고, 더욱 가까이 다가오던 고블린 무리가 무슨 담벼락처럼 한꺼번에 쓰러지는 광경까지 펼쳐졌다.
그러나 고블린 무리는 그렇게 쓰러진 동료를 짓밟고 돌격해올 뿐이었다.
투란은 가만히 가늠하다가 두 손으로 땅을 퍼올리듯이 긁어 돌무더기를 내던졌다. 한주먹 가득한 돌멩이들이 세차게 날아갔고, 고블린 무리는 그제야 자신들 앞에 버티고 있는 것이 움직이는 몬스터란 사실을 깨달은 듯이 잠시 멈칫했다.
그 머뭇거림을 향해 쟌의 마탄이 다시 날아갔다.
저편에서 뒤늦게 뛰어오는 고블린 위키드를 중심으로 한 무리 쪽에서 보다 사나운 포효가 터졌다. 마치 그량츄 한 마리에 겁먹지 말라고 독촉하는 듯한 포효였고, 그 효과는 금세 드러났다.
날아들던 돌무더기, 그 사이를 가르는 마탄의 음향…….
고블린 무리는 뱃속을 쥐어짜내는 괴성을 울리면서 그 사이를 뚫겠다는 듯이 다시 돌격하고 있었다. 더 거칠고, 더 사납게!
선두의 고블린이 거의 4, 5미터까지 다가섰을 때 투란의 행동이 변했다.
위협적으로 돌을 긁어 날리면서, 쟌이 날렵하게 움직이는 한편을 지키는 태도에서 바로 걸음을 내디디며 쟌의 허리와 엉덩이를 큰 손으로 밀며 빠르게 말해 알려주면서 변화시킨 행동이었다.
“쏘는 일에 집중해. 막고, 방향 바꾸는 거는 내가 한다!”
“어? 아하하하!”
쟌은 순식간에 자신이 단단하고 튼튼한 의자에 앉은 꼴인 것을 확인했고, 눈앞의 풍경이 빙빙 돌 듯이 빠르게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적응했다.
시싯, 피이잉!
마탄의 음향이 요란했고…….
콰륵, 와르륵!
그랑츄의 발에 휩쓸린 땅이 뼈와 같은 돌조각을 휘날렸으며…….
꾸으…… 크아앙!
고블린 무리는 미쳐 날뛰었다.
질풍이 가끔, 적은 규모로 몰아닥쳤고 입가에 대롱을 문 고블린에게서 거센 숨결과 함께 독화살이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손톱과 이빨보다는 사람에게서 빼앗아 온 듯한 녹슨 피투성이 칼이 고블린의 손에서 휘둘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붉은 색조를 머금은 회색 살갗의 그랑츄는 바위보다 더 단단하게 고블린의 공격을 모두 버텨 냈고, 그 발걸음은 춤추며 맴돌듯이 디뎌지면서 품에서 마탄이 거세게 쏟아져 나가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워으흐? 워히힛!
1미터 10센티, 평균보다 작지만 더 통통하고 굵은 체격의 고블린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절망적인 소리를 내뱉었다. 땅바닥에 뒹굴며 신음하는 고블린의 숨결도 잦아들다가 사라지고 있었고, 서 있는 고블린은 이제 위키드…… 이 고블린 무리를 지휘하던 자기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한 신음이었다.
“에헤헷, 네가 마지막이야!”
쟌의 웃음에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쟌이 내민 손끝에서는 ‘힘’이 방출되었다.
퍼억!
고블린 위키드의 머리가 박살났다.
핏방울이 튀어나가는 광경에서 쟌은 바로 고개를 돌렸고, 투란을 향해 두 손의 엄지를 모두 세운 주먹을 쥐어 보이면서 말한다.
“어때? 어때! 내가 다 쏴 맞혔잖아! 에헷, 아하핫!”
“그래, 그랬어. 힘들면 이제 쉬어도 괜찮아, 쟌. 전부 쏴 맞혔잖아. 내가 지키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눈 감고 자도 괜찮아.”
“응, 아하핫! 정말…… 투란도 굉장했어. 나, 너무…… 졸립다. 아, 구슬은 나중에 길드 헌터가 회수할 거야. 음냐…… 나, 쉴게. 아하핫, 에헤헤헤!”
푹, 쟌의 머리가 뒤로 꺾이는 듯했고 몸이 축 늘어졌다.
완전히 의식이 날아간 모습이었다.
투란은 가만히 그 몸을 땅에 내려놓으면서, 나직하게 속삭인다.
“테라트, 섈(Shell).”
땅이 꿈틀거리면서, 자신이 살아있다고 주장하듯이 움직였다.
쟌의 몸이 땅에 닿자, 땅은 부드러운 담요처럼 쟌을 감쌌다.
땅의 담요는 곧 바위로 된 알처럼 단단하고 튼튼한 껍질이 되어 쟌을 덮었다.
새근거리는 쟌의 숨결을 확인하며, 그 얼굴 주변까지 얇은 땅의 장막이 덮게 한 다음에 투란은 느릿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고블린이 모두 마탄 앞에 바쳐진 제물처럼, 마탄의 흔적을 간직한 채로 쓰러져 있는 광경은 섬뜩하면서도 어딘가 처절했다. 고블린 위키드가 도망치려 했다면, 이 고블린 무리 중에 상당수가 살아남았을 터인데…….
“나와라, 이 망할 놈아. 너 거기 죽은 척하고 있는 거 알거든?”
굵고 두터운 그랑츄의 목을 울리면서 투란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무섭게 번뜩거리는 그랑츄의 눈빛을 피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블린 시체 몇 구가 꿈틀거렸다.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척, 죽은 척하고 있던 한 마리 고블린이 몇 구의 시체를 밀어내며 일어서고 있었다.
크르르…….
투란을 향해, 2미터 50센티가 넘는 그랑츄의 거구를 바라보면서도 전혀 겁먹는 낌새가 없는 고블린은 고작해야 120 혹은 130…… 그 키에 어울리는 작은 체구였다.
그 고블린을 보면서 투란이 마음 깊은 곳을 향해 소리 없이 속삭인다.
‘기록의 구슬, 이제 기록하지 않지?’
―그래.
‘좋아.’
―희귀종이기는 하지만…… 고블린 코만도라고 해도 결국 고블린이잖아? 진짜로 삼키려고?
‘야, 그럴듯하게 세상에 보일 만한 놈을 사냥하라고 권한 거는 너잖아, 너! 왜 딴소리야!’
―그랬지……. 하지만 위키드를 제압하고 그 아래에 위장해 숨은 고블린 코만도도 만만찮게 눈길을 끄는 위험한 놈이잖아?
‘헹, 그래봐야 고블린이라고 착각해주겠지!’
크와아아아!
고블린이, 고블린 코만도가 괴성을 질렀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뚜렷하게 깔보는 그랑츄의 눈길에 격노를 드러내는 듯…….
그리고 그 작았던 몸이 부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80으로 키가 커졌고, 그에 어울리는 굵고 두툼한 팔다리에서 밧줄처럼 꼬인 근육이 꿈틀거렸다. 짙고 붉은 구슬 같은 눈알이 번뜩거리면서 몬스터의 광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어지간한 상대라면 그 눈빛에 위압당해 움츠리다가 쓰러질 듯한 압도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과연 코만도는 코만도로군. 현혹(眩惑)과 제압(制壓)의 사안(邪眼), 확실히 가졌다.
‘그 정도면…… 얼렁뚱땅 둘러대기 좋겠지! 이모저모로!’
이글거리는 용암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그랑츄의 눈알 속에서 피어오르면서 고블린을 마주 봐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