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1)
Chapter 77. 라비엔, 인간 사냥
땅을 덮는 융단처럼 깔려 있는 고블린의 많은 사체(死體) 중에서도 유달리 특이한 몰골을 한 채 누운 한 마리를 투란은 내려다보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 자식…… 진짜 가지가지 하는 놈이네. 고블린이면서 뭔 힘이 잿빛바위 그랑츄랑 맞먹어…… 아으…… 팔이 시큰하네.”
가볍게 팔을 돌리면서 투란의 눈길이 주변을 다시 한 번 빠르게 훑었다.
이에 호응하듯, 투란의 뇌리에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린다.
―이제 주변에 살아있는 고블린은 없다. 보는 녀석도 없지. 기록하는 구슬도 완전히 멈춰진 상태였고! 그런데 대체 왜 느닷없이 힘겨루기 따위를 한 거야? 그냥 마그마 로드의 팔뚝 하나면 바로 뭉갤 수 있었잖아? 작고 약한 놈 괴롭히는 취미라도 붙었냐?
‘뭔 소리야? 작고 약한 놈이라니! 얘, 몬스터거든! 그리고, 삼킨다고 했잖아. 삼키려는 몬스터가 어떤 버릇이 있나, 무슨 짓을 하는가를 미리 파악해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 말해줘? 소문으로 대충 듣는 것보다 직접 보고 겪는 게 진짜 중요하다고! 덕분에 너도 봤잖아. 고블린 주제에 이게 뭔 짓을 하는가.’
―관찰이 목적이라…… 그럴듯하군. 하지만 그러려면 이걸 풀어놓고 며칠 동안 지켜보는 편이…….
‘그럴 시간이 없잖아. 나…… 우리 바쁘다고. 괜히 이상한 소문나서 괴상한 현상금 걸릴 처지잖아! 느긋할 시간이 없으니까…… 뭐, 최대한 쥐어짜내서 볼 것은 봤으니까.’
투란은 침착하고 냉정한 기분으로 고블린 코만도의 유별난 몰골을 다시 바라봤다. 역시 주변에 널부러진 고블린 시체 무더기 속에서도 유난히 돋보인다고 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싸우는 와중에 처음 커졌을 때보다 더 체격이 부풀었고, 그건 고블린 코만도가 그야말로 생명을 갉아내서 시도한 짓이었다. 애초에 그 이상야릇했던 눈빛이 투란에게 통하지 않자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그래도 고블린 코만도는 투지를 잃고 겁먹는 꼴은 전혀 없었다. 눈알에 담긴 힘을 꽤 잘 사용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 태도였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크고 우람한 그랑츄를 맞상대로 힘을 겨뤄 이겨야 한다는 것이 고블린 코만도에게는 더욱 신나는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호전적인 자세만 뚜렷해졌을 뿐이었다.
‘막판에 거의 2미터인 키와 체격, 이 정도면 뭐…… 트롤이라고 해도 믿겠네. 그리고 요상한 사안…… 음, 눈동자 파내야겠군.’
투란은 조금 전의 싸움을 기억 속에 간직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시커먼 잉크빛이 투란의 손에 맺혔고, 고블린 코만도의 뒤틀린 머리를 짚었다.
눈알이 파여 나가고 텅 빈 눈구멍이 남았다.
뒤틀릴 대로 뒤틀린 고블린 코만도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마치 아직 덜 죽었다는 듯한 꼴이었고, 투란이 어이없어 놀란 소리를 내게 했다.
“엥?”
―사후(死後)에 일어날 수 있는 반응이다. 이 녀석의 눈알은 특별하니까. 거의 온몸의 신경망이 이어진 채라서 그럴 거야. 완전히 죽었어도 신경망이 어느 정도 반응한다는 거지.
‘허얼?’
소리 없이 한 번 더 놀란 기분을 토해내면서도 투란의 손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고블린 코만도의 몸이 곧 투명해졌고, 바들거리는 기묘한 떨림을 토해내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투란은 문장에 집중했고, 주의 깊게 ‘포획’을 마쳤다.
할짝, 할짝.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투란은 혀로 핥고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
그래서 투란은 조금 더 세게 혀에 힘을 주고 반지를 핥았고…….
―우왓! 뭐야, 뭐 하는 거야!
결국 링 메신저의 반응을 끌어냈다!
그 다음에 투란은 재빨리 소리친다.
“어떻게 쓰는 건지 안 알려줬잖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혀로 핥아보고 해볼 수밖에 없었다고!”
실로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말이 거침없이 쏟아진 셈이었다.
―그냥 내 이름 부르고 말을 걸면 되는 거였다고! 아으…… 이상한 소리랑 감촉에 깜짝 놀랐네.
“헐! 진작 말해주지!”
투란의 대꾸는 조금 더 뻔뻔했다.
결코 내 탓이 아니오!
―이런 사기꾼!
드라고니아는 짜증을 냈다.
아마 마법사로서 루케인 또한 짜증이 났을 듯싶지만, 루케인은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무지몽매(無知蒙昧)한 태도에 매우 관대하게…… 너무 익숙해서 화내기도 지친 듯한 말투로 묻고 있었다.
―이제 알았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지, 투란?
“고블린. 라비엔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팩을 사냥했어. 쟌…… 쟌느라고 마탄을 쓰는 꼬마처럼 보이는 여자애랑…….”
―뭐? 뭘 사냥해?
잠깐 당황한 말투가 반지 너머에서 루케인이 아주 놀라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알려줬다. 투란은 반지를 살짝 흔들면서, 마치 주변을 보란 듯한 손짓을 한 다음에 다시 입가로 가져와 큰소리로 외쳐준다.
“고블린 팩! 쟌이 마탄으로 몽땅 쏴죽였다고!”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아무리 잭의 마탄이래도…… 잠깐, 넌 거기서 뭘 했는데?
“방패? 담장?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길래, 서서 막아주면서 구경했지.”
혀를 살짝 날름하면서 투란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 하, 하하…… 너, 정말…… 그 고블린 떼가 너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군.
“응? 아니, 꽤 위협적이었는데? 보면서도 살 떨리고 막…….”
슬그머니 너스레를 떨 필요를 느끼면서 투란이 주절거리려 할 때, 다시 마법사의 단호한 말이 튀어나온다.
―링 메신저가 그냥 링 메신저가 아니야. 꽤 귀한…… 상황에서 형성된 아주 높은 수준의 마법이라고. 그 안에는 아주 특별한 모니터링이라는 능력도 새겨져 있거든. 너에게 어떤 위협이라도 다가온다면, 그게 뭐든 마법답게 감지해서 내게 경고해주지. 지금은…… 뭐, 어쨌든 내가 일단 가디언이니까. 내게 링 메신저가 경고를 한 건…… 멜란드뿐이었어. 멜란드 주변에 조금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너나 시알라, 다른 둘에게는 아무 위험 없는 거 알거든.
“모니터링? 헤에, 신기…… 잠깐, 멜란드가 뭐 어쨌다고?”
너스레를 좀 더 떨려다가 멈추면서 투란은 물어야 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멜란드의 일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멜란드 주변에서 위험한 일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함께 있지 않지? 너도, 딴 녀석들도…….
위엄이 슬그머니 드러나는 마법사의 말은 정말로 투란에게 신기한 일을 떠들고 있었다.
도대체 이 반지가 뭐길래?
하지만 지금 물어야 할 일은 신기한 마법이 아니었다.
“다들 잠깐 나눠진 채로 따로 일 보면서 움직이기로 했으니까. 멜란드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는 알 수 있어?”
시알라는 쟌을 투란이 빼돌려 고블린 사냥으로 유인하는 사이에 루비와 벨라딘의 주의를 끌기로, 페란드랑 제란드는 라비엔의 분위기가 예전과 비교해서 어떤가를 탐색하기로, 멜란드는 켈슨을 라비엔의 거리가 그 사이에 얼마나 변했는가를 구경하자는 핑계로 끌고 갔다. 따지고 보면, 멜란드가 켈슨의 주의를 끌기 위해 하는 구경이 가장 안전할 텐데…….
―대강 파악은 된다. 하지만 상대적인 측정이라, 내 위치에서 어디로 어느 정도 가면 있다는 것만 알 뿐이야. 거기 뭐가 있는지까지는…….
루케인의 대답은 차분했다.
위험한 조짐이 있지만, 아직은 위험하지 않다는 듯이 여유롭기도 했다.
그래서 투란도 조금 여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시알라랑 페란드에게 알려줄 수 있지? 아, 나한테도 대강 알려줘. 일단 나도 라비엔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아참, 여기 이 고블린 팩…… 기록의 구슬이니 뭐니 하는 게 있다고, 쟌이 잠들기 전에 말해줬는데…….”
말을 하는데, 잠깐 반지 너머에서 불편한 낌새가 느껴졌고 불쑥 묻는 말이 나온다.
―잠? 혹시…… 쟌은 죽었나?
“엥? 잠들었다고! 왜 갑자기 잘 자는 애를 죽여?”
대체 이 마법사가 무슨 생각을 했나, 투란은 어이없었다.
한데 이 대답에 조금 안도한 낌새의 말이 전해온다.
―아, 진짜 잠든 거야? 허, 여유로운 말괄량이로군.
문득 투란은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고 돌려 말하는 경우를 떠올렸다.
대체 마법사는 지금 무슨 생각으로 투란이 그리 돌려 말했을 거라 착각한 것일까!
그 속내가 뭔지 궁금해하는 사이에 루케인의 말이 조금 더 편안해진 느낌으로 반지로부터 울려 나온다.
―알았어. 기록의 구슬 쪽은 염려하지 마. 길드 헌터에게 거기 위치를 대강 알려주고 보내면 되니까. 아, 투란…… 쟌은 거기 재워두지 말고 데려와. 가능한 한 빨리…… 괜히 길드 헌터랑 마주쳐서 이것저것 떠들지 말고. 예민한 녀석들이니까.
“빨리 돌아가지. 그럼, 멜란드가 어디 있나 라비엔에 도착하면 내게 알려줘. 시알라네한테 먼저 알려주는 것도 잊지 말고.”
―알았다.
반지로부터 더 이상 말이 나올 낌새가 없었다.
투란은 왼손 위로 오른손을 덮으면서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이제 멈췄나? 얘기 더 전해지거나 하지 않지?’
―그래. 링 메신저의 기능은 확실히 멈췄다. 네 의지를 담은 말이 다시 울리기 전에는 활성화될 일 없어.
‘야, 마법사는 대체 왜 얘가 죽었냐고 물었지?’
새근거리면서 히히거리는 표정으로 편안하게, 흙의 알 속에 자는 쟌을 바라보면 조금 답답한 느낌에 투란은 묻는 말을 꺼내고 말았다.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드라고니아가 답한다!
―기밀(機密)의 유지를 위해서 목격자를 죽이는 인간의 속성이 너한테서 발휘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어쨌든 너는 아주 위험한 황금매를 지녔고…… 상아탑이 즉각 감금, 척살해야 할 대상 목록에 바로 올라있는 셈이잖아. 뜬금없이 고블린 팩을 사냥했고…… 전혀 위험이 되지 않는 사냥에 엉뚱한 사람을 끌고 갔으니, 마법사 입장에서는 이 애를 핑계 삼아 여기 죽여놓고 고블린을 사냥한 다음에 죽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여긴 걸 거야. 일단…… 네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어느 정도 거짓말이 섞여 있는지 모르지만…… 미묘하게 투란, 네 말에 거짓이 섞여 있다는 정도는 느끼고 있을 거야.
‘하아…… 그야말로 인간을 불신하는 마법사란 소리네.’
―네 행동이 그만큼 수상하잖아!
‘어? 그런가! 쳇. 키린 탓이야. 이상한 걸 하라고 해서…… 해놓으면 정말 좋다니까, 꼭 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해놓기는 해야 하는데…… 아, 멜란드!’
벅벅,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잡념을 치웠다.
아직 마법사 루케인에게 자신을 신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투란 스스로 생각해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루케인에게 투란은 거부할 수 없는 의뢰를 찔러온 수상한 몬스터 로드일 뿐이었다. 그것도 상아탑이 주시하는 과거의 위험한 재앙을 간직한!
어설프게 믿어주는 쪽이 오히려 곤란하다고, 옛날 샤오콴 마을에서 어떤 몬스터 헌터가 투덜대던 소리를 떠올리면서 투란은 쟌을 안아 올렸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눈에 뜨인 고블린 위키드의 머리 없는 몰골을 보며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저거, 진짜로 몬스터 에센스에 그 이상한 능력이 담겨 있지 않아?’
―없다고 했잖아. 고블린 위키드는 철저하게 모방(模倣)과 학습(學習)에 의해 발생한다. 위키드란 능력은 근본적으로 마법의 모방이야. 고블린이 몬스터가 아니었다면, 저 힘은 아케인 포스로서 구현되었을 거다. 하지만 몬스터이기 때문에 아케인 포스가 왜곡된 위키드 파워로 구현된 거라고. 아직도 기억 못해? 그럼, 또 말해줄까? 위키드 파워는…….
‘크앙!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잘못했어!’
투란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지 않으면, 드라고니아는 요즘 재미를 붙인 ‘반복강의(反復講義)에 의한 기억주입식(記憶注入式) 교육법(敎育法)’이라는 이상한 짓을 며칠 동안 저지를 테니까! 똑같은 소리가 뇌리에서 수없이 울려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투란은 ‘역병의 수해’에서 넉넉히 겪었고,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히죽, 살짝 웃는 듯한 낌새와 함께 드라고니아가 이 항복을 받아들였다는 듯이 말을 돌린다.
―여기 고블린 팩은 코만도가 아닌 경우에도 상당히 세다. 한 마리 정도 삼켜두는 게 좋지 않나? 고블린 코만도는 너무 희귀한 경우인데…….
‘응? 아, 얘네는 보상금 때문에 지금 건드리면 안 돼. 어차피 나중에 길드 쪽을 통해서 따로 적당히 구할 수 있다고. 이 녀석들 가져다가 이것저것 뽑아내서 팔아치우는 것도 길드의 일이니까. 쟌이 계산하지 않은 거는 잽싸게 죽은 척한 코만도 정도였을 걸?’
―그럴까? 쏴 죽인 수를 정확히 기억한다면, 한 마리 모자란 걸로 파악할 텐데?
‘에? 음…… 우리가 떠난 다음에 한두 마리 뜯어먹힌 걸로 해두지 뭐. 고블린은 몬스터이기는 하지만, 짐승들이 뜯어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거든. 고블린 먹을 줄 아는 놈들은 손톱, 발톱이나 이빨은 피할 테니까. 아, 그보다…… 이 반지에 담긴 마법이 뭔데 위험을 미리 알지?’
―그건…….
투란은 편안하게 히히거리는 쟌의 잠든 표정을 흘깃하면서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라비엔의 암벽을 향해서…… 떠난 자리에는 왕국을 위협했고 라비엔에 위험한 상황을 일으키던 고블린 팩의 사체를 깔아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