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8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2)
“헤에, 변한 것 없어 보였는데 많이 변했구나.”
멜란드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켈슨은 쓴웃음을 지었다.
멜란드가 저 소리를 뱉게 한 것은 지금 막 켈슨이 설명해준 때문이었다.
하지만 켈슨이라고 해서 그 감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련함과 아쉬움 속에서 켈슨도 중얼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 암벽과 애써 파놓고 꾸며놓은 거처는 있던 그대로겠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은 모조리 바뀌었지.”
“그림 뱃과 와이번이라…….”
멜란드는 다시 켈슨이 했던 말을 되뇌듯이 중얼거렸다.
높은 기둥 같은 암벽 사이로 놓인 탓에 마치 깊이 파인 듯이 보이는 거리…… 라비엔을 도시라 불리게 해주는 거리의 풍경은 예전처럼 와글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은 멜란드가 기억하고 있던 곳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여관을 꾸며놓은 곳 중에서는 주인이 바뀌고 간판이 바뀐 곳도 있었고, 무기를 팔던 곳에 연금술사가 자리 잡은 경우도, 퍼브였던 곳이 약물과 몬스터의 잔유물을 거래하는 가게가 된 경우도 있었다.
멀쩡하게 보이는 암벽 또한 거대한 형체라든가 드리우는 그림자는 옛날과 비슷해 보였지만, 루비의 여관에서 본 것처럼 멜란드가 기억하지 못하는 흔적이 가득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켈슨이 이야기한 그대로, 라비엔을 휩쓸고 지나간 몬스터가 남긴 변화한 모습이었다. 멜란드는 두어 번 고개를 더 돌리며 둘러보다가 슬쩍 지나가는 말투로 묻는다.
“아저씨…… 아저씨네 팀도 그때……?”
켈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뒤에 웬만하면 입을 다물고 열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을 멜란드가 떠올릴 때, 켈슨이 입을 연다.
“아니야. 그때는 아니었어. 그때는 다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들 살아 있었고, 나름대로 잘 버텼지. 다만…… 너무 잘 버텨서 그 다음에 몇 가지 굵직한 의뢰를 받게 되었고…… 내가 팀의 역량을 잘못 생각해서 가면 안 될 사냥에 갔지. 그렇게 된 거야.”
“아저씨가 잘못 생각했다고요?”
멜란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했다.
언제나 안전한 사냥, 상대 할 수 있는 몬스터만을 노리는 것이 오래 사는 비결이라고 떠들던 켈슨이었잖나?
켈슨은 높이 올려다보면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낮게 대답한다.
“교만해져 있었거든. 제대로 조사를 했다면 금방 알았을 텐데, 한쪽 말만 듣고 덤벙거리면서 사냥을 나갔지. 조금 더 여기저기 돌면서 물어봤으면 금방 알 수 있었던 일인데, 그러지 않았어. 순전히 내 탓이었지.”
멜란드의 입이 다물어졌다.
경계망루에서 라비엔으로 오는 동안, 켈슨이 가끔 멍하니 낯을 구길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딱 그 모습이었다. 기억을 더듬다가 갑작스럽게 어디 아픈 표정을 짓는 이상한 모습…… 그때는 멜란드가 캐묻지 못했고, 물어볼 수가 없었는데 갑자기 답을 들은 꼴이 된 셈이었다.
때문에 멜란드로서도 더 자세히 물을 수가 없었다.
되짚어 따져보면 간단한 이야기니까.
사냥감에 대한 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사냥에 나선 사냥꾼에게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일이 켈슨에게, 그 팀에 일어났을 뿐이었다.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였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있을 수 있는 불행.
와글거리면서 내려다보이는 거리의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
잠시 멜란드와 켈슨이 고요해졌지만, 거리의 와글거리는 소음은 바람을 타고 맴돌며 끊임없이 스쳐 갔다. 그리고 그 소음 사이로 다가선 목소리가 멜란드와 켈슨이 돌아보게 했다.
“어어, 이거 멜란드 아냐? 오, 켈슨 씨도 있네? 이야, 이거 진짜 오랜만이잖아?”
멜란드는 잠깐 눈을 껌벅이면서 말을 걸어온 이를 바라봤다.
아늑하게 먼 지난날의 누군가…… 어째서인가 꽤 까마득한 옛날에 본 듯한 얼굴이잖은가.
이런 멜란드의 표정에 상대방은 금세 기분이 언짢은 바를 표정으로 드러내며 이어 말한다.
“이봐! 갑자기 그렇게 낯선 사람 보는 척하면 어떻게 해? 나야, 활잡이 토카! 켈슨 씨, 얘 갑자기 기억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거 아니죠?”
“아냐, 토카. 나도 네 얼굴이 낯설다고. 대체 얼굴에 뭘 그려넣은 거냐?”
켈슨이 잠깐 토카의 얼굴을 가느다란 눈길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멜란드는 그 소리에 겨우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뭐냐고 진짜…… 얼굴이 거의 안 보이게 문신을 해넣다니……. 그러고서 알아보기를 바라? 대체 뭔 문신이야?”
이에 토카가 둘을 향해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아, 거참! 오랜만에 봤다고 목소리도 못 알아듣는 척하네! 뭔 문신은 뭔 문신! 눈과 귀를 밝게 해주는 오러 마크잖아! 활잡이라고, 활잡이! 돈 생기면 제일 먼저 해넣는다고 했잖아! 아니, 멜란드는 그렇다 치고! 켈슨 씨까지 그러면 어떻게 해요?”
“전에 봤을 때 그런 거 없었잖아?”
켈슨은 멀뚱하니 다시 토카의 낯짝을 훑어보면서 되묻고 있었다.
이번에는 토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봤다고요? 이거 한 지 벌써 몇 달 되었는데? 가만…… 켈슨 씨가 이 거리에 온 게 너무 오래된 거잖아요!”
“그, 그랬나?”
켈슨이 조금 곤란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멜란드가 곁에서 ‘흐흠, 오래되었다니.’라고 중얼대며 켈슨을 흘깃거리는 시늉을 했다. 여태 자세한 설명을 하더니만, 결국 켈슨도 어느새 이곳에 낯선 사람이 되어있지 않느냐고 따지는 듯!
토카는 켈슨과 멜란드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차고는 다시 말한다.
“이거 정말 뭘 하고 다녔나 궁금하군! 아, 오랜만인데 이대로 갈 길 가는 것도 이상하잖아? 에이, 좋아! 내가 한잔, 한 끼 살게. 멜란드, 터프넥의 퍼브에도 아직 가보지 않았지? 가자! 간만에 옛날 기분 좀 내보자고! 켈슨 씨도 같이 가요! 그래도 한때 이 거리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던 팀 리더였잖아요. 터프넥에 가면 궁금해하는 녀석들이 꽤 있다고요. 착한 아저씨 켈슨이 대체 누구냐고! 자자, 가자고 가!”
떠드는 소리와 함께 토카는 켈슨의 팔을 잡고 등을 밀었고, 멜란드에게는 히죽거리는 웃음과 함께 고갯짓을 하며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 방향에 뭐가 있는지 멜란드도 잘 알지 않느냐는 듯…….
물론 멜란드도 알고 있었다.
예전에 자주 들렀던 퍼브, 터프넥이라는 이름인지 그냥 별명인지 모호한 아저씨를 주인으로 둔 곳이었다.
“어! 야, 놓고 가! 갈 테니까 놓고 좀 가자!”
켈슨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멜란드는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과연 터프넥의 퍼브는 이 거리만큼 변해 있을까?
아니면 옛날 그대로일까?
갸웃하면서 멜란드는 불과 이, 삼 년 만에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과거와 아주 낯선 현재가 함께 머무는 거리를 걸었다.
끼이― 끼익.
두터운 나무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경첩쇠가 지르는 비명에 맞춰 녹이 살살 떨어지며 티끌이 바닥을 굴렀다.
“아이고, 기름칠 아직도 안 했구만! 아주 소름끼치게 시끌거리는 이 문짝 좀 고치라니까!”
토카의 경쾌한 목소리가 문턱을 넘었다.
토카가 가볍게 퍼브 안에 들어서면서 여전히 붙들고 있는 켈슨의 팔뚝을 잡아당겼다.
“자자, 어서 들어오라고요!”
“그러니까! 놓고 가라고!”
낑낑대면서 켈슨이 소리쳤다.
토카는 낄낄거리면서 켈슨의 어깨 너머로 외친다.
“뭐 해, 멜란드? 너도 우물쭈물하지 말고 들어오라고! 자자, 어서!”
“들어가고 있거든?”
멜란드가 살짝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퍼브 안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곧바로 멜란드는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흘깃 멜란드가 곁을 보니, 켈슨도 마찬가지로 어색하고 민망한 얼굴로 퍼브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토카가 높이 올린 목소리 덕분에 퍼브 안에서는 ‘누구야?’ 하는 눈빛으로 다들 이쪽을 바라보는 분위기였으니까!
덕분에 멜란드는 어색한 표정으로 퍼브 안을 둘러봤고…….
“어, 옛날이랑 비슷하네? 어, 주인아저씨도 여전하잖아?”
한쪽 벽을 따라 넓고 큰 탁자가 나란히 대여섯개 놓인 풍경, 그 맞은편에 놓인 퍼브 바에서는 이곳이 주인 터프넥이 낡은 헝겊으로 그릇의 물기를 닦아내면서 눈짓만으로 새로운 손님을 바라보는 눈길을 던지는 모습,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바닥에 놓인 까칠한 융단과 융단이 끝나는 곳에 놓인 큰 탁자…….
멜란드의 기억과 거의 일치하는 모습의 퍼브였다.
단지 그 퍼브에 머물고 있는 얼굴들이 꽤나 낯선 듯할 뿐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낯설지는 않았다.
“호오? 멜란드? 정말 살아 있었네?”
퍼브 한복판 쪽의 탁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그 큰 탁자에 두 발을 올려놓은 채로 큰 술병을 잔도 없이 입안에 기울이던 얼굴은 멜란드에게 어느 정도 낯익었다.
“젠벨?”
켈슨이 먼저 입을 열어 그 이름을 말했다.
불편하고, 거북스러운 말투가 멜란드에게 바로 느껴졌다.
켈슨은 젠벨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멜란드도 젠벨과 그리 사이좋게 지낸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토카는 반갑게 외치고 있었다.
“야하, 젠벨 씨! 또 한잔하고 있었어요? 이런, 이런…… 아, 터프넥 씨! 나도 한잔 줘요! 난 작은 잔으로!”
성큼, 바 쪽으로 토카가 걸었다.
켈슨이 그런 토카를 흘깃하다가 조금 긴장한 소리를 낸다.
“젠벨, 방금 그거 무슨 소리지?”
멜란드는 갑작스러운 켈슨의 말에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갑자기 켈슨이 바싹 긴장하는 분위기였고, 이건 조금 전의 불편해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수준의 경계하는 태도잖나?
하지만 탁자에서 두 발을 내리며 팔꿈치를 기대앉는 젠벨은 전혀 긴장감 없는 태도로 답한다.
“무슨 소리? 뭐가 무슨 소리냐고 묻는 거지? 오랜만에 그렇게 수수께끼를 내면 곤란하잖아, 켈슨.”
“너…… 조금 전에 멜란드를 보고 정말 살아있다고 했어. 누구에게 멜란드가 살아있다는 소리를 들었지? 젠벨, 그 탁자 아래 뭘 감추고 있어?”
켈슨의 말투가 점차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멜란드도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의 내용은 멜란드가 젠벨을 조금 더 주시하게 하는데…….
“앙? 감춰? 하핫, 감추긴! 그냥 탁자 아래 뒀을 뿐이지! 보다시피, 꽤 무겁거든!”
쿵, 낮고 무거운 소리와 함께 젠벨이 탁자 아래에서 뭔가를 들어올렸다.
켈슨은 탁자 위에 올려진 물건을 보면서 안색이 변했고…….
“젠벨! 너, 무슨! 으아아아윽…….”
외치던 소리를 맺지도 못한 채, 켈슨은 자기 배를 내려다보고 두 손으로 움켜쥐어가며 쓰러지고 있었다.
멜란드가 놀라서 막 움직이려 하는데…….
“안 돼, 멜란드!”
토카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바 쪽이 아닌 등 뒤에서 울렸다.
동시에 멜란드는 등 쪽에서 어깨뼈를 관통하는 날카롭고 단단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는 젠벨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것을 내던지니…….
사슬이 펼쳐졌고 그 끝이 멜란드의 목을 휘감았다.
“크읏!”
콰당, 털썩.
켈슨이 옆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멜란드도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켈슨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신음했지만, 멜란드는 자신의 몸이 일으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두 발로 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양쪽에서 멜란드의 두 팔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쿠당.
멜란드는 넓은 탁자 위로, 젠벨 앞으로 던져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힘겹게 새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흠칫하면서도 멜란드는 물었다.
탁자에 볼을 대고 엎어진 채로, 자신과 눈높이라도 맞추려는 듯이 몸을 구부린 젠벨을 향해서…… 그리고 젠벨의 히죽거리고 키득거리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호오? 아직 말할 힘이 있어? 대단하네! 과연 역병의 수해를 넘나든 용사로구만! 몬스터 로드가 이 사슬을 걸고 입을 열다니! 자아, 딱히 대단한 짓을 하려는 거는 아냐. 난 말이지…… 그저 궁금할 뿐이거든! 다들 나처럼 궁금하지? 도대체 별 볼 일 없던 애송이 멜란드가 무슨 재주로 그 잔인한 역병의 숲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달루스 새끼들의 유품을 챙겨 왔는지 말이야! 자아, 이제 알겠지?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너랑 대화를 하려는지 말이야! 아참, 오랜만이야. 정말 반가워, 멜란드! 누나는 잘 있지? 크큭.”
“어이! 젠벨 씨, 그 전에 나랑 계산부터 마쳐야죠. 얘네 누나 안부보다 먼저 내게 줄 돈부터 내놓으라고요.”
토카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볍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멜란드는 등을 관통한 날카로운 것이 길게 허파까지 찔러 와서 숨결 사이로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