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8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3)
“음? 계산? 아, 계산! 아하핫, 이 젠벨 님께서 설마 돈 떼어먹을까 봐? 에, 어디 보자…… 은전 한 닢이었나?”
키득거리는 소리를 섞어서 젠벨은 유쾌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유쾌함에 토카의 대꾸는 조금 더 날카로워진 채로 나온다.
“아저씨, 왜 이래? 장난쳐? 데려오는 데 한 닢, 칼침 한 방에 한 닢씩 주기로 했잖아? 얘가 아저씨 사슬에 반응하지 않게 칼침 놔준 공로를 그렇게 넘기려고? 신용할 수 없는 아저씨네? 정말 한 닢으로 때울 거야?”
“농담이다. 겨우 머리에 피가 마른 애새끼가 왜 이렇게 빳빳해? 받아라, 이 젠벨 님은 신용할 수 있는 헌터라는 걸 기억해두라고!”
젠벨은 킬킬거리는 소리를 크게 내면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입구를 열었다. 그리고 곧 멜란드의 얼굴 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까이 하면서 속삭이는 척, 큰 목소리로 떠든다.
“기분이 어때? 쟤가 왜 갑자기 네 등짝을 찔렀는지 알게 되었잖아? 아는 건 좋은 거라는데, 기분 좋지? 그렇지? 봐, 쟤가 네 등짝에 칼침 놔주게 한 은전이 이렇게 생겼어! 봐, 반짝거리지? 칼침 맞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동그랗게 반짝이는 은전이 한 닢씩, 젠벨의 손가락에 걸려 주머니 속에서 탁자 위로 끌려나왔다.
입가에서 피를 흘리는 채로 멜란드는 눈앞에서 탁자 위를 긁는 은전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젠벨이 아예 귓가에 대고 떠드는 소리 또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 토카의 손이 움직이며 탁자 위에서 은전 세 닢을 쓸어가는 광경이 덧붙여졌다.
젠벨이 가벼운 휘파람과 함께 토카를 향해 말한다.
“우와, 손놀림 봐라! 과연 거리 안에서만 놀더니 은전 채가는 솜씨가 거의 매의 발톱이잖아?”
토카의 차가운 대꾸가 멜란드의 귓가에 다시 선뜻하게 스며온다.
“젠벨, 이 은전…… 확실하겠지? 허튼 수작 부린 거면, 나중에는 변명할 수도 없게 될 거야.”
“앙? 역시 넌 아직 애송이구나. 이런 거래에 은박 씌운 쇳덩이로 거래하겠냐? 안 그래, 로이?”
젠벨이 토카에게서 눈길을 돌리며 다른 쪽을 향해 묻고 있었다.
두건을 뒤집어쓴 머리를 탁자에 잔뜩 기울인 채로 얼굴을 가린 듯한 모습으로 이쪽을 흘깃거리던 로이가 고개를 들면서 떨떠름하게 대꾸한다.
“아니, 왜 그쪽 거래에 날 끼워?”
“야, 마법사가 각인한 은전이잖아. 여기 베테랑 흉내 내는 애송이가 내 말을 못 믿겠다고 하니 마법사인 네가 보증을 하라고.”
젠벨의 키득거리는 목소리가 높이 울렸다.
로이는 토카의 눈길에 어깨를 으쓱하고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거 가짜 아냐. 진짜 은전이라고. 나도 받아가야 하는데 말이지…….”
“좋아, 마법사까지 내세워서 보증한다면 일단 받아가지. 하지만 마법사, 나 지금 당신 얼굴 제대로 봐뒀어. 길드에서 놀고 있는 마법사, 로이지? 젠벨 씨의 사기에 동참하고 있는 거라면…… 당신도 뒤통수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토카의 얼굴에서 문신이 번들대는 광택을 머금으면서 나온 이야기였다.
로이는 ‘젠장, 왜 내가 보증인이야.’라고 낮게 투덜거렸지만 토카에게 더 따지고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토카는 그런 로이의 모습에 곧바로 퍼브의 입구로 몸을 돌렸고…….
“토카……! 켈슨…… 아저씨 살아…… 있지?”
멜란드가 핏방울과 함께 토해내는 낮은 소리는 토카의 귓가에 닿았다.
젠벨의 웃는 소리가 뒤이어 토카의 귓가를 찌른다.
“아이쿠, 이런 착한 녀석을 봤나! 과연 착하디착한 켈슨이랑 잘 어울리는 놈답잖아? 이런 상황에서 켈슨 걱정을 다 하고 말이야! 어이, 토카! 가기 전에 인사라도 한마디 남기고 가지 그래? 다음에 못 볼 얼굴인지도 모르잖아? 미리 미안하다는 한마디라도 하고 가면 얼마나 따뜻하고 좋아 보이겠어? 응, 그렇지?”
낄낄거리는 소리가 퍼브 안에 곳곳에서 울려 나왔다.
거의 문가에 다다른 토카가 잠깐 멈추며 퍼브 안을 주욱 둘러보며 말한다.
“내가 멜란드를 다시 볼 때라면, 젠벨부터 뒤통수에 화살이 꽂힌 해골이 되어 있을 거야. 실실거리면서 어설프게 구는 놈팡이 떼처럼 굴 거면, 화살 꽂힌 해골이 되어서 남길 말부터 담벼락에 적어두라고.”
끼익,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고 닫혔고 토카는 사라졌다.
젠벨이 키득거리면서 멜란드의 귓가로 입을 가까이 대면서 중얼거린다.
“저 새끼 되게 센 척하잖아? 놀랬지? 저게 저렇게 센 척하고 다니는 꼴은 못 봤잖아? 근데 실은 저거 완전히 허풍이거든! 크하핫, 토카 저 새끼 저러고 잔뜩 거들먹거리기는 하는데, 몬스터 사냥은 벌써 일 년 이상 나가질 않고 있어! 놀랬지, 멜란드? 저게 저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잖아? 켈슨 뒤를 너랑 같이 졸졸 따라다니던 새끼가 말이야. 크크큭, 역시 진짜 몬스터 헌터가 되기에는 한참 모자란 놈이라고 내가 제대로 짚었단 말이지!”
“에헴, 아아, 저기 젠벨 씨?”
로이의 목소리가 젠벨의 목소리에 겹쳐지듯이 멜란드에게 들렸다.
젠벨이 대꾸하는 소리도 크게 울렸다.
“왜? 한참 얘기하는데 중이잖아!”
“토카에게 계산 끝낸 것처럼, 나도 계산을 해줘야 하지 않아? 좋은 정보를 알려줬잖아! 그러면…….”
로이가 떨떠름하니 따졌다.
젠벨이 멜란드를 향해 숙였던 몸을 일으켜 의자에 기대면서 냉랭하게 대답한다.
“아직은 아니지! 너랑 계산은 내가 좋은 정보를 확인한 다음이라고 했잖아. 토카랑 다르지! 아직 난 좋은 정보를 듣지 못했거든! 이 녀석이 누나랑 살아 돌아왔다는 얘기는 내가 원하는 좋은 정보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로이 넌 기다려야지!”
“어이, 어이! 그 좋은 정보를 토해낼 입을 앞에 두고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잖아!”
“이 녀석이 한 말은 배에 쇠뇌살 맞은 켈슨의 안부를 묻는 것뿐이었거든? 너도 분명히 말했잖아, 로이. 역병의 숲을 넘는 방법, 그 정보를 알고 있는 놈을 알려준다고 말이야. 하지만 아직 그런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 그러니까, 로이 넌 기다려야 해. 솔직히 너도 돈 받고 바로 뜨는 것보다는 같이 듣고 싶잖아? 기다려보라고. 자, 그럼 멜란드…….”
멜란드는 두 목소리 너머에서 키득거리는 퍼브 곳곳의 웃음과 퍼브 주인인 터프넥의 헝겊이 그릇을 비비는 소리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런 소리의 틈새에서 가늘게 들리는 켈슨의 힘겨운 숨소리를 찾아냈다. 아직은 분명히 살아있는 숨소리지만, 언제 끊어질지 모를 가냘픈 상황이 분명했다.
때문에 멜란드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고…….
“아, 진짜! 젠벨, 난 쓸데없이 위험한 얘기에는…… 우앗, 얘 움직이잖아!”
젠벨에게 다시 따지고 들던 로이가 화들짝 놀란 소리를 터뜨렸다.
“응? 오호?”
젠벨은 멜란드의 두 손이 탁자를 짚으면서 팔에 힘줄이 돋고 부르르 떠는 채로 몸을 일으키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재밌다는 듯한 감탄부터 토하고 낄낄대는 소리를 이어낸다.
“대단해! 이 사슬로 몬스터 로드 여럿 감아봤지만, 이렇게 움직이는 꼴은 처음 봤어! 정말 옛날 고블린 팔뚝을 자랑하던 애송이가 아니구만! 하핫, 하지만 멜란드…… 쓸데없이 힘 빼지 말라고. 그렇게 힘자랑 하고 싶다면…… 야, 걸어.”
차링.
멜란드의 손목에 쇠고리가 감겼다.
멜란드는 순식간에 두 손이 좌우로 당겨지는 것을 깨달았고, 탁자에 얼굴을 꽂을 수밖에 없었다.
쿵.
로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듯이 숨을 고르면서 말한다.
“이봐, 괜히 힘 빼지 마. 그거 배중(倍重)의 사슬이라고. 한쪽에 무게가 거의 천 킬로그램씩 걸릴 거야. 비비나비 사냥할 때 쓰는 거라고. 괜히 힘 빼지 말고 젠벨한테 그냥 털어놔. 나도 빨리 은전 받아 가게 말이야.”
젠벨이 이 말에 보탠다.
“으크흐흣. 마법사의 말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다니까! 들었지, 멜란드? 잘 모르겠어? 그럼, 내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줄게. 네 목에 감긴 사슬은 바로크 왕국의 귀하신 분들이 가문에 하나씩…… 아니, 몇 개씩일 수도 있겠군. 아무튼, 몬스터 로드를 오랫동안 왕실근위병으로 부려먹는다는 바로크 왕국에서 날뛰는 몬스터 로드를 때려잡기 위해 만든 마도구라고. 아주 귀해서 이 근처에서 이런 거 가진 사람은 나뿐이지!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 웬만한 녀석들은 사슬에 감긴 순간부터 손끝 하나 까닥 못하지! 물론 상급 몬스터 로드라면 그걸 차고도 주먹질 정도는 한다지만…… 그만큼 움직인 것도 대단했어! 한데 말이야, 그럴 때를 대비한 것이 바로 이 무거워지는 족쇄야! 아, 손목에 채웠지만 사실 발목에 채우는 거라고. 어때, 준비 철저하지? 그러니까 멜란드, 이제 진지하게 대화를 할 때란 걸 인정하고…….”
“풀어.”
“앙? 뭐라고?”
“지금 풀면……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풀어.”
“헐?”
젠벨이 눈을 껌벅거리면서 로이를 바라봤다.
로이도 놀란 눈길로 멜란드를 보다가 젠벨의 눈길을 깨달은 듯, 바로 고개를 저었다. 로이 또한 젠벨처럼 멜란드가 갑작스럽게 내뱉은 위협의 근거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어느새 퍼브의 곳곳에서 새던 웃음소리도 사라졌다.
젠벨이 신나서 사슬과 족쇄를 손끝으로 툭툭 치며 떠들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힘겨운 숨소리를 씩씩거리던 멜란드가 갑자기 웬 협박인가?
대체 뭘 믿고?
멜란드의 상황은 좋아진 구석이 전혀 없이 더 나빠졌을 뿐인데!
젠벨은 뒷목을 잡는 시늉을 하고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느릿느릿,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다시 말문을 연다.
“멜란드, 이젠 제법 큰소리칠 줄 아네? 근데 어쩌지? 그건 내가 듣고 싶은 얘기가 아니야. 로이가 돈 받을만한 소리도 아니지. 근데 멜란드가 그런 소리를 하면 말이야…… 나도 좀 진지하게 설득할 수밖에 없겠지? 어이, 가져와.”
한편 구석에서 누군가 나무와 흙으로 엮은 듯한 통 하나를 들고 왔다.
통은 곧바로 멜란드의 머리 옆에 놓여졌고, 열렸다.
살짝 역한 냄새가 바로 피어났다.
멜란드의 코앞에 칼날이 들이대졌다.
어느새 젠벨의 손에 들린 단도의 칼날은 깨끗했고, 멜란드는 거기 비친 자신의 눈매를 볼 수 있었다.
로이가 뒷걸음질치면서 투덜대는 소리가 고요해진 퍼브 안에 넓게 퍼진다.
“아, 꼭 그걸 꺼내야겠어? 아오, 냄새…….”
“이 정도 냄새로 불평하지 마. 이게 냄새 피우자고 가져온 것도 아닌데! 아, 멜란드에게는 이게 뭔가 낯선가? 하긴…… 내가 이 통을 얻기 전에 라비엔에서 너네가 사라졌었으니까. 이게 뭐냐면 말이지…….”
“풀어…… 얼른!”
젠벨의 이야기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멜란드가 다시 씩씩거리는 힘겹고 거친 숨소리와 함께 위협했다.
젠벨의 낯이 구겨졌다.
휘잇, 콱!
단도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면서 탁자 저쪽에 꽂혔다.
멜란드는 눈앞에서 사라진 단도가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꽂힌 것을 볼 수 있었다.
젠벨의 목소리가 조금 더 섬뜩한 낌새를 담고 울린다.
“멜란드, 내 말에 귀를 기울여. 그딴 허풍이 통할 젠벨 님이 아니거든? 이번에는 한 번 참고 손가락 사이로 친절하게 꽂아줬지만, 다음에는 손가락이 날아갈 거야. 그리고 그 손가락은 말이지, 이 통 속에 담궈진다고! 이 통 속에는 뼈와 살을 녹여 없애는 무서운― 아주 무서운 것이 담겨 있거든? 몬스터 로드라도 이 사슬에 걸린 다음에 잘려나가고, 없어진 몸은 다시 갖다 붙일 수가 없어. 그리고…… 아주, 아주 많이 고통스럽게 되는 거야! 바로크 왕국에서는 그 고통을 이용해서 몬스터 로드가 미치는 걸 막는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지! 너무 아파서 몬스터로 변신도 못한다나? 자, 그러니까 멜란드…….”
“마지막, 경고야. 풀어, 젠벨.”
멜란드의 목소리는 여리고 약했지만, 그 말은 엄격하고 분명했다.
젠벨이 어이없다는 듯이 멜란드 귓가에 가까이 했던 머리를 뒤로 빼면서 의자에 기댔고, 로이가 몇 걸음 저편에 가서 휘이하며 흥미로워하는 휘파람을 불었다.
고요하던 퍼브에 나지막한 키득거림이 잔잔하게 새 나왔다.
멜란드의 태도에 감탄보다는 어처구니 없어 하는 분위기가 맴돌았다.
그 분위기 속에 누군가 히죽거리는 소리로 말한다.
“야, 대단하네. 역시 세란드 동생이라고 세란드만큼이나 독한 새끼네?”
피잉!
퍽!
갑자기 단도 한 자루가 날아갔고, 나무 잔에 꽂혔다.
“젠벨, 같은 팀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나랑 같은 팀인데 그 정도야 당연히 막을 줄 알았지! 그보다, 내가 그 이름 꺼내지 말라고 했지? 같은 팀인데 배려 좀 해라, 응?”
“음? 쳇. 알았어, 말이 샌 것뿐이야.”
젠벨은 저쪽에서 사과하는 소리에 뻗었던 손을 거두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멜란드와 눈높이를 마주하는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실실 새는 말투도, 웃음도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젠벨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건방 떨지 마, 이 새끼야. 네 형…… 네 형들도 네 누나도 결국 별 거 없으면서 운 좋게 마법사 잘 만나서 잘난 척한 것뿐인 줄 다 알아. 그 마법사가 없는 지금, 계속해서 까불어 봐야 병신 꼴로 죽는 것뿐이거든? 좋게 말할 때…….”
콰앙!
문짝이 박살나는 소리가 퍼브 안을 울리면서, 모두의 눈길을 낚으며 사람의 목소리를 모조리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