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8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5)
로이는 소란 속에서 은밀하고 재빠르게 벽에 붙었고, 퍼브의 입구를 향해 살살 움직였다.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며, 퍼브의 부서진 문턱으로 이어지는 궤도만 확인하면 마법을 이용해 번개처럼 퍼브 밖으로 내달릴 생각이었다.
“에?”
하지만 바닥의 융단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퍼브 입구 바닥 깔개 노릇을 하는 융단을 들어올려, 망치도 없이 투척용 송곳으로 돌벽 틀에 꽉꽉 박아넣던 페란드가 고개를 돌렸다.
“로이……라고 했었나?”
로이는 엉겁결에 웃는 얼굴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페란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기억력에 만족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마디를 더한다.
“출구는 막혔다.”
보면 알 수 있는 소리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로이는 페란드의 말이 자신의 관점을 뒤트는 것을 알아차렸다.
로이에게는 퍼브의 입구, 누군가 퍼브로 들어오는 구멍이고 이렇게 급할 때 슬쩍 나갈 수 있는 곳을 놓고 페란드는 명확하게 ‘출구’라고 하고 있었다. 지금 막 들어선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아무래도 들어왔으니 ‘입구’라고 해야 하는데, 정반대의 개념을 들이대고 있었고…… 막혔다고 했다!
‘내보낼 생각이 없어!’
굳이 더듬어볼 필요가 없는 결론이었다.
내보낼 생각이 있는 놈이 저렇게 바닥 깔개를 들어올려 막을 리가 없으니까!
로이는 돌연 자신이 대체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당황했다. 뭔가 생각의 흐름이 꼬이고 있었다. 저쪽에서 동생을 패는 누나 탓일까? 이 상황이 너무나도 로이의 예상과 다르게 흐르는 탓일까?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뒤늦게 개념을 검토하며 생각할 필요가 없는 생각을 하며 결론을 내고 있다니!
당황해하는 마법사를 보던 페란드가 돌연 눈길을 그 어깨너머로 보내면서 ‘아!’ 하는 입 모양을 만들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에 로이는 움찔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해 고개를 반쯤 돌렸다.
‘어? 젠장, 속았……!’
―퍼억!
로이의 입과 코에 페란드의 주먹이 꽂혔다.
피와 이빨, 찢어진 입안의 살조각이 허공에 흩어졌고 로이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뒤로 구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로이에게 신경을 써주는 이는 따로 없었다.
“나, 날 건드리면 우리 팀이…… 나 팀의 멤버야! 우리 팀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끝까지 쫓아가서…… 뒤통수에 화살을 박아넣을 거라고!”
토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냈고, 멜란드가 엎어져서 내뱉던 소리를 기억해내면서 제란드를 향해 속삭였다. 이 소리에 제란드가 살짝 손목을 뒤틀었고, 토카의 얼굴을 마주 보는 자리로 옮겼다.
만약 지금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토카는 자신의 손발을 움직여서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을 것이다.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공포가 가슴에서 피어나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뭐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토카는 제란드에게 붙들리면서, 제란드의 손톱이 자신의 목 줄기를 살짝 파고든 것을 느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목 아래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덜미와 얼굴로 이어져 눈과 귀를 강화하는 오러 마크에서 은근히 흘러나오는 오러에 의해 체력이 강화된 채인데도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속삭이는 짓이 최선이 된 것인데…….
“널 죽이면, 굳이 찾아갈 필요 없이 온다는 거야? 좋군.”
“안……!”
제란드의 대꾸 속에서 그 의지를 파악한 토카가 다시 급히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목 줄기가 뒤틀리며 한 바퀴 도는 순간에 숨통이 막히면서 말이 끊어졌다. 목소리 대신에 우드득거리며 목뼈가 뒤틀리는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토카의 몸이 비틀거리면서 휘청였고, 앞으로 몇 걸음 내딛다가 바닥으로 통나무처럼 쓰러지려 했다.
“이런……!”
누군가 외쳤고, 쓰러지던 토카의 뒤틀린 목 줄기를 날카로운 꼬챙이가 파고들었다. 꼬챙이는 곡갱이의 날끝이었고, 갈고리처럼 토카를 꿰며 당겨졌다.
“미쳤냐! 왜 애시드 그릴에게 먹이를…….”
워픽(Warpick)으로 몇 모금의 숨결이 아직 남은 토카를 꿰어 확실히 죽여 당긴 자가 성난 소리를 내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차갑게 제란드의 입가에 머금어진 비웃음이 그 소리를 멎게 한 것이다.
어느새 찾아온 기묘한 침묵이 애시드 그릴을 피하고 있는 몬스터 헌터 팀의 분위기가 되었다. 입구 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듯이 날려진 채로 엉덩방아를 찧고 구르는 마법사 로이의 신음 섞인 목소리 또한 이 침묵을 거들려는 듯했다.
“막혔어. 못 나가…….”
혀가 다치고, 입안이 엉망이 된 탓에 무슨 말인가 토막난 듯했지만 다들 알 수 있었다. 느슨한 갑옷 차림새의 페란드가 보였고, 그 어깨 너머로 부서진 문을 대신해 입구를 봉쇄하는…… 깔개가 보였으니까!
그 의도가 무엇인가, 굳이 로이가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우릴 전부 죽이겠다는 거야?”
“몬스터의 먹이로 처먹이겠다고?”
격렬한 반발이 가득 담긴 분노에 가득 찬 몇 마디가 바로 튀어나왔다.
그 분노 섞인 말 속에서 페란드와 제란드를 겁주려는 듯한 몇 마디가 더해지기도 하는데…….
“하! 우리가 잡아온 애시드 그릴이야! 우리가 당할 것 같냐?”
“우리 머릿수를 못 세나 보지? 겨우 하나, 둘 죽었다고 우리 팀이 우스워 보여?”
능력을 과시하고, 무리의 수를 이용해 압박하려는 의도가 선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제란드나 페란드가 뭐라 하기 전에, 멜란드를 패던 시알라까지 손을 멈추게 하는 큰 비명이 바 너머에서 울려 나왔다.
이는 곧 퍼브 안의 모두의 눈길을 잠시 모이게 했다.
곧이어 다들 눈을 크게 뜨면서 퍼브의 주인 터프넥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이뤄졌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눈에 보이는 상황은 명확했다.
왼팔이 어깨까지 싹둑 잘린 터프넥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고통 때문인지 팔의 절단에 격노한 탓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 앞에 선 한 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한 명이 잘려진 터프넥의 왼팔을 든 채로 하는 말이 겨우 모두의 귓가에 쏙쏙 들어온다.
“말랬잖아. 같은 소리 두 번 해줘? 거짓말하면 팔다리 하나씩 잘라준다고 했지? 그러니까 거짓말하지 말라고! 난 거짓말 안 한다는 거, 이제 알겠어?”
말의 내용은 이해하기 정말 쉽잖은가?
거짓말을 하면 팔다리를 자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말을 했으니까 팔 하나를 잘랐다!
곧바로 음산하고 냉혹한 위험한 뭔가가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파고 쳐들어오는 분위기가 짙게 맴돌았다. 그 분위기는 더욱 저편에서 이어 나오는 목소리에 모두의 귀를 기울이게 하는데…….
“내가 멜란드처럼 순둥이 짓을 할 줄 알았어? 경고랍시고 세 번, 네 번 말하면서 사정 봐주는 거는 변태라잖아! 난 변태가 아니라고! 그런데 내가 멜란드처럼 순둥이 변태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다니! 이제 아닌 줄 알았지?”
“저기…… 투란, 나도 변태는 아니거든!”
멜란드가 멍하니 듣다가 뒤늦게 항의하며 외쳤다.
까앙, 바로 멜란드의 뒤통수에 시알라가 휘두르는 놋쇠 술병이 충돌했다.
“닥치고 있어!”
“아으…….”
멜란드가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시무룩한 몸짓과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젠벨의 일그러진 머리통을 흘깃거리는 몬스터 헌터 팀의 어느 누구도 지금 멜란드를 보며 어리숙하고 속여넘기기 쉽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저 쪽에서 자기 말을 지키는 중이라고 큰소리쳐대는 투란처럼…… 멜란드 역시 자신이 내뱉은 경고를 확실히 지켰잖은가.
투란의 목소리가 다시 높이 울려 퍼진다.
“자아, 이제 내가 거짓말쟁이도 변태도 아니란 걸 확인했으니까 제대로 말할 생각이 들지, 퍼브 마스터 터프넥 씨? 그럼, 대답해봐. 어서!”
눈 앞에 들이대진 젠벨의 낫을 보면서, 터프넥은 자신의 두터운 목덜미에 땀이 무럭무럭 배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새끼, 대체 뭐야?’
조금 전의 일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갑작스럽게, 멜란드와 젠벨이 마주 보는 얼굴 사이로 낫을 내던져서 칼을 휘두르려던 사람 머리통을 쪼개놓더니 바로 바를 넘어서 터프넥 곁으로 왔다. 그리고 술병을 진열한 선반에 기대고 있는 터프넥을 보면서 웃어보였고, 술병 사이에 꽂혀 들어간 피 묻은 낫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낫을 이리저리 살피는 시늉을 하며 터프넥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여기 마스터?”
아니라고 할 까닭이 없었으니까, 터프넥은 이 소동에서 거리를 두는 태도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때 헝겊과 잔을 든 터프넥의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딱히 위험해 보일 손짓 따위는 전혀 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이 투란이란 흔해 빠진 이름을 내건 녀석은 터프넥에게 위험한 눈빛을 뿜어내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마치 터프넥이 뭔가 자신에게 위험한 말과 몸짓을 보였다는 듯…….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 나야 처음 보니까 있으면 이상하겠지만…… 멜란드나 시알라에게, 제란드나 페란드는 처음 보는 거 아니지? 예전에 봤을 때 뭐 안 좋은 소리라도 들었어? 모가지가 두터워서 맛있어 보인다고 놀리기라도 했어?”
터프넥이 느끼기에는 전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소리였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만.”
“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라…….”
투란은 낫자루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잠시 저쪽의 소란을 지켜봤다.
그 모습에 터프넥은 투란이 그저 스치는 김에 되는대로 물어본 것이라 여겼고, 저 소동이 어디까지 이어지나 흘깃거렸는데…….
토카가 목이 뒤틀려 쓰러지다가 꿰이고, 로이가 저편에서 얻어터져 나뒹굴면서 투란이 다시 터프넥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멜란드처럼 순하게 물었나보네. 조금 진지해야겠는걸. 이제부터 거짓말하면 팔이나 다리를 하나씩 끊을 거야. 그러니까, 아저씨. 제대로 대답해. 저 몬스터에게 몇 사람이나 먹이로 줬지?”
“뭐? 뭐! 무, 무슨 소리야! 저건 나랑 상관없어! 저건 저쪽 헌터 팀에서 가져온…….”
싹둑.
끄어어― 으억!
“거짓말하지 말랬잖아!”
터프넥은 이를 악물면서 조금 전의 상황을 완벽하게 되새기며 투란의 말 또한 한마디, 한마디 곱씹었다. 투란이 대뜸 젠벨의 낫으로 겨드랑이부터 후려쳐서 터프넥의 왼팔을 잘라낼 때, 터프넥은 보면서도 피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깨닫는 게 늦기도 했지만, 결국 피하려고 했어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터프넥은 확실히 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투란은 터프넥에게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고, 잘려진 터프넥의 왼팔은 다시 조금 전의 순간을 되새기게 하려는 듯이 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어떻게든 뭐라 대답하지 않으며 안 될 듯한 낌새를 터프넥은 다시 분명하게 느꼈고, 입을 열었다.
“몰라. 센 적이 없으니까.”
“하루 이틀 처먹이지는 않았을 테고…… 일 년? 이 년? 얼마 동안이었어?”
“젠벨 녀석이 가져왔다고 했잖아! 그때가 언제인지 제대로 기억나질 않는다고! 일일이 토막난 놈들이 몇 사람째인가 세고 있지도 않았다고!”
피가 터져 나가는 어깨를 움켜쥐면서 터프넥은 거칠게 대답했다.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과연 이 투란이 알까 모를까…… 터프넥으로서는 나름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 녀석이 정말로 트루세이어처럼 거짓말을 분별하는 힘이 있는 것인가, 아닌가. 어느 쪽인가에 따라서 상황을 풀어나갈 방법은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
“켈슨…… 저기 켈슨 씨는 왜, 언제부터 죽이려고 했어?”
투란의 물음이 돌연 방향을 바꿔서 뒤통수를 때리는 것처럼 느닷없잖은가!
터프넥은 입술을 깨물면서 반사적으로 토해지려던 말을 참았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터프넥을 한층 더 조심하게 한 탓이었다.
투란이 물으면서 젠벨의 낫이 굽어진 부분을 강제로 펼치고 있는데, 그 날카로운 칼날을 맨손으로 잡아 누르고 있었다. 뼈와 살을 단숨에 벨 정도의 날카로운 저 낫은 단순하게 잘 갈아놓은 칼날이 아니었다. 슬그머니 감춰놓은 특별한 마법의 각인이 칼날의 예리함을 몇 배로 강화시켜주는 낫이었다.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칼날이었고, 마법이 장애를 일으키는 곳에서도 제대로 효과를 드러내는…… 몬스터 블레이드의 일종이므로!
꿀꺽, 침을 삼키면서 터프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켈슨은…… 켈슨 팀은 우리가 받을 의뢰까지…… 가로채는 듯한 상황이었다. 내가 중개해서 받을 몫도 아예 사라질 지경이었고…… 그래서…….”
안타까운 눈빛으로 터프넥은 바 건너편을 보는 시늉을 했고, 팔이 잘린 고통에 자꾸 한 손으로 어깨와 가슴을 누르는 듯한 손짓도 보였다. 그리고 한순간, 터프넥이 허리를 살짝 굽히면서 한 손으로 자기 배를 억누르는 듯한 몸짓을 보이는 찰나…… 터프넥의 등 쪽에서 폭음이 터졌다.
큰 구멍이 술병이 담긴 서랍장을 통째로 삼켰고, 터프넥도 삼켰다.
콰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멍은 순식간에 메워졌다.
“어라? 에어 패스(Air Path)? 도망쳤어? 아하핫, 이거 재밌는 퍼브 마스터네? 시알라, 여기 뒷정리는 맡겨도 되겠지? 나, 저 이상한 목덜미를 지닌 아저씨 좀 쫓아가 봐야겠어.”
투란이 돌아보며 말했고, 어느새 바에 다가와 번뜩이는 눈빛을 뿜어내던 시알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벌한 말투로 대꾸했다.
“그래, 쫓아가. 여기는…… 제대로 정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