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9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7)
어두운 방, 돌벽과 두터운 나무문을 지닌 방이었다.
나무문의 양쪽으로 거의 다 타들어간 듯한 횃불이 하나씩 벽에 매달린 채로 방의 어둠을 밝히려 했지만 왠지 힘이 모자라 방 안은 그림자로 검게 얼룩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횃불의 중심, 나무문의 한복판에는 작은 못이 위를 향해 굽어진 채로 고리 노릇을 하며 낡은 가죽끈을 붙든 채로 허름한 가방을 매달고 있었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나무문이 횃불을 두 눈 삼아 맞은편이 텅 빈 벽을 노려보는 큰 얼굴의 중심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텅빈 맞은편 벽은 그저 어둑할 뿐이라 그다지 보고 있을 필요가 없어 보였는데…… 오랫동안 지켜봐온 횃불을 격려하려는 듯이 지금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벽에 주름이 잡혔고, 주름은 둥글게 한 점을 향해 굽어지며 나선의 무늬를 그려냈다. 나선의 중심이 파여 들어가는가 싶을 때, 둔탁한 울림과 함께 암석의 벽에 큰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에서 사람 하나가 내동댕이쳐지듯이 나무문 쪽으로 토해져 나왔고…….
“크읏!”
터프넥의 신음은 짧고 굵었다.
터프넥은 돌바닥에 등부터 부딪히고, 어깨 언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가 바닥에 어두운 자취를 남기는 중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토해낸 비명치고는 아주 간결하다 할 수 있었고, 터프넥이 얼마나 터프한가를 과시하는 듯한 한마디이기도 했다.
그런 인내심을 더욱 과시하듯, 터프넥은 구멍에서 튕겨나온 힘을 이용해 나무문 쪽으로 굴렀고 매달린 가방을 멀쩡한 손으로 잡아당겼다. 낡은 가죽끈이 길게 늘어나다가 결국 끊어질 듯했지만 문짝에 박힌 굽은 못고리가 먼저 빠져버렸다. 굽은 못이 바닥을 튕기는 사이, 터프넥은 엎어진 채로 가방 안을 뒤졌고 자신의 손가락보다 조금 굵고 긴 약병 하나를 꺼냈다.
거침없이 터프넥은 약병의 마개를 이빨로 물어뜯어냈고, 마개를 이빨 사이에 낀 채로 약병을 입술 사이로 끼워넣은 채로 약물을 들이켰다. 살짝 걸쭉한 듯한 약물이었지만, 터프넥의 거센 숨결에 빨려들어가면서 꿀꺽대는 굵은 목젖을 타고 금세 병이 비었다.
“퉤엣! 으큭!”
마개를 뱉어내면서 터프넥의 신음이 아까보다 더 크게 울렸다.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가 멎었고, 절단면의 속살이 훤히 드러난 곳이 꿈틀거리면서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 덮고 있었다.
터프넥은 이런 치유의 광경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잘려나간 팔을 붙인 채로 약물을 빨아마셨다면, 다시 두 팔이 멀쩡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잘려진 팔을 가져올 여유가 없었고, 한 팔만 남은 몰골이 되고 말았다!
뭔 예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대뜸 사람 팔을 싹둑 잘라버리는 놈이라니…….
그래도 몇 마디 더 물어오고 답할 여유는 있을 거라 여겼다가 터프넥은 제대로 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터프넥은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방심하지 않았으면 팔이 잘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오히려 더 심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뒤늦은 깨달음이 터프넥의 가슴에 오한(惡寒)을 퍼뜨렸다.
‘몬스터.’
괴물을 상대하다가 그 행동방식이 괴물과 닮아버린 작자들도 몬스터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잖은가. 그 때문에 간혹 괴물을 상대해서 담력을 키운다든가 성격을 바꾼다든가 하는 시도를 하려는 놈들도 있었다. 대부분 담력이나 성격에 변화가 생기기 전에 죽지만…….
숨을 몰아내쉬면서 터프넥은 몸을 일으켰다.
강력한 포션은 지혈(止血)을 마쳤고, 새로운 살갗으로 절단면을 덮어버렸다.
꽤 시간이 걸려야 할 상처의 치유가 순식간에 끝난 셈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아픈 척하는 것은 엄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터프넥이 몸을 일으켜 앉자마자 나무문이 둘로 갈라지면서 양쪽으로 열리고 있었다. 방의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밀어 젖히는 모습이 바로 터프넥의 눈에 비춰졌고…….
“터프넥?”
의아해하는 목소리는 곧장 터프넥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힘차게 숨을 들이쉬면서 터프넥은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잠깐 눈앞이 핑 도는 느낌이 있었지만, 터프넥이 토해내는 목소리는 거칠고 사나운 울림만을 담고 있었다.
“선임의 의수 가져와!”
느닷없는 외침이나 다름없었고, 이는 문을 연 사람에게 꽤나 뜻밖인 듯했다.
“어? 아니, 그건…….”
“가져와!”
놀라 되묻는 소리가 나오려 했지만, 터프넥은 굵고 거친 목소리로 다시 강요하는 외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뭐, 대장은 터프넥이니까…….”
대꾸와 함께 목을 움추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 터프넥은 다시 숨을 가다듬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약물의 효과가 조금 더 세게 몸 안을 맴도는 듯한 느낌과 함께 터프넥은 살짝 맴돌던 현기증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터프넥은 앞에서 느릿하니 걷고 있는 녀석을 향해 조금 더 세게 외친다.
“루카! 당장! 빨리!”
“거참…… 예, 예! 갑니다, 가요!”
투덜대는 낌새가 가득한 소리를 흘리기는 했지만, 터프넥은 루카의 발걸음이 빨라진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문턱을 넘어서 빙빙 돌며 위로 이어진 계단에서 루카의 그림자가 바로 사라지잖는가.
그 뒤를 쫓듯이 터프넥은 계단을 밟다가 잠깐 움찔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열린 문 너머로 흐릿하고 어두운 벽의 구멍이 완전히 메워져 닫힌 꼴이 보였다.
어둡고 그늘진 탓에 벽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터프넥이 지나온 길고 긴 바람구멍 길 따위는 없는 것이 분명했다.
터프넥의 입가에서 살짝 안도의 한숨이 새 나왔고, 이를 알아차린 순간 터프넥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젠장, 겁먹고 있는 거냐! 라비엔 도적단의 단장인 놈이! 터프넥, 정신 차려! 팔 하나 날아간 정도로 오그라들지 말라고!’
자신을 향해 소리 없이 외치면서 터프넥은 보다 세찬 걸음으로 계단을 밟으며 올라갔다.
그런 터프넥의 등 뒤로…… 어두운 방의 나무문은 열린 채였고, 계단에 꽂혀진 횃불이 일렁이는 탓에 아까보다는 밝아진 방의 풍경 속에서 그림자가 불꽃을 따라 흔들리는 듯했다.
“쓸 거요?”
루카는 터프넥의 잘린 어깨 쪽을 흘깃거리면서 물었다.
터프넥이 앉은 편안한 가죽장식의 의자 앞, 탁자 위에는 어딘가 고풍(古風)스러운 분위기를 띈 긴 나무 상자가 놓인 채였다. 루카는 그 상자를 터프넥 앞에 내려놓으면서, 아까 제대로 보지 못한 터프넥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고 묻는 모습이었다.
루카의 물음은 나름대로 이것저것 생각한 다음에 조언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띤 채이기도 했다.
하지만 터프넥은 말로 대답하는 대신에 루카를 노려봤다.
루카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두 손을 들어올리며 다시 말해야 했다.
“아, 알아. 안다고요. 라비엔의 단장은 터프넥이지. 알아서 해요. 하지만 책임도 단장 혼자 져야 한다는 거, 잊지 않는 게 좋을 거요.”
“가 봐.”
울컥한 듯, 터프넥은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나서 낮게 소리냈다.
루카의 어깨가 가볍게 으쓱했다.
“어차피 나도 별로 보고 싶지 않다니까…… 그럼, 알아서 잘 해봐요.”
경쾌한 발걸음으로 뒷걸음치던 루카는 결국 몸을 돌렸고 사라졌다.
터프넥은 그런 루카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혹시라도 숨어서 보거나 무슨 딴소리를 하러 다시 돌아올 경우도 생각하는 듯…… 하지만 루카의 모습은 그 가벼운 걸음처럼 가볍게 사라져서 부르지 않는 한, 다시 나타날 낌새가 없었다. 어쩌면 부른다고 해도 내일이나 다시 볼 듯한 분위기로 루카는 가버린 것이다.
긴장을 살짝 풀면서 터프넥은 가는 숨을 쉬고 난 다음에 상자를 바라봤다.
오래된 장미의 넝쿨이 상자를 감고 있는 듯한 문양이 빛바랜 색채 속에서도 기묘한 광택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뭔가 아주 오래된 마법의 기척이 맴도는 것처럼 신비로운 느낌이 세게 전해왔다.
그리고 터프넥은 이 상자를 받으며 들었던 목소리가 귓가에서 아련하게 되새겨지는 것도 느꼈다.
“맡겨둘 테니까, 잘 간직하고 있으라고.”
사람을 홀리는 듯한 그 목소리, 눈빛에 대한 기억이 터프넥의 이를 꽉 깨물게 했다. 그 모습을 기억해내지 않기 위해서 터프넥은 숨을 고르면서 자신을 향한 중얼거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터프넥이다. 이제부터는 황금팔의 터프넥이 될 거야! 내가 바로 라비엔 도적단을 이끄는 단장이다! 왕도(王都) 도적길드의 지부 라비엔의 황금팔 단장! 이제 그 전설이 다시 부활하는 거야!”
“헤에? 황금팔? 피와 살로 된 팔 하나 잘라놨더니, 아예 황금으로 된 팔을 붙이겠다고? 뭐야, 그게?”
갑자기 귓가에서 울린 아련한 속삭임…….
터프넥은 정신 줄을 놓을 뻔했다.
루카가 나간 다음, 분명히 이곳에 있는 사람은 터프넥 혼자!
그런데 누가 바로 귓가에 입술을 대고 훅훅 숨을 토해내듯이 지껄이고 있다!
덜덜 떨려오는 몸을 억누르면서 터프넥은 팔이 없는 자기 어깨 너머를 향해 고개를 돌렷다. 천천히, 뭐가 거기 있든 놀라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바람결이 터프넥의 눈길을 따라 흔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스쳐 갔고, 눈에 보이지 않던 장막이 덩달아 날려진 것처럼 사람의 모습이 터프넥의 눈동자에 비춰졌다. 고개를 숙인 꼴이 정말로 조금 전의 속삭임은 터프넥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뱉어낸 듯하잖은가!
“너, 너!”
오래 전에 만난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터프넥의 팔을 잘라낸 놈이 상자를 내려다보면서 웃고 있었다.
“나? 아, 이름 말해주지 않았나? 해준 것 같은데? 뭐, 다시 말해줄게. 나는 투란. 본명이야. 음, 그런데…… 이 안에 황금팔이 들었어? 전설은 또 뭐야?”
이어져 나오는 주절대는 소리는 터프넥에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
터프넥은 대체 이 녀석이…… 분명히 가짜 이름을 대는 것일 텐데도 뻔뻔하게 본명이라 외치는 놈이 어떻게 지금 자기 곁에 멀뚱거리는 꼴로 있는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퍼브에서 이곳으로 비밀통로를 통해 뛰고 달려서 탈출한 것이 아니었다.
에어포켓이라는 바람으로 이뤄진 거품 방울 속에 몸을 담갔고, 정해진 에어 패스를 통해서 날려졌다. 에어포켓이 지나간 다음에 에어 패스는 통로를 뭉개면서 사라질 터였다.
그러니 절대로 뒤를 쫓아올 수가 없다!
그렇다면 터프넥이 여기에 올 것을 예상하고 다른 길을 택해, 상상하지 못한 속도로 왔다는 것인가?
하지만 조금 전의 모습과 투란이 지금 지껄이는 소리…….
“와, 여기 대단한데? 천장도 높고, 책도 있고, 무기도 있고, 이 뒤에 쇠문짝은 금고야? 대단해! 땅굴 파고 튀길래 어디 큰 쥐구멍이나 개미굴 같은 곳으로 갈 줄 알았는데 따라와 보니 이렇게 멀쩡한 곳이라니…… 이런 걸 보고 저택이라고 하나?”
명백하게 에어 패스의 붕괴된 궤적을 따라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들거리면서 가슴이 떨리는 와중에도 터프넥은 강하게 따지고 들었다.
“내 뒤를…… 그대로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어! 괴물 두더지라도 에어포켓의 궤적을 따라오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이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여기 있는 거냐고! 조금 전까지 보이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목소리가 뱃속 깊은 곳에서 피어올라 굵은 목으로 토해져나가는 것을 귀로 담으면서 터프넥은 최대한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억지로 목소리를 높인 덕분이었다. 이런 상황은 당황하면 당황할수록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투란은 이렇게 따지고드는 터프넥을 보면서 재미있어 하는 표정부터 짓고 대답을 하는데…….
“어떻게? 당연히 마법이지! 신기하지?”
전혀 설명이 되고 있지 않잖은가!
이제는 목숨에 대한 걱정보다 더 울컥하고 치밀어오르는 뭔가가 터프넥의 목청을 울리면서 소리 지르게 했다.
“놀리지 마! 대체 어떻……!”
“놀리는 거 아닌걸. 마법이라니까, 조금 특별한 마법. 설명해주면 알아들을 수 있겠어? 뭐, 그럼 말이나 해볼까? 에어로(Aero)라고, 내게는 정령을…… 정령 비슷한 건데, 그냥 정령이라고 알아둬. 그러니까 에어로라는 바람을 다루는 정령을 부리는 마법이 있어.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바람결을 읽는 것, 그 바람결을 재현하는 것, 그리고 조금 전처럼 두터운 바람 장막으로…… 잠깐씩이지만 나를 안 보이게 해주는 것! 어때, 이해가 되나? 오? 이해하는 표정이네! 굉장해! 과연 라비엔 도적 단장인가 봐! 이런 거 금세 이해하는 사람이 많이 않은데 말이야! 자, 그럼…… 이제 터프넥, 당신이 설명할 차례야. 이게 뭐야? 이 상자 안에 뭐가 든 거야?”
툭툭, 터프넥의 두터운 목을 손으로 두드리고 쓰다듬으면서 잘려나간 어깨 언저리가 어느새 상처구멍을 막은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투란은 대답하고 있었다. 마치 좋은 것 있으면 나눠 쓰고 나눠 갖자는 듯한 이 묘한 낌새…….
터프넥은 도적의 본능을 통해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새끼가아아!’
상자 속의 보물을 노리고 있는 투란이었다!
도적을 상대로 도적질을 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