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9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8)
이를 가는 표정을 지었지만, 터프넥은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핑계를 대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녀석이 대체 뭔 짓을 할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가만히 있는다면, 이 투란에게는 상자를 열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뭐야? 갑자기 입 다무는 거야? 나만 대답하고 넌 대답하기 싫어?”
그런데 투란이 털썩 탁자 위에 올라앉으면서 발끝으로 터프넥의 가슴을 슬슬 밀면서 따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자신이 친절하게 설명해줬더니, 왜 너는 입을 다물고 씩씩대느냐고 따지는 태도였다.
하지만 터프넥은 그 와중에 투란의 손길이 슬그머니 상자를 더듬는 꼴을 봤다! 이는 터프넥의 입가에 희미한 실룩임을 만들어냈다.
‘더 세게 만져! 눌러봐! 억지로 열어보라고!’
터프넥은 투란에게 소리 없이 외쳤다.
상자의 마법은 억지로 열려는 자에게 벌을 준다.
지금 상황에서 터프넥의 기회는 투란이 상자를 어떻게 해보려다가 그 벌을 받는 것! 그렇게 된다면…….
“웃차!”
투란이 상자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터프넥의 가슴을 발로 거의 밟듯이 해서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듯한 태도였고, 이를 보며 터프넥은 일부러 인상을 구기는 시늉까지 했다. 어떻게든 투란이 저 상자를 억지로 열려 한다면…….
“우와, 마법의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는데? 함부로 열려다가는 큰일 나는 거야? 에헤, 그래서 그렇게 입 다물고 구경하려고? 여차, 그럼 받으시고!”
“어? 엥!”
갑자기 가슴에 안겨오는 상자는 터프넥을 당황하게 했다.
엉겁결에 멀쩡하게 남은 한 팔로 상자를 끌어안는 꼴이 되면서 터프넥은 투란을 바라봤다. 설마 자신이 얌전히 이 상자를 열어줄 거라 여기는 것인가? 물론 열지 않으면 또 팔이나 다리 하나 날아갈 듯도 했다!
“자아, 그럼 열어봐야지?”
투란의 손이 덥석 터프넥의 손목을 잡았다.
열라고 강요하는 대신에 느닷없이 손목을 잡는 꼴은 터프넥을 확실히 당황시키는 짓이었다.
“뭐, 뭘……?”
“에이, 왜 이래? 알면서! 나도 도적에 대해서 제법 들어봤다고! 혹시 저주 걸린 상자라도 말이야…… 이렇게 남의 손을 대신 쓰면…….”
투란이 방긋 웃으면서 하는 소리는 터프넥의 낯빛을 붉으락푸르락하게 만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터프넥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함정이라든가, 덫을 잔뜩 깔아둔 보물창고라든가를 털러 다닐 때 초보 도적들이 하는 일이 바로 남을 대신 밀어 넣는 짓이다. 스스로 함정을 피할 줄도 모르고 덫을 풀 줄도 모르니까 누군가 대신 그 자리에 밀어 넣어서 함정을 메우고 덫을 치우는 것이다. 저주 걸린 뭔가를 만져야 한다면 그 자리에 남의 손을 대신 밀어 넣는 짓 또한 그런 초보적인 도적의 발상!
그리고 그 발상을 지금 투란은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상자에 터프넥의 손을 대고 벅벅 문지르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저주를 터프넥이 뒤집어쓰도록!
‘이 새끼가 지금 누굴 초보 도적에게 속는 얼간이로 만들고 있어!’
터프넥에게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신 줄을 놓게 할 지경인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터프넥을 향해 이딴 짓이라니!
라비엔의 도적단장이라고 엿들은 바를 제 입으로 토해놓고서는!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터프넥은 말해야 했다. 사실은 말할 기분도 아니었지만, 상자에 꽉꽉 누른 채로 손톱을 파낼 작정인지 손가락을 부러뜨릴 작정인지 모를 정도로 힘을 주고 있으니 입 다물고 구경할 상황이 아니었다. 팔 하나 잘라낸 놈이 손도 그냥 뭉개려 이러고 있다는 짐작도 충분히 가능한 꼴이니까!
“이런다고 상자가 열릴 줄…… 헉?”
열 수 없다는 소리를 막 늘어놓다가 터프넥은 당황했다.
상자를 휘감은 장미의 무늬가 부스러지면서 가루가 되어 먼지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더불어 상자가 틈새를 보이면서 열리는 꼴이다? 다른 곳도 아닌 자기 가슴팍인지라 잘못 볼 수도 없는 선명한 광경이었다.
도대체 어째서?
“오, 풀렸네?”
투란이 밝게 말했다.
터프넥의 볼이 덜덜 떨렸고, 경악한 눈빛이 투란에게 꽂혔다.
터프넥은 확신할 수 있었다.
상자에 걸린 마법이 뭐든 이놈은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는 그저 놀렸을 뿐이다!
되짚어 보면 마법으로 터프넥을 쫓아왔던 놈이었다.
이런 일이 안 될 거라고 짐작한 것은 터프넥의 실수였다.
‘말려들었어?’
터프넥은 자신이 투란의 수작에 걸려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잘라내는 폭력을 휘두른다는 점 때문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마법으로 터프넥을 추적해 온 때문일까? 대체 무엇 때문에 생각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로 압박받고 눌리고 있는가?
“어디 보자…….”
투란은 이제 상자를 냉큼 두 손으로 집어가서 탁자 위에 다시 올려놓고 열었다. 가는 틈새가 활짝 펼쳐지면서 열린 상자 속의 물건이 터프넥의 눈동자에 비춰들었다.
황금빛을 번들거리는 뼈…… 사람 한쪽 팔, 한쪽 다리의 뼈가 황금으로 만들어진 모양을 하고 놓여 있었다. 살점 하나 없이 뼈뿐인 꼴이었지만,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갖춰진 사람의 지체(肢體), 황금 골격이었다.
“황금 뼈다귀?”
투란은 그 감상을 짧게 말하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터프넥을 바라봤다.
왜 근육과 살갗이 빠진 뼈다귀뿐이냐는 듯…….
“이게 잘린 팔에 붙어? 달고 다니면 굉장히 보기 흉할 텐데? 그런데 전설이야? 진짜야, 그거?”
투덜대며 따지는 소리가 투란의 입에서 새 나왔다.
터프넥은 입을 다문 채로 대꾸하지 않았다.
투란의 말은 터프넥에게 오래된 기억을 어른거리게 했다.
얄팍해 보이는 팔을 소매가 단단히 조이고 있는 듯한 팔, 건틀릿을 절대로 벗어놓지 않는 이상한 버릇…… 터프넥의 선임이었던 라비엔의 도적단장의 모습이었다. 그 또한 황금뼈다귀로 된 손을 보이는 것이 괴상하다고 그러고 다녔었다.
“이거…… 마법으로 만든 거 아니네? 그런데 움직이나?”
투란이 갸웃거리고 있었다.
말과 함께 투란은 황금골격의 팔과 다리를 손끝으로 살살 문지르는 중이었고,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곧 실망스럽다는 듯한 투덜거림도 이어졌는데…….
“에이, 그냥 황금으로 된 뼈다귀인 거야? 그냥 갖다 팔기나 해야 하나…….”
이 소리가 터프넥의 정신 줄을 되잡게 했다.
이대로 휘둘릴 수는 없었다.
설혹 팔다리 하나가 더 날아가든가…… 혹은 대가리가 뽀개지더라도 이대로 휘둘리다가 당할 수는 없다!
격한 감정을 담아 터프넥이 입을 열고 사납게 외친다.
“황금이 아니다. 구리야. 황동 소재로 만들어진 연금술 물품이다. 마법과는 무관한 기술로 만들어진…… 걸작이다. 사용할 줄 모르면 쓸모가 없지. 뭘 원하지? 대체 뭘 바라느냐고! 그만 놀려대고 원하는 걸 말해!”
투란이 방긋거리며 웃던 표정을 지운 채로 진지하게 터프넥을 바라봤다.
터프넥은 섬뜩한 느낌이 뒤통수를 간지럽히면서 등골을 서늘하게 긁는 것을 알았지만, 투란의 눈을 마주쳐다봤다.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만 했고, 죽일 테면 죽이란 소리까지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 터프넥의 가슴 한편에 묘한 위안이 되었다. 죽여보란 소리를 하면 정말 죽일지도 모르는 놈이라 나름 피한 부분인데…….
“금고 열어줘.”
“어, 뭐?”
불쑥 튀어나온 투란의 말이 터프넥을 멍하게 했다.
때문에 터프넥은 투란의 손이 황금뼈를 챙기는 꼴을 뒤늦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투란이 집어 어깨너머로 훌쩍 걸치는 듯한 순간, 상자 안의 황금뼈 팔다리가 사라졌다!
짧게 되짚어보니, 투란은 자신의 모습도 감춘 채 터프넥 곁에 있었잖던가?
이 또한 바람의 정령이 어쩌고 한 것의 힘을 이용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날로 남의 물건을 챙겨가는 경우에 실로 쓸 만한 능력이다!
이런 놈일 줄 미리 알았다면 터프넥은 도적단에 섭외라도 시도했을 텐데…….
이상한 잡념이 더 깊어지려 하는 순간, 터프넥의 귓가로 투란의 목소리가 다시 보채듯이 파고들었다.
“열어 달라고, 저거. 저거 금고잖아?”
터프넥의 이마가 구겨지면서 표정도 함께 일그러진 채로 굳어졌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 투란이란 놈이 도적단장인 자신을 놓고 도적질을 할 낌새는 벌써 잔뜩 풍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금고를 열어달라니! 그렇다고 버티기에는 잔뜩 포악한 놈이잖은가?
문득 터프넥은 투란이 거짓말을 분별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꼴을 떠올렸다. 과연 그 말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그저 핑계였을까?
투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터프넥은 바닥에 닿은 발에 힘을 주며 이를 가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채로 대꾸를 한다.
“열 수 없다. 열지 않는 게 아니라, 열 수 없어!”
“아, 그래?”
투란의 대답은 아주 간결했다.
터프넥이 당황스러울 지경이잖나!
‘뭐, 뭐야? 이 새끼, 진짜 무슨 트루세이어라도 되는 거야?’
등 뒤에 놓인 벽은 분명히 금고의 문이었다.
이 장소의 특성을 이용해서 부품을 가져다 끼워넣은 형식으로 조립된 특별한 금고였다. 저 금고는 옮길 수도 없고, 열 수 있는 시기 또한 일정한 주기를 갖는 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열 수 없는 때…… 터프넥은 진실을 말했는데, 투란은 이를 바로 알아차렸다?
“웃차!”
투란이 탁자에서 일어서는 듯했고…….
“우어?”
터프넥은 의자째로 자신이 뒤로 넘어가는 상황에 놀란 소리를 질렀다.
투란이 터프넥의 가슴팍을 두 발로 밀고 디디며 서버린 탓이었다.
쿠당.
두터운 목을 가슴팍으로 당기며 터프넥은 뒤통수가 돌바닥에 찍히는 꼴을 피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란 소리를 냈지만, 자신이 얼마나 꼴 사납게 비명 질렀나를 깨달으며 터프넥이 씩씩대는 숨을 토하는데 투란이 다시 가볍게 뱉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말 쓸모없는 도적단장님이시구만. 자기 은신처 금고도 못 열다니…… 황금도 아닌 황동 뼈다귀 팔을 뭔 마법 상자에 담아놓지를 않나…… 아, 그러고 보니 잘린 거는 팔 하나인데 상자 안에는 다리도 있었잖아? 다리 하나도 없어야 말이 되는 거 아냐?”
투웅.
앉은 채로 넘어간 탓에 터프넥의 등에 깔린 채로 엉덩이를 받쳐주던 가죽 의자가 탁자 아래를 지나 저쪽으로 튕겨 나갔다. 터프넥의 몸무게에 눌린 적이 없다는 듯, 아주 가볍게!
터프넥은 투란의 가벼운 발길질이 꽤 센 것에 놀랐지만, 그 다음에 자신이 한쪽 다리 허벅지를 누르는 투란의 발에 더욱 놀라야 했다. 더불어 들려온 말이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으므로!
“어디 보자, 팔은 왼쪽이었으니까 다리는 오른쪽으로 해야 왼쪽, 오른쪽 균형이 맞는 셈이지?”
“무, 무슨……!”
다급하게 꺼내려던 터프넥의 말은 끊어지고 말았다.
다리뼈까지 단숨에 짓이겨지며 허벅지에 발자국 모양의 구멍이 뚫리면서 입에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느끼자마자 터프넥이 아랫입술을 깨물어 버린 탓이었다. 누군가 고통을 주려 할 때, 비명을 지르는 것은 상대를 흡족하게 할 뿐이니 버텨본 셈이었다.
“목만 굵은 게 아니고 다리도 굵구만! 어? 아까 마신 약물이 아직도 효과가 남았네? 에이, 도로 붙으면 애써 밟은 보람이 없지! 웃차!”
무슨 장난처럼 투란이 중얼거리면서 연이어 밟아 터프넥의 오른쪽 다리를 끊었다.
곧 잘린 다리가 저쪽으로 채여갔고, 무기를 걸어둔 벽 아래에 부딪혔다.
‘몬스터!’
터프넥은 아랫입술에 느껴지는 피맛과 함께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투란, 이 녀석의 방식은 정상적인 사람과는 아주 다르다!
도대체 지금 터프넥의 다리를 끊어놓을 까닭이 없잖은가!
이미 난폭하고 흉악하다는 것은 충분히 과시했는데!
그리고 투란은 터프넥을 넘어서 금고 벽을 향해 가며 노래하듯이 지껄이니…….
“자아, 이걸 어떻게 열어야 하나? 안에 빗장이 걸린 건가, 그냥 자물쇠가 채워진 건가? 아니, 밖에서 걸어 잠가도 안의 빗장이 잠기나? 흐흠, 그러려면 꽤 복잡한데…… 금고니까 그 정도는 당연하려나? 아아, 다리가 붙는 게 먼저일까, 금고 문이 열리는 게 먼저일까! 아니면 약물 효과 없어지는 게 먼저일까. 누가 제일 빠를까…….”
터프넥은 몸을 뒤집으며 굴렀고, 한 팔로 바닥을 긁어대며 기었다.
저쪽에서 짓이겨져 끊어진 다리의 절단면이 꿈틀거리면서 살갗으로 덮여지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이쪽의 절단면은 가렵고 아프면서 쉴 새 없이 개미가 물고 뜯어 씹어대는가 싶은 감각이 선명했다.
아직 터프넥이 마신 상급 포션의 치유 효과가 분명히 남아있다는 증거였다.
이렇게 되면 투란이 지껄이는 소리에 놀아나줄 필요가 있었다.
‘루카, 이 망할 새끼야! 어서 오라고! 바닥 돌을 몇 번을 밟았잖아! 신호 받았으면 얼른 오란 말이야!’
마음속으로 외치며 터프넥은 잘린 다리를 다시 붙이려는 기어가는 애처로운 꼴을 열심히 드러냈다. 투란이 금고에 정신 쏟는 사이에 다리도 붙이고, 루카의 저격(狙擊)도 이뤄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