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9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9)
―저 녀석을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거냐?
‘엉?’
벽의 금고를 살피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갸우뚱했다.
드라고니아는 바로 조금 더 세심하게 묻는다.
―죽일 녀석이라고 판단했다면 그냥 죽이면 되잖아? 새삼 죽이지 못해서 이러는 것도 아니고…… 지금 네 행동의 목적은 순수하게 저 녀석에게 고통을 주는 것뿐이다. 몬스터를 상대로도 이런 적이 없잖아? 쉬운 상대라도 단숨에 끝낼 수 있으면 바로 끝내면서 정작 인간을 상대로 왜 이러냐고.
‘인간? 흠, 인간이라…….’
투란은 오른손을 살짝 흔들었고, 샤벨투스의 이빨을 길게 뽑아냈다.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해서 묻는다.
―그건 무슨 의미지? 저 녀석이 인간이 아니란 건가? 어딜 봐도 인간인데?
‘넌 정말 사람 사는 곳에 대해 모르는구나. 뭐, 설명하자면 간단해. 저 녀석은 퍼브 마스터라고.’
―그런데?
푹, 샤벨투스의 이빨이 금고 한복판에 꽂혔다.
싸앗, 수직으로 그어진 샤벨투스의 이빨은 금고문의 중앙을 그대로 가르는 듯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금고문은 열리지 않았다.
투란은 혀를 찼고, 슬쩍 뒤돌아보면서 드라고니아에게 대답을 이어간다.
‘경계도시, 여기는 아예 경계도시의 경계 지역조차 벗어났다니까 마찬가지겠지. 경계도시의 퍼브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퍼브 마스터의 책임이야. 퍼브 마스터는 자신의 퍼브에 찾아온 손님에게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샤벨투스의 이빨이 높이 치켜올려졌고, 이번에는 수평으로 그어졌다.
사아―, 수직으로 갈라진 틈새의 꼭대기 부분에 수평으로 틈이 생겼다.
‘그래서 경계도시의 퍼브를 찾는 사냥꾼…… 몬스터 헌터라든가 몬스터 로드는 퍼브에서 마음 놓고 쉬지. 그런 곳을 덫으로 이용해서 누군가를 죽이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그건 겉만 인간인 몬스터라고. 여기까지 이해가 되나?’
―그런 거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왜 죽이지 않고 괴롭히냐고 묻는 거다. 투란, 너 지금 저 녀석을 죽일 생각 없이 마냥 괴롭히고만 있잖아.
‘아, 그거야 저게 고작해야 발가락 정도니까 그렇지.’
투란은 뒤편에서 자신의 잘려진 다리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터프넥의 기척을 감지하면서 앞에 놓인 금고의 틈새를 가늠했다. 조금 높게, 투란 자신의 눈높이보다 살짝 위로 그어진 수평의 틈 한쪽 끝에 샤벨투스의 이빨이 다시 꽂혔고 이번에는 사선(斜線)으로 새로운 틈을 만들어냈다. 양쪽 끝에서 수직으로 그어진 틈새까지 두 개의 사선이 그어지니, 금고에는 중앙을 가르는 선을 담은 역삼각형의 금이 그어진 모양이 되었다.
―발가락?
‘응. 몬스터를 사냥할 때는 확실히 숨통을 끊어놓든가, 아니면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겁을 잔뜩 주든가 아주 짜증 나서 이쪽을 거들떠보지도 못하게 해야 하잖아. 그런데 저건…… 저 터프넥은 발가락 정도일 뿐이야. 이 라비엔에 잔뜩 퍼져 있을 거라고, 도적단 녀석들…… 그리고 터프넥이 죽으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새로운 덫을 준비해서 같은 짓을 반복하겠지.’
―과연, 그렇다면 저 녀석은 확실히 손상을 입힌 채로 살려둬야 한다는 결론이 당연하겠군.
‘그래. 잔뜩 움츠리게 해서 당분간 겁먹은 채로 주변을 구경만 하는 게 좋다고 판단할 정도로, 터프넥을 다져놔야지. 아, 그런데…… 아까 그거 무슨 얘기였어? 상자에서 나온 뼈다귀 같은 게 춤추는 산맥이 아닌 다른 곳의 기술이니 뭐니 한 거…….’
퍼억!
투란은 역삼각형의 중심에 발길질을 했다.
역삼각형이 중심이 갈라진 그대로 안으로 한 뼘가량 가라앉듯이 그대로 밀렸다.
“어이쿠? 진짜 두껍잖아!”
투란이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투란의 뇌리에서는 드라고니아를 향해 소리 없는 물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암반을 통째로 금고로 만들었다는 기술도 그래, 프로브에 여기 금고 형태가 있다는 것만 감지되고…… 그것도 이런 방식으로 금고를 제작할 수 있다는 걸 네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지한 거고, 몰랐다면 그냥 조금 이상한 구조의 암반일 거라고 그냥 넘었을 거라며? 이것도 산맥 밖의 기술이라고 했잖아.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말한 그대로다. 골격형 의수, 암석 금고. 이 두 가지 모두 춤추는 산맥의 연금술이나 기술과는 맥을 달리하는…… 말 그대로 춤추는 산맥이란 지역 밖에서나 사용되는 기술로 만들어진 거라고.
‘산맥 안이랑 밖이랑 기술이 그렇게 달라?’
퍽, 끼이― 쿵!
다시 한 번 발길질이 이뤄졌고, 이번에는 역삼각형이 완전히 저쪽으로 밀려들어가면서 넘어갔다.
세모꼴의 구멍이 금고의 문에 뚫린 꼴이었다.
투란은 터프넥이 자기 다리에 도달해서 다시 붙이려고 낑낑대는 꼴을 알면서도 뒤돌아보지 않고 세모꼴 구멍을 넘어 금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터프넥보다 이 금고 안이 훨씬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듯, 터프넥이 계속해서 흘깃거리는 꼴 따위는 모른다는 듯한 태도였다.
―연금술의 기본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연금술을 기반으로 삼은 기술, 도구의 제작 따위가 완전히 그 격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어? 기본이 다르다니? 왜?’
―춤추는 산맥이란 환경은 단지 몬스터가 많은 곳이란 뜻이 아니야. 혼돈의 영향력이 아주 짙게 드리워진 곳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들 수 없는 강력한 포션을 간단히 제조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곳에서는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것도 여기서는 아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는 뜻이지. 저 골격형 의수도, 끊어진 뼈와 닿으면 저절로 이어지면서 자율적으로 반응해서 제대로 된 팔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원래 저건 이곳에서는 작동하지 않아야 정상이야. 이 금고 역시 그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할 수 없는 게 맞아.
“으아! 이게 다 뭐야? 많이도 모아놨네!”
투란이 휘파람을 불듯이 외쳤다.
―내 말 듣고 있냐!
드라고니아가 살짝 울컥한 듯이 으르렁거렸다.
‘아, 다 듣고 있어. 그쪽은 그쪽, 이쪽은 이쪽! 네 말도 듣고 있고, 터프넥도 잘 살피는 중이고, 이 금고 안에 쌓인 보물도 잘 보고 있지!’
투란이 소리 없이 대답했고, 드라고니아는 한숨을 쉬듯이 말한다.
―나중에 못 들었다는 소리만 하지 마라. 하던 말 마저하면…… 여기 금고랑 네가 삼켜 감춘 의수는 산맥 지역 밖,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여섯 왕국 지역 안에서는 원래 쓰일 리가 없는 기술을 가져다가 쓸 수 있도록 변화시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대단해! 이런 보물창고라니! 돌을 파서 만든 금고가 이렇게 대단할 수가!”
투란의 외침이 드라고니아로 하여금 말을 맺게 하니…….
―대단할 뿐 아니라, 특별하기도 하다. 잘 살피고, 잘 간직해라.
이를 들은 듯, 못 들은 듯 투란은 이어서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와, 도적도 할 만하네! 이렇게 쌓아두고 살다니! 대단해! 좋아, 이제부터 내가 도적이다! 이거 전부 다 내 거! 어이, 터프넥! 괜찮지? 두 다리 멀쩡해져서 기분 좋은 터프넥 씨! 이거 내가 다 가져도 괜찮지?”
세모꼴 구멍 너머를 돌아보면서 묻는 소리는 터프넥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져라.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 봐.”
대답은 힘겨운 소리로 터프넥의 입술 사이에서 울려 나갔다.
하지만 터프넥의 입가 한구석에서는 희미한 웃음이 감돌기 시작하는 중이기도 했다. 이는 그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비웃음이었다.
‘그 금고 안의 물건을 옮겨낼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할 것 같냐! 네 놈 혼자서는 어림도 없어! 거기 금괴가 작아 보이니까 가벼워 보이지? 하지만 거기 금괴와 은괴, 보석은 모두 보이는 것보다 몇 배는 무겁다! 네놈이 샤벨투스의 발톱인지 이빨인지를 가졌다고 해도 살짝 잘라가는 정도가 고작일걸!’
생각이 투란의 날카로운 도구에 미치자, 터프넥의 마음에 그늘이 졌다.
저 금고를 가를 수 있는 도구는 몇 가지 없었다.
터프넥은 자기 팔을 잘릴 때 설마 했는데, 금고를 가르는 꼴을 보고 나서 확신할 수가 있었다.
저것이 샤벨투스의 몬스터 블레이드라고.
애초에 저 금고의 문, 두께가 수십 센티인 저걸 저리 푹푹 쑤시고 썩썩 가를 정도의 도구는 많지가 않았다.
‘하필이면 저걸 가진 놈이었다니.’
몬스터 블레이드 중에서 날카로운 걸로 유명한 몇 가지, 그 중에서 저렇게 간단히 금고의 문을 가를 수 있다고 가장 경계되던 한 가지가 투란에게 있다는 것이 터프넥을 씁쓸하고 억울하게 했다.
하지만 그런 억울하고 씁쓸함 속에서 터프넥은 회심의 미소가 어리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도 있었다. 아주 당당하게 투란에게 가져가라고 더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면서 참는 웃음이었다.
설혹 금고의 문을 저렇게 뚫을 수 있다고 해도, 금고 안의 보물을 밖으로 빼낼 수는 없으므로!
‘상상도 못할 거다. 그 금고 안에서 마법 주머니 따위는 전혀 쓸모가 없어! 등불도 없는 곳이 왜 밝은가도 이해할 수 없을걸!’
생각할수록 터프넥의 입가에서 비웃음이 짙게 실룩이려 했다.
잠깐은 이를 억지로 참으려 했지만, 곧 터프넥은 자신이 처음 저 금고 안을 봤을 때를 떠올리면서 웃지 않을 수가 있었다.
“갖고 싶은 거 있어? 아무거나 골라서 가져. 갖고 나갈 수 있다면 네 거야.”
매혹적인 소리는 그 말의 의미를 잠깐 잊게 해줬지만, 곧 그 말의 의미가 터프넥을 거의 미치게 했다. 말소리에 담긴 유혹적인 분위기가 말에 담긴 의미가 불러낸 탐욕에 의해 순식간에 말살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터프넥은 단 한 가지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대신 한참을 놀림 받았고, 그 기억만을 단단히 가슴 깊이…… 흉터처럼 간직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정말 목덜미만 굵어서 터프넥이 아니네? 머릿속까지 힘줄만 가득한 터프넥이야! 이 라비엔의 금고가 보통 금고로 보여? 이건 먼 옛날 도적왕이 요정족의 장인(匠人)에게 선물받은 금고라고. 도적왕이거나, 도적왕으로부터 허락받은 열쇠를 지닌 사람이 아니면 이 안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나올 수 없어. 아, 혹시 모르지. 요정족의 신비한 요술을 익혔다면, 금고의 요술을 무시할 수 있을지도 말이야. 하지만 터프넥, 넌 어느 쪽도 아니야. 기억해둬. 우린 도적길드 소속이고, 이 금고는 길드의 소유물이며 길드는 도적왕의 수하라는걸. 우린 여길 채울 의무는 있어도, 여기서 뭘 가지고 나올 권한이 없어. 알아들었지?”
라비엔의 도적단에 처음 찾아온 녀석들이 겪는 신고식 같은 경험이었다.
터프넥도 그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이 금고, 정말 쓸모없다고!
그래서 터프넥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저 금고 안에 한 가지도 없다!
그러니 투란에게 말할 때도 정말 아무런 꺼리는 바가 없었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라, 내 거 아니다.’란 기분이었으니까.
물론 가져갈 수도 없을 테지만!
“어?”
그런데 터프넥은 간신히 붙어 아물고 있는 다리로 겨우 몸을 일으켜 앉다가 세모꼴 구멍 너머가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활짝 열린 채는 아니었지만, 몇 번 봤던 광경이랑은 너무 다른 느낌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투란이 세모꼴 구멍을 넘어 나오는 모습 너머로, 터프넥은 좀 더 머리를 높이 올리면서 그 구멍 속을 다시 봤고 확인했다.
“어?”
금고가 비었다.
금고 안은 훤하게 밝았지만, 쌓여있던 금괴를 비롯한 보물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어……어어억!”
터프넥은 허둥지둥 움직여야 했다.
무릎걸음을 하다가 겨우 아물던 다리가 다시 끊어질 뻔한 상황까지 겪었지만, 한 손으로 그 다리를 붙잡아 붙여놓은 채로 터프넥은 절뚝이 흉내를 내면서 세모꼴 구멍을 향해 달라붙었다.
“으허어어어, 으허억? 으어어어어!”
머리를 두툼한 세모꼴 구멍 턱에 걸쳐놓듯이 주저앉아 뒷목을 잡으면서 비명을 질러야 했다.
뒷목을 잡지 않으면 뒷골로 치솟는 핏대가 머리를 터뜨렸을 수도 있었다!
눈앞이 핑 돌면서, 경악으로 인한 현기증이란 것을 확실하게 깨달으면서 터프넥은 다시 비명을…… 괴성처럼 질렀다.
“우어어어! 우어억?”
그런 터프넥을 향해 투란이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면서 소리 질렀다.
“아, 뭐야! 똑바로 말을 하라고! 그게 대체 뭔 소리냐고!”
터프넥은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렸고, 몸도 반쯤 돌리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그리고 바로 입을 움직였다.
“어으으? 어으! 어으으!”
말을 하고자 하는 갈망, 기분은 넘쳐흘렀지만…… 터프넥의 입에서는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못했다.
절대로 털릴 수가 없는 도적단의 금고가, 지금 완벽하게 털리고 있다는 상황이 터프넥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었으므로!
“하아…… 대체 뭘 하자는 건지.”
혀를 날름거려 입술을 핥으면서 투란은 한숨을 쉬는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