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90)
“우와! 이 벽에 걸린 무기들, 꽤 좋아 보이는데?”
스윽, 한심한 꼴을 보기 싫어서 딴 곳을 보는 척하며 터진 외침이었다.
말과 함께 투란은 곧바로 한쪽 벽에 걸린 무기를 향해 다가갔고, 닥치는 대로 벽에서 떼어내 바닥에 떨궜다. 하지만 어떤 무기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 바닥에 닿기 전에 뭔가에 휩싸이며 사라질 뿐이었다.
터프넥은 벽에 진열해놓았던 무기가 어떻게 되는가에 전혀 신경 쓰지 못했고, 투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금고 문 너머를 향해 넋을 내놓은 눈길을 보내고 투란을 한번 보고 말이 되지 않는 소리로 ‘어으, 어으’ 하고 있을 뿐이었다.
투란도 그런 터프넥을 본체만체하며 무기를 싹 털어낸 다음에는 반대편의 서가를 돌아보며 또 외치고 있었다.
“오오, 책이라니! 비싼 거잖아! 우와아, 저 비싼 책이 저렇게 많다니!”
말이 끝날 무렵에 투란은 이미 서가에 붙은 채였고, 서가의 책 또한 무기처럼 바닥에 쏟아져 내리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광경에도 터프넥은 얼빠진 듯한 꼴 그대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 이를 흘깃하며 투란은 살짝 혀를 차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칫…… 그만 가 봐야겠네.”
그리고 곧바로 투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장막에 휘감기는 듯하면서 사라졌다.
터프넥은 여전히 역삼각형으로 뚫린 구멍 너머와 이쪽을 오락가락하는 멍한 눈으로 제대로 이런 상황에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일 뿐이었다.
휘이잉!
스쳐 가는 바람이 얼굴에 닿는 것을 손으로 가리면서 투란은 어이없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높이 치솟은 암벽의 중턱, 그것이 터프넥이 도망친 금고 있는 방에서 빙빙 돌아 나온 곳이었다.
‘땅 속이 아니었어?’
―응?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동하는 동안, 고도(高度)에 대한 기본측정을 해서 알려줬잖아?
‘어? 아, 그게…… 이 소리였어.’
투란은 쓴웃음을 짓고 위를 올려다봤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높이 푹푹 찌르듯이 솟구쳐 있던 큰 바위뿔 같은 것이 막상 그 중간에서 올려다보니 아주 크고 높은 암벽이었다. 에어 패스를 타고 빙빙 돌면서 위아래 분별하지 못하는 꼴로 날려 오면서 전혀 짐작하지 못한 풍경인 셈이다.
―말을 하면 좀 제대로 들으라고!
‘알았어. 음? 나오니까 사람 낌새가 많아졌네?’
잔소리를 살짝 혀를 날름하며 넘긴 다음에 투란은 주변을 관찰하고 재빠르게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암벽에 뚫린 구멍, 멀리서는 점이거나 그저 암벽의 굴곡에 드리워진 그림자같이 보이던 곳에 휘감긴 좁은 길을 외면한 채로 투란은 바람이 잔뜩 할퀴고 있는 암벽의 바깥 껍질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바람결이 울부짖는 사이로, 소리 없는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의 뇌리에 울린다.
―널 발견하고 움직이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저 이곳에 통상적으로 머물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경비 같군.
‘그래? 아까 때려눕혀 놓은 루카는?’
―당분간 일어나지 못하겠지. 누가 와서 깨우지 않으면 아슬아슬하게 출혈로 죽기 전에 일어날 거야.
‘음, 뭐 누군가 올 거야.’
―어떻게 확신하지?
‘금고를 뚫어 부쉈잖아.’
―응?
‘터프넥은 마법을 쓰지 않아. 그저 마법 도구를 받아 사용법만 아는 정도야. 그러니까, 저 금고를 제대로 관리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야. 금고를 저렇게 부숴놨으니 확인하러 오겠지. 프로브 하나 제대로 암벽 속에 남겨져 있지?’
―그래. 우리가 여기 도착하기 전부터 정찰용으로 먼저 보낸 프로브 하나를 계속 머물게 하고 있다.
‘그러면…… 어디 보자, 터프넥의 퍼브가 어느 쪽이지?’
투란은 파닥거리면서 빠르게 움직이던 손발을 잠시 멈추고, 손끝 발끝으로 암벽을 잡아 버티는 자세로 라비엔의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가늠하려 했다. 터프넥이 탈출을 시도했던 퍼브는 쉽게 보이지 않았고, 드라고니아의 작은 핀잔만이 바로 대꾸처럼 나올 뿐이었다.
―중간에 솟은 암벽 여럿에 겹쳐져 가려져 있거든? 그렇게 맨 눈으로 보려 해도 안 보이는 곳이야.
‘에, 그러면…… 시알라 쪽은 지금 뭘 하나 모르겠군.’
―궁금하면 거기도 프로브 하나 남겨두면 되었잖아?
‘음…… 다들 예민하니까 괜히 들통나기 싫다고 했잖아. 엘레멘탈 링으로 스피릿 아티팩트를 형성한 다음에는 다들 정령 수준의 감각이라 프로브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서? 아직은 드라코눔의 특별한 마법을 쓴다고 알려줄 수 없다고. 모르는 사이에 다른 마법사에게 들켜서 입을 열 수도 있잖아. 우리끼리 비밀이야, 아직은…….’
휘이잇, 휘이잉!
지나가는 바람결에 눈을 살짝 찌푸리면서 투란은 다시 라비엔의 풍경을 주욱 둘러봤다. 저 아래 거리를 걸을 때에는 알 수 없었던 풍경, 굽이치는 듯한 암벽의 기둥과 뿔이 엮이고 꼬인 듯한 독특한 도시의 모습은 꽤나 인상 깊었다.
손을 눈가에 대고 그 풍경을 보다가 문득 투란은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근데 이거 대단하네? 상자 마법 없애면서 슬쩍 이것도 어떻게 되려나 했는데, 끄떡없잖아?’
루케인이 감아준 반지고리가 여전히 투란의 손가락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이에 질렸다는 듯한 말투로 대꾸한다.
―어떻게 될 리가 있냐! 황금매고 뭐고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받아들였던 로열 가든의 마법이라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아무리 마법을 엉망진창으로 휘젓는 대단한 거라도, 그 정도 마법까지 어쩔 수는 없어!
‘어? 아, 이것도 로열 가든의 마법이었어? 루케인이 따로 재주 부린 게 아니었구나.’
―그러고 보니, 너 로열 가든이 어떻게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있었잖아?
‘응? 아, 그거야 키린이 시킨 거잖아. 설마 몬스터 로드랑 스쳤다고 망가질 마법에 기대라고 시켰겠어?’
―흥!
키린의 이름이 거론되자 드라고니아는 코웃음과 함께 침묵에 빠져들었다.
투란은 피식 웃으면서 다시 암벽을 오르면서 라비엔의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것을 즐겼다.
켈슨은 가볍게 신음하면서 눈을 떴다.
“으…… 윽? 내 배……?”
가벼운 배앓이를 느낀 탓에, 그리고 돌연 떠오른 기억에 켈슨의 손이 반사적으로 자신의 배를 더듬었다. 하지만 단단한 가죽 복대가 만져질 뿐이고, 뚫린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
잠시 켈슨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자기 배를 두 손으로 더듬으며 내려다봤고, 자신이 꿈이라도 꿨는가 어리둥절해서는 겨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배에 구멍이 뚫리면서 아찔한 충격과 함께 쓰러졌던 꿈을 대체 어디서 졸다가 꾸었을까?
“아저씨, 정신이 들어요?”
돌아보는 켈슨 가까이에서 멜란드가 눈이 마주치자 묻고 있었다.
켈슨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멜라드를 바라봤다.
전혀 어딘가 다치거나 곤란을 겪은 모습이 아니었다.
“꿈이었……?”
중얼거림을 토해내다가 켈슨의 말이 잦아들었고, 멈췄다.
켈슨이 새삼 자기 눈에 비춰진 풍경이 어딘가를 알아차린 때문이었다.
분명히 퍼브였다.
터프넥의 퍼브…… 그런데 굉장히 이상해져 있었다.
의자와 탁자가 멋대로 나뒹굴고 있었고, 많이 부서져 있었다.
퍼브 마스터 앞을 가로막듯이 버티고 있어야 할 바도 기억하던 것과 다르게 아주 낡아빠진 몰골로 조금 힘줘서 누르면 부서질 듯했고, 술병이 가득 진열되어 있어야 할 벽은…… 움푹 파여 돌로 메워진 이상한 모양을 한 채였다.
꿀꺽, 침을 삼키면서 켈슨은 다시 주변을 둘러봤고 시알라를 비롯해 제란드와 페란드도 있는 것을 봤다. 바 한편에서 어디선가 주워다 놓은 듯한, 부서지지 않고 간신히 버틴 듯한 술병을 늘어놓고 조금씩 마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시 보니 멜란드도 켈슨 가까이에서 작은 잔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흔들며 홀짝 대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켈슨은 한숨을 쉬면서 침착하려 애쓰며 물었다.
시알라가 짧게 대답한다.
“처리했어요.”
“처리?”
켈슨에게는 뜬금없고 당황스런 한마디였다.
뭐가 뭔지 전혀 납득할 단서가 없었다.
여기가 과연 터프넥의 퍼브가 맞는가 하는 것부터 의아한데, 대뜸 처리했다니…… 뭘 어찌했다는 것인지 생각하기가 어렵고 그냥 입술만 달싹이며 되뇔 수밖에 없잖은가.
“그게 무슨…… 여기 있던 녀석들, 전부 처리했다고!”
멍하니 나오는 대로 중얼대다가 켈슨은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헌터가 수십 명이 있었고, 퍼브 마스터 터프넥도 꽤 사납다고 소문난 녀석이었다.
하지만 곧 가슴 한편에서 아련하게 솟아나는 확신이 켈슨을 납득시키는 감정을 불어넣고 있었다. 여기 있던 녀석들 전부 힘을 합친다고 해도, 경계 망루에서 이 네 남매가 보여준 위용을 어설프게도 흉내낼 수 없다!
꿀꺽, 다시 저절로 넘어가는 침을 느끼면서 켈슨의 눈길이 바쁘게 주변을 더듬었다. 뭔가 번화했던 곳이 황량해진 듯한 느낌은 살짝 켈슨에게 익숙하게 다가왔다.
라비엔이 휩쓸린 그림 뱃과 와이번의 소동에서 피해를 입었던 곳을 지나면 금세 느껴지던 이상한 감상이었다. 터프넥의 퍼브가 그런 분위기를 띠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인기척이 사라진 듯한 풍경을 이루었다.
“저기, 시알라. 전부 때려눕혔다고 해도, 몽땅 어디로 치워놓은 거지?”
켈슨은 미미하지만, 살짝 불안한 기분으로 물어야 했다.
대뜸 사람 배에 구멍부터 내며 지키고 낄낄거렸고, 멜란드 목에 사슬을 걸었던 녀석들이었다.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고 정신 차릴 리는 없었다. 오히려 앙심을 품고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치려 들지 모르는데…….
시알라는 잔을 들어 술을 입에 머금으며 대답을 피했다.
그 대신 멜란드가 켈슨 앞으로 조그마한 잔 하나를 내밀면서 말한다.
“걔네가 우리한테 하려던 대로 해줬어요.”
“뭐?”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잔을 쥐어가면서, 켈슨은 갸웃했다.
이 퍼브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가?
‘토카…… 젠벨…… 그리고 구경하던 터프넥! 아, 퍼브 마스터까지 한패였군! 그러니까 술잔 닦으면서 구경만 했겠지! 그 다음에…… 음…… 탁자, 나무통…… 나무통? 아니, 테를 둘렀고…… 그래, 그건 애시드 그릴 포획용……!’
켈슨의 손이 재빠르게 잔을 입으로 옮겼다.
꿀꺽, 거친 소리가 켈슨의 목젖을 울렸고, 입으로는 세찬 숨결이 토해져 나왔다.
“하으― 읏! 멜란드, 이 새끼들 사람 토막내서 애시드 그릴에 처먹이고 있었던 거야? 그랬어? 퍼브 마스터인 터프넥이 그런 짓을 하게 냅뒀고?”
멜란드는 입가에 작은 웃음을 머금었다.
격하게 분노하는 켈슨에게서 예전에 많이 보던 팀 리더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라비엔의 몇 안 되는 ‘착한 사람’ 중에서도 실력 있는 팀의 리더, 켈슨이 지금 막 잠에서 깬 듯한 느낌이었다.
“예, 그리고…… 음, 아저씨 팀을 함정에 빠뜨린 것도 터프넥이 꾸민 일이었대요.”
“뭐?”
격노하던 켈슨이 얼어붙은 듯한 모습이 되었다.
멜란드는 이에 조금 당황했다.
아무래도 너무 빨리 말했나 싶은데, 시알라의 목소리가 멜란드와 켈슨 사이로 끼어들 듯이 울린다.
“투란이 처리하러 갔어요. 터프넥은 깨끗하게 처리될 거예요.”
“뿐이 아니었어.”
갑작스럽게 켈슨 입에서 웅얼거림이 새 나왔다.
멜란드가 조금 더 가까이 붙으면서 갸웃하며 묻는다.
“아저씨?”
“한 잔, 한 잔 더 주겠어? 독한 걸로.”
후욱 숨을 몰아내쉬면서 켈슨은 힘이 들어간 손에 쥐어진 구리잔을 내밀었다.
멜란드는 잠깐 망설였고, 제란드가 성큼 다가서면서 잔을 채워줬다.
독한 냄새가 코를 움켜쥐고 뇌수를 뚫을 듯이 퍼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켈슨은 거침없이 이 한잔을 깨끗하게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입안을 비운 뒤, 켈슨이 겨우 억누른 듯한 격노가 실린 말투로 말한다.
“터프넥에게만 정보를 구하지 않았어. 우리 팀의 일에 정보를 준 건…… 터프넥뿐이지 않았다고. 나는…… 그중에서 다른 녀석들 말과 완전히 어긋난 이자닌의 얘기만 배제했어.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했던 정보가 이자닌의 얘기였는데…… 난 이자닌이 우리 애들을 너무 아껴서…… 위험한 일을 말리려고 하는 줄로만 생각했지.”
“이자닌이 말렸다고요?”
시알라가 살짝 움찔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켈슨이 그런 시알라에게 창백한 쓴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사람들이 다치는 게 싫다고 하면서 그랬지. 그래서 난 그저…… 그저 이자닌이 우리가 다른 때보다 위험한 일을 맡는 것 때문에 그런다고만 생각했어. 다른 정보를 놓고 보면…… 위험해도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보였으니까.”
시알라는 입을 다물었고, 제란드는 고개를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끄덕였다.
멜란드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그 누나도 참…….’이란 소리를 중얼거렸고, 페란드가 갑옷을 마찰시키는 소리와 함께 말한다.
“그러면 켈슨 씨, 명단을 만들죠. 그때 켈슨 씨 팀이 감당할 수 있다고 꼬드긴 녀석들의 이름을 말해보세요. 왜 이러냐는 말은 필요 없어요. 켈슨 씨 팀 멤버라면, 다들 우리가 한 번씩 신세졌었잖아요. 뒷일은 제대로 마무리 지어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