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9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91)
Chapter 79. 라비엔, 블러드하운드
터프넥의 퍼브로 들어오는 길은 좁아지면서 아래로 살짝 기울어진 비탈이었다. 때문에 퍼브에서 거리로 나가는 길은 낮은 비탈을 오르며 넓게 펼쳐지며, 라비엔의 큰 길로 이어지는 광경으로 보였다. 큰 길은 적당한 암석군을 파고 자리 잡은 다양한 상점과 주점이 가득한 거리가 이루고 있는 미로(迷路)의 예고처럼 보였다.
시알라는 그 큰 길가에 들어서기 전에 멈추고 되돌아봤다.
켈슨과 나란히 페란드가 걷고 있었고, 제란드와 멜란드가 그 뒤에서 간격을 둔 채로 따르고 있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퍼브의 문은 제란드가 봉쇄해둔 채였다. 이제 누군가 터프넥의 퍼브로 들어가려면, 두텁고 단단해져서 돌같은 문짝을 부숴야 하게끔!
시알라는 두건은 조금 당겨 머리를 감싸 가리면서 위를 올려다봤다.
켈슨과 페란드가 그런 시알라를 보면서 걸음을 늦췄고, 제란드와 멜란드는 조금 더 빠르게 다가와 귀를 기울이려 했다.
잠시 주변에 솟은 암벽의 틈새로 높은 하늘을 보는 듯했던 시알라가 입을 연다.
“제란드, 투란을 찾아갈 수 있지?”
“응.”
제라드는 짧게 대답했다.
“그럼, 멜란드 데리고 투란에게 합류해 있어. 켈슨 씨는 페란드랑 나와 함께 길드로 가요. 이미 보내놓은 정보꾼이 뭔가 더 찾아내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거든요.”
시알라의 이어지는 말에 켈슨이 조금 낯을 찌푸렸다.
“그…… 로이라는 녀석?”
정보꾼이라고 말했지만, 길드에서 장난치려던 마법사를 이용하고 있다고 이미 들었다. 그런데 그 녀석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페란드가 켈슨의 의혹을 안다는 듯이 대답한다.
“누나가 마법으로 구속해놨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물어오는 얘기를 전부 믿으려 한 것도 아니고, 켈슨 씨가 아는 거랑 비교해보려는 것뿐이니까.”
“그래…… 그건 도움이 되겠군.”
켈슨의 눈가가 가볍게 떨렸고, 눈동자에 독한 빛이 어렸다.
믿느냐 마느냐랑 상관없이 그저 켈슨이 겪은 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얘기를 끌어모아 오는 정도라니, 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켈슨이 미처 생각도 못한 쪽에서 이상한 얘기를 듣고 올지도 모르니까. 혹은 이미 알고 있던 얘기를 정리해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시알라가 켈슨의 각오를 엿본 듯이 가벼운 한숨을 쉬듯 돌아섰다.
“그럼, 다들 가볼…….”
“시알라아아아! 정말 살아 돌아왔구나!”
막 큰 길과 거리가 훤히 보이는 풍경으로 한 걸음 내딛다가 커다란 외침과 함께 뛰어든 누군가에게 덧씌워지듯이 겹쳐졌다.
“으어? 누, 누구?”
시알라는 대뜸 목을 감는 가녀린 듯한 팔뚝, 그 모양이랑 상관없이 억세고 질긴 힘에 화들짝 놀라면서 두건 위로 바로 얼굴을 비비적거리려는 사람의 목덜미부터 잡아떼어야 했다.
밝은 금색의 머리카락이 먼저 시알라의 눈에 비쳐 들었고, 옅은 척하면서 은근히 또렷한 향기가 시알라의 코를 푹푹 찔렀다. 흐트러지지 않게 꽁꽁 묶어 싸매놓은 듯한 금발과 희고 훤해 보이는 이마팍 아래에서는 깊은 녹색의 눈동자가 반짝거리면서 촉촉한 눈망울이 또렷하게 박힌 예쁜 얼굴…….
“어? 이자닌 누나?”
시알라가 무슨 생각을 하기 전에 멜란드의 목소리가 먼저 울렸다.
그 사이에 켈슨과 페란드는 한 걸음씩 물러서고 있었다.
제란드는 혀를 차면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이자닌의 눈동자가 돌아가는 꼴을 보고는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버렸다.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보다 험한 일이 많기라도 하다는 듯!
그리고 이자닌, 이제는 시알라의 두건을 훌렁 벗긴 채로 목덜미를 잡은 손길을 무시하고 얼굴을 들이대서 뺨으로 뺨을 긁듯이 비비적거리는 미녀도 이런 켈슨과 형제들의 반응을 제대로 본 모양이었다.
“우와! 다들 살아 돌아왔네! 스킨 리퍼에게 털렸다는 켈슨 씨까지도! 아하핫, 오늘 아주 좋은 날인가 봐!”
“이자닌! 떨어져! 그만하라고!”
시알라는 결국 이자닌의 목덜미를 다시 세게 잡아서 떼어내야 했다.
곧바로 이자닌이 애교부리는 듯이 콧소리를 내는 꼴을 보며,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시알라가 엄한 목소리로 묻는다.
“어떻게 여기 왔지? 우연히 지나다 봤다는 헛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앙? 그냥 우연히 지나다 우리 사이를 축복해주는 행운의 도움으로…….”
“이, 자, 닌!”
“힝…… 알았어. 시알라의 예쁜 눈이 도끼질하다가 주름 생기면 안 되니까 말해줘야겠네. 내가 여기 온 까닭은, 당연히 시알라를 찾아온 거지! 에헴!”
“이자닌!”
“응? 아, 어떻게 왔냐 하면…… 당연히 루비네 가서 벨라딘한테 애들 소식 전하다가 들었지! 그리고 바로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묻고 다니면서 온 거야.”
“애들?”
“테리랑 테루. 춤추는 것 말고 다른 짓은 절대로 시키지 말라고, 거의 매일 소식 전하면서 테리랑 테루가 어떻게 지내는가 알려주기로 했거든. 일찌감치 루비네서 나오지 않았으면 내가 갔을 때 바로 만났을 텐데! 시알라가 도망쳤으니, 내가 찾아야지! 에헴!”
“야…… 누가 도망을 쳐? 그리고 왜 이쟈닌 네가 날 찾아야 하는데!”
시알라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자닌의 어깨를 잡고 계속 들이대는 얼굴고 몸을 한꺼번에 밀어내면서 한숨을 쉬며 말해야 했다. 하지만 이자니는 시알라의 두 손에 밀리면서도 계속 들이대는 얼굴과 몸을 바싹 붙이려는 시늉을 하면서 활짝 웃음 지으며 대꾸한다!
“어머? 무슨 소리야! 세란드 소식을 내게 알려주려고 목숨 걸고 다녀온 거잖아! 당연히 누구보다 내가 제일 먼저 만나서 얘기 들었어야 했잖아! 음, 그러고 보니 섭섭하다! 왜 나한테 제일 먼저 오지 않았어?”
“왜 세란드 오빠 소식을 너한테 전하려고 우리가 목숨을 걸어!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젠장, 그만 들러붙으라고! 구경거리가 되고 싶으면 저기 가서 혼자 날뛰라니까!”
시알라가 주변을 눈짓하면서, 여전히 두 손으로는 이자닌의 어깨를 잡아 들러붙으려는 짓을 막으면서 으르렁거렸다.
“어머? 누가 날 보고 싶어 해? 누구?”
그러나 이자닌은 재빠르게 두 손으로 자신의 볼과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시늉을 하면서 휙휙 고개를 돌려 눈빛을 뿜어낼 뿐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주변에서는…….
“으윽? 튀, 튀어!”
“젠장,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뭔가 이자닌에 대해 아는 이들이 바쁘게 등 돌리며 거의 뛰는 속도로 달아나는 광경이 보였고…….
“우와, 이쁜데?”
“그러게? 누구야?”
“빨강머리도 괜찮잖아?”
“금발이라…… 얼굴이랑 꽤 어울리잖아?”
처음에 이런 소리를 몇 마디씩 지껄이다가 뭔가 아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휭하니 도망치는 광경에 당황해서 그 뒤를 쫓듯이 사라지는 모습들도 있었다.
이자닌은 그런 풍경을 보며 배시시 웃다가 다시 시알라를 보면서 말한다.
“다들 바쁘네! 자, 이제 괜찮지? 으싸!”
“으랏차!”
시알라는 두 팔을 활짝 펼치면서 본격적으로 들이대려는 이자닌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아 저쪽으로 훌쩍 내던져 거꾸로 구르게 하며 재빨리 외친다.
“튀어! 얼른! 빨리 흩어지자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알라는 이자닌의 반대편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어? 아니…… 으익, 알았어! 간다고!”
멜란드가 의아한 소리를 내다가 제란드에게 팔뚝을 잡혀 끌려갔고, 켈슨과 페란드는 말없이 시알라의 뒤를 쫓듯이 뛰었다.
“으끼아아!”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구르던 이자닌이 엉덩방아를 찧는 자세로 앉는 모습이 되어 겨우 멈췄을 때, 시알라 남매와 켈슨은 이미 저쪽 골목 굽이 어딘가로 사라진 듯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해! 안 그래요? 너무 하잖아!”
이자닌이 울먹대는 모습으로 옆을 보면서 외쳤고, 무기 상점에서 ‘아니, 다들 어디 가는 거야!’라면서 고개를 내밀던 가게 주인이 화들짝 놀라서 대꾸한다.
“이, 이자닌? 아니, 여기 왜 있는 거야? 이 거리에는…… 이런 젠장! 우리 손님 다 쫓은 거야?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니거든!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폭력이나 휘두르는 난폭한 미녀라고 생각할 것 아냐!”
이자닌이 발끈해서 외쳤지만, 그 목소리는 주변의 눈길을 끌 뿐이었다.
그리고 무기 상점의 주인은 처절하게 이자닌에게 대꾸한다.
“그냥 폭력을 휘두르라고! 굶겨 죽일 작정이야? 그냥 때려! 맞아 죽을 테니까! 왜 남의 가게 앞에서 그러냐고! 너 아는 녀석들이 다 도망가잖아! 너 모르는 녀석들도 분위기 보고 덩달아 도망가잖아! 왜 이러는 거냐고!”
뭔가 뒤죽박죽인 채로 터져 나오는 이야기였지만, 이자닌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입술을 삐죽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씨…… 쪼잔한 녀석들이…….”
“얼른 좀 가!”
“갈 거야! 간다고! 쳇, 다음에 우리 집에 오기만 해봐!”
“돈 없어!”
가게 주인은 보다 매몰차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이자닌과 더 말다툼할 수 없다는 듯이 재빠르게 상점 안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자닌의 볼이 실룩였고, 서글프다는 듯한 표정이 글썽거리는 눈망울과 함께 피어났다.
하지만 이자닌을 알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척 멀어지던 이들은 멀리서 이런 모습을 보자마자 냅다 뛰고 있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는 듯…….
그런 꼴을 보면서 이자닌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꼼지락거리며 걸었고, 비어있는 골목길 한편으로 휘청거리며 들어갔다. 이자닌이 사라진 거리는 겨우 다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이들의 눈짓과 함께 서서히 사람이 오가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와, 내가 이렇게 악명을 쌓았나?”
벽에 기댄 채로, 골목의 그늘에 몸을 감춘 꼴이 되어 이자닌은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빈 골목이었고, 깊이 파여 들어가는 암석의 틈새 너머로는 어떤 건축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처음 라비엔의 암석 지대가 아직도 그 흔적을 남긴 듯한 빈 틈새로 보였다. 때문에 이자닌 홀로 있는 듯한데…….
“말해봐. 내가 이렇게 악명을 휘날리고 있었어?”
누군가에게 이자닌은 말을 걸고 있었다.
말과 함께 이자닌은 기댄 벽의 한편을 가볍게 손등으로 두드렸고, 벽이 나지막하게 대답을 한다.
“마스터, 라비엔의 대금업(貸金業)의 구십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잖습니까. 아무리 쾌락의 전당처럼 꾸미고 있다고 해도 다들 마스터의 진짜 힘이 쥐고 있는 돈줄이란 것을 알 수밖에 없습니다.”
“응? 구십? 야, 육십 정도로 유지하고 있으라고 했잖아?”
이자닌은 허공을 향해 가는 눈길을 던지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알라를 향해 보이던 모습이라든가, 조금 전에 거리에서 힘빠진 듯한 표정과 다르게 녹색의 눈동자는 짙고 서늘한 빛이 어려 있는 채였다. 애교부리던 모습과 다르게, 냉정하면서 차가운 미녀의 모습이 그늘 속에서 위엄을 뿜어내는 듯했다.
이런 이자닌을 향해 벽에서 나오는 대답은 보다 공손했다.
“마스터, 라비엔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우리 활동으로는 겨우 십퍼센트로 장악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이하에서 힘겹게 허우적댈 정도의 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우리 말고 돈 꿔주는 녀석들이 없다고?”
“예.”
“쳇. 목숨 거는 녀석들이 와글거리는데 돈 꿔주는 것들은 죽나 사나 따지면서 처앉아 있기나 하다니! 퍼브는 어때?”
투덜대다가 이자닌의 눈빛이 살짝 침울하고 냉정해지면서 질문이 바뀌었다.
이에 벽에서 나온 대답은 조금 긴장한 듯했고, 조심스러웠다.
“터프넥은 에어 패스로 도주했고, 지금 퍼브는 완벽하게 정리된 듯합니다.”
“정리? 완벽하다니?”
“젠벨 팀은 애시드 그릴에 흔적도 없이 지워졌습니다. 애시드 그릴은 그 뒤에…….”
“잠깐, 그거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터프넥은 마스터의 권고를 젠벨에게 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은 거야 알고 있지. 시알라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당당하게 일을 저질렀잖아. 그래서, 젠벨 팀만 전멸했어?”
“일단 퍼브 안에는 젠벨 팀과 터프넥, 정보꾼 몇몇 말고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터프넥은 지금 금고실에 숨어 있다는 거야?”
“마스터, 금고실에서 새로 올라온 정보가 있습니다.”
“너 말이야…….”
푹.
고요한 대화 사이로 이자닌의 손에 어느새 들린 작은 꼬챙이같은 비수가 벽을 찔렀다. 벽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샜지만, 신음이라든가 고통과 연관된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자닌의 말이 낮게, 하지만 아주 차갑게 울린다.
“시알라에 대한 말도 아주 늦게 전하더니, 이제는 금고실 얘기도 내가 뒤꽁무니 쫓게끔 전하는 거야? 터프넥한테까지 단장을 떠넘겼으니까, 나는 막 무시해도 되는 걸로 보여? 내가 너네 뒤치다꺼리나 하는 얼빠진 미친년이라도 된 것 같아?”
“아닙니다.”
조금 늦게, 하지만 잔뜩 공경한 대답이 벽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