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9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92)
또각또각.
단단한 굽이 돌바닥을 울리는 소리는 옅게, 하지만 넓게 퍼졌다.
루카는 움찔거리면서 바닥을 손끝으로 긁으면서 반사적으로 그 소리에 반응하려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하지만 루카의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금고실에서 당당하게 터프넥에게 한마디 하고 벗어나서 서너 걸음 가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두들겨 맞고 엎어졌다. 그 다음에 뒤통수에서 뜨끈하게 새 나가는 피냄새를 느낀다 싶은 순간부터 루카의 정신은 제 자리에서 벗어난 채였다.
그럼에도 지금 울려오는 굽 소리에 루카는 어떻게든 본능적으로 반응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었다.
“어이쿠? 이 녀석은 또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죽을 때까지 출혈(出血)을 즐기면서 자는 거야?”
귓가에 상큼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루카의 입술을 달싹이게 했다.
스스로 뭐라 말하는지 몰랐지만, 루카는 반사적으로 움직이려던 그 모습 그대로 본능적인 반사활동으로 말하려 하고 있었다.
“사…… 살…… 살려…….”
“아, 질긴 루카! 여전히 질겨요. 무책임한 루카, 여전히 무책임해요! 그러면서 여전히 끈질긴 꼴이 참 신기해요! 파쿠란! 와 있지? 얘 좀 정신 차리게 해줘!”
루카는 귓속으로 스며오는 목소리가 매혹적이란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딘가 멀리 나가 있는 정신은 그 목소리가 누구 입에서 나오는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그저 이 상황에서 자신을 살려줄 가능성이 있다고 본능이 속삭이기에 덮어놓고 살려달라 열심히 입술을 움직이며 숨을 토해낼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루카의 이런 혼미한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쿡, 쿡.
루카의 콧구멍은 둘이었고, 둘을 막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뭔가 쑤시고 들어와 채워지고 있었다. 그건 정말 한순간에 루카가 들이쉬는 숨결을 타고 허파를 찔렀고, 짜릿하게 창자를 꼬면서 루카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게 했다.
“꽤에에에! 으웨에에에!”
퍼억!
루카의 뒤통수가 꽤 세게 울렸다.
“멱 따달라고 멱 따는 소리 내는 거야? 따줄까?”
매혹적인 목소리지만, 그 말은 엄청나게 거칠고 사납다!
루카의 눈길은 당연히 홱 돌아갔고, 귓가에 스며든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면서 자기 손으로 바로 입을 막는 동작부터 해야 했다. 진짜로 조금 더 소리 지르면 목 줄기를 확 그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자닌은!
이자닌은 라비엔에서 유명하지만 다들 그 진정한 모습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루카는 잘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읍! 읍, 읍!”
하지만 루카가 입을 막고 토해내는 말은 괴상한 소리가 될 뿐이었다.
이자닌의 이마가 살짝 구겨졌다.
“너, 진짜 죽고 싶니? 살살 피해 다니면서 오랜만에 봤다고 갑자기 벙어리 흉내 내면서 장난이라도 치고 싶어? 나 지금 그럴 기분 전혀 아닌데?”
루카는 자신의 상태를 미처 깨닫지 못한 듯이 당황했다!
이런 꼴을 보면서 곁에서 누가 말을 할 때도, 루카는 이자닌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을 정도였다.
“겨우 의식이 돌아와서 그래. 루카, 진정하고 입에서 손을 떼고 심호흡을 해. 그래야 약기운이 제대로 퍼지니까.”
루카의 눈길이 담담한 말을 하는 이를 향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이 심호흡을 하다가…….
“우에에엑!”
콧구멍으로 스며드는 독하고 짜릿한 감각에 다시 배를 움켜쥐면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파쿠란, 그거 군단 보급품에서 빼내오기라도 했어? 대체 왜 이래?”
결국 이자닌이 질렸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이 소리는 루카의 정신 줄 끄트머리를 꽉 붙들었다.
“파, 파쿠란? 파쿠란! 브, 블랙 메이지!”
놀란 소리와 함께 루카는 자신을 다독이는 말을 했던 이를 바라봤다.
고글과 마스크가 두건 아래에 자리 잡아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루카는 이자닌이 절대로 다른 사람을 놓고 블랙 메이지 파쿠란이라 부를 리 없다고 확신했고, 더듬대며 묻는 소리를 낸다.
“라비엔에서 떠났다고 들었는데! 아니, 확인했다고 내가! 파쿠란, 당신 오래 전에 라비엔에서 떴잖아! 도, 돌아왔어? 대체 언제?”
아직 루카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슬그머니 오락가락하는 말이 되고 있었다. 파쿠란의 장갑 낀 손이 그런 루카의 머리를 가만히 두드렸고, 그 순간 루카는 혼란을 가라앉힌 듯한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이자닌이 이를 삐딱한 눈길로 바라봤고, 파쿠란은 손을 거두고 일어서며 말한다.
“레기온 포션의 레시피를 살짝 응용하기는 했어. 하지만 약효가 덜한 대신에 군단 보급 약물보다 고통도 덜하다고. 그냥 가벼운 복통 정도니까. 온몸을 찢어발길 듯한 통증 따위는 없는 좋은 알약을 만들어냈지. 숨결 사이로 몸에 스며들게도 할 수 있고 말이야.”
“저기요…… 아프거든요? 무지하게 아프다고!”
루카가 몸을 일으키면서 투덜거렸다.
이자닌이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미쳐 날뛰지 않는 걸 보니 꽤 성공작이네?”
“음, 뭐…….”
파쿠란의 대꾸는 살짝 미지근했다.
이는 루카로 하여금 바로 깨닫게 했다.
“자, 잠깐! 뭐야, 파쿠란! 이 아저씨! 설마 내 몸으로 시약 실험한 거야! 아, 진짜!”
“정신 차렸고, 몸도 나아졌잖아? 가벼운 후유증 정도로 불평하지 말라고. 그보다, 왜 그러고 누워서 죽는 중이었지?”
파쿠란은 고글을 만지작거리면서 루카의 상태를 꿰뚫어보는 듯한 태도로 묻고 있었다. 덕분에 루카는 한 가지 더 알 수 있었다. 파쿠란이 지금 자신의 몸에 투약한 약의 효과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
“젠장, 돈 줘! 실험 대상이 되었으니까, 돈 줘! 공짜는 안 돼!”
두 손으로 외투를 잡아 몸을 가리는 시늉을 하면서 루카가 외쳤다.
파쿠란이 ‘흠.’ 하는 소리를 낼 때, 이자닌의 손바닥이 루카의 뒷머리를 퍽 하는 소리가 울리도록 세게 때렸다.
“닥치고, 터프넥 어딨어? 금고에 이상 생겼다고, 퍼브에 난리 났다고 루퍼가 날 찾아왔단 말이야!”
“에? 퍼브에? 음…… 그래서 터프넥이…… 아, 금고실요, 금고실! 나한테 의수 갖다…… 단장이잖아요, 단장! 달라는데 줘야지! 내가 단장이 아니잖아요!”
의수 얘기를 흘리다가 루카는 이자닌이 쏘아내는 사나운 눈길에 옆걸음질 하면서 자신에게 책임 없다는 것을 강조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설픈 소리를 지껄이면서 멀뚱거리고 서 있다가는 몸 한구석에 꼬챙이가 꽂힌다는 것을 잘 알기에!
파쿠란이 안쪽으로 한 손을 내밀며 말한다.
“이자닌, 터프넥은 안쪽에 있어. 금고……에 기대고 있군. 금고는 확실히 훼손된 모양이고…….”
이자닌이 또각거리는 굽 소리를 내면서 루카를 지나쳐 휘어지고 굽어지는 계단을 따라 걸으면서 말한다.
“루카, 긴급 연락망 가져와. 단번에 전원에게 연락할 수 있는 걸로.”
“예.”
스쳐 가는 이자닌의 머리카락에 루카는 코를 찡긋하면서 얌전히 대답했다.
마치 잠깐 스쳐 가는 이자닌의 향기를 잔뜩 들이쉬는 듯한 루카의 모습이었다.
파쿠란이 마스크 안을 나직하게 울리는 소리로 그런 루카를 핀잔하듯 중얼거린다.
“쯧…… 죽음의 꽃이란 걸 알면서도 그 유혹을 못 견디나…….”
루카는 슬쩍 얼굴을 붉혔지만 대꾸하지 않고 배를 움켜쥔 채로, 여전히 창자를 쑤시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바쁘게 사라졌다.
파쿠란은 느릿하게, 후드를 당겨 고글을 가리듯 하면서 짙은 갈색의 로브를 휘날리는 모습으로 이자닌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게 무슨 꼴이야?”
터프넥은 귓가에 울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에 선명하던 굽 소리는 애써 외면했지만, 저렇게 물어오는 소리까지는 외면할 수 없다는 듯…….
“이자닌.”
짧고 굵게 대꾸하며 터프넥은 언제나 기억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매혹적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목소리의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과는 전혀 다른 신랄한 얘기가 곧바로 터프넥의 가슴을 쿡쿡 쑤시면서 튀어나온다.
“팔은 없고, 다리도 잘렸던 모양이네? 그래서 의수를 사용하려고 했어? 잘 간직하라고 했지, 너 쓰라고 하지는 않았잖아? 그거 끼워봐야 좋은 꼴 보기 힘들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없지? 금고는 뭘로 저렇게 잘라냈나 제대로 보기는 했어? 어떻게 했기에 상대방이 여기까지 따라왔지? 어떻게 따라왔는지 아예 모르는 거야? 터프넥, 그러고도…….”
“무슨 상관이야!”
물어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낯을 일그러뜨리다가 터프넥이 버럭 고함을 쳤다.
이자닌이 잠시 말문을 닫고 물끄러미 터프넥을 바라봤다.
터프넥은 그 눈길이 주는 압박에 다시 입을 열고 말을 쏟아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넌 내 선임이 아니야, 이자닌! 내 선임의 선임도 아니었지! 네가 라비엔 도적단을 이끌던 시절은…… 이제 아무도 모른다고! 넌 이제 그저 창녀굴의 대장일 뿐이야! 쾌락의 전당을 흉내 낸 창녀굴에서, 돈놀이나 하는 창녀의 두목일 뿐이라고! 도적단의 일에 대해, 도적단의 물건에 대해 내가 뭘 어떻게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네 말을 들어? 왜 들어! 네 말 듣고 살던 선임이 어떻게 죽었는데! 그 선임의 선임이랑 똑같이 바보처럼 뒈졌잖아! 난 그렇게 안 살아! 난…….”
거친 소리를 뱉다가 숨이 가빠진 터프넥의 말이 잠시 멈췄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자닌이 바로 입을 열어 터프넥의 열변을 조목조목 짚듯이 말한다.
“엉뚱한 사람 건드려서 팔 잘리고 다리도 잘리고…… 다리는 겨우 붙여놨는데 팔은 홀랑 잃어버리고 애써 꾸며놓은 퍼브도 훌렁 날려먹고…… 단장이랍시고 부려먹던 팀 하나는 통째로 망가뜨리고…… 그게 잘 사는 짓이야? 네 선임이 그렇게 살았어? 네 선임의 선임이 그런 꼴을 보였어? 도적이라고 낄낄거렸어도 라비엔의 어느 누구도 비웃지 못하고 존경했잖아. 터프넥,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 아냐?”
“죽었잖아.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몬스터의 뱃속으로 사라졌잖아! 겨우 좋은 사람 소리 듣자고 그렇게 죽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좋은 사람 소리도 못 듣는 채로 그 꼴이야? 아, 됐어! 한심한 소리는 그만하고, 의수는 어디 갔지? 누가 가져갔는지 말해봐. 기분 좋게 말해. 그러면 깔끔하게 인생 정리할 기회는 줄 테니까.”
이자닌이 고개를 저으면서 금색 머리카락을 긁적거리면서 이제는 이것저것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터프넥의 표정은 창백해졌다.
특히나 이자닌의 뒤에 느릿하게 나타나서 주변을 둘러보며 어슬렁거리는 파쿠란의 모습을 보고 나서는 터프넥의 눈가에 거뭇한 그늘이 바로 생겨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터프넥은 일단 확인하겠다는 듯 묻는다.
“파……쿠란?”
“응? 아, 나다.”
“라비엔에서 떠나지 않았군.”
“어, 그래.”
마스크 안에서 울려 나오는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터프넥은 헛웃음을 흘리는 꼴이 되어 이자닌을 똑바로 바라봤다.
“도적단의 진짜 힘은 계속 당신 손에 있었군.”
“도적단의 보물은 저 금고 안에 계속 담겨져 있었어. 단장은 그걸 지킬 의무와 단원을 부릴 권한을 지녔지. 터프넥, 넌 네 멋대로 도적단을 움직였고 이게 그 결과야. 이제 더 딴소리 들을 기분이 아니야. 말해.”
이자닌의 눈동자가 그늘 속에서 짙은 녹색의 광채를 흘려내는 듯했다.
터프넥은 그 선명한 광채를 느낀 듯, 핏기 없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이듯이 말한다.
“뺏겼어. 놈은…… 나를 마법으로 쫓아왔다고 했어. 나를 옮겨온 에어 패스로…… 녀석도 옮겨왔다고 했어. 무슨…… 정령이 어쩌고 했는데…… 난 무슨 소린지 몰라. 블랙 메이지라면 알겠지? 그리고…… 금고는…… 샤벨투스의 몬스터 블레이드였어.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건데…… 그보다 훨씬 작게 감춰지더군. 그걸로 금고문을 이 꼴로 쪼갰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는지 녀석이 이 안에서 나올 때는 금고가 비었어. 내가 본 건 그게 전부야.”
“그게 누구야?”
조금 더 참는다는 듯이 이자닌이 짧게 물었다.
터프넥은 파리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보다 선명하게 이런 결과를 낳은 범인을 떠올리며 대답을 한다.
“투란이라고 부르더군.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의 애송이처럼 보였어. 하지만 그놈이 하는 짓은 애송이가 할 수 없는 짓뿐이었지! 시알라랑 한패였어. 어, 그러니까 시알라를 찾으면…….”
“시알라를 엮지 않으면, 아는 게 없냐?”
가시가 돋친 말투가 터프넥의 말을 잘랐다.
터프넥은 흠칫하며 이자닌을 바라봤다.
이자닌은 그 눈길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곁의 파쿠란을 향해 묻는다.
“파쿠란, 얼굴에 고글 마스크 쓰고 머리에 두건 쓴 다음에 무슨 이름을 대고 라비엔을 돌아다녔지?”
“어? 음, 보통은 투란. 가끔 카엘이란 이름도 썼지. 멀리서 왔다고…….”
파쿠란이 어깨를 으쓱하며 천천히 대답했다.
이자닌이 더 날카롭게 터프넥을 보며 말한다.
“혹시 염색약이라고 들어봤어? 머리카락을 까맣게도, 빨갛게도, 반짝이게도 해주는 약물인데 말이야. 아, 창녀굴에 기웃대던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도적단을 이끄는 단장님은 모르시나? 아, 맞아! 아는 게 없는 단장이셨지?”
터프넥은 자신의 남은 수명이 곱게 끝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