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9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93)
루카는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한 손으로 금속 통을 든 채로 바쁘고 빠르게 뛰듯이 걸었다. 뱃속의 통증은 여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이 정도라면 출혈로 죽거나 몸에 구멍이 나서 살 길이 막막하다 싶을 때 그냥 한번 써볼만한 약물이 아닌가 싶었다. 군단 보급품은 마시고 사느니 그냥 죽는 편이 낫다고 하지만, 블랙 메이지 파쿠란이 루카에게 준 약물은 그보다는 괜찮은 모양 아닌가.
‘젠장! 날 약물 실험에 써먹으려고 하다니! 설며 약효가 떨어질 때까지 블랙 메이지 곁에 들러붙어 있어야 하나?’
루카의 불평과 불만이 쉴 새 없이 그 뇌리에서 날뛰고 있었다.
파쿠란은 라비엔에서 그나마 쉽게 볼 수 있는 로그 메이지들과는 그 본질이 달랐다. 본격적으로 다크사이드 아트(Darkside Art)라고 일컬어지는 기묘한 방면의 마법사였고, 상아탑의 마법사들조차 속일 수 있는 마법을 쓸 줄 알았다. 그리고 파쿠란은 결정적으로 다른 로그 메이지처럼 라비엔으로 도망쳐온 것이 아니라, 이곳이 자신의 마법 실험에 유리하기 때문에 왔다! 때문에 파쿠란에게 마법을 배우고자 하는 녀석들도 꽤 되었는데…….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루카는 문득 루퍼를 떠올렸고, 달리면서 불러봤다.
“루퍼, 근처에 있어? 없어? 있으면 파쿠란이 내게 먹인 포션이 안전한가 좀 알고 싶은데 말이지…….”
“안전하다. 효과는 상급 포션 수준이고, 작은 부작용도 곧 없어질 거야.”
대답이 금방 루카의 귓가에 들렸다.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뛰면서 루카는 루퍼에게 보답하듯이 칭찬했다.
“그래? 고마워! 아, 너 진짜 안 보이고 안 느껴진다. 대단해!”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루카도 대답을 기다리기보다는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갔고, 곧 금고실 안으로 들어서며 바로 이자닌을 향해 공손하게 입을 열었는데…….
“꾸에에엑! 워어억? 와악! 으허으어?”
괴성이 목청껏 터져 나왔다.
“닥쳐!”
이자닌이 짜증 난 소리로 루카에게 대꾸했다.
루카는 그 짜증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파쿠란을 보며…… 자신에게 말로 뭐라 할 수 없는 광경을 보여줘서 괴성을 쥐어짜내게 한 범인, 블랙 메이지 파쿠란을 보며 다시 소리쳐야 했다.
“우어어어! 으…… 후욱! 흐음! 뭐예요, 뭐냐고! 왜 터프넥이 토막난 채 그 자루에 들어가 있냐고! 으아아! 입도 벙긋하고 눈도 찡긋하고! 대체 무슨 마법으로 토막 내서 저게 산 채로…….”
“음, 죽었네. 산 채는 아니야. 이건 그저 죽은 다음에도 남는 작은 육체의 반응에 불과하지. 그러니 놀라지 말라고.”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으면 속이 훤히 보이는 그런 그물 같은 자루에 담지 말라고요오! 그리고, 안 죽은 것 같은데! 토막난 채로 그냥 살아 있는 거 아닌…….”
“오? 루카, 인간의 시체가 사후에 보여줄 수 있는 반응에 대해 마법사인 나보다 더 잘 아나? 내가 좀 배워야겠어?”
“아니요. 몰라요. 마법사님이 죽었다면 죽은 거겠죠.”
루카는 파쿠란의 고글이 자신에게 눈길이라도 주는 것처럼 반짝이는 꼴을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돌렸고, 더 따지고 드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터프넥이 토막나서 그물 같은 자루에 담겨 입을 벙긋하고 눈을 꿈벅하면서 도와달라는 것 같은 몰골을 했어도, 여기서 마법사에게…… 다른 경우랑 전혀 다른 블랙 메이지에게 더 따지고 들었다가는 루카 역시 토막나서 저 그물에 나란히 쑤셔박히는 수가 있으므로!
뱃속이 조금 전의 놀람에 자극받은 듯이 쑤시는 것을 느끼면서 루카는 가져온 통을 이자닌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여기에 메시지를 담으면, 한 시간 안에 모두 볼 수 있어요.”
루카가 조금 전에 보인 작태 때문에 굉장히 한심하다는 듯이 루카를 바라보던 이자닌은 두말없이 금속통을 받아 들었다. 곧바로 이자닌의 손톱이 금속통을 긁적였고, 이를 보던 루카는 곧 자신이 팔뚝을 감싼 가죽토시에서 짜릿하게 전언이 찾아온 것을 느끼며 토시를 눈가에 올렸다.
“어? 전원 라비엔에서 떠나…… 이자닌, 이게 무슨……?”
전언을 읽자마자 루카는 당황해서 묻고 있었다.
이자닌이 새겨 넣은 메시지는 최후의 순간,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내려진다는 대탈주(大脫走)의 명령이었다. 그냥 한둘이 탈주하는 것이 아니라 라비엔에서 도적단에 연계된 모두가 한꺼번에 도망치라는 명령이었다. 이는 라비엔의 기반 전부를 버리란 뜻이기도 했고, 라비엔의 도적단 해체 명령이기도 했다.
분명히 루카에게는 바로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다!
아무리 터프넥이 파쿠란에게 저 꼴이 될 정도로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다고 해도, 파쿠란이 돕는 이자닌이라면 뒷수습을 할 수 있을 텐데…… 왜?
“눈이 침침해? 보이는 게 없어?”
이자닌은 루카를 타박부터 했다.
루카는 숨을 고르며 깊이 들이쉬었고, 눈을 똑바로 부릅뜨며 이자닌에게 대꾸했다. 조금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나름대로 분명한 생각이 있다고 드러내는 태도였다.
“잘 보여! 어떻게인지 모르겠지만 금고는 털렸고, 나름 모아놓고 장식한 무기까지 싹 사라졌지! 사갈 사람이 없어 애물단지가 된 책까지 몽땅 없어졌어. 하지만 도적단은 보물이 있어 도적단이 아니고 사람이 있어서 도적단이잖아! 이자닌이 강조하던 말이잖아! 훔쳐 쌓아둔 물건이 없어졌다고…….”
“도적이 은신해 있는 금고 앞에서 도적은 남아 있고 훔친 물품은 하나도 없어. 이걸 보면 나중에 찾아온 누군가가 뭐라고 할까? 도적 시체가 남아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 건지, 도적이 산 채로 남아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 건지, 아무도 없을 때는 또 어떻게 생각할 건지! 지금 당장 생각해!”
이자닌이 루카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말을 쏟아냈다.
때문에 루카는 눈을 껌벅이면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도적의 은밀한 창고가 텅 빈 곳에 도적의 시체가 놓여있고 누군가 와서 본다면, 도적이 도적질을 당하고 뒈졌다…… 꼴좋다?
도적의 비밀스러운 은신처가 텅 빈 꼴인데 도적이 거기서 멀뚱거리고 있는 꼴을 누가 와서 본다면…… 지금까지 도적질한 물건은 몽땅 어디다 빼돌렸냐고 따진다? 이 경우에 도적맞았다고 하면…… 개수작한다고 뒈질 때까지 두들겨 맞는다!
도적의 은신처라고 생각하고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떤 놈이 미리 알려줘서 몽땅 튀었다! 그러니 포기하자……?
루카는 생각을 멈추고 갸웃하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다들 잠시 활동을 접고 있으면 되지 않나?”
도적이 도적이란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이 금고실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딱히 문제될 것이 없지 않나 싶었다. 비록 터프넥을 쫓아 누군가 찾아왔고 소문을 낼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루카 자신과 터프넥 말고는 제대로 맞닥뜨리지 않았으니까 시치미 떼기 좋지 않은가!
이자닌이 어이없다는 듯이 루카를 보다가 허공을 향해 묻는다.
“루퍼, 루카 이 녀석…… 퍼브의 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야?”
“예. 터프넥과 루카는 단장과 부단장 사이이기는 하지만, 서로 영역을 나눠서 거의 따로 놀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루퍼의 대답은 가볍고 빠르게 나왔다.
덕분에 루카의 얼굴은 조금 붉어졌다.
“소, 소문은…… 안 좋은 소문은 들었어. 하지만 단장이 하는 일이잖아! 내가 뭘 어떻게 하냐고!”
“몬스터 항아리에 사람 담가 없애 버린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어?”
이자닌의 추궁은 날카로웠다.
루카는 화들짝 놀라 대답한다.
“뭐? 아니, 퍼브 손님 주머니 턴다는 얘기가 왜 사람 담가 없애는 얘기가 되는데? 아무리 터프넥이라도 그렇게까지는…….”
“했어. 그 결과가 이 꼴이고. 급해진 루퍼는 뒤늦게 나까지 찾아왔지.”
“죄송합니다.”
이자닌이 투덜거렸고, 루카는 루퍼가 공손하게 대답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루카는 험악하게 격앙된 감정을 고스란히 허공에 쏟아낸다.
“야! 그게 죄송하다고 끝날 일이냐! 미리 막았어야지! 그건 아니잖아! 도둑이 물건을 훔치니까 도둑이지, 사람 죽이는 도살자가 아니라고! 젠장! 왜 내게 알리지 않았어?”
“응, 그러고 보니 그러네? 왜 루카에게도 알리지 않았어?”
이자닌이 이번에는 루카의 편을 들 듯이 갸웃하면서 묻는 말을 보탰다.
대답은 허공에서 나오지 않았다.
파쿠란이 자루를 다 정리했다는 듯이 손을 털며 대신 대답하고 있었다.
“루퍼는 나랑 바빴거든. 터프넥이 아무리 독하게 군다고 해도 어쨌든 인정받은 단장이잖나. 극단적인 상황이니까 극단적인 수단을 썼겠거니 했고, 상습적으로 그럴 리는 없겠지 한 거지. 어쨌든…… 터프넥도 루카처럼 루퍼에게는 믿을 수 있는 동료였잖나. 사람이 타락하는 일이 그리 쉬운 것도 아니고 말이야.”
루카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이자닌은 딱 한마디로 이를 정리한다.
“배신당한 거네? 그냥 믿었다 뒤통수 맞은 꼴이라니…… 바보네. 믿는 만큼 잘 지켜봐야지. 아무튼, 상황이 이러니까…… 멍청한 부단장을 위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여길 이 꼴로 만들어둔 그 투란이 손을 뗀 거라 해도 퍼브 쪽은 시알라가 정리를 한 상황이야. 시알라는 착하지만 바보가 아니야. 퍼브를 정리한 다음 뒷정리도 하려 할 테고, 그건 헌터 길드 쪽에 얘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루카, 헌터 길드에서 퍼브 마스터가 몬스터 항아리를 써서 강도질 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어, 그, 그러면…….”
루카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지만,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라비엔에 오기 전의 루카에게 헌터 길드는 그저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사냥 의뢰가 오가는 곳에 불과했다. 그리고 헌터들이 물건을 맡기거나 돈을 맡겨두는 그런 곳…….
하지만 라비엔에 와서 본 헌터 길드는, 경계도시를 넘어선 구역에서의 헌터 길드는 완전히 달랐다. 이곳에서 길드는 거의 유일한 조직이었고, 도시 전체를 관할하는 자치(自治)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헌터에 의한 자치의 규율은 왕국의 법보다 더 엄격하고 지독하게 적용되기 일쑤였다.
죄를 뉘우칠 때까지 감금해두는 벌 따위는 없었다.
심판이 내려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즉각적인 폭력으로 벌이 내려질 뿐이다!
죽을죄를 지은 놈은 그냥 바로 죽이고, 죽을 정도가 아닌 죄면 죽지 않을 정도로…… 차라리 죽는 게 괜찮아 보일 정도로 두들겨 팬다!
어떤 팀도 길드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대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팀의 결성과 유지를 길드에 의지하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이기도 했고, 길드는 헌터 팀에게 매우 관대하기도 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길드는 과연 터프넥의 퍼브에 어떤 생각을 할까?
루카가 상상하지 못한 것을 대신 상상했다는 듯이 파쿠란이 말한다.
“블러디 체이싱(Bloody Chasing)…… 그럴 거라고 예상하나, 이자닌?”
이자닌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차라리 그렇게 보복을 하겠다면 좋겠는데…….”
파쿠란이 의아해했고 루카는 ‘블러디 체이싱’이란 말에 화들짝 놀라다가 그게 낫다는 소리에 더 놀라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그게 낫다니!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 복수한다는 블러드 헌터인가 뭔가가 나서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있어?”
“그런 건 산맥 안쪽 경계도시 도달하기 전에나 하는 거고…… 이런 헌터의 자치도시라면, 그냥 각 팀을 모아서 사냥개처럼 풀어놓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러기 전에 전부 도망가란 말이야.”
“음, 블러드하운드란 말이로군.”
파쿠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루카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 채로, 오히려 더 당황해서 또 묻는다.
“그게 무슨…… 팀을 풀어놓다니?”
혀를 차는 표정으로 이자닌이 대답해준다.
“지금까지 사라진 팀 멤버의 행방에 대한 추적도 있을 거야. 한마디로, 이전에 아리송하고 이상했던 모든 일의 단서를 도적단에게서 찾으려 한다고. 도적이야 죽든 말든 알 바 아닐 테고…….”
“그런…… 말도 안 돼! 아무리 도적이라도 그런 책임을 질…….”
“사람 죽어나갔는데 알 게 뭐야? 이 기회에 자기 죄를 덮어씌우려는 놈들도 있겠지. 하지만 어떻게 돌아가든, 길드는 헌터를 털어먹고 사냥하는 도적에게 보복한다는 목적을 달성한다고. 길드 소속 헌터의 손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쉽잖아?”
“이런 젠장!”
루카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자닌은 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금속통에 다시 손톱을 대고 긁적거렸다. 루카가 자신의 가죽토시에 도착한 새로운 메시지를 보고 읽으니…….
“다 버리고 몸만 챙겨서 도망쳐? 에? 이, 이자닌 이렇게까지 해야 해?”
“죽고 나서까지 후회하는 유령이 되는 게 소원이야? 그 미련과 후회가 유령이 될 정도로 강력하길 바래줄게.”
어딘가 상쾌하기까지 한 이자닌이 대답이었다.
파쿠란이 마스크 안에서 클클거리는 듯한 소리로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거슬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자닌은 당황하는 루카에게 연락통을 가볍게 던지면서 새삼 주변을 둘러봤고…… 갸웃하며 중얼거린다.
“자, 그러면…… 근데 여길 털었다는 투란은 지금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