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95)
“그렇게 된 거지.”
연기가 한층 더 짙어졌고, 재떨이에 쌓인 재가 한층 더 두터워졌다.
‘제이크’의 표정은 실룩거렸고, 웃음을 지으려는 듯했지만 어딘가 어긋난 듯한 경련이 이상하게 보였다. 점차 그 경련이 줄어들고 작아지고 있었고 ‘제이크’의 표정은 조금씩 더 자연스럽게 당연해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제란드나 멜란드는 그런 ‘제이크’의 모습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들은 이야기 때문에 스킨라이더라 일컬어지는 몬스터 로드의 능력이 어떤 식으로 적응하는가에 관심을 둘 수가 없는 탓이었다.
그래도 투란은 일단 그 부분부터 짚으면서, 이야기를 듣느라 한참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말한다.
“좋아, 자연스러운 제이크가 되고 있네. 그러니까 펠루한, 그 녀석들은 애초에 켈슨이 물려받은…… 이전 켈슨 팀의 길드 카운트를 자기네가 차지하려고 일부러 핑계를 만들어서 켈슨을 거기 남겨두고 죽기를 기다렸단 말이지? 그걸 알고 나서 살짝 열 받아서 그 녀석들을 모두 죽였고?”
“그렇다니까. 증거를 대라고 한다면…… 없군. 그저 녀석들이 그렇게 낄낄거리면서 떠드는 말을 내 귀로 들었고, 그때 나는 배신이라면 정신 줄 놓고 확 뒤집어져 버리는 꼴이라서…… 제 정신으로 따져가며 그걸 처리할 수가 없었으니까.”
‘제이크’의 어깨를 으쓱하면서 펠루한이 한참 했던 이야기의 요점을 되풀이 하며 답했다.
투란은 몸을 소파에 푹 기대면서 ‘흐흠.’ 하는 소리를 냈다.
이때 제란드가 느릿하니 재떨이 가까이 머리를 숙이듯이 탁자에 기대면서 말한다.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어. 그 녀석들이 켈슨의 길드 카운트를 차지하려고 한 짓은…… 팀으로서 유산(遺産)을 받아 챙기려던 거였잖아. 그건 한쪽으로만 성립하는 게 아니야. 켈슨은 살아 있고, 녀석들은 죽었다. 만약 녀석들이 정말 당신이 말한 대로 하려 했다면, 녀석들의 길드 카운트를 켈슨이 받게 되지.”
“아! 그렇군! 그걸 확인하면 되는 거로군! 그거라면, 켈슨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네. 자기에게 녀석들의 길드 카운트가 계승된 걸 알면 꽤 어리둥절하겠는 걸? 푸후훗.”
펠루한은 뒤늦게 알아차렸다는 듯이 킬킬거리면서 대꾸했다.
멜란드가 끙 하는 소리를 냈고, 투란은 머리를 긁적대면서 말한다.
“혹은 만약을 대비해 진짜 팀답게 일 처리를 했다고 켈슨 씨가 죽은 녀석들에게 더 미안해할 수도 있겠지.”
“엥? 그럴 수도 있나? 그럼 진실을…….”
펠루한이 ‘제이크’의 볼을 실룩거리면서 ‘뭔 착한 바보야!’란 한마디와 함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분명하게 만들어냈다. 하지만 ‘진실을 밝혀 알려주자.’라는 뒷말은 투란의 한마디에 끊어지고 말았다.
“덮어야겠네.”
“응?”
“어?”
제란드와 멜란드가 투란을 쳐다봤다.
‘제이크’도 이상하다는 듯이 눈가를 실룩이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진실을 덮자니…… 왜?
그런데 투란은 오히려 제란드와 멜란드를 향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 망루에서 켈슨은…… 시원하게 죽으려고 하고 있었잖아. 쉽게 죽어주지는 못하겠으니까 저항하고 있었지만, 살려고 거기 그렇게 혼자 남은 건 아니었지. 따지고 보면 이래저래 한 일 년이나 이 년 정도 반쯤 정신을 놔버린 것처럼 지내고 있던 모양이기도 하고. 아마 그러니까 그런 녀석들에게 홀랑 속아서 혼자 남은 거겠지만…… 알면서도 혼자 남았을 수도 있다고. 그렇잖아?”
“그, 그런!”
“그렇군.”
멜란드가 당황스런 소리를 낼 때, 제란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가 흥미롭다는 듯이 귀를 기울이며 물끄러미 투란을 더 깊이 파고드는 눈길로 바라봤다.
투란은 잠시 허공에 가득한 연기를 세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위를 보면서 중얼거린다.
“자아, 이제 어떻게 한다? 우리는 금방 떠나야 하고, 켈슨은 남으려 할 테고…… 일은 저질러졌고…… 뒷일은 길드에서 상아탑의 마법사 지원없이 해결해야 하고…… 흐흠…….”
무슨 말인가 하고 펠루한이 ‘제이크’의 머리를 갸웃할 때, 멜란드와 제란드는 복잡한 표정으로 투란의 말을 하나씩 짚으며 함께 곤란해했다. 그리고 잠깐 뒤, 생각을 마치고서 개운해졌다는 듯한 표정을 한 투란이 ‘제이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뭐, 당신에게 맡겨야 하겠네.”
“응? 뭐? 맡기다니? 뭘?”
‘제이크’의 얼굴에 조금 짙게 패이며 꿈틀거리는 표정을 지어 당혹스러움을 드러내면서 펠루한이 되물었다. 투란은 그 표정을 칭찬부터 하며 말한다.
“빨리 적응하는데? 조금만 더 하면 아무도 이상하다 여기지 않겠어! 좋아, 그 정도면 금방 자연스럽게 헌터 길드도 들락일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니까…… 도와줘.”
“어…… 어?”
펠루한은 투란의 말처럼 조금 더 자연스럽게 ‘제이크’의 표정으로 혼란스럽고 당황한 심정을 드러내면서 맹한 소리로 대꾸해야 했다. 투란이 하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 기분과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투란이 히죽, 또렷하면서도 가늘게 웃음 지으며 말한다.
“어차피 이미 엮였잖아. 펠루한은 지나가다가 켈슨을 죽일 음모를 꾸민 녀석들을 죽여놨고, 제이크는 라비엔 벽 앞에서 나중에 만나면 켈슨에게 사과할 일을 저질렀지. 그러니까…… 제이크, 우연히 켈슨과 만나서 사과하고 딱 붙어 있어달라고. 눈 감고 귀 막고 죽으려 하지 못하게 신경 좀 써줘. 그러다 보면 다시 옛날 팀 리더였다는 켈슨으로 정신 차리고 복귀하겠지.”
“나더러 켈슨을 애처럼 돌보는 보모 노릇을 하라고?”
어이없다는 듯한 기분을 ‘제이크’의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아직은 조금 세게 맥동하는 살갗의 경련도 살짝 비춰내면서 펠루한이 되묻고 있었다. 이는 제란드나 멜란드에게서도 작은 공감을 끌어냈다. 둘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투란의 제안에 대해 펠루한처럼 의아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의아함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당당하게 보태 말한다.
“응! 우리도 사정이 있어서 라비엔에 오래 머물 수가 없어. 아마 하루 이틀 안에 떠나게 될 거야. 어떻게 우리 손으로 해결하기 곤란한 사정이라서 말이지. 그리고 펠루한의 일을 정리한 제이크에게는 따로 정리해야 할 일이 많잖아? 펠루한의 손에 다친…… 제이크의 수작에 넘어가서 몬스터가 아닌 몬스터 로드를 쫓다가 죽거나 다친 녀석들…… 바보에다가 얼간이일 수도 있겠지만, 책임질 일이잖아. 그렇지?”
“보모 노릇에다가 착한 사람까지 돼야 하는군.”
쓴웃음을 자연스럽게 지으면서 ‘제이크’가 말했다.
투란이 빙긋 웃으면서 대꾸한다.
“그래. 아주 바쁠 거야.”
펠루한은 숨을 들이쉬었고, ‘제이크’의 표정을 지운 채로 묻는다.
“그 조건으로 날 살려둘 참이야?”
“죽일 이유도 없잖아? 미쳐 날뛰는 몬스터 로드라면 몰라도…… 당신은 자기 인생 알아서 잘 살고 있는 거잖아? 거기까지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내가 무슨 정의(正義)의 신전(神殿)을 찾아 헤매는 방랑기사도 아니거늘!”
투란의 대답 끝은 살짝 과장된 말투였고, 펠루한을 웃게 했다.
“아, 그 얘기…… 나도 알아. 난 정의의 신전을 찾는 방랑기사가 되고 싶었는데…… 너에게는 지금 그런 기사가 될 좋은 기회 아닌가? 나는…… 방랑기사를 괴롭히는 못된 몬스터 노릇에 딱 어울리고 말이야.”
“싫어, 귀찮다고. 그럼, 우리는 가 봐야겠네. 아,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내고…… 그거 완전히 안정되면 켈슨을 찾아가줘. 우린 없을 거야. 음, 그리고 뭔가 한마디 보태주자면…….”
투란은 멜란드를 툭툭 밀었고, 멜란드는 입술을 삐죽하면서 제란드를 밀었다.
제란드가 일어서 칸막이 입구에 서고, 멜란드가 그 곁에 설 때 투란은 느릿하니 몸을 일으키면서 펠루한 쪽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제이크’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한다.
“스킨라이더의 진짜 능력에 대해 알아차리고 발휘하기 시작한 게 펠루한의 부적이 없을 때였지? 그 전에는 그저 그 능력의 흉내만 내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목젖을 희미하게 울리면서 펠루한은 살짝 떨리는 ‘제이크’의 입술로 ‘그래.’라는 한마디를 간신히 그려냈다. 투란은 그 입술을 읽었다는 듯이 낮고 빠르게 속삭임을 더한다.
“아슬아슬하고 언제 죽을지 조금…… 아니, 많이 불안하겠지만 부적을 떼어놓으라고, 제이크. 펠루한의 부적 없이 스킨라이더로 활동해봐. 짜릿해서 딴생각할 여유가 없을걸? 그럼, 이만…….”
“자, 잠깐!”
‘제이크’의 한 손이 빠르게 투란의 왼쪽 팔뚝을 잡았다.
두터운 가죽과 단단한 편갑(片甲)에 쌓인 팔뚝에서 느껴지는 억센 힘에 펠루한은 숨을 고르면서 조급함을 버리고 침착하게 말한다.
“아슬아슬하다고? 그럼, 떼어놔도 금방 기대려고 도로 찾아 걸려고 할 테지? 그러느니…… 자네한테 넘기도록 하지.”
“응?”
투란이 이건 예상 못했다는 듯이 눈을 껌벅거렸다.
그 사이에 펠루한은 ‘제이크’의 소매 안쪽에서 다시 목걸이 장식을 꺼냈고, 여러 얼굴이 세공된 알을 투란의 왼손에 쥐여 줬다.
“이건 원래 헌터 길드 소속의 몬스터 로드가 갖고 있던 거라고 했잖아. 내가 돌려줄 수는 없지. 예전에 작정하고 떼먹은 셈이니까. 이제 와서 등록하겠다고 길드에 내 사정 이야기 하면서 얼쩡댈 수는 없다고. 그러니까, 여길 떠나서 다른 곳에 자리 잡은 길드 지부를 찾아가서 돌려줘야 하는 거고…… 너에게 맡길게. 난, 여기 남아 누구 보모 노릇도 하고 착한 사람 노릇도 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볼 테니까, 네가 맡아줘.”
펠루한의 말은 빨랐고, 투란의 손에 목걸이 장식의 사슬이 감기는 것은 그보다 더 빨랐다. 말을 마친 다음, 손을 떼고 펠루한은 ‘제이크’의 얼굴에 실룩이는 웃음을 어색하게 만들면서 다시 연초에 불을 붙이며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투란은 손에서 울리는 부적의 힘을 느끼면서 ‘제이크’―펠루한의 눈동자를 잠깐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래 성립이야. 그럼, 잘 해보라고.”
“어, 거래 성립이다. 잘 부탁해.”
길고 짙은 연기가 강한 향을 품은 채로 ‘제이크’의 입술 사이에서 자욱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 연기를 피하듯이 투란은 제란드와 멜란드를 몰아내며 칸막이 된 작은 공간을 떠났다.
홀로 남은 펠루한은 ‘제이크’의 얼굴로, 말린 연초를 쥔 손을 보면서 아련하게 꿈틀거리는 연기에 숨을 몰아내쉬었다. 허공에서 꿈틀거리는 연기가 즐거웠던 기억 속의 풍경이라도 꾸미기를 바란다는 듯…….
“읏차!”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어 꽉 쥐었다 펴면서 투란이 힘쓴 시늉을 했다.
제란드는 그 손에 쥐어져 있던 부적이 아무 흔적도, 기척도 없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나서 두 눈으로 라비엔의 거리를 둘러보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투란에게 묻는다.
“투란, 귀찮더라도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이 좋지 않을까? 부적을 내던진 몬스터 로드라니…… 얼마 전까지 거침없이 사람 죽이던 몬스터 로드이기도 하잖아.”
“음? 흠…… 역시 귀찮아. 아까 살짝 죽일 수도 있다고 겁을 줘봤거든, 근데…… 처음에는 움찔하나 싶었는데 금방 아주 편안한 몰골이더라고.”
부적이 사라진 왼손을 뒤집어 살펴보면서, 투란이 투덜거리듯이 말하고 있었다.
“응? 편안해?”
제란드는 거리에서 눈길을 거두고 투란을 보며 의아해했다.
멜란드가 곁에서 툴툴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마디 한다.
“죽고 싶었나 보네.”
이는 제란드가 금방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렇군. 죽고 싶었던 거로군.”
조금 더 투덜대는 말투로 투란이 보태 말한다.
“거래를 했으니까, 최소한 자살은 하지 않겠지. 그건 또 나름대로 굉장히 억울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까지는 않겠다 싶기는 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 부적은 그냥 내다 팔아치워도 되겠지?”
씁쓸한 표정으로 제란드가 묻는다.
“그거 왜 떼어놓으라고 한 거야?”
멜란드도 이 의문에 동참하듯 말한다.
“정말, 우리랑 경우가 다르잖아. 우리야…… 어, 흠…… 그렇다지만 저 아저씨한테는 꼭 필요한 거 아니었어?”
“몬스터 로드도 아닌 사람이 그런 부적 갖고 있다는 거 걸려봐. 어디서 얻었냐고 따지는 놈부터, 어디다 쓰고 있냐느니, 이전에 무슨 짓을 했냐느니 캐내려 하는 녀석도 있을 걸. 저 아저씨는 그냥 맨 몸인 편이 더 활동하기 쉽다고. 더 위험하기도 하겠지만, 그건 본인이 원하는 거잖아.”
투란이 거리를 둘러보고 방향을 잡았다는 듯이 걸음을 내딛으면서 툴툴거리는 대답을 했다.
멜란드가 ‘아, 그런가?’ 하고 뒤따르듯 걸음을 딛으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고, 제란드는 꼼짝도 않은 채로 목소리를 살짝 높여 말한다.
“투란, 그쪽 아니야.”
“어?”
“에?”
투란과 멜란드가 고개를 돌렸고, 제란드는 엄지로 거리의 다른 방향을 가리면서 말한다.
“이쪽 길이라고. 루비네로 걸어갈 거잖아?”
“음, 헤헷!”
“큼! 으흠!”
민망한 듯, 투란과 멜란드가 제각각 웃음과 헛기침을 날렸다.
제란드가 가벼운 한숨과 함께 길잡이 노릇을 하며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