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0)
가만히 두 손을 모아, 흘러오는 물줄기를 받아 올렸다.
모은 손이 그릇처럼 물을 담은 채로 투란의 턱 아래로 올라왔다.
찰랑거리는 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손의 떨림에 따라 살랑이는 물결만 흘릴 뿐이었다.
살짝 혀끝을 대고 핥아 봤다.
시원한 느낌이 그냥 맑은 물이다.
잠시 투란은 지긋하게 손아귀에 고인 물을 노려보다가 슬쩍 엄지를 세웠다. 엄지를 덮은 실그물이 바스락거리는 느낌을 내고 악마의 심장 넝쿨 껍질이 사라지는 순간, 물방울이 튀었다.
바로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드는 맹수처럼!
엄지에 닿는 순간, 살갗이 붉어졌고 핏방울이 쭉쭉 빨려 나갈 듯이 뭉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투득, 엄지를 다시 엷게 넝쿨 껍질이 덮었다.
‘역시 괴물!’
투란은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었다.
이 괴물은 주변이 어떻게 뒤집어졌는가에 상관없었다.
그저 투란이란 먹잇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여기 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제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다른 사람은 애초에 없었고, 짐승이라거나 다른 괴물은 없었다.
새삼스럽게 이런 확인을 거친 다음, 투란은 천천히 가슴으로 물이 고인 두 손을 옮겼다. 가슴속에서는 악마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는 것을 재삼 확인하며, 온몸의 살갗을 대신하듯 자리 잡은 넝쿨 껍질을 실감하며 투란의 마음이 문장을 움직였다.
요란한 소리도 화려한 빛도 없었고, 뭔가 고통스럽다거나 자극적인 감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투란은 문장이 가슴에 흔적을 드러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렸다!’
작은 고리처럼, 검은 톱니바퀴의 형상이 나타나 있었다.
몬스터 엠블럼이 자리한 곳에, 검은 톱니바퀴는 고요하게 나타나서 느릿하게 꿈틀거리듯이 돌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검은 잉크로 투란의 가슴에 무늬를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처럼, 옮겨 그려지는 작은 낙서처럼 검은 톱니바퀴가 돌았다.
투란이 거기에 손에 고인 물을 붙이듯이 쏟아 흘렸다.
검은 톱니바퀴와 닿는 순간, 물은 더 이상 흐르지 못했다.
엉기고 뭉친 것이 투명한 덩어리처럼 출렁거리며 투란의 가슴에 달라붙은 꼴이 되었다. 곧 투명한 덩어리 속으로 검은 색채가 번져 갔다.
투란의 가슴에 붙은 투명한 덩어리가 그 투명한 형상 그대로 잘게 부서지며 사라졌다.
‘삼켰……나?’
투란의 정신이 문장 속의 풍경으로 몰입했다.
* * *
톱니 고리가 오그라들었다가 펼쳐졌다가 하는 형상이었다.
가장 작았던 맨 위쪽의 톱니 고리가 돌면서 커지고 아래쪽의 가장 컸던 톱니 고리는 오그라들며 작아졌다. 마치 저쪽에 뭔가 삼킬 것이 생겼으니 다물었던 입을 벌린다는 듯이 보였다.
다시 오그라들고, 커지고…….
뭔가가 겹쳐진 톱니 고리를 넘어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천칭의 정상, 저울접시에 흘러내린 것은 잘게 부서진 흐릿한 티끌, 안개의 부스러기 같은 것뿐이었다. 너무 흐릿해서 있는지 없는지 애매하기 짝이 없고, 딱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투란은 좀 더 집중해 봤지만, 이 흐릿하고 작은 티끌은 저울접시 위에서 언제든지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대체 어떤 상황인가?
* * *
두어 번 눈을 깜박이고, 투란은 펼쳐진 손바닥을 봤다.
손에 고여 올린 물은 모두 가슴에 달라붙어 투명한 재가 되어 사라졌다.
틀림없이 몬스터 에센스가 사라진 몬스터의 잔해였다.
그런데 정작 삼킨 몬스터의 에센스를 문장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너무 희미해서 아예 없는 것 같다?
‘뭐야, 잘된 게 아닌가!’
몬스터를 삼켜도, 소용없는 ‘천칭의 문장’이 되었다는 것인가!
두근, 두근!
악마의 심장마저 놀란 듯이 잠깐 거세게 뛰었다.
그리고 다급한 투란의 뇌리에 희미한 기억의 한 자락이 불쑥 튀어 올랐다.
“아, 씨이이! 이건 사기잖아! 에센스가 쑥 빠진 몬스터의 뼈다귀라니! 이런 걸 팔다니, 이 나쁜 놈!”
보기에는 멀쩡한, 제대로 된 강골로 보이는 몬스터의 잔여물이었다.
몬스터 헌터는 그걸로 뭔가 몬스터 사냥 도구를 만들 것을 기대했다.
그걸 본 몬스터 로드는 뭔가 강해 보이는 몬스터를 얻을 거라 기대하고, 헌터에게 샀다. 하지만 막상 그 뼈다귀가 투명한 자취를 남기며 으스러져 사라졌을 때, 몬스터 로드가 얻은 것은 없었다.
그때 몬스터 로드가 따지며 낸 소리가 그런 칭얼거림이었다.
투란은 머리를 쥐어짜 내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몬스터 엠블럼, 여기에 반응했다는 것은 몬스터의 정수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이 몬스터 로드에게 충분한가는 별개의 일, 때로는 작은 조각이면 되지만 때로는 꽤 큰 조각이어도 모자랄 수가 있는 것, 그런 이상한 특성이 몬스터 에센스가 보이는 성질이라 했다.
후우웃!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콧속 살갗에 스쳐 가는 독한 바람을 느끼면서 투란은 다시 바닥에 고인 물을 손으로 퍼 올렸다. 손에 고인 물은 머뭇거림 없이 가슴으로 옮겨 갔고, 아직 느릿하니 돌고 있는 검은 톱니바퀴 위로 부어졌다.
‘어, 없지는 않아! 근데 왜 이래!’
문장 속 풍경에서는 여전히 미약한 티끌과 흩어지는 바람결처럼 희미했다.
그저 한 방울이어도 살갗에 달라붙어 피를 당기고 담가먹는 물방울이면서, 대체 이게 뭔 상황인가!
뭐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희미하게 잊고 있던 그때의 상황이 투란에게서 재현된 것인가?
투란은 고민하는 대신에 바닥에 몸을 붙이며 엎어졌다.
작은 물웅덩이에 고인 물방울에 아예 대놓고 가슴을 붙여댄 것이다.
과연 손에 조금 모아 부은 것과 다르게, 바닥에 고인 물은 검은 톱니바퀴를 조금 더 빠르게, 달팽이에서 거북이 걸음만큼 빠른 폭으로 돌렸다.
‘그래, 넉넉하면…….’
투란은 살짝 안심했다.
* * *
희미했다.
뚜껑, 마개인 톱니 고리들이 화사하게 위에서 오그라들었다 펼쳐졌다 하면서 돌고 있었지만 흘러내리는 티끌, 안개에 불과했다.
도무지 뭔가 해 볼 수 있는 ‘용량’이 아니었다!
그나마 투란에게 조금 나아졌다고 느끼게 해 주는 부분이라면, 있나 없나 애매한 경우보다 살짝 더 투명한 느낌의 바람결!
‘아까보다 조금은 뭔가 보이잖아!’
조금 더 많이 물방울을, 고인 물웅덩이를 삼킨다면 될 듯도 하다.
헛된 희망일지 몰랐지만, 일단 투란은 그렇게 믿고 움직이기로 했다.
* * *
말라 버렸다.
웅덩이는 이제 먼지만 툴툴 날리는 꼴이었다.
투명한 자취도 스스슥 부서지며 사라져 갔다.
투란은 패기 있게 벌떡 일어섰다.
‘느꼈어! 저쪽이다!’
포기할 마음 따위는 먼지 구덩이에 묻어 버린 듯, 투란은 물줄기가 흘러온 쪽을 향해 힘차게 뛰었다!
그쪽에서도 희미하게 부서져 사라지는 투명한 자취가 조금 보였다.
방금까지 웅덩이를 향해 졸졸 흐르던 물줄기였다.
투란의 몬스터 엠블럼에 의해 으스러져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그 물줄기가 흘러온 곳을 향해 투란은 열심히 뛰었다.
묘하게 팔다리에 붙어 있는 힘줄, 그 속에서 나오는 활력이 투란을 경쾌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달리게 했다. 희망이 좀 더 샘솟는 듯했고, 투란의 상상이 조금 더 깊이 물방울에 대해 파고들어 생각하게 했다.
‘고무쇠를 잡은 놈이야! 놓치지 않겠어!’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의욕은 두 배로 솟구치게 하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단단한 돌을 밟으며 비탈을 오르고, 바위의 회색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오솔길을 넘어, 암산(巖山)의 깊은 곳을 향해 들어갔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샘에 도달했다.
바로 투란의 몸이 낮아지며 주변을 둘러보는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숲이나 산속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곳에 도달한 것이다.
물이 있는 곳에 짐승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때를 잘못 맞추면 배가 고파 물이나 마시자고 온 사나운 육식 짐승에게 자신을 끼닛거리로 바치는 꼴이 되므로!
‘그런 거 없으려나?’
투란은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깨달았다.
그렇게 물 마시러 온 놈이 여기서 멀쩡할 수가 있을까?
저 괴상한 물방울에 먼저 피가 다 담가져서 잡아먹히고 가죽만 남을 텐데.
문득 투란은 바닥을 좀 더 주의 깊게 바닥을 훑어봤다.
뼈다귀라든가, 짐승 혹은 괴물의 잔해가 있는가?
전혀 없었다.
있는 거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 굵지만 완전히 말라 으스러진 듯이 보이는 나무의 잔해뿐이었다.
투란은 천천히 몸을 세우고, 살갗에 닿는 것이 뭔가에도 집중하듯 감각을 예민하게 가다듬으면서 샘으로 다가갔다.
‘이게 도대체…….’
가까워지고 나서야 투란의 눈에 샘의 풍경이 멀쩡하지 않다는 것이 제대로 보였다. 이 샘은 땅에서 퐁퐁거리며 솟아나거나, 바위 틈새에서 줄줄 흘러나오거나, 저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작은 물길이 고인 꼴이 아니었다.
샘의 중심, 어딘가 단정해 보이는 작은 바위가 놓여 있는데 그 위에 투란의 주먹만 한 투명한 돌이 하나 둥실 떠 있었다. 그 투명한 돌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물이 고여 샘을 이루고, 그 샘이 가끔 물방울을 튕기며 여기저기 길을 찾아 멀리 흘러가려 하는 것, 그게 이곳의 풍경이었다.
조금 전의 투란처럼 약간만 떨어져도, 물결의 출렁임과 흐름에 가려져 투명한 돌은 아예 거기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 돌이 떠 있는 작은 바위를 담근 물결이 뒤편의 배경 같은 암벽과 겹쳐진 채로, 암벽에 뚫린 구멍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착각하기 딱 좋은 꼴이었다.
바삭.
내딛는 걸음에 바닥의 나뭇가지 하나가 밟히며 스러졌다.
샘이 바로 앞인데도 불에 잔뜩 구워 말린 듯이 나뭇가지는 가벼운 걸음에도 으스러져 흩어졌다.
‘마음 놓지 말자고!’
투란은 곧 자신에게 속삭이며 풀어질 뻔한 기분을 다잡았다.
저 물방울이 악마의 심장을 품고 그 넝쿨의 껍질로 지켜지는 투란에게는 그저 맹물이겠지만 고무쇠를 말려 죽인 괴물이란 점을 의심할 수 없었다. 이 풍경은 투란에게 다시 그 점을 되새기기 해 주고 있었다. 설혹 뭔가 납득할 수 없는 과정이 개입되어 오해하고 있더라도, 사람의 살갗에 닿자마자 핏방울을 쥐어짜 내려 드는 괴물인 점은 틀림없잖은가?
투란의 걸음이 조심스럽게 샘가를 디뎠고, 잠시 멈춰졌다.
통통 튀는 물방울은 그냥 튀어 어디론가 흘러갈 작정만 한 듯했고, 투란을 향해 달려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잠시 샘을 내려다보다가 투란이 손을 내밀었다.
한 손으로 물을 고이고, 이를 다시 가슴에 슬쩍 부었다.
샘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고, ‘천칭의 문장’은 여전히 희미한 안개만을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희미한 안개의 존재감은 아까보다 좀 더 짙었다.
투란의 혀가 살짝 입술을 핥았다.
물이 너무 맑아 보이니 한 모금 마셔 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찾아왔다.
하지만 투란의 눈길은 한쪽에서 완전히 말라 있는 큰 나무를 다시 흘깃했다.
도저히 샘가에 저런 나무가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설혹 저 나무가 저렇게 마른 다음에 이 샘이 생겨났다 해도, 죽은 나무라 해도 습기를 머금어 장작개비로 쓰기 난감한 상황이 되는 법이었다.
‘여기는 괴물의 둥지, 그렇다 치면…….’
오랫동안 들어온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투란은 이 순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까닭, 가장 분명하게 확인해야 할 일.
투란의 손이 작은 바위 위를 향했고, 투란의 발이 샘 안쪽으로 디뎌졌다.
촤르르…….
샘물이 갑작스러운 침입자에 놀란 것처럼 잘게 흔들리며 물방울을 튕겼다.
투란은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움찔하고 멈췄다.
물방울이 여기저기 튕겨 다녔지만, 투란에게 닿고는 그냥 도로 튕겨 나갔다.
뭔가 악마의 심장이 뻗어 내는 넝쿨의 껍질을 만나면 바로 이건 아니라고 여기는 듯, 이 샘의 이상한 물은 투란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뭔가 알쏭달쏭한 자신감이 차오를 상황이었다.
바로 투란이 다시 한 걸음 디뎠고, 물방울이 요란하게 찰랑였다.
발을 디딘 곳 주변이 요란했지만, 결국 투란이 작은 바위 곁에 설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일단 손이 닿을 간격이었고, 투란에게는 망설일 까닭이 없었다.
투란의 손이 바로 작은 바위 위에 떠 있는 투명한 돌을 집으려 내밀어졌다.
푸아앙!
투명한 돌을 감싼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