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96)
Chapter 80. 라비엔을 떠나며
“멀어! 왜 이리 멀었냐고!”
투란이 여관 문을 들어서자마자 두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소리쳤다.
“그야 길 따라 걸어왔으니까 그렇지.”
투란과 똑같이 잔뜩 불만이 섞인 말투로 멜란드도 투덜거렸다.
거기에 바로 투란이 보태듯 말한다.
“어째서 길가에 그렇게 먹을 걸 쌓아놓고 팔고 있냐고! 식량 모자란다고 했잖아! 도대체 왜 길가…… 어, 킁? 킁! 킁? 이거 여관 안에서 나오는 냄새 아냐?”
한참 신나게 투덜대던 투란의 코가 냄새 맡는 시늉을 하며 나오던 이야기가 소재를 바꾸고 있었다. 이에 바로 멜란드도 덩달아 킁킁거리며 말한다.
“부엌인데? 어, 맵다! 루비가 요리를 하는 모양인데…… 아니, 그런데 뭔 냄새가 이렇게 짙어? 왜?”
제란드가 둘의 뒤에 따라 들어오면서 낯을 살짝 찌푸렸다.
여관 입구, 퍼브처럼 꾸며놓은 넓은 홀은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어?”
갸웃하는 제란드의 의문을 투란과 멜란드는 공유하지 않았다.
둘은 쪼르르 바 너머를 보기 위해 뛰는 듯했고, 바 뒤편을 장식하는 높은 벽감과 서랍 뒤편의 풍경을 넘보기 위해 바 위에 엎어져 기는 듯한 시늉을 했다.
“뭐야, 이제 왔냐? 좋아, 잘 왔다! 아, 배고프다고! 기다려, 루비의 특제 요리가 이제 완성되는 중이니까!”
부엌 쪽에서 루비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나왔다.
투란이 부엌 쪽 틈새를 엿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식량 없다면서요?”
멜란드는 보다 더 놀란 소리로 외친다.
“으앗, 대체 얼마나 굽는 거예요! 루비, 창고 다 털어낸 거예요? 아니, 잠깐! 정말 식량 없다고 하더니 이게 뭐래?”
제란드가 둘을 보며 일단 한숨을 쉰 다음, 느릿한 태도이지만 발 빠르게 바를 넘어 부엌 안으로 한 걸음 디뎠다. 안의 풍경을 잠깐 둘러보고 나서 제란드는 루비에게 제대로 묻는다.
“무슨 새 소식이 들어와서 이러는 겁니까, 루비?”
치익, 치이익!
보글보글…… 치익!
거대한 솥 안에서 물이 끓고 석쇠 위에서 잘린 발목이 구워졌고, 한편에 대충 익은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루비의 큰 몸집에 맞춰진 부엌이었기 때문에 꽤 넓었지만 그 절반 정도를 굽고 삶아진 온갖 발목이 채운 듯했다. 하지만 부족하니 아예 꽉 채우겠다는 듯이 더해지고 있었고!
제란드는 부엌의 요란한 광경 속에서 활짝 열려진 자루를 발견했고, 그 자루가 루비의 체격으로도 한방에 들어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곧바로 제란드는 루비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루비, 이 자루에 저걸 담으면…… 여관 밖으로 어떻게 가지고 나갈려고요? 문이 좁아서 자루가 안 빠질 텐데요?”
“응? 무슨 소릴! 당연히…… 자루를 길게 빼서 밖으로 일단 내놓고, 쟁반에 담아 내야지 뭐…….”
호쾌하게 자루째 뺄 수 있다는 답을 하려는 듯했던 루비의 말은 제란드가 둘러보는 눈길을 따라 둘러보다가 바뀌었다. 제라드의 말처럼 처음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모습이었다.
쪼르르, 투란과 멜란드도 제란드의 뒤편에 서서 부엌 풍경을 엿보며 떠든다.
“우와, 무슨 부엌이…… 엄청 넓어!”
투란은 우선 부엌의 규모에 놀랐다.
“대체 저 자루는 뭘로 어떻게 만든 자루예요! 저리 담았는데 터지지도 않아!”
멜란드는 반쯤 채워진 자루가 얇고 매끈하면서도 온갖 발목 아래 달린 발굽이라든가, 날카로운 발톱 따위에 북북 찢겨진 흔적이 없는 것을 짚고 있었다.
치칙, 화르르!
루비가 석쇠 손잡이를 휘돌리면서, 굽고 있던 발목을 굴리면서 대답을 한다.
“아오, 시끄러워! 닥치고 나가 있어! 먹을 거 따로 내줄 테니까!”
“아니, 루비 그 얘기가 아니라! 왜 갑자기 저장고를 다 털고 있냐고요.”
제란드가 기운 빠진다는 듯이 물었다.
치익, 다시 석쇠를 휘돌리면서 루비가 제란드를 향해 홱 눈길을 돌렸다.
“왜냐니! 몇 시간 전에 망할 길드의 마법사가 보냈다는 전언 때문이지!”
“전언……?”
제란드는 갸웃했다.
루비는 굽고 삶은 발목 한 무더기를 걸러내서 자루 근처에 대충 쏟아내고 또 한편에서 피얼룩이 거뭇한 발목 한무더기를 꺼내 석쇠 올리고, 솥에 부었다. 동작이 매우 빨랐고, 그러면서 설명도 빠르게 나온다.
“어떤 지나가던 미친놈이 나섰다는 거야! 식량 수송에 문제를 일으키던 고블린 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잖아! 그래서 며칠 안에 식량 공급이 다시 멀쩡해질 거라네! 그러면…… 망할! 썩을 때까지 쌓고 팔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식재료는 그냥 쓰레기가 된다고!”
“루비, 그런데 왜 그 발목을 한꺼번에 삶고 굽는데요?”
제란드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루비가 다시 제란드를 홱 돌아보며 외친다.
“왜라니! 멀쩡한 식재료가 들어오면 이 발목도 못 판단 말이야! 지금 분위기 타서 나도 잽싸게 처분해야지! 딴 녀석들 틈새에 섞여서, 그 녀석들보다 더 싸게 팔면 아직 상황 모르는 녀석들이 덥석 사갈 것 아니냐고!”
“아, 예…….”
겨우 제란드가 납득했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멜란드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어? 아!’ 하며 중얼거린다.
“그래서 갑자기 길가로 잔뜩 들고 나와서 요리해 파는 거였구나.”
투란이 이 소리에 귀를 쫑긋하며 말한다.
“응? 뭐야, 오면서 본 거리의 요리점이라고 떠들던 게 그래서…….”
루비가 순간 달아오른 석쇠를 든 채로 확 돌아섰다.
발굽이 석쇠 위에서 튀어 오르는 사이, 루바의 버럭하는 소리가 터진다.
“뭣이! 길가로 들고 나와 요리를 한다고! 거리의 요리점이라니! 그 녀석들, 요리해서 내다 파는 게 아니고 그냥 거리에서 요리를 한다는 말이야! 우앗, 이 나쁜 놈들! 반칙이잖아, 그건!”
“반칙?”
투란도, 멜란드도 갸웃하면서 루비의 말 속에서 한마디를 골라 되뇌었다.
제란드는 ‘아니, 그걸 반칙이라고 해도…….’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을 흐리고 말았다. 도대체 루비가 뭔 소리를 하는 것인가, 대강 짐작은 되지만 공감은 할 수 없다는 듯.
루비는 자세한 설명을 하는 대신에 부엌을 둘러보면서 쩌렁쩌렁 울리는 혼잣말을 토해낼 뿐이었다.
“젠장, 이렇게 굽고 삶는 광경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 자식들, 오래 된 걸 데워 나온 거 아니냐고 지랄하면서 한 푼도 안내려고 할지도 모르잖아. 아오, 머리 좋은 것들! 거리 한복판에서 직접 요리해 팔다니! 좋아, 질 수 없어! 나도 얼른 내가서…… 야, 좀 도와줄래?”
제란드는 자신에게 루비의 눈길이 꽂혔다 싶은 순간, 바로 뒤로 쏜살같이 미끄러지면서 그 눈길이 무슨 매서운 화살이라도 된다는 듯이 피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이런 제란드의 모습에 투란과 멜란드도 재빠르게 뒤로 튕기듯이 움직이면서 호응하며 함께 뭔가 피하는 시늉을 했다. 물론 투란과 멜란드는 ‘어? 뭐야?’라는 소리를 제각각 중얼거리면서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루비의 투덜거림이 우렁차게 터졌다.
“에이! 치사하게! 한가해 보이는데 안 돕고 내뺄 거냐!”
제란드가 바로 목소리를 높여 대꾸한다.
“손님한테 장사 도우라니! 여관비나 깎아 줘 보고 나서 그런 소리를 해요!”
자루를 열고 굽고 삶아진 발목을 퍼 담으면서 루비가 말한다.
“여관비를 어떻게 깎아 줘! 여관을 어떻게 경영하라고!”
제란드는 물러설 생각 없다는 듯이 또 대꾸한다.
“그럼, 여관주인 장사하시는데 손님 부르지 말라고요!”
결국 루비는 포기했다는 듯한 투덜거림을 뱉고 말았다.
“쳇, 치사하긴! 됐어! 나 혼자 한다!”
역시나 제란드는 바로 잘 생각했다고 격려한다는 듯이 툭 대꾸한다.
“수고하시라고요.”
“비켜어어!”
괴성과 함께 루비가 자루를 당기면서 부엌 입구를 들이박듯이 쿵쾅거리며 발을 내디뎠고, 벽이 밀려나고 긁히는 소리가 나면서 바를 향해 더 크게 부엌 입구가 열린 것처럼 보였다.
멜란드가 그 광경에 외친다.
“헉? 저거 움직이는 벽이었어?”
투란이 대뜸 바 위에 몸을 얹히면서 바닥을 보고 말한다.
“아닌데! 그냥 힘으로 밀었어! 우와, 루비! 정체가 뭐…….”
“시꺼어어! 오늘 저녁 요리는 늦으니까, 알고 있어!”
우렁차게 외치면서 루비는 자루를 질질 끌면서 바를 타넘었고, 찌그러지는 바의 모습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여관 문을 넘어갔다. 자루가 모양을 바꾸면서 여관문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힘으로 여관 문을 일단 뭉개놓고 지나갔을 듯한 광경이었다.
투란이 이를 보며 중얼거린다.
“대단히 튼튼한 문인데?”
제란드가 뚱한 말투로 대답한다.
“저거 무슨 고무 목재인가를 쓴 거야. 웬만큼 긁어서는 눌리고 찌그러져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오는 탄력이 있다는 거지. 바를 만든 나무는 다른 걸 텐데…… 저러고 갔다 돌아와서 또 누가 바를 긁어놨냐고 난리치겠네.”
이 소리에 멜란드는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원래 그렇잖아, 루비는…….”
갸웃하면서 투란이 묻는다.
“근데, 이게 대체 뭔 일이야? 왜 저러는 거래?”
갑자기 어마어마한 양을 굽고 삶더니, 느닷없이 길가에서 파는 녀석들에게 합류하겠다고 저러고 나간 셈이었다. 도무지 왜 저러는 건지, 투란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멜란드가 이런 투란에게 동의한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가끔 남들 뭐 팔 때, 그 기회를 타서 팔아야 한다는 소리를 하며 저러기는 하는데…… 흠, 형은 알겠어?”
제란드는 알게 뭐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고, 대신 다른 목소리가 대답을 한다.
“내가 뭔지 알려줄까? 대신 너네도 나한테 한 가지 제대로 알려주고 말이야.”
투란이 돌아보니, 여관 방으로 이어진 올라가는 계단가에 벨라딘이 벽에 기댄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멜란드가 바로 벨라딘에게 묻는다.
“뭐예요, 누나? 누나가 우리한테 정보 교환을 하자는 거예요? 헤에?”
“멜란드 너한테는 별로 들을게 없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거기…… 투란이라고 했지? 그래, 뭐 투란이라고 치고…… 너야?”
투란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엥?’ 하는 소리를 냈다.
제란드가 혀를 차면서 벨라딘에게 말한다.
“그렇게 앞뒤 자르고 물어보면 무슨 소린지 어떻게 알아요?”
“앞뒤 잘랐다고 하는 걸 보니, 제란드는 대충 내가 뭘 묻는지 아나 보네?”
벨라딘이 툴툴대듯이 말했고, 제란드는 한숨쉬듯이 대꾸한다.
“뭔 소린지 모르니까 앞뒤 잘랐다고 하는 거잖아요! 대체 투란에게 뭘 묻는 거냐고요. 그리고 정보 교환이라고 하면…… 우리한테 교환해서 알려주고 싶다는 정보가 뭐예요? 그것부터 말해야 하는 거 아녜요?”
“어쭈? 먼저 듣고 아니다 싶으면 입 다물겠다고?”
“그냥 서로 궁금해하기로 하고 같이 입 다물고 넘어가죠.”
제란드가 삐딱한 눈길을 보내는 벨라딘을 향해 뚝 자르듯이 말해버렸다.
벨라딘이 쳇 하는 소리를 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루비가 저러는 까닭. 내가 알려주려는 정보야. 그러니까…….”
“됐어요.”
제란드는 대뜸 벨라딘의 말을 잘랐다.
전혀 알고 싶지 않다는 듯, 아예 고개까지 휘휘 젓는 제란드였다.
여기에 보태듯이 멜란드가 말한다.
“음? 원래 루비 가끔 저러잖아요? 오늘은 특별한 건가?”
벨라딘이 어이없다는 듯이 제란드와 멜란드를 둘러보다가 한심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너네, 지금 시알라 흉내 내니? 낼 거면 좀 제대로 내라! 일단 무슨 정보인지 듣겠다고 하고 본론 나오면 중간쯤에 끊으란 말이야! 아, 진짜! 됐어! 닥치고 말해, 너네지? 쟌을 데리고 나가서 고블린 팩 사냥 한 거! 아주 소수로 움직여서 다들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고블린 팩을 몰살시켰다고, 그래서 길드 마법사 루케인이 식량 놓고 아옹다옹하는 놈들 한꺼번에 망해보라고 대놓고 전언을 보내서 다 들으라고 했다잖아. 고블린 팩 전멸했으니까, 길드 헌터가 상황 확인했으니까 식량 공급 하는 대상들에게 다시 출발해도 된다고 말이야. 그것 때문에 식량 썩을 때까지 쌓아 쟁여놓고 조금씩 팔면서 돈 챙기려 한 놈들이 확 다 뒤집어졌어. 원래 슬슬 썩고 상할 때가 된 것들인데, 이 판에 한몫 챙기자고 제법 비싸게 산 거라고. 하지만 제대로 식량 공급이 되면 그냥 내다 버려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거리로 몰려 나와 바로 요리해서 마구 팔아치우려 하는 거잖아. 그게 바로 투란이 쟌을 여관 방에 던져놓고 나간 다음, 이제까지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그러니까, 묻잖아. 투란, 너네 짓이 맞아?”
계단 아래로 살짝 삐딱한 태도로 걸어내려오면서, 벨라딘은 아주 빠르게 이야기 하고 묻고 있었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음?’ ‘에?’ 하다가 ‘그게 무슨 소리죠?’ 하면서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팍팍 젓고 있었다.
투란은 그런 두 형제의 모습에 풋 하고 웃다가 벨라딘에게 되묻는다.
“쟌은? 쟌에게 묻지 않고 굳이 내게 물어요?”
“한 사흘 잘 테니까. 저렇게 지쳐서는 터무니없는 잠꼬대만 하고 못 일어난다고…….”
한숨을 쉬면서 벨라딘이 대답하고 있었다.
“흠, 사흘이라…….”
투란의 입에 웃음이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