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0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97)
흠, 흠…… 킁, 흠냐…….
콧소리와 섞인 잠꼬대가 불어오는 바람처럼 작은 침대 위에서 맴돌았다.
분홍색의 긴 머리카락이 침대 위에서 밧줄처럼 꼬인 채로 짐승의 꼬리처럼 꼼지락거리듯이 흔들거렸다. 잘 보지 않는다면 가늘고 마른 소녀가 분홍색 밧줄에 휘감긴 채로 침대 위에 던져진 채로 정신을 잃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콧소리가 짙게 배인 숨결 사이로 새 나오는 웃음, 실실거리면서 히히거리다가 어린 아이가 어른의 흉내를 내면서 음흉한 척하는 걸로만 들리는 소리가 잠든 모습이란 것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었다.
물론 이 꼴을 지켜보는 벨라딘은 질린 표정을 한 채로 자기 머리카락에 묶인 꼴로 침대 위에서 꿈틀거리는 마탄의 소녀 쟌을 내려다보면서 어처구니없어 할 수밖에 없었고…….
“일어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기분을 고스란히 담아 외치고 말았다.
그렇게 여관의 작은 방안을 쩌렁쩌렁 울리면서 터진 외침이었지만, 쟌은 히히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말이 되지 못한 잠꼬대를 흘리는 채로 전혀 깨어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벨라딘은 잠시 그 꼴을 보다가 자기 머리카락을 들쑤시며 긁적거렸다.
“아직 덜 잤나…… 그냥 둘까.”
살짝 고민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쟌의 마력은 체력을 소모한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쟌이 마탄으로 고블린 수백 마리를 쓰러뜨렸다면 탈진(脫盡)해서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 것이 대단한 일이었다. 어쨌든 쟌이 살아 있으니 그 잃어버린 마력은 잠을 통해 다시 채워지고, 체력으로 되돌아온다. 때문에 일단 기본적인 마력 회복을 위해 재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쟌의 기묘한 마법에는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었는데…….
꼬르륵, 꾸륵, 꽈르륵!
마력에서 환원된 체력은 생명력을 활성화시키니, 영양을 통해 유지되어야 했다. 즉, 쟌은 마탄을 잔뜩 쏴버린 다음에는 최대한 ‘많이’ 먹어야 했다. 먹지 않은 채로 잠만 잔다면, 저렇게 허기가 뱃속에서 미쳐 날뛰는 꼴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었다.
벨라딘은 쟌을 이렇게 잠만 자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배에서 울려 나온 저 소리는 영양이 필요하다는 몸의 경고나 다름없으니까!
한데 정작 그 배고픔을 느끼고 눈떠야 할 쟌은 아직도 잠든 꼴이라니…….
잠깐 고민하던 벨라딘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에잇! 일어나! 마탄의 잭! 당장 일어나!”
쟌이 깔고 누워 반쯤 끌어안은 담요를 확 잡아채서 방바닥으로 끌어당기면서 벨라딘은 큰소리를 냈다. 차가운 돌로 이뤄진 바닥에 떨어진 쟌도 역시 크게 꽥 소리를 내며 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끼약! 누, 누구야! 누가 감히 날…….”
두 손으로 바닥을 구르다 찧은 머리를 움켜쥔 채로 쟌은 벌떡 일어섰고, 두리번거렸다.
벨라딘이 그 앞에서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로 말한다.
“안녕, 마탄의 잭! 잘 잤어?”
“잭은 우리 아빠고! 난 쟌이라고 했잖아, 쟌! 아니, 잠깐…… 벨라딘? 뭐 하는 거야, 지금! 아오, 아프잖아! 카펫도 없는 돌바닥에 머리를 찧었다고!”
누가 자신이 싫어하는 소리를 한다고 여기고 버럭 소리 지르다가 쟌은 겨우 자신이 루비의 여관방에 있는 것을 확인했고, 벨라딘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 겨우 잠이 깬 모습으로 중얼대고 말았다.
벨라딘은 하나, 둘 하며 수를 세는 모습으로 잠깐 쟌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쟌이 어리둥절하면서 눈살을 찌푸리는데, 돌연 쟌의 뱃고동이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꾸륵, 꼬르르르― 꼬륵!
“으에…… 배, 배 아프…… 배고파!”
배를 움켜쥐면서 움찔하다가 쟌이 해쓱해진 표정으로 나오던 말을 바꿨다.
배가 아픈 게 아니고 텅텅 비었다는 것을, 두 손으로 고동치는 뱃가죽을 움켜 쥔 다음에야 깨달았다는 모습이었다. 이런 쟌을 바라보면서 벨라딘이 손가락 셋을 펴면서 말한다.
“사흘 잤다. 그냥 계속 자면서 굶어죽을래, 일어날래?”
“일어났잖아! 일어났다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쟌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곧 쟌은 자신의 차림새를 훑어내렸고…….
“으악? 뭐야! 왜 내가 이런 차림이야! 크읏, 누가 날 벗겼어!”
위아래로 겨우 속옷 하나씩만 입은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벨라딘이 바로 한심해서 참을 수 없다는 말투로 대꾸하다.
“내가 벗겼지! 그럼, 그 장비 다 입은 채로 자게 둘까? 밖에서 잔뜩 더러워진 채로 들어왔잖아! 잠 못 자게 박박 씻기려다가 참았거든?”
“칫. 자는 동안 살살 씻겨주면 될 걸…… 으, 몸에 땀 배인 채로 굳어졌나 봐! 으아, 문지르니까 벗겨지네!”
쟌은 팔다리를 손으로 문지르다가 살살 밀려나오는 살갗이 돌돌 말려서 까매지는 것을 보면서 부르르 떨었다. 그 꼴을 보며 벨라딘이 눈가에 핏줄이 돋는 표정으로 말한다.
“때 밀지 마! 그만하고, 대강 입고 나가서 배나 채우자.”
“아, 그래…… 앗!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입술을 삐죽이면서 침대가에 놓인 옷을 챙기다가 쟌이 갑작스럽게 생각났다는 듯이 외쳤다. 벨라딘은 가늘게 뜬 눈으로 묻는다.
“맛있는 거?”
“흐흥! 돈 내라고 할까 봐 걱정되나 보네? 헤헹! 내가 한턱낸다고! 히힛! 벨라딘, 이제부터는 나한테 잘 보여야 할 걸!”
“벗기면서 탈탈 털어봤거든? 동전 한 닢 없으면서 뭘 낸다는 거야?”
“오홋! 벨라딘, 이제까지 내가 돈이 없다고 막 무시하더니, 상황 파악 못하고 계속 무시하는구나!”
아주 신나는 표정으로, 거만한 웃음을 입가에 가득 띤 채로 쟌이 큰소리치고 있었다. 이 꼴은 벨라딘을 아주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짓게 했다. 때문에 벨라딘은 아예 한번 짚어보겠다는 듯이 묻는다.
“어디 감춰둔 보물 상자라도 있어?”
“내 카운트……! 이히히힛!”
말 꺼내는 것만으로도 좋아 죽는다는 표정으로 쟌이 웃음을 참지 못한 채 터뜨리고 있었다.
쿡쿡, 손끝으로 쟌의 머리 한구석을 찌르면서 벨라딘이 못 참겠다는 듯이 핀잔한다.
“카운트? 그게 뭐? 저번에 전부 털어서 찢어진 옷 한 벌 간신히 수선했잖아? 거기 기운 자리에다가 덧칠해서 억지로 가리고…….”
“우씨! 이젠 새로 살 수 있다고! 내가 어딜 다녀왔는지 모르는구나! 내가 현상금 잔뜩 걸린…….”
벨라딘의 손가락을 피하면서 쟌이 옷을 마저 챙겨 입는 채로 중얼거렸고, 벨라딘은 잊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이 팔짱을 끼며…… 조금 전에 쟌이 꾸며보이던 것과 비슷한 거만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하! 그러고 보니, 팔 대 이 분배라고 했던가? 투란이 여덟, 네가 둘…….”
잠깐 쟌이 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쟌은 맹렬하게 구겨지면서 격앙된 표정을 뿜어내면서 두 손을 허우적대며 말한다.
“우어엇! 파, 팔 대 이가 뭐야! 칠 대 삼이었다고! 내가 칠이고!”
“흠? 자면서 그 배당 맞다고 했잖아? 그거 잠꼬대였어?”
“푸― 어억? 마, 맞다니! 자, 자면서! 말도 안 돼! 자면서 얘기했다면 내가 다 갖는다고 했겠지! 자, 잠깐! 그럼, 팔 대 이로 배당해서 투란이 팔 가져버렸다고? 투란 어딨어! 어디서 감히 누구한테 그딴 사기를!”
쟌은 팔짝거리면서 발을 굴렀고, 두 손은 더욱 맹렬하게 허우적거리면서 반쯤 공황(恐慌) 상태에 빠진 듯한 꼴을 보였다. 이 꼴을 보면서 벨라딘은 입꼬리를 바르르 떨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벨라딘의 옅은 웃음을 보는 순간, 쟌은 깨달았다.
“거짓말이구나! 우씨! 날 놀려먹으니까 재밌어?”
“그런 말 몇 마디에 의심할 정도로 못 믿을 녀석이랑 단둘이서 고블린과 상대하러 간 거야?”
“아, 아냐! 의심하지 않으니까 함께 간 거라고! 에, 그러니까! 투란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내가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서 함께 간 거라고! 음, 그래! 내가 믿는데 투란이 나 잔다고 배당을 멋대로 속였을 리가 없어! 부, 분명히 내 카운트에 제대로 내 몫을 분배하겠다고 했을 거야! 그렇지? 그렇…… 지? 베, 벨라딘? 나 자는 동안에 투란이 어떻게 했어!”
열심히 투란을 대신해서 변명하는 듯했던, 결국은 자신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쟌은 벨라딘의 뚱하니 한심해하는 표정을 짓는 꼴을 보면서 뒤늦게 묻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쟌이 투란과 함께 고블린 팩을 잡겠다고 나선 것은 두 번째 얼굴을 마주쳤을 때였다. 과연 단 두 번 낯을 본 사이를 그렇게 믿을 수 있을까? 쟌은 세상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덜컥 사흘을 자버렸다고 하니…… 새삼 걱정될 수밖에 없잖은가.
벨라딘이 너무 한심하지만 참는다는 듯, 느릿하게 대답을 해준다.
“어쩌긴 뭘 어째? 배당 끝내고 라비엔에서 떠났지.”
“에? 어? 뭐!”
“여유로 쓸 수 있는 큰돈이 생겼다고 좋아 하더라? 넌 퍼자고 일어날 생각이 없고, 내가 뭐라고 하겠어? 바쁘다는데 너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잖아? 배당까지 전부 마무리 지었으니, 자기 갈 길 찾아 간다는데 말이야.”
“배, 배당을 마무리? 어, 어, 어떻게 배당했어? 내, 내 카운트에 제대로 집어넣기는 했지?”
입술을 달달 떨면서, 쟌은 이제서야 겨우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을 수 있는가를 깨우친 것처럼 묻고 있었다. 분명히 벨라딘이 자신을 놀리고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투란이 정말 자신에게 작은 몫을 넘기고 갔을 수도 있잖은가? 혹은 반반 나눠서 훌렁 들고 튀었을 수도 있고!
벨라딘은 쟌을 향해 대놓고 한숨부터 한번 뿜어줬다.
“넣었지. 하지만 칠 대 삼 분배는 아니었어. 분배는 아까 말한 팔 대 이. 그런데…… 너한테 팔을 넣어주더라?”
“어…… 어?”
쟌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벙긋거렸다.
약간 빈정대는 말투로 벨라딘이 이야기를 잇는다.
“아주 좋은 구경을 했다고, 정말로 고블린을 몰살시킨 마탄일 줄은 몰랐다면서 감탄했다고 좀 더 네 몫을 떼어준 거라던데?”
“아…… 아하핫, 아핫! 그, 그럼! 다, 다, 당연하지! 그런 광경을 나 말고 누가 보여줄 수 있겠냐고! 아하핫, 좋은 구경했으니까…… 내게 더 많이 배당해주는 게 당연하지! 그럼, 그렇고말고.”
말을 더듬다가 쟌은 얼굴에 홍조를 띤 채로 아주 신나서 활짝 웃고 있었다.
이를 보는 벨라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너, 지금 입으로 계속 호구다, 호구야. 이 호구를 잡아야 돼…… 라고 웅얼대고 있다?”
웃음과 말 사이에서 쟌이 속내를 전혀 감추지 못한 채로 중얼거리는 꼴을 간파한 물음 아닌 물음이었다.
순간, 쟌은 딱 굳어진 표정으로 벨라딘의 눈치를 봤고, 벨라딘의 두 손은 가차 없이 쟌의 두 볼을 찰싹 두들기듯이 움켜쥐어갔다.
“이년아! 정신 차리지 못해! 정말로 투란이 시알라의 입장을 생각해서 잘 해줬으니까 다행이었지! 거기서 다른 흉악한 놈 같았으면 어쩔 뻔했어! 고블린 전멸하고 널 거기다 묻어버리고 왔을 수도 있잖아!”
“아아― 아파!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기록! 기록 구슬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런 짓 하면…… 아프다고!”
“기록 끝난 다음에 돌아오는 길에 맹수라든가 마수라든가 우연히 엄청 빠르고 힘세서 자세히 볼 수도 없었던 몬스터를 만나 죽었다는 핑계를 대면 어쩔 뻔했어! 넌 그냥 시체로 들판에서 뒹굴고 끝장날 뻔했잖아!”
“아파! 아프다니까! 어흐! 그, 그만해, 언니야! 벨라딘! 언니야, 아프다니까.”
항복 선언을 하면서 징징대는 쟌의 볼을 마지막으로 찰싹 두드린 다음에 놔줬다. 쟌은 잠깐 사이에 빨갛게 부은 볼을 자기 두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린다.
“히잉! 그치만…… 그렇게 펑펑 나눠주면 호구잖아. 그런 호구를 물어야…… 아니, 나쁜 수작을 부리자는 게 아니고! 투란, 진짜 대단했다고! 투란이 내 방패가 되어주면…… 나 금방 돈 모을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노려보는 벨라딘의 눈빛이 조금 더 험악해졌기 때문에 쟌은 뒤로 물러서면서 허우적대는 변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꼴을 보면서 벨라딘이 엄격하게 말한다.
“다른 사람을 그렇게 네 사정에 맞춰서 이용하려고 들지 마. 그런 짓을 하면, 아무리 돈을 많이 모은다 해도 네 꿈은 이뤄지지 않아!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넌…… 귀부인이 될 수 없어!”
“히잉…… 앗! 투란,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
시무룩하다가 쟌은 돌연 놀라운 생각을 했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면서 묻고 있었다. 아무래도 벨라딘이 한 말은 한쪽 귀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 귀로 바람처럼 빠져나가 쟌의 뇌리에 전혀 남겨져 있지 않은 듯하잖은가!
‘아, 진짜 이년을 그냥!’
눈꼬리를 치켜뜨면서 한 대 쥐어박을까 하던 벨라딘은 문득 투란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주먹을 꼬옥 쥔 채로 참았다.
― 음, 깨어나는 건 못 보고 가야겠네. 뭐, 어쨌든 배당은 큰 몫을 떼어줬으니까…… 쟌이 뭘 목표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돈이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그때까지 잘 돌봐주라고요, 벨라딘.
물론 벨라딘은 저런 말을 하는 투란에게 쟌의 야망이 귀부인이 되는 것이라고는 얘기하지 못했다.
‘입이 찢어져도 그딴 말은 해줄 수가 없지. 아, 답답해!’
철없어 보이는 꿈이지만, 그것은 잭이 쟌에게 남긴 유일한 당부이자 유언이었다.
벨라딘이 뭐라 할 수 없는…… 벨라딘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호구 찾지 말라고!”
빠악!
바로 꾸짖고 박치기하기!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