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0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99)
콰르르― 덜커덩!
바퀴가 울퉁불퉁한 자갈과 돌무더기를 찍어 밟으면서 격한 소음(騷音)을 일으켰다.
덜그럭, 키릭키릭.
요란하게 바퀴살이 돌아가는 소리는 돌무더기가 일으킨 소음을 덮어 누르듯이 흘러넘쳤다. 소음이 저 멀리 뒤편으로 남겨진 것과 달리 바퀴가 구르면서 내는 소리는 마차(馬車)와 함께 달리는 듯했다.
―프로브의 효과가 멈췄다. 일단 라비엔에 설치는 된 상태니까, 다시 주문을 외울 필요는 없고 가까이 가서 마력을 흘려서 기동(起動)만 시키면 된다.
‘음, 다시 갈 일이 있으려나?’
투란은 하늘을 보면서,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가 접어 구름을 잡는 시늉을 하는 채로 드라고니아의 소리 없는 말에 대꾸했다.
―글쎄…… 앞날은 알 수 없지.
투란처럼 딱히 두고 온 마법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는 듯, 드라고니아는 심드렁하니 말하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을 보며 옅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투란은 지금 자신에게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에 대해 묻는다.
‘이 마차, 대단하지 않아?’
―오토마타(Automata)로 달리는 모형마(模型馬)가 그렇게 신기하냐?
드라고니아의 대꾸는 조금 뚱했다.
‘응!’
투란은 짧고 분명하게 답했다.
투란이 그 지붕에 누운 마차는 벌써 이틀째 달리고 있었지만, 쉬기 위해 잠시 멈춘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라비엔에서 벗어날 때의 모습 그대로 내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보통 말이었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테지만, 이 마차의 앞에 매인 네 마리 말은 나무와 구리, 쇠를 섞어 만들어진 모형임을 과시하듯 지치지 않았고 뭔가를 먹고 마실 필요도 없었다.
마차의 형태 또한 특이한 쪽에 속했다.
투란이 누운 지붕은 마차의 앞쪽 절반만을 덮은 채였고, 마부석까지 확장된 채였다. 마차 뒤편의 절반은 지붕 없이 그대로 안이 노출된 채인데, 마차 꽁무니에는 이 절반을 덮을 수 있는 덮개가 접혀진 꼴로 붙어 있었다. 원한다면 마차는 온전한 지붕을 유지할 수도, 반쯤 열어놓은 꼴일 수도 있는 셈이었다. 그런 마차의 앞부분, 마부석은 비가 오든 바람이 몰아치든 마부를 보호할 수 있는 지붕과 낮은 문짝이 좌우로 달린 채로 마부가 창문 너머로 말을 모는 듯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루케인은 그 마부석에서 꾸벅꾸벅 조는 듯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박혀 있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고, 움직일 리가 없는 모형인 말 네 마리가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투란처럼 처음에는 신기해하던 네 남매는 마차 안에서 열린 풍경을 보며 졸거나 아예 잠든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가 넘게 마차가 멈추지 않고 내달리고 있으니, 달리 뭔가 하기도 어려운 탓이었다.
―아무리 신기하더라도, 벌써 이틀이 넘어 사흘째가 돼 가는데 여전히 신기해?
드라고니아가 이번에는 조금 어이없어 확인해보고 싶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아무래도 투란과 네 남매의 차이가 궁금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신기한 게 당연하잖아? 저 오토마타라는 거, 마력으로 움직이는 부분이라고는 오직 감겨진 태엽뿐이라며? 그 태엽을 한번 감아놓으면 풀리면서 말이 달린다며! 루케인이 마법으로 관리하는 부분은 태엽을 감고, 방향설정을 해놓은 것뿐인데 저렇게 알아서 달리다니……! 대단하잖아!’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첫날 마차를 보고, 투란과 네 남매가 많이 놀라는 광경에 해줬던 설명을 되짚으면서 소리 없이 신나게 떠들었다.
―기계(器械) 계통의 물품은 본 적이 없냐? 그렇지는 않잖아?
‘응? 갑자기 기계는 왜? 보기야 많이 봤지. 물레방아 돌리는 수차(水車)라든가, 바람이 거셀 때 이용하는 풍차(風車), 강물을 끌어올 때 쓰는 물푸개. 전부 기계였다고. 하지만 전부 한곳에 박아놓고 쓰는 거였어. 아, 전부 데굴거리며 구르거나 빙빙 도는 거기도 했구나. 음…… 저렇게 말 모양을 했다고 말처럼 달리는 기계는 못 봤어. 아마 그래서 내가 이렇게 신기해하는 걸까? 그치만 마법사라고, 마법사! 마법사가 저런 식으로 도구를 사용한다는 거, 신기하잖아? 넌 자주 봤어?’
말을 쏟아내던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한층 더 어이없어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할 말을 잊은 듯한 낌새도 솔솔 풍겨 나오는 느낌이었다. 간지러운 그 느낌에 투란은 하늘을 보며 살짝 웃음을 흘렸고, 하던 얘기를 소리 없이 마무리 지으려 했다.
‘헤헷, 저런 모형으로 된 말이 달리는 건 신기한 일이라고! 신기한 일은 솔직하게 신기하다고 여기면 되는 거야!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더 신기한 걸 기대하게 되는 게 맞잖아? 아, 그래! 너 혹시 저절로 장전되는 쇠뇌 얘기 알아? 마법도 아니고, 순전히 공방의 기술로만 만들어졌다는 거…… 그것도 무슨 기계술 공예품이라던데…….’
떠들다가 갸웃거리면서 더 왕성하게 이야기가 이어지려는 낌새를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입을 막겠다는 것처럼 서둘러 말한다.
―알드바인에 가면 볼 수 있지 않겠나? 이 마차도 알드바인에서 제조된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 거기 가면 이런 기계 계통의 물품을 조금 더 쉽게 볼 수 있겠지. 저 모형마에 비하면 자동장전 쇠뇌 같은 건, 꽤 단순한 구조일 테니까. 그런 건 가서 구경하기로 하고…… 투란, 이 남매와 어디까지 함께 갈 생각이지?
‘음.’
갑작스런 물음에 투란은 느릿하니 몸을 일으켜 앉았다.
마차 뒤편으로 한참 멀어지는 풍경이 지평선과 엮인 것처럼 보였다.
투란이 늘어뜨린 채로 까닥거리는 다리 아래로, 반쯤 열린 지붕 안에서 멀리 바라보는 모습인 시알라가 반쯤 조는 듯했고…… 멜란드는 그냥 마차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워 퍼져 자고 있었다. 제란드와 페란드는 번갈아가면서 깨고 자며 주변을 경계하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많이 느슨해진 모습이었다.
―황금매로 엮인 상황이 있으니까, 일단 알드바인에서 로열 가든의 보호까지는 분명히 함께 해야겠지. 그 다음에는 어쩔 셈이지? 켈슨이나 펠루한―제이크가 된 녀석들―처럼 알아서 살라고 냅둘 생각인가? 아니면 쟌이라는 꼬맹이처럼 적당히 황금을 분배하고 갈라설 셈인가?
‘흠…….’
투란은 뒷목을 쓰다듬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투란에게 네 남매는 역병의 숲을 넘을 때까지는 어찌 되었든 저 산맥의 깊은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다. 넘고 나서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는 그냥 투란 혼자만의 힘으로도 넉넉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그저 넘고 나서 되돌아볼 때의 판단일 뿐이었다. 만약 지닌 몬스터의 능력으로 전부 뭉개면서 혼자 밀고 나왔다면…… 어쩌면 라비엔까지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밀어붙여서 엄청난 소동을 벌였을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잘 모르겠어.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잘 모르지만, 어쨌든 알드바인이란 곳에 가서 생각해보려고 해. 뭐,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라고. 시알라나 멜란드는 잘 알아도 난 모르잖아. 어쩌면 이제부터는 내가 정말 더 도움을 많이 받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나중에 생각하자. 길 막는 늑대부터 해결하고.’
마음을 더듬으며 정리하던 투란은 문득 마차 앞쪽 길 저편에서 흘러오는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면서 몸을 돌렸다. 뒤편의 멀어지는 풍경과 다르게 다가오는 듯한 마차 앞쪽의 풍경 속에는 껑충거리는 늑대가 몇 마리 보이고 있었다.
진짜 말이었다면 이 냄새만으로 겁을 먹고 주춤거릴 텐데, 모형마는 그저 질주할 뿐이었다.
투란은 마부석 지붕에서 고개를 떨구며 소리쳤다.
“루케인! 저거 늑대 맞아요?”
꾸벅거리던 루케인이 고개를 들었다.
투란의 거꾸로 매달린 얼굴을 잠깐 보다가 루케인은 투란이 손짓으로 가리키는 앞쪽을 바라봤다.
“흠? 흠…… 이상한데? 거리가 꽤 있는데…… 보통 늑대일 리가 없겠지. 어쩔 건가?”
“몬스터?”
투란이 되물었다.
루케인이 말한 대로,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늑대의 형체는 그 발아래 깔린 소처럼 작지 않았다.
얼핏 봐서는 늑대가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소를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 소는 피를 튀어 올리면서 내장이 뱃가죽과 함께 길게 찢어지고 있었다. 가까이 붙게 되면, 저 늑대 몇 마리는 이 마차만큼이나 큰 놈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한 광경이었다.
“글쎄, 빅울프를 몬스터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그저 덩치가 비정상적으로 크기는 하지만…… 그것 말고는 그냥 늑대거든. 음…… 뭐, 인간의 기준을 놓고 따지자면 몬스터라고 해도 상관없는 거대한 늑대라고 나 할까?”
루케인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좀 더 가까워진 늑대의 품종을 파악했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다시 되물어야 했다.
“그냥 지나가도 괜찮다는 거예요, 아니면 저놈들 이빨에 씹힐 수 있다는 거예요?”
꽤나 단순한 물음이었기에 루케인은 쓴웃음부터 지어야 했다.
“일단 마차에 걸린 테러(Terror) 주문이 발동될 테니까…… 거기 걸린다면 그냥 지나가도 될 거야. 하지만…….”
“아, 테러! 그거라면…… 나도 좀 도와볼게요.”
투란의 얼굴이 사라지면서 남겨진 말에 루케인은 잠시 눈을 깜박이며 맹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마차에 걸린 주문은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짐승이라든가 겁을 느끼는 몬스터라면 마차 가까이에 다가왔다가 공포를 느끼고 알아서 길을 비키거나 멀어지게 말이다.
그런데 그걸 돕는다니?
주문에 맞춰 소리라도 지르겠다는 것인가?
갸웃하면서 거대한 늑대 몇 마리와 거리가 확 좁혀드는 꼴을 보고 루케인이 움찔했다. 저 빅울프 몇 마리는 달리는 마차를 새로운 먹잇감으로 여긴 듯, 이쪽을 보며 혀를 내밀고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 이런…….”
루케인은 혀를 차고 말았다.
저렇게 달려든다면 어찌 되었든 일단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테러 주문이 제대로 먹혀서 저 녀석들이 한꺼번에 겁을 먹으면 좋겠는데…….
우우으으!
갑작스럽게 머리 위에서, 마차 지붕에서 들려온 크고 깊이 울리는 소리에 루케인은 섬뜩함을 느꼈다. 조금 전에 늑대의 거대한 몸집을 깨닫고 루케인이 몸을 움찔하게 했던 것 정도는 싹 잊게 만드는, 뼛속까지 울려오는 압도적인 괴성이었다.
“어, 뭐야?”
반쯤 열린 마차 안에서도 놀란 소리가 나왔다.
자고 있던 멜란드가 깨어나면서 벌떡 일어난 모양이었다.
“투란이야. 그냥 자고 있어.”
시알라가 별일 아니라고 떠드는 소리가 루케인의 귀를 간지럽혔다.
멜란드의 투덜대는 목소리가 멀어지는 풍경에 어우러지려는 듯이 아련하게 다시 들려온다.
“그랑츄잖아? 아니, 왜 갑자기 그랑츄 목소리를 내고 있어…… 깜짝 놀랬잖아. 무슨 일 난 거야?”
“좀 큰 늑대가 뛰어오는 모양이야. 그냥 자라고.”
시알라가 다시 대꾸하는 목소리는 지붕 위로 슬슬 옮겨지고 있었다.
루케인은 마차 지붕의 기척을 통해 시알라도 투란처럼 자기 머리 위로 옮겨 앉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벼운 마력의 파동이 일어나면서 마차에서 뿜어져 나가는 간결한 테러의 마법이 한층 더 강렬해지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늑대들이 이에 반응했다.
“응?”
루케인은 눈을 부릅떴다.
입부터 활짝 여는 늑대 녀석들의 꼴은 길을 비켜설 낌새가 아니었다.
이쪽의 마법, 테러에 대항해서 저 녀석들도 질 수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커엉! 커어어엉! 크어엉!
우리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겁먹어라!
딱 그런 느낌으로 늑대들이 으르렁거리면서 돌진해오고 있었다.
“덩치가 커서 그런가? 겁이 없네?”
투란이 투덜대는 소리가 루케인의 귓가에 닿았고, 루케인은 혀를 차면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저 늑대에게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테러 주문이 보다 직접적인 위협으로 느껴질 듯하니까.
그러나 루케인이 손을 휘저어 마법의 불꽃을 날리기 전에 마차 지붕에서 아주 험악한 불길이 뿜어져 나갔다. 허공을 기어가는 뱀처럼, 쏜살같이 날아가는 긴 끈처럼 불길은 늑대를 향해 돌진했다.
컹? 깨에엥!
맨 앞에서 뛰어오다가 순식간에 불길에 휘감긴 늑대가 비명을 지르면서 옆으로 튀어나갔다. 그 털가죽이 홀랑 사라졌고, 늑대는 벌거숭이처럼 저편으로 뛰며 펄떡거렸다. 뒤이어 달려오던 늑대 몇 마리는 선두에 불이 붙자마자 옆으로 흩어지며 불길을 피하고 있었다.
투두드드! 쿵, 쿵.
마차 바퀴가 요란하게 땅을 긁었고, 곁을 스쳐 가는 늑대의 발걸음이 요란하게 땅을 내리찍었다.
“와아! 크다!”
투란이 마차보다 더 큰 덩치의 늑대가 스쳐 가는 꼴을 보면서 외쳤다.
루케인은 시알라의 불길에 놀란 늑대들이 과연 이대로 마차를 쫓지 않을 것인가 파악하려고 마력을 펼쳤다.
퍼억! 깨에엥!
퍽, 퍽! 케에엥!
무서운 타격음과 함께 마차 양쪽에서 터져 나오는 애처롭지만 큼직한 늑대의 비명이 쩌렁쩌렁 고막을 울리며 퍼졌다.
“어이, 뭐야! 뭘 한 거야?”
마력으로 루케인은 감지할 수 있었다.
뒤에서 페란드와 제란드가 큰 마력을 휘둘러 뭔가 했다.
그런데 대체 뭔가?
“한 대씩 때려준 것뿐이에요.”
강아지를 팬 것처럼 말하는데, 전혀 그럴 리가 없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