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0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01)
Chapter 81. 알드바인
어스름한 풍경 한 곳을 도려낸 듯, 모닥불이 크고 넓게 타올랐다.
모닥불 주변으로는 거대한 체구의 늑대가 웅크리고 있는 꼴이 보였고, 늑대의 앞쪽으로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리고 모닥불의 중심에서는 사람보다 좀 커 보이는 핏덩이 둘이 긴 장대에 꿰어진 채로 구워지는 중이었는데…….
“알드바인은…… 왠지 우리한테 행운을 안겨 주는 곳일 것 같은데?”
불그스름한 불빛을 바라보면서 주저앉은 채 멜란드가 조금 지친 기색으로, 하지만 아주 개운하고 즐거운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멜란드의 말에 바로 투란이 울상을 하고 투덜거림을 멈출 수 없다는 듯이 대꾸한다.
“행운? 가는 길에 만난 놈이 대단한 능력을 전혀 나눠 줄 낌새가 없는 마수인데? 이게 뭐냐고! 짐승을 지배하는 능력이라니…… 이렇게 좋은 능력을 왜 몬스터도 아닌 마수가 갖고 있냐고!”
철퍽, 철퍽.
투란이 잔뜩 피 묻은 손을 자기 가슴에 대고 두드리면서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 가슴팍에서는 그냥 묻어 흘러내리는 핏자국만 짙게 남겨져 있을 뿐이었고, 몬스터 엠블럼이 반응하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투란이 피를 퍼내고 있는 것은 큼직한 늑대 가죽이었고, 강제로 벗겨 낸 탓인가 핏덩이가 고스란히 엉겨 붙은 채로 핏물이 줄줄 흐르는 꼴이 섬뜩한 분위기를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멜란드는 그런 광경 속의 투란 모습에 풋 하고 웃었고, 우뚝 선 채로 모닥불을 바라보던 페란드가 쓴웃음과 함께 투란에게 이야기한다.
“투란, 이 늑대는…… 우리 고향을 파괴한 녀석들이야. 설마 이렇게 이곳에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만나자마자 때려잡을 수도 있었잖아. 나름대로 행운인 거지. 전에 얘기했잖아. 우리가 강해졌으니까, 램피지 알파도 사냥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응, 기억나. 무시무시한 늑대 괴물이라고, 어디 있는지 알면 쫓아가 잡고 싶다고 했지. 근데……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아니잖아! 그냥 엄청나게 짜증 나는 짐승일 뿐이잖아! 히잉…… 페란드가 사기 쳤어.”
“아니, 그건 사기가 아니잖아! 빅울프 몰아붙이는 거 봤잖아! 이 정도면 충분히 무시무시한 괴물이라니까!”
“히잉…… 삼키지도 못하는데 무슨 괴물이야…… 몬스터도 아닌데…….”
철벅, 철벅.
다른 한 마리의 가죽도 긁어내고 핏덩이를 푹푹 찔러서 핏방울을 튕기는 꼴로 투란이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투정 부리고 있었다.
루케인에게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이미 전투……라기보다는 사냥을 시작할 때 드레드 울프가 마수라고 몇 번씩이나 외쳐 줬잖은가. 그런데도 마수라면 몬스터가 되었을 수도 있다면서, 사냥이 끝난 다음에 핏덩이가 엉킨 가죽을 놓고 투란은 저러고 있는 것이다.
‘뭔 몬스터에 환장한……. 아, 젠장! 몬스터 로드였지.’
스스로가 던진 의문에 스스로 답하면서 루케인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늑대, 빅울프 몇 마리가 귀를 잔뜩 접고 꼬리를 만 채로 땅에 바싹 엎드린 듯한 꼴을 한 광경이 새삼 루케인의 눈동자에 비쳤다. 이 덩치 큰 놈들의 겁먹은 몰골 또한 루케인의 입술 사이로 새로운 한숨을 쥐어 짜냈다.
빅울프는 나름대로 겁을 잔뜩 먹고 복종하는 자세를 보이려고 하는 것이지만, 작은 오두막 하나에 맞먹는 덩치가 강아지 흉내라도 내듯이 저런 것은 그냥 보기 황당할 뿐이었다. 혀를 내민 탓에 슬쩍 보이는 이빨도 도끼나 곡괭이를 연상시키는 섬뜩한 기분부터 자극하는 꼴이잖은가.
그러나 그렇게 빅울프를 겁주는 광경이 바로 그 앞에 있었기 때문에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거대하지만 어쨌든 이 짐승이 저렇게 겁먹은 꼴인 것을 루케인은 한숨을 쉬더라도 탓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광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제란드는 별생각 없이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크게 소리친다.
“다 익은 것 같아. 이제 먹어도 되겠어.”
가죽이 벗겨지고 핏기도 따로 빼낸 드레드 울프…… 두 마리의 통구이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서 기름기를 좔좔 흘려 내고 있었다.
뭔가 욱하는 게 치밀어 오른 루케인으로서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짜 먹을 거냐?”
“다 구웠잖아요?”
제란드가 조금 떨떠름하니 되묻고 있었다.
루케인은 그 말투에 담긴 의미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신나게 구워 대는 동안에 가만히 있다가 다 익은 다음에 뭔 소리냐는 것!
“냄새가 맛있는 것 같아!”
어느새 투란이 모닥불가에 붙어서 구워진 드레드 울프의 살덩이에 손을 내밀며 외치고 있었다. 먹을 것을 앞에 두면 재빨라진다고 과시라도 하는 꼴이었다. 이 또한 루케인의 가슴 한구석을 욱하게 해서 입을 열게 한다.
“그거 먹는다고 마수의 능력이 옮거나 마력이 증가하거나 하지 않거든?”
“먹어 봐야 아는 거 아닌가요?”
투란이 대놓고 실망한 눈빛으로 징징대는 소리를 냈다.
이쯤 되니 루케인으로서도 버럭 한마디 할 상황이었다.
“소 잡아먹는다고 소뿔 돋냐! 사슴 잡아먹는다고 사슴뿔 돋냐고! 거북이 잡아먹는다고 등껍질 생기냐! 아니라고!”
“에이, 걔네는 그냥 짐승이고 얘네는…….”
“마수의 능력은 살아 있을 때나 발휘된다고! 마법사가 죽으면 그 시체가 마법 쓰는 것 봤어?”
투란이 조금 더 투덜거리려 하는 모습에 루케인이 더 빠르게 으르렁거렸다.
그런데 이 소리는 페란드의 작은 반발을 바로 불러냈으니…….
“아, 죽은 마법사가 마법 쓰면서 미쳐 날뛰는 얘기……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시알라도 보태는 듯이 한마디 더 한다.
“언데드 메이지…… 그건 몬스터잖아, 페란드. 지능도 있고, 살아 있을 때의 기억도 있는…… 몬스터 로드가 삼키면 안 된다는 쪽이지.”
이 소리에 투란이 살짝 눈을 가늘게 하면서 루케인을 바라봤다.
루케인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야, 그건 몬스터가 된 경우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죽었다 벌떡거리면서 일어나는 게 마법사뿐이냐? 짐승도 있고, 마법사 아닌 인간도 잔뜩 있잖아! 그런데 그런 거 구워 먹는다고 그 능력이 옮겨 가? 아니잖아! 그리고 마법사가 언데드가 되어서 일어난다고 해도 그냥 해골인 경우가 더 많다고! 웬만해서는…….”
으적, 으적.
떠드는 사이에 고기를 찢어 입에 넣고 씹는 세 형제의 모습은 루케인이 잠시 말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투란은 ‘으앗!’ 하면서 얼른 고기에 손을 내밀며 투덜거린다.
“어쨌든 먹어 보면 알 텐데!”
“그래, 먹어 보면 알겠지.”
결국 루케인은 포기한 듯한 웅얼거림으로 말을 맺고 말았다.
빅울프가 거대한 체격을 웅크린 사이로 멈춰진 마차를 배경 삼듯이 피어오른 모닥불 위에서 기름기를 잔뜩 흘리면서 구워진 드레드 울프가 뼈만 남길 무렵에는 밤이 깊어졌고, 차가운 밤바람이 슬그머니 불가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 사이로 투덕거리는 듯한 목소리들이 오간다.
“어때요? 마력이 차올라요?”
“넌 차오르냐!”
“에이, 순수한 마법사가 대답을 해 줘야지!”
“안 차올라!”
“엇? 그럴 리가. 배가 부른데 마력이 차올라야 하는 것 아닌가!”
“넌 배부르면 마력이 차오르냐!”
“그렇지 않아요?”
“뭐? 진짜 마력이…… 잠깐, 몬스터 로드는 먹고 쉬면 힘을 회복하는 거잖아!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차오르는 건 당연하지!”
“에, 마법사 불편하구나!”
“야아!”
투란이 루케인을 붙잡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시알라는 쓴웃음과 작은 한숨을 쉬면서 세 형제를 둘러봤다. 셋은 이미 마차를 벽 삼아 자리를 깔고 누워 잠들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먹었으니 바로 자면서 쉰다는 태도였고 거친 환경에서는 쉴 수 있는 때는 반드시 쉰다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따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몬스터나 마수가 언제 튀어나오더라도 자신의 힘을 최대한 끌어낼 준비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인간의 도시에 들어가 쉴 때까지 되풀이될 일이다. 살아남기 위한 버릇이라고 할 수 있는…….
문득 시알라가 끙끙거리면서 투란과 티격태격하는 루케인에게 묻는다.
“루케인, 알드바인은 어떤 곳이죠?”
“마수 먹는다고 마력이, 응? 알드바인에 대해서 들은 거 있잖아?”
투란을 향해 떠들다가 지친 것처럼 루케인은 재빠르게 시알라의 물음에 반응하고 있었다. 투란이 그 모습에 ‘흐흥, 할 말 없어졌구나!’라는 소리를 중얼거렸지만, 루케인은 싹 무시하고 시알라의 물음에 대해 집중하는 듯했다.
살짝 짙어진 쓴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시알라는 다시 질문을 정리한 것처럼 말한다.
“소문으로 들은 거야 많죠. 상아탑의 마도사가 다스리는 자치도시, 경계 도시를 지원하는 마법의 요새, 헌터 길드의 대공방까지 자리 잡은 곳, 대호수(大湖水)에 들러붙은 도시……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리냐고요. 거긴 마법사랑 헌터가 잔뜩 우글거리기라도 하는 거예요? 루케인도 다루기 힘든 마법까지 마음껏 다루는 마법사가 흔해 빠진 곳이라도 되는 거예요? 거기서는 농사짓는 사람은 있어요? 밭이나 과수원은 아예 없는 곳이에요? 라비엔처럼 식량이나 옷감은 전부 오가는 장사꾼에게 맡겨야 하는 곳이에요?”
“흠…… 그러니까 알드바인에서 어떻게들 사느냐 뭐 그런 거?”
벅벅 머리 한쪽을 긁적이면서 루케인이 짤막하게 되물었다.
시알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꾸한다.
“그런 거요.”
투란이 입을 다물고 귀를 쫑긋하는 태도로 루케린을 바라봤다.
마찬가지로 궁금하다는 듯한 그 태도에 루케인이 조금 심술 난 표정을 짓다가 대답을 한다.
“뭐, 간단히 말하면…… 그냥 사람 사는 곳이지. 가 보면 알겠지만, 뭐 소문 속의 모습 그대로인 점도 있고…… 내게는 그냥 고향이고…… 흠, 거참 말하려니까 굉장히 괴상하네. 아무튼, 대강 말해 보자면…… 알드바인은 원래 호숫가에 버려진 성채에서 시작된 도시야. 원래는 세트반 왕국의 변경 지역이었지만…… 세트반에서 더 이상 지킬 여력이 없어서 버려진 곳이었지.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었고, 그것 때문에 상아탑에서 꽤 오랫동안 세트반 쪽을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설득하는 데 실패했어. 그 때문에 상아탑이 자체적으로 떠맡은 성채였는데…… 어떻게 버티면서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큰 도시가 돼 버렸다, 뭐 그런 경우야. 애초에 그런 변경이었고, 많이 험악한 환경을 억지로 갈아엎은 곳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몬스터 헌터라든가 왕국에서 도망친 녀석들이라든가 하는…… 뭔가 묘한 집단이 돼 버린 거고, 상아탑에서 조금 더 확실하게 분위기를 잡다 보니 마법사가 다스리는 도시가 돼 버린 거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무나 와서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보라는 도시라서…… 상아탑의 마법사가 와글거리는 분위기를 타고 물품 보급하던 연금술사들이 꾸역꾸역 자리 잡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헌터 길드에서 공방을 차렸고…… 음, 뭐 대강 그런 분위기?”
이야기가 줄줄 새며 길어진 것을 느낀 듯, 루케인은 갸웃하면서 말을 멈췄다.
시알라는 ‘그게 뭔 분위기?’라며 조금 어이없어했고, 투란은 루케인을 따라 하듯이 갸웃하며 말한다.
“라비엔처럼 여차하면 헌터들의 난장판이 벌어지는 곳이란 거예요, 그런 일만 없는 비슷한 분위기라는 거예요?”
“가끔 작은 소동은 벌어져.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큰일은 없지. 알드바인이 자리 잡고, 그 지원을 통해 경계 도시가 둘이나 더 생긴 다음에 라비엔까지 진출했으니까. 지금의 알드바인은 꽤나 안정적이고 안전한 곳인 셈이야.”
루케인은 소동이란 말에 조금 멈칫하다가 씩씩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한데 그 모습에는 마치 ‘설마…… 큰 소동까지야.’ 하는 묘한 말이 소리 없이 덧씌워진 듯한 분위기가 잔뜩 맴돌고 있었다.
투란이 그 분위기를 분명히 파악한 것처럼 시알라도 알아차린 듯, 잠깐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물음을 더한다.
“그런 도시라면, 오가는 사람이 많을 텐데…… 식량이라든가 필요한 물자는…….”
“응? 아, 그건 적당한 선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지. 아까 말했잖아. 세트반의 변경이었지만, 세트반에서 지원을 포기했다고. 왕국에서 지원을 포기한 지역인데 상아탑이 막무가내로 물자를 쏟아 넣을 수는 없었지. 그렇게 물자가 여유롭지도 않았고…… 그래서 알드바인을 유지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마법사들은 반쯤 개척민이랑 닮았다고 해. 호숫가라는 점, 어쨌든 주변이 나름대로 비옥한 땅이란 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성채 주변에 도시를 이루고 웬만한 물자는 자급할 수 있도록 애쓴 결과가 지금의 알드바인이 된 거야. 음, 뭐 이렇게 말해도 그게 벌써 백 년 이상 된 일이니까…… 일단 가 보면 알 거야. 딱히 뒤틀린 관습 따위는 없는 곳이니까, 거기서 살려고 한다면 금방 적응할 수 있어.”
루케인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시알라나 투란이 알드바인이 정착하려 하는가를 떠보듯이 말을 맺었다. 시알라는 그런 물음에 조금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드는 듯했고, 투란은 눈을 반짝이면서 묻는다.
“가는 길에 경계 도시에도 들르나요? 알드바인보다 그 경계 도시 쪽이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안 들러! 우린 곧장 알드바인으로 갈 거야! 그러려고 저 마차까지 끌고 나왔다고!”
루케인이 으르렁대는 듯한 말투로 투란의 호기심을 잘라 버리겠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면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고…….
“알드바인의 상급 마도사에게 맡길 일을 들고 가는 거야. 그 정도는 돼야 네가 의뢰한 수준에 맞출 수 있다고!”
루케인은 ‘이게 다 네 탓이야!’라는 것처럼 덧붙였다.
깊은 밤의 차가운 바람 사이로 잔뜩 웅크린 빅울프 때는 마법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운 것에 반응하듯 귀를 쫑긋거렸다.